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1화 (333/427)

5년 전에 입대시켰어야 했어

“이해원이 두 가지 초능력을 가진 것 같다고? 그런 각성자가 있었나?”

경기도 외딴곳에 자리한 주택. 드미트리의 동료들은 김대현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한국의 각성자 국가 관리 정책이 시행되는 걸 방해하고, 미스터리 해커와 제임스를 조사하는 게 그들이 맡은 임무였다. 그러나 임무는 제대로 시도조차 하기 전 거의 실패. 드미트리의 배신으로 얼굴과 이름이 모두 알려져 수배까지 내려졌다.

게이트 사태에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도 매우 많아, 밀항 역시 쉽지 않았다. 꼼짝없이 한국에 갇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실패한 임무를 되는 데까지 수행하는 일.

“미스터리 해커 집단이라면 일반적인 각성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지. 보통 각성자가 능력을 각성한 건 6월 13일. 회색 게이트 징조가 나타났을 때였어. 하지만 미스터리 해커 집단은 훨씬 이전인 작년 12월에 서울에 나타난 게이트를 막았잖아?”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미래에서 온 놈들이겠지. 미래에선 두 개의 능력을 각성할 수 있거나, 아니면 그놈들만 아는 다른 방법이 있거나.”

“어쨌든 김대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해원은 우리가 상대하기엔 버거워. 그를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

“젠장, 그래서 어쩌자고!”

“그놈이 스스로 우리를 찾으러 오게 하면?”

용병들의 시선이 김대현을 향했다. 붕대로 눈을 가린 채 침대에 누워있던 김대현이 씨익 웃었다.

“인터넷에 이해원 검색해 봐. 워낙 유명인이라 그놈이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 싹 다 나올 테니까 그 점을 이용하라고.”

“가족을 이용한 협박? 참 고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지.”

흥분했던 용병이 어깨를 으쓱이며 김대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덥석! 김대현의 머리를 세게 잡았다.

“악!”

“그런데 말이지. 우리가 그런 기본적인 조사도 안 하고, 그런 방법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 새끼가 우릴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퍽. 김대현의 뒤통수를 세게 내려친 그는 동료들에게 턱짓했다.

“일단, 이놈 빼돌리면서 생긴 오해부터 푸는 게 어때?”

* * *

이탈리아 밀라노.

공항엔 한율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북적거렸다. 공항 측은 한율을 포함한 패션쇼 초대 일행을 VIP 전용 통로로 안내해주었다. 그러나 명품 회사에서 준비해 준 리무진을 타고 공항을 벗어나려 하자, 기다렸다는 듯 대기하던 차들이 줄줄 쫓아왔다.

“작년 10월에 콘서트로 왔을 때도 이 정돈 아니었는데. 선배님들 팬인가 봐요.”

같은 리무진에 탄 배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다들 어스래빗이랑 한율 씨 이름 들고 있던데요?”

“한율 씨, 너무 겸손하면 오히려 화나요.”

므아앙.

한율은 농담이었다는 듯 웃곤 이동장에 든 달냥과 구동을 살폈다. 오랜 비행, 그리고 낯선 사람들에게 내내 관심을 받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다행히 둘 다 괜찮아 보였다. 구동은 달냥의 품에 얼굴을 묻곤 자는 중이었다.

조유찬이 셀카 모드를 실행한 핸드폰을 들었다.

“한율 씨, 멤버들 없이 혼자 밀라노로 스케줄을 온 소감이 어때요?”

한율은 자연스럽게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 대답했다.

“혹시 멤버들이 엉뚱한 사고를 치진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지 않게 되어서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외롭진 않으신가요?”

“형이 있는데 외로울 리가요.”

“한국에 있는 멤버들이 나중에 이 영상 보면 서운해하겠어요.”

“네, 이 영상은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핸드폰 주세요.”

심심한 장난을 치는 동안, 리무진은 한율이 묵을 호텔에 먼저 도착했다. 호텔은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곳으로, 객실에는 모래 화장실과 고급스러운 식기, 미니 침대와 쿠션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각종 고양이 간식과 포장을 뜯지 않은 장난감까지.

“그럼 잠깐 쉬고 있어, 한율아.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하고.”

“네. 나중에 봐요, 형.”

조유찬은 한율의 짐을 옮겨주곤, 바로 옆 객실로 들어갔다.

한율은 이동장 문을 열고선 핸드폰을 살폈다. 비행기에서 전원을 켰을 때부터 웅웅 여러 번 울렸으나,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김대현이 드미트리 동료로 추정되는 놈들의 도움을 받아 도주?’

메시지를 보낸 이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한율아. 잘 도착했어?]

“네. 아주 잘 들려요.”

도청당할 수 있다는 뉘앙스. 이해원은 찰떡같이 알아듣고선, 한율이 묻지 않은 이야기를 술술 전해주었다.

-[러시아는 자신들과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면서도, 드미트리가 러시아 국적이니 자신들이 처벌하겠다면서 인도를 요청하고 있어. 그런데 마침 러시아의 무기 지원 논의가 진행 중이라 게방부도 골치가 아픈가 봐.]

“형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괘씸하지. 화도 나고. 하지만 지금은 내 감정보단 우리나라의 안위를 더 생각하려고. 무기가 있어야 조금이라도 괴물들을 더 막을 수 있잖아. …그리고 있잖아, 한율아.]

“네.”

이해원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생각해봤는데… 나, 입대하는 건 어떨까 해.]

“…….”

-[김대현이나 드미트리 같은 놈들이 또 찾아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잖아. 내가 계속 여기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휘말릴 테니까, 차라리 게이트 방어선으로 가는 게 날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 어차피 입대도 해야 하고.]

이해원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게이트 방어선에 있다 보면, 괴물을 상대로 수련할 기회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한율은 작게 한숨 쉬었다.

“기껏 잘 말해줬더니.”

어제 한율은 이해원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국가 관리 대상에 포함되면 이런저런 활동에 제약이 걸릴 테니, 제가 게방부에 잘 말해볼게요.』

이해원이 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모두 나 때문이잖아요. 내가 더 미안하죠.”

-[그만. 어쨌든 너무 걱정하지 마. 나, 네 제자잖아. 제자 좀 믿어줘, 한율아.]

한율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약 1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이탈리아 밀라노. 이젠 한국에 무슨 일이 생겨도 당장 도와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본래부터 ‘서한율’로 맺은 인연, 제자로 거둔 아이들을 평생 품에 끼고서 돌봐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그저 작은 도움만 줬을 뿐,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몫이므로.

“네, 믿을게요. 하지만 죽지 마세요.”

-[응, 고마워. 한율이 너도 항상 몸조심해야 해.]

“네. 나중에 또 통화해요.”

-[응.]

통화를 끊은 뒤 한율은 캐리어를 열었다. 우선 좀 씻으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뭐 잊은 거 없냐는 듯, 달냥이 한율의 손등에다 살포시 앞발을 올렸다.

므앙.

“아. 미안해.”

한율은 자신의 목욕용품이나 옷 대신, 달냥의 사료부터 챙겼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

므앙.

한국 날짜로 6월 26일.

대형 포털사이트엔 밀라노에 도착한 서한율의 기사가 메인을 장식했다. 너튜브엔 서한율이 현지 언론사와 인터뷰한 영상, 밀라노 거리를 걷는 영상도 많이 올라왔다.

파란달 펜션. 누가 그러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어스래빗 멤버들은 관리동 로비에 모여서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달냥이랑 구동인 호텔에 뒀나? 안 보이네.”

“한율인 대체 왜 달냥이랑 구동이까지 데려간 거야? 통화할 때 아무리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 안 해주던데.”

“다들 의심은 하고 있잖아요.”

사과패드로 서한율의 밀라노 영상을 보던 차남석이 말했다.

“제임스가 서한율 차를 끌고 다녔단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라이언이 차남석을 새삼스레 쳐다봤다.

“그거, 누가 입 밖으로 먼저 꺼내나 눈치 게임 중 아니었어?”

박가람이 신나게 외쳤다.

“차남석, 실패!”

“…….”

“저기, 멤버들. 나 슬슬 본가로 돌아갈까 하는데. 괜찮지?”

“보배 형. 형네 가족을 전부 이리로 모셔오라니까? 고양이 7마리도?”

“막내야, 보배네 집이 지리상 더 안전하잖아. 그렇게 고양이들이 좋으면 네가 강원도로 가는 건 어떠니.”

“보배 형네 가족한테 민폐잖아.”

“보배네 집에서 신세 지란 소리는 안 했는데.”

“……!”

길우성이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건우 형 천재다! 그래, 보배네 형 옆집을 사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막내야. 얌전히 여기에 있어.”

“넹.”

“그런데 호 형은 어디 갔어?”

“언덕 위 집에.”

이해원의 집.

이해원은 유호, JE, 고은훤, 계나리에게 몇 시간 전, 한율에게 말한 결심을 그들에게도 들려주었다.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건 JE의 한숨 소리였다.

“김대현을 잡았다고 했을 때부터 왠지 예감이 이쪽으로 튀더라니.”

“이해원. 다 좋아. 네가 걱정하는 거 다 이해해. 그런데 꼭 게이트 방어선으로 가야겠냐?”

그러나 이해원이 딱 하나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바로 서한율과 함께 게이트 괴물을 두고 한 실험과 수련.

서한율은 딱히 이들에게 비밀로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일부러 말하지도 않았다. 이해원도 그 이유를 짐작하고선 입을 다물었다.

괴물에게서 마나를 추출해 마력으로 정제가 가능하단 건, 인간을 상대로도 가능하단 것이므로. 이런 실험을 했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이었다.

이해원은 사람들이 서한율을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고은훤. 내가 어떻게 김대현 같은 각성자들을 한꺼번에 잡았다고 생각해?”

“그야….”

고은훤은 마법에 대해 몰랐다.

고은훤이 고개를 기울였다.

“제임스가 도와준 거 아냐? 설마, 너도 진짜 각성자냐?”

“게이트 방어선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 나중에 이런저런 훈장이나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대.”

하아. 한숨을 쉰 고은훤이 턱과 입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한율이 말대로 5년 전에 확 입대시켰어야 했는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다, 인마….”

어두워진 얼굴로 조용히 있던 계나리가 이해원을 바라보았다.

“언제… 가실 생각이에요?”

이해원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서한율에 이어서 그 역시 떠난다고 하니 무척이나 아쉽고 쓸쓸한 듯, 계나리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촉촉했다.

“오늘이요. 게이트 방어선에 합류하는 미필 각성자를 대상으로 입대 시스템이 준비될 거란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주말이기는 하지만, 가면 알아서 처리해주겠죠.”

계나리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훌쩍.

“진작 좀 다녀오시지….”

“하하….”

어설픈 웃음을 지은 이해원은 유호와 JE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회사 계약 문제도 있으니까 천천히 와요.”

“나는?”

“고은훤 넌 나중에 내가 괜찮다고 하면 그때 입대해. 그전까진 입영 연기 제때 신청하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

“그럼 전 짐 정리 좀 할게요.”

“도와줄게.”

다들 이해원을 따라 일어났다. 오늘 게방부에 간다고 해도 바로 군인이 된다는 보장은 없기에, 거창한 송별회는 하지 않았다.

이해원이 집을 나서기 전. 뒤늦게 이야기를 듣고 온 박가람이 계나리와 함께 훌쩍거리기는 했지만, 이해원은 박가람을 토닥토닥 달래주곤 차에 탔다.

“오늘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저 완전히 갔다고 여기고 집 어지럽히면 안 돼요.”

“응. 운전 조심히 해.”

“결정 나면 바로 연락해.”

이해원은 가볍게 손을 흔들곤 서서히 차를 움직였다.

남은 이들은 이해원의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게 다 그 김대현 개자식 때문이야.”

“…….”

우웅.

묵묵히 생각에 잠겼던 유호는 핸드폰을 꺼냈다. 오 팀장의 전화였다.

“네, 팀장님. ……네?”

인사를 건너뛰고 용건부터 말한 오 팀장이 재차 말했다. 또박또박.

-[어스래빗, 게이트 피해 성금 마련 K-POP 콘서트에 출연 제안받았습니다.]

유호는 저도 모르게 나오려는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한율이, 한동안 안 돌아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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