소설리스트

328화 (328/427)

『하지만 이번 임무는 정말로 당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보단, 테스트 성향이 강했어. 우리 제안에 넘어온 그자들의 능력 테스트 말이지. …밀항? 걱정하지 마. 그런 걸 도울 만큼 탐나는 자들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우리 손바닥 안에 있지. 일을 제대로 못 했으니 돈을 도로 받아내야 하지 않겠어?』

한율은 드미트리에게 들은 내용을 이해원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김대현 패거리의 위치를 추적할 방법도.

게방부 역시 드미트리의 자백을 들었으나, 계나리가 더 빨리 김대현 패거리의 위치를 특정했다. 여기엔 이해원이 양평에서 데려온 까마귀들의 역할도 컸다. 까마귀들은 자신들을 공격한 그 자들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서 피곤할 텐데. 정말 수고했어요, 형.”

-[아니야. 이놈들 게방부에 넘기면 되는 거지? 근처 다른 곳을 수색 중이라 금방 올 것 같은데.]

“네. 혹시 모르니 눈부터 가리고 손발 다 묶어두세요. 저도 곧 갈게요.”

-[응.]

통화를 끊은 한율은 몸을 돌렸다. 게이트 방어선 출입 허가 기자들이 여전히 눈을 반짝거리며 ‘제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율은 그들의 접근과 촬영을 막아주는 게방부 군인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기자들이 난리 쳤다.

“제임스, 정말 이대로 가는 건가요?”

“정말 능력을 쓰는 데에 제약이 없는 겁니까?!”

“몸은 다 나으신 겁니까?”

“한국과 어떤 인연이 있는 겁니까!”

“딱 3분이면 됩니다! 아니, 1분만! 국민께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제가 뭐라고 국민께….”

한율은 겸손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였다.

“그럼 이만.”

차를 몰고 가는 동안엔 몇 시간 전에 갔던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어스래빗 숙소 절도 사건 주범인 가사도우미와 그 아들, 나머지 공범들까지 잡았다는 소식이었다.

“훔친 물건은요?”

-[본인들 말론 이미 장물업자와 중고 거래를 통해 팔았다고 합니다만, 자세한 건 조사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다른 사람들에겐 제가 알릴게요. 감사합니다.”

한율은 어스래빗 숙소를 홀로 지키고 있는 박가람에게 전화했다.

“절도범들 잡았대요.”

-[무엇이?! 그럼 지금 경찰서 가면 만날 수 있는 거지? 내 당장 이것들을!]

“혼자선 위험하니까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가요.”

-[알았다!]

유호에게도 연락했다.

-[우르르 몰려가면 가뜩이나 바쁜 경찰분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으니까, 유찬이 형이랑 둘이서만 가야겠다. 가람이는… 감정적으로 폭발할 수 있으니까 놔두고.]

“네. 형한테 맡길게요.”

-[한율이 넌 언제 와?]

“해원이 형 집이랑 펜션 침입하려 했던 놈들도 막 잡았다는 연락이 와서요. 그놈들 만난 뒤에 연락할게요.”

-[정말? 한율이 네가 오니까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구나.]

유호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어쨌든 조심해. 어떤 능력을 갖고 있을지 모르는 각성자들이잖아.]

“네.”

* * *

‘눈부터 가릴 만한 게….’

이해원은 서한율의 말대로 김대현 패거리를 찾는 게방부 군인들에게 먼저 연락했다. 그리고 집안을 뒤졌다.

‘이거면 되겠지?’

집주인이 놓고 간 걸까. 옷장에 정리된 넥타이 여러 개를 챙겨 다시 거실로 나왔다. 제일 가까운 곳에 쓰러진 놈부터 눈을 가리고 양손을 뒤로 묶었다. 사람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결박까지 하는 게 워낙 익숙한 일이 아니라, 속도는 더뎠다.

여러 걱정과 생각도 들었다.

너무 세게 묶으면 피가 안 통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매듭이 잘 안 풀리지?

‘조금 전에 창에다 머리 들이받게 한 사람, 괜찮을까? 뇌진탕에라도 걸렸으면….’

문득 드는 걱정에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까악! 그의 어깨를 고집하던 까마귀가 돌연 시야를 가렸다.

퍼엉.

“……?!”

푸른빛이 감도는 새카만 깃털과 살점, 피가 사방에 퍼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

얼굴에 튄 액체가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 씨발.”

조금 전까지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있었던 각성자 중 하나가 휘청거리며 섰다.

“한 번에 머리통 날릴 수 있었는데, 빌어먹을 까마귀 새끼가 또 방해하네?”

분명히 급소를 때려 기절시킨 줄 알았던 김대현이었다.

김대현이 이해원을 노려보며 웃었다.

“야, 너 뭐냐? 뭔데 까마귀들이 이렇게 지랄해? 테이머 능력자라도 되냐? 그런데 너 투명 인간도 되지 않았냐? 능력이 두 개야?”

이해원은 앞에 떨어진 까마귀를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세게 터졌는지,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

이해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처음엔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까마귀를 구분하지 못했다. 다 그게 그놈 같았다. 그러나 양평에서 홀로 지내는 동안, 자주 찾아오는 까마귀들의 자잘한 특징이나 성격을 알게 되었다.

그중 그의 어깨에 종종 내려앉았던 까마귀는 이 녀석, 단 한 마리뿐이었다. 오늘도 차에 타려 하자, 스스럼없이 조수석에 앉을 정도로 그를 잘 따르던 녀석이었다.

김대현이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우냐? 울어? 사람을 인정사정없이 패면서 기절시킬 땐 언제고, 그깟 까마귀 새끼….”

꾸욱. 이해원은 터져 나오려는 격정을 억누른 채 김대현에게 달려들었다. 김대현이 예상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투명 인간 아니면 넌 나한테 안 돼, 새끼야!”

조금 전, 현관문을 날린 직후 김대현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까마귀를 터뜨린 뒤에도 곧바로 공격하지 않는 걸로 보아, 다시 능력을 쓰기 위해선 어느 정도 힘이 회복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주절주절 떠들며 시간을 버는 거고.

그리고 원하는 특정 지점을 폭발시킬 수 있다면, 굳이 강한 폭발력을 쓸 만큼 회복되지 않아도 된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눈 한쪽만 날려버려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테니.

“이대로 뒈…!”

이해원의 눈이 은은한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파직!

그와 비슷한 색을 띤 보호막이 생성, 이해원에게 닿으려던 무형의 힘이 사라지고 거센 돌풍이 일었다.

“……?!”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할 틈도 없었다. 김대현은 가까스로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마력이 실린 날카로운 돌풍이 김대현이 있었던 자리를 내려찍듯이 박살 냈다. 콰드득!

“이 새끼, 너…!”

“…….”

이해원은 다시 한번 마나를 손에다 응집시킨 뒤 마력을 섞어 휘둘렀다.

저걸 맞으면 최소한 몸이 뚫려 죽는다!

김대현은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러나 미처 바닥에 쓰러진 친구를 발견하지 못하고 밟았다가 휘청! 기우뚱 넘어갔다.

“씨발!”

촤악!

“컥!”

가느다랗게 이은 마력을 구심점으로 만들어진 마나 채찍이 김대현의 등을 일자로 그었다. 후드득. 그의 살점과 피가 사방에 튀었다.

쿵.

“이 개, 같은….”

한 번 더.

촥.

“아악!”

이해원은 쓰러진 김대현에게 다가갔다.

“마음 같아서는 너도 터뜨려서 죽이고 싶은데, 참는 거야. 너 같은 쓰레기 때문에 살인자 타이틀을 얻고 싶진 않거든.”

“큭, 크큭….”

고통에 정신이 나간 걸까.

“뭐, 라는 거야, 씨발….”

김대현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이해원을 돌아보았다. 괴로움에 꺽꺽거리며 부들부들 떨면서도 주둥이를 놀렸다.

“남창 새끼 주제에…. 하, 존나 웃겨….”

“…….”

“그러고 보니 너, 후욱, 진은수하고 오랫동안 방송 했었더, 라? 아이돌 연놈들 뒤에서… 큽, 존나 붙어먹는다며.”

반격을 위한 시간을 버는 모양. 큭큭. 김대현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헤벌쭉 벌리는 그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그년하고도, 흐, 잤냐? 그래서, 씨발, 존나 아파. 하…. 그래서 나한테 더 지랄하는 거 아냐?”

“…….”

이해원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해졌다.

5년 전 <보컬리스트 시즌3>에 나갔을 때부터 온갖 악플, 진실에 가까워서 더 아프게 다가온 음해성 루머를 들었다. 이채현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한 적도 여러 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죽이지 않는다고 했지, 불구로 만들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어.”

콰득.

“아악…!”

김대현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크게 울려 퍼졌다.

게방부 군인들이 들이닥친 것도 그때였다.

“동작 그… 만…….”

이해원은 본래의 색으로 돌아온 눈으로 군인들을 돌아봤다. 얼굴에 잔뜩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까마귀의 것인지, 김대현의 것인지 헷갈렸다.

“기절한 척하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들어오세요.”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한율은 온몸이 포박당한 채 연행되는 각성자들을 살폈다. 막 구급차에 실리는 김대현 또한.

김대현은 과다출혈로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인 상태였다. 두 눈이 멀고 뼈 여러 군데가 박살 났다.

‘저건 신경이 있는 부분 같은데. 어쩌면 사는 게 지옥이 되겠어.’

이해원을 바라보았다. 한율이 도착했을 때부터 초조하게 눈치를 보던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좀… 과했지?”

“아니에요. 위험한 각성자를 적당히 상대했다간 오히려.”

한율은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형이 죽을 수도 있잖아요. 잘하셨어요.”

“응…. 고마워.”

“제임스.”

정상욱이 다가왔다.

“이놈들 조사에도 참여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떠날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네?!”

놀라 크게 외친 정상욱이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거리를 더욱 좁히며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어디로, 언제, 얼마나 말입니까?”

“그건 말씀드리기 힘들어요. 죄송합니다.”

“소장님도 아십니까?”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윗선도.”

“아….”

“하지만 제가 없어도 다들 잘 헤쳐나가리라 믿습니다. 아직 미숙해 보이는 각성자들도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혹시 이 자들이 한 짓 때문에….”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놈들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이 한국에 많이 남았거든요.”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여지. 정상욱의 얼굴이 살며시 밝아졌다.

“다행이군요.”

“종종 안부 연락할 테니, 꼭 받으셔야 합니다.”

한율은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정상욱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맞잡았다.

“네. 우리 소중한 장병들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아직 잡히지 않은 드미트리의 동료들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들의 임무는 사실상 실패했다. 김대현 패거리의 능력을 시험해보려다 되레 각성자 국가 관리 정책을 찬성하는 여론만 커졌고, 조사 대상 중 하나인 제임스는 곧 한국을 떠나니.

‘그렇다면 남는 건 미스터리 해커의 조사.’

그러나 한국 정부도 못 잡은 인물이었다. 계나리도 할 일은 대충 다 했으니 앞으론 몸을 사리겠다고 했고.

‘어쨌든 드미트리가 모두 실토했으니, 뒷일은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한편 그 시각, 어스래빗 숙소가 있는 관할 경찰서로 향하던 유호와 조유찬은 다소 당혹스러운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앞차가 비상 점멸등을 켠 채 돌연 속도를 줄였다. 그래서 따라 속도를 줄이다가 멈췄더니, 반대편 차선. 웬 수십 마리의 개떼가 차분히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

앞장선 덩치 큰 개는 애견용 산책 가방까지 메고 있었는데, 가방 주머니에서 작은 무언가의 머리가 쏙 나온 게 보였다.

저게 뭐지? 유호는 눈을 찡그리며 집중했다.

‘족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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