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0화 (332/427)

인기 폭발

[서한율, 이탈리아 명품 패션쇼 초대받아 밀라노行]

[인기 아이돌그룹 어스래빗의 멤버이자 배우 서한율이 이탈리아 명품 회사가 주최하는 패션쇼에 셀럽으로 초대받아 오늘 25일 아침, 전세기를 타고 출국했다.

(사진=인천국제공항에서 팬들에게 인사하는 서한율)

(중략).

한편, 같은 팀 멤버 길우성과 함께 각성자로도 알려진 서한율은 ‘각성자 제임스가 서한율의 차를 타고 다녔다. 이해원처럼 친분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네티즌들의 의혹에 침묵하고 있다.]

-서한율 신줏단지 모시듯 담요로 감싸고 품에 안은 거 뭐임? 안 덥나

ㄴ고양이 든 이동장이래요.

ㄴ고양이?

ㄴ고양이 데리고 비행기 탔다고요?

ㄴ명품 패션쇼 초대받아서 가는데 고양이?ㅋㅋㅋㅋㅋ

ㄴ사전에 다 허락받았다고 함.

ㄴ밀라노까지 직항도 14시간 가까이 걸리지 않나? 스트레스 장난 아니게 받을 텐데ㅋ 허락해준 명품 회사도 대인배네

ㄴ원래 저 비행기에 서한율 말고 초대받은 셀럽이랑 스태프만 타기로 했었는데, 게이트 터지고 나서 이탈리아인도 태우고 싶으니 스태프 최소한으로 줄여달라고 부탁했다고 함.

ㄴ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양이는 좀; 차라리 스태프 한 명을 더 데려가든가. 이거 갑질 아니냐

ㄴ원래 데려갈 스태프 다섯 대신 고양이 한 마리 태웠다고 갑질ㅋㅋ

ㄴ스태프를 이동장에 넣고 갈 순 없잖아

ㄴ팩트: 서한율 재산이면 전세기 수백 번 이상 빌릴 수 있다. 참고로 서한율이 탄 비행기는 외국 항공사 소유. 주로 전세기 대여 용도로 동물 동반 승객도 자주 이용한다고 함.

-왜 죄다 고양이 얘기만 하냐. 해외여행 가는 고양이 처음 보냐?

ㄴ난 제주도도 비싸서 엄두가 안 나는데 고양이가 이탈리아 여행ㅠ.ㅠ

ㄴ다음 생엔 서한율 고양이로 태어나십시오.

-이 시국에 명품 패션쇼 참석이라니. 제정신인가?

ㄴ대한민국 꿋꿋이 잘 버티고 있고, 잘 이겨낼 거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가는 겁니다. 명품 회사가 불안한 이 시기에 패션쇼를 강행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고요.

-얜 솔직히 각성 능력이 장난 수준이라ㅋㅋ 한국에 있어봤자 구걸하는 사람들한테 뜯기기밖에 더 하겠음? 잘 갔다 와라

-정말로 서한율도 제임스랑 친하고 미스터리 해커랑도 아는 사이면 명품 회사가 모셔야지

-이참에 어스래빗 해외에서라도 활동 재개해줬으면 좋겠다. 컴백 첫날부터 게이트 터진 거 내가 다 억울해ㅠㅠ

양평의 파란달 펜션.

“이게 무슨 소리야! 써한이 고양이를 데려갔다고?!”

인터넷 기사를 본 길우성은 객실을 뛰쳐나와, 관리동 2층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달냥아! 달냥아, 집에 있지? 맞지?!”

삑삑삑삑. 비밀번호를 누르고 서한율의 거처에 침입,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달냥의 사료와 이동장, 좋아하는 장난감까지 모두 사라졌다는 걸 깨닫고선 절망.

털썩.

“달냥아아…!”

“쯧쯧.”

길우성의 반응을 구경하러 따라온 박가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실에 힘없이 주저앉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막내야, 너희 본가에서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뭐였더라?”

“삐약이….”

“그래, 너에겐 삐약이가 있잖니.”

“너무 멀리 있잖아….”

“그래도 이탈리아보단 가깝잖니?”

흑. 길우성은 울상을 지으면서 박가람을 돌아보았다.

“가람 씨, 나랑 제주도 갈래…?”

“조금 더 안전해지면 그때 가자.”

“엉….”

힘없이 대답한 길우성이 씩씩거리며 일어났다.

“서한율, 이 자식! 나한테 상의도 없이 달냥이를 해외로 빼돌려?!”

“달냥인 원래 서한율 고양이….”

집안에 길우성의 외침이 쩌렁 울렸다.

“용서 못 해! 돌아오기만 해 봐, 아주! 혼을 내줄 테다!”

“…….”

박가람은 안쓰러움과 아련함이 섞인 눈으로 길우성을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아. 서한율 없이 객지로 가지 말랬는데. 우리 제주도는 못 가겠당.”

“……!”

이탈리아 밀라노로 향하는 전세기.

비행기 기체는 작았지만, 내부는 수십 명의 탑승객 모두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쾌적하고 고급스러웠다.

딩동. 안전띠를 풀어도 좋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한율은 다리 옆에 둔 이동장을 들어 무릎에 올렸다. 옆에 앉은 조유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동장을 들여다보았다.

“달냥아, 괜찮아?”

므앙.

“구동아.”

구동은 멀뚱멀뚱 조유찬을 바라만 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달냥이 친구 괜찮은 거야? 토끼가 원래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

끼야앙. 구동이 돌연 주둥이를 크게 벌리며 요란하게 하품하곤, 귀를 뒤로 젖히며 부르르. 쭉쭉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 상당히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응. 예민 안 한 것 같다. 둘 다 한율이 너 닮아서 참 강하네.”

[잠깐 실례합니다.]

고급 정장이 퍽 잘 어울리는 이탈리아 승객이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었다.

[혹시 서한율 씨 아니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그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작은 사업을 하는 마르첼로라고 합니다. 제 아내가 당신의 팬이에요.]

마르첼로. 계나리가 어제 건네준 탑승객 명단엔 없던 이름이었다. 하루도 안 되어 급히 바꿔탄 사람이란 뜻.

한율은 그 이유가 자신이란 확신이 들었다.

[네, 반갑습니다. 부인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사진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내한테 자랑하고 싶어서요.]

[그럼요.]

이렇게 한율에게 인사를 건네는 건 마르첼로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달냥에게 솜방망이 펀치를 얻어맞은 마르첼로가 물러나자, 다른 이탈리아인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급기야 인사를 나누기 위한 줄도 생겼다.

한율과 함께 패션쇼에 셀럽으로 초대된 배우가 부러우면서도 조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기내에서 미니 팬 미팅이라니. 정말 놀랍네요.”

“죄송해요. 불편을 끼쳤다면….”

“아뇨, 아뇨, 아뇨! 괜찮아요. 그것보다 고양이랑 같이 있는 동물, 혹시 토낀가요? 엄청나게 귀여운 것 같은데 한번 꺼내 보면… 안 되겠죠?”

또 다른 초대 셀럽은 대한민국 탑 솔로 가수라고 불리는 진사랑으로, 한율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달냥과 구동을 사랑스럽단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귀여워, 어떡해.”

므아앙.

기내에 고양이와 토끼인 척하는 마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그런 우려와 달리, 달냥과 구동은 사람들에게 인기 폭발이었다.

기장의 허락으로 두 녀석 모두 완전히 이동장을 나오자,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며 다시 줄을 서기도 했다. 구동의 발톱을 보곤 일반적인 토끼와 달라 특이하다고만 할 뿐, 지구의 동물이 아니라곤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는 눈치였다.

[어쩜 이렇게 의젓할까.]

[애들 털이 참 곱네요. 어떻게 관리하는지 비결을 물어봐도 될까요?]

[사람에게 사랑받는 게 익숙한 아이들이네요.]

[비행기가 편하니, 얘들아? 아이, 기지개 켜는 것 좀 봐요.]

“한 번만 쓰다듬어보면 안 될까요?”

잠시 후. 달냥은 오늘 처음 보는 진사랑의 무릎에 뻔뻔하게 자리를 잡았고, 구동은 조유찬의 머리 위로 올라가 뒷좌석 승객과 멀뚱멀뚱 아이컨택을 했다.

뒷좌석 승객은 감격하여 연신 카메라를 눌렀다.

[세상에, 너무 귀여워서 기절할 것 같아.]

찰칵찰칵.

* * *

한율이 탄 비행기가 오랜 비행 끝에 이탈리아 국경을 넘던 그 시각. 한국은 밤이 깊었으나, 서울 하늘은 여전히 괴물과의 전투로 번쩍번쩍 시끄러웠다.

쿠웅, 쿵. 지척에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대기가 울린다. 그러나 2주 만에 익숙해진 걸까. 서울의 한 종합병원 입원 병동은 불안한 기류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환자 상태 확인할게요.”

환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병실. 라운딩 중인 간호사가 조용히 말하자, 병실 앞을 지키던 군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도 신원을 확인했던 이 병원 간호사였다.

군인이 옆에 둔 가방에서 보호 장비를 건넸다.

“위험할 수 있으니 이것 걸치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간호사가 환자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군인들도 병실 안까지 들어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경계했다. 두 눈을 붕대로 칭칭 감은 채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환자의 정체 때문이었다.

김대현.

바로 어제 이해원에게 잡힌 각성자였다.

밝혀진 각성 능력은 물리적 폭발. 닫혀있던 단단한 현관문도 날릴 만큼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어제 김대현의 수술과 처치가 진행되는 동안 모두 잔뜩 긴장했다. 의료진이 그에 의해 크게 다치거나 살해당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그러나 김대현은 의식을 차리고 난동을 부릴 때에도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두 눈이 멀어서 못 쓰는 건지, 일부러 안 쓰는 건지는 모른다. 그런 까닭에 내일 새벽이 되면 게이트 방어선 내에 마련된 임시 수용 시설로 옮길 예정이었다.

군인은 김대현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이런 위험한 각성자도 완벽히 가둘 수 있는 이동 수단이나 감옥이 얼른 만들어져야 할 텐데. 단단한 문을 찌그러뜨릴 정도면 웬만한 강도가 아닌 이상…. 아니, 만약에 제임스만큼 강한 각성자이자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나타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게이트 괴물 상대하듯 사살해야 하나?’

사실 김대현도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면 사살해도 좋다는 지시가 내려온 상황이었다. 그가 공식적으로 저지른 범죄는 야간주거침입 미수에 불과했으나, 이해원을 죽이려다 까마귀를 참혹하게 터트린 것만 봐도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다 됐습니…. ……!”

김대현에게 담요를 잘 덮어주고 몸을 돌리던 간호사가 흠칫 물러났다. 군인들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푹. 조용히 다가온 날카로운 칼날이 그들의 급소를 순식간에 찔렀다.

“커헉…!”

의식이 아득해지는 군인의 귓가에 나지막한 러시아어가 들렸다.

[널 죽인 건 네 멍청한 상관이야.]

털썩.

“……!”

간호사는 입을 틀어막고 덜덜 떨었다. 시커먼 옷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침입한 자는 세 명. 그중 한 명이 그녀에게 총을 겨눈 채 입가에 검지를 세웠다. 시끄럽게 굴면 당장 죽이겠다는 의미였다.

“쉿. 얌전히 해. 안 죽여. 이리로 와.”

어색한 발음의 한국어.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인 자들이다. 믿어선 안 되지만, 간호사는 입을 꾹 다문 채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지금 소리를 지르면, 놀라서 나오는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 이 사람들이라면 그분들까지 해칠 거야.’

그게 간호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자 판단이었다.

침입자들은 군인들과 간호사의 시신을 한쪽으로 치웠다. 바닥에 흥건히 번지는 피를 밟으며 김대현에게 다가갔다.

[김대현. 다 듣고 있는 것 다 안다. 장소를 옮길 테니 싫으면 미리 말해. 괜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친구.]

김대현은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까딱거렸다.

군인들의 정시 보고가 늦는 걸 이상하게 여긴 게방부가 뒤늦게 병실을 확인했을 땐, 이미 김대현을 실은 구급차가 병원을 떠난 뒤였다.

김대현이 정체불명 괴한들의 도움을 받아 도주했다는 소식은 곧 이해원에게도 전달되었다.

-[피해자들을 살해한 방식이나 솜씨로 보아, 아직 찾지 못했던 드미트리의 동료들로 추측됩니다. 김대현은 두 눈이 실명하고 신경을 다친 상태라 혼자선 움직이지 못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해원 씨에게 보복할 가능성도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연락을 받은 이해원은 곧장 자고 있던 고은훤과 JE를 깨웠다.

“두 사람 모두 아래 펜션으로 이동하세요.”

“뭐? 갑자기 왜….”

이해원은 시간을 확인했다.

게방부 군인들이 김대현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은 30분 전. 아무리 빨리 달려도 이곳에 도착할 순 없는 시간이지만, 마음이 조급해졌다.

‘만약 김대현에게 내 얘기를 듣는다면, 또 나를 노릴 가능성이 있어.’

그렇게 되면 함께 지내는 사람들도 휘말린다.

이해원은 두 사람을 보챘다.

“설명은 내일 날이 밝으면 할 테니까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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