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봐도 닮았죠?
전 세계가 히말라야산맥과 한국의 게이트에 관심이 쏠린 현재. 가장 강한 각성자라 알려진 제임스의 모습은, 한국 게이트 뉴스를 꼭꼭 챙겨보던 한 가족을 들썩이게 했다.
『맙소사! 나 저 얼굴 알아!』
로건 워커의 조카인 메이슨 워커. 그의 어린 손자가 소파에서 방방 뛰더니 메이슨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낡은 앨범을 가져와 펼쳤다.
『봐! 로건 워커! 똑같이 생겼지?』
밀라노 명품 패션쇼의 애프터 파티.
한율은 시치미를 뚝 뗀 채 엠마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신비로운 이야기네요. 오래전 한국에서 실종된 사람이 제임스와 똑같이 생겼다니. 그분의 가족이 정말 놀랐겠어요.]
[네. 제가 이탈리아에서 한율과 만난다는 걸 알고는 잔뜩 흥분해서 떠들더라고요. 이게 그분 사진이에요.]
엠마가 핸드폰으로 누군가의 SNS를 보여주었다.
SNS 계정 주인의 이름은 벨라 워커. 로건 워커의 흑백 사진과 한국에서 찍힌 제임스의 사진을 나란히 붙여놓은 게시글 [60년대에 한국에서 실종된 먼 친척과 제임스가 너무 닮아서 기절할 뻔!]이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엠마가 진지한 눈으로 한율을 올려다보았다.
[한율, 당신이 봐도 닮았죠?]
[제임스가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어쨌든 워커 가 사람들은 제임스가 로건 씨와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해요. 저도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고요.]
엠마는 크리스티나가 갖고 있던 미련을 풀어주기 위해, 로건 워커의 행방을 찾고자 메이슨 워커와 한국에 다녀가기도 했다.
지금 크리스티나는 세상을 뜨고 없건만.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서일까.
‘외모도 그렇고, 정이 많은 것도 참 닮았네.’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락이 닿으면 물어볼게요.]
[고마워요, 한율.]
[사이좋게 무슨 이야기 나눠요?]
바람둥이로 유명한 이탈리아 배우가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왔다.
[분위기 좋은데요?]
한율은 선을 그었다.
[미스터리한 각성자, 제임스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있었어요.]
[아, 인터넷에 한율이 제임스와 친구란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아니요. 지인의 부탁으로 차를 몇 번 빌려준 게 다예요.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인물이라 직접 만난 적도 없고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인물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면서 배우 못지않게 아름다운 여성이 다가왔다.
한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에 파견된 FBI 요원, 수잔 리드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한율, 당신도 만만치 않던데요?]
[수잔? 여기는 어쩐 일로….]
수잔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우아한 손짓으로 저 멀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명품 디자이너를 가리켰다.
[친한 사이라, 초대받았어요.]
보통 사람이 며칠 동안 FBI의 감시를 감쪽같이 피해 다니는 건 힘들다. 그렇기에 FBI는 한율을 미스터리 해커 집단이라 확신하고, 한율 역시 그 사실을 추측한다는 걸 알고 있을 터다. 그래서 당신도 만만치 않지 않냐 말한 거고.
‘그런데도 참 태연하게 연기를.’
한율도 모른 척하기로 했다.
[아아. 세상 참 좁네요. 어쨌든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저야말로. 그나저나…. 이런 자리에서 세계적인 배우들과 함께 있는 한율을 보니 뉴욕 카페에서 만난 게 꿈처럼 느껴지네요. 안녕하세요, 엠마. 수잔 리드라고 합니다.]
[엠마 애커먼이에요.]
얼떨결에 수잔과 인사를 나누게 된 엠마가 한율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한율이 뉴욕 1130 증상자 협회 인물을 만나러 왔을 때 동석했어요.]
[그럼 1130 증상자세요?]
[네. 게이트가 열리지 않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죠. 전 아직 괴물과 용감하게 싸울 자신이 없거든요.]
이탈리아 배우가 한율에게 바짝 다가왔다.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속닥속닥.
[금발 미녀가 최고긴 하지만, 스타일이 너무 다르지 않아요? 난 개인적으로 새로 온 여성분이 마음에 드는데, 나한테도 소개해줄 수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정도로 친한 건 아니라서요. 그리고 결혼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아이들도 있고.]
[수잔이?]
[아니요, 당신이요.]
[그냥 친구 사귀는 건데요, 뭘. 인맥이 두루두루 넓으면 좋은 거 아닌가?]
씨익. 이탈리아 배우는 자신을 잘 보고 배우라는 듯 매력적인 미소를 짓곤, 수잔에게 다가갔다.
[만나서 반가워요, 수잔. 꼭 영화에 나오는 매력적인 FBI 요원 같네요.]
[…네?! 아… 하하. 스타일링을 그런 쪽으로 잡기는 했죠.]
아무래도 바람둥이 배우가 부담스러웠던 듯, 엠마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리더니 한율에게 다가왔다.
[한율, SNS 팔로우를 해도 될까요?]
[네.]
한율은 엠마와 SNS 맞팔을 맺었다. 다른 셀럽들과도 그랬듯이 함께 사진도 찍었다.
엠마가 결과물을 보며 웃었다.
[잘 나왔네요. 이대로 SNS에 올려도 될까요?]
[…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크리스티나가 아니란 걸 잘 아는데도, 그녀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만 같아서.
불쑥.
[한율, 저도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될까요? 내 친구도 함께요!]
패션쇼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시끄러운 할리우드 배우가 끼어들었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이탈리아에서 제법 큰 회사를 운영하는 친군데, 게이트와 각성자에 아주 큰 관심이….]
그때 끼어드는 또 다른 사람.
[한율, K-POP 보이밴드는 춤이 기본이라면서요. 가볍게 배울 수 있을까요?]
[지금 나오는 노래, K-POP 맞죠?]
[이야기 도중에 빠져서 미안해요, 두 분.]
언제 다가왔는지, 수잔도 한율과 엠마 사이에 끼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이탈리아 배우가 한숨을 푹 내쉬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소 짓는 엠마의 입꼬리가 미약하게 떨렸다. 화가 나 보였다.
[술잔은 어디에 있어요?]
음악에 맞춰 어설픈 춤을 추던 어떤 이는, 한율을 향해 같이 추자며 손짓하기도 했다.
‘정신없어.’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TV로 본 클럽처럼 어둑하면서 화려한 조명에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웃음소리, 대화 소리. 여기에 달콤한 안주와 술, 향수 냄새가 뒤범벅되어 참 어지러웠다.
차라리 무대에서 세 곡 연속 라이브로 부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여기에서 또 만나네요, 한율. 여전히 인기 만점인데요?]
[마르첼로 씨?]
알은체하며 다가오는 또 한 사람. 전세기에 함께 탔던 마르첼로였다. 정말 다분히 의도적인 만남.
[마르첼로 씨도 패션쇼에 참석하셨나요? 얼굴을 못 본 것 같은데.]
[하하, 지각생이었거든요. 아, 이쪽은.]
마르첼로가 함께 온 남성을 돌아보았다. 상당히 기골이 장대하고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듯한 남성이었다.
그가 한율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탈리아 게이트 대책위원회 소속이자 육군특수전사령부의 안토니오 소령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한율의 옷을 살며시 잡았던 수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율은 덤덤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에 응했다.
[서한율입니다.]
잠시 후, 패션쇼 애프터 파티가 열리는 저택의 주차장.
운전기사, 경호원과 함께 차를 지키고 있던 조유찬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건물 쪽을 살폈다.
‘한율이한테 허튼수작 부리는 사람은 없겠지? 똑 부러진 아이긴 하지만, 외국인들은 아무래도 우리보다… 심하게 개방적이니까. 아니, 이건 편견인가?’
“유찬. 한율과는 얼마나 함께 일했습니까?”
“네? 아…. 어?”
조유찬은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조수석에 앉은 경호원이 그를 돌아보며 웃고 있었다.
“한국어 굉장히 잘하시네요?”
“한국에서 5년 동안 유학했습니다. 유찬, 한율과는 오래 일했죠?”
한국 유학파. 괜히 반가운 기분이 들어, 조유찬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명품 회사가 고용한 경호업체 소속이기도 하고.
“네. 벌써 5년 됐네요.”
“그럼 한율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겠네요. 가족이랑 친한 친구도.”
서한율이 제임스와 친분이 있는 이해원과 함께 미국에 다녀오고, 또 제임스에게 차를 빌려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조유찬 또한 지인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다.
서한율에 관한 의혹을 아냐고. 정말로 서한율도 미스터리 해커 혹은 제임스와 관련 있는 거냐고.
그래서 경호원도 그런 호기심 때문에 묻는 거라 여겼다.
“유감스럽게도 잘 안다고 자신할 순 없어요. 어릴 적부터 공사 구분이 확실한 아이였거든요.”
“프로필을 보니까 취미가 등산이랑 자전거 타기던데. 함께 간 적 있어요?”
이번 건 조금 뜻밖의 질문이었다.
“아뇨.”
“그럼 주로 혼자?”
“아마도요. 하지만 요 몇 년 동안은 바빠서 취미 생활을 거의 즐기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무릎이랑 발목은 괜찮나. 안무 연습이 좀 힘들었어야지.”
대답하고 나서 걱정스러운 중얼거림을 덧붙이는 조유찬. 경호원은 그런 조유찬을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한율을 정말 많이 아끼네요.”
조유찬은 팔불출처럼 웃었다.
“당연하죠. 우리 회사의 자랑, 연기 천재 아이돌인걸요.”
건물 정문이 활짝 열리더니 몇몇 사람들이 웃으며 나왔다. 조유찬은 그사이에 섞인 한율을 보곤 부리나케 차에서 내렸다. 경호원도 차에서 내려 주변을 경계하며 다가갔다.
[패션쇼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하고, 즐거운 시간도 보냈어요.]
[감사 인사는 우리가 해야죠.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한율.]
한율은 명품 회사 디자이너, 관계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선 조유찬에게 다가갔다.
조유찬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왜 벌써 나왔어?”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아서요. 더는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왜? 누가 시비 걸었어?”
“그럴 리가요.”
한율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곤 차로 향했다.
“호텔로 돌아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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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율, 美 배우 엠마 애커먼과 만났다!]
[(사진)
(출처=엠마 애커먼의 개인 SNS)
미국 유명 배우 엠마 애커먼이 이탈리아 현지 날짜로 26일 저녁, 패션쇼 애프터 파티에서 서한율과 찍은 사진을 개인 SNS에 올렸다.
한편, 서한율은 엠마 애커먼을 스타로 만든 미국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오디션 러브콜을 받은 적이 있다.]
-만날 인연은 어떻게 해서든 만난다는 거지
-둘 다 피부 와
-율톢도 얼굴 작은데 엠마는 더 작다ㄷㄷ
-뭐야 왜 둘이 잘 어울림
-서한율 패션쇼 도착해서 진사랑 자연스럽게 에스코트한 것도 그렇고ㅋ 왜 오다리 루머 생겼는지 알 것 같다ㅎㅎ
ㄴ닥쳐.
-서한율 이거 찐미소 짓는 거 보소. 다른 셀럽들이 올린 사진이랑 달리 눈까지 웃고 있음
-저기 초대된 유명 셀럽이 SNS 방송에서 그랬는데, 둘이 진짜 다정하게 핸드폰 들여다보면서 텍사스 사투리로 대화 나누는 거 듣고 웃음 터질 뻔했다고 함ㅋㅋ
ㄴ다정하게? 다정하게? 다정하게?
-(너튜브 링크) [RMMA/엠마 애커먼/전부 넋 놓을 때 혼자 다른 반응 보인 남돌] 2018년 RMMA에서 찍힌 영상
ㄴ이거 뭐임ㅋㅋ
ㄴ서한율 왜 엠마 보면서 흐뭇한 미소 짓고 있어ㅋㅋ 엠마 할아버진 줄ㅋㅋㅋㅋ
밀라노의 한 호텔.
씻고 나온 한율은 기초 화장품을 바른 뒤, 침대에 편히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 노트북으로 기사에 달린 댓글을 훑다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인터넷 댓글을 보면, 게이트 사태로 위기를 맞은 나라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태평해 보였다.
므앙. 달냥이 한율의 등을 지그시 밟으며 지나갔다. 구동은 푹신한 베개에 자리 잡고선 한율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어쨌든 공식 스케줄은 이걸로 끝.’
한율은 이 객실 어디에 카메라나 도청 장치 따위가 숨겨져 있을까 생각하면서 빙글, 옆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구동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일단 조유찬만 한국으로 보내고, 나는….’
딩동.
객실 초인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