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돌아가
찾아온 사람은 조유찬이었다.
“게이트 피해 성금 마련 K-POP 콘서트요?”
“응. 지금 다들 힘든 시기잖아. 하루아침에 집 잃고 대피소에서 지내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그나마 피해가 없고, 게이트랑도 멀리 떨어진 부산에서 다음 달에 열기로 가닥이 잡히고 있대. 이건 비밀인데.”
둘밖에 없는데도 조유찬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우그룹이, 어스래빗이 콘서트에 출연하면 거액의 기부금을 내겠다고 약속했대. 잘 됐지?”
조유찬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너희들 새 앨범 내자마자 게이트가 열리는 바람에 제대로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이프림하고도 헤어졌잖아.”
“형.”
“응?”
“음….”
한율은 당분간 한국에 못 돌아간단 이야기를 하려다, 객실에 설치되었을 감시 장치를 떠올리곤 말을 바꿨다.
“멤버들이 굉장히 좋아하겠네요.”
“그럼. 우성이가 당장 누나 차 훔쳐서 회사 연습실로 달려가려는 거 겨우 잡았대. 하지만 서울은 아무래도 위험하잖아.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회사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 그 전에 너희 연습실부터 확보하고.”
“네….”
“이제 막 데뷔한 SP래빗 애들도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었거든. 막 날개를 펴자마자 강제로 꺾인 격이니까. 이번 콘서트는 어떤 의미론 너희에게도 희망이 되지 않을까?”
따뜻하게 웃는 조유찬의 얼굴에서 WB래빗 아이돌을 향한 애정이 흘러나온다.
“…….”
한율은 그런 조유찬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끄덕였다. 조유찬이 어느새 무릎에 자리 잡은 구동을 쓰다듬다가 한율에게 넘겼다. 끼웅.
“그럼 난 객실로 돌아갈게. 오늘 정말 수고 많았고, 내일 아침에 보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형.”
“응. 한율이 너도 잘 자.”
조유찬이 객실을 나갔다.
조용히 깊은 한숨을 내쉰 한율은 조명을 모두 껐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채 생각에 잠겼다.
“하….”
다시 깊은 한숨.
한율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 *
몇 시간 전, 서울 게이트 방어선.
군인들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뛰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갈라지고 무너지다 만 지반에 빗물까지 잔뜩 고여, 똑바로 달리기가 힘들었다.
휘청!
“악!”
첨벙!
“지원 요청, 지원 요청!”
쓰러진 부대원을 잡아 일으켜 주며, 쫓아오는 게이트 괴물을 향해 총을 겨눴다. 타타타앙!
키에엑! 몸부림치는 괴물의 피가 발목까지 차오른 더러운 흙탕물과 섞여, 다친 군인의 상처에 닿는다. 그러나 눈앞의 괴물을 처리하는 데에 집중한 군인들은 깨닫지 못했다. 한 놈을 처리하니, 또 다른 놈들이 동족의 사체를 밟으며 넘어왔다.
콰앙! 뒤늦게 도착한 포격에 괴물들의 몸뚱이가 찢겼다. 후드득. 군인들은 쏟아지는 비와 괴물의 살점을 맞으며 다시 달렸다. 임시 진지에 다다라서야 호흡을 고르고 상처를 살폈다.
“허억, 허억….”
“우웩. …퉷.”
“새벽 내내 이게 무슨 지랄이야….”
“빌어먹을 비 진짜…. 어?”
방탄모를 벗고선 숨을 가다듬던 군인이 조금 전 넘어졌던 동료를 바라보았다.
“너… 얼굴에….”
“네?”
“……!”
다른 군인들도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거나 거리를 뒀다. 넘어졌던 군인은 다들 왜 이러나 의아해하다가, 창에 비친 자신을 확인했다.
얼굴이 푸른빛 반점으로 얼룩덜룩했다.
“흐, 흐악! 뭐야! 나 왜 이래!”
누군가 중얼거렸다.
“괴물… 바이러스?”
게이트 괴물에 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 단계로, 아는 게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래서 군은 병사들에게 상처에 괴물의 체액이 닿지 않도록, 직접 접촉하는 걸 피하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었다. 직접 괴물과 싸워야 하는 현장에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지금까진 실수로 괴물의 살점을 삼켜도, 피가 상처에 들어갔어도 치료를 받고 며칠 끙끙거리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눈에 띄는 이상 증상이 나타난 건 처음.
진지 책임자가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위험한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수 있으니, 일단 모두 격리 조치한다.”
흑, 흐윽. 그러는 동안에도 푸른빛 반점은 병사의 목과 손까지 번졌다. 덜덜 떨면서 제 두 손을 내려다보던 병사가 울음을 터뜨렸다.
“저, 저 이대로 죽는 겁니까? 저, 아직 엄마, 아빠한테 효도도 못 했고 대학도 졸업 못 했는데….”
“걱정하지 마라.”
책임자가 패닉에 빠진 병사를 위로했다.
“큰 문제는 없을 거다. 검사받고, 결과 나올 때까지 쉰다고 생각해.”
이 일은 순식간에 게이트 방어선 곳곳으로 퍼졌다.
정체불명의 푸른 반점으로 온몸이 뒤덮이는 독을 가진 괴물이 있다더라. 차오른 물에 닿기만 해도 거기에 섞인 괴물의 바이러스, 미처 치우지 못한 괴물 사체에서 흘러나온 독소가 인체에 침투해서 죽는 거 아니냐.
게이트 방어선 군인 모두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였다. 남들도 그랬듯이 의무 기간만 나라를 지키면 당연히 사회로 복귀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평화로운 시대의 사람들.
그러나 하루아침에 사람도 아닌 온갖 괴물과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되었다. 미지의 공포로 인한 두려움과 정신적인 충격을 마주 볼 여유도 없이, 잠깐 잠들 때도 포격음이나 괴물 울음소리에 발작하며 일어나기 일쑤였다.
여기에 밤새 내린 비는 그들을 더욱 힘들게 했고, 물을 통해 괴물의 독에 감염되어 죽을 수 있단 소문은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겨우 빗줄기가 약해지는 새벽.
게이트 방어 지휘부 김관식 소장은 침통한 얼굴로 윗선에 보고했다.
[밤사이 서울시 구로구, 부천시, 광명시 뚫렸습니다. 방어선과 통제 구역 범위 확장을 요청합니다.]
27일 일요일 아침.
구로와 부천, 광명이 게이트 방어선에 포함되고 그 주변이 통제 구역으로 넓어진다는 뉴스가 속보로 흘러나왔다. SNS에선 한 군인이 괴물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온몸이 파랗게 변한 채 사경을 헤맨다는 소문이 퍼졌다.
[게이트 방어선], [인천 통제], [안양 통제], [괴물 바이러스].
실검 상위권을 확인한 계나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한강이 뚫리지 않은 게 다행인가.’
서울의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물 대부분은 헤엄을 치지 못했다. 그렇기에 여전히 한강 북쪽은 날아다니는 괴물만 잘 잡으면 안전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면 우리나라는 결국 또 망하게 될 거야. 적어도 주변국의 게이트가 열리기 전까지 통제 구역과 방어선 범위를 줄이고, 겨울을 대비해야 할 텐데.’
하지만 어떻게?
계나리는 끙끙거리다가 포기하곤 연예 뉴스란을 클릭했다. 이탈리아 명품 패션쇼에 참석한 서한율의 기사가 메인을 장식했다.
‘우리나라 망하면, 또 오빠한테 가서 빌붙을까?’
하하하. 소리 내어 웃은 계나리는 쿵.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정신 차리자, 계나리….’
서한율도 태어났을 때부터 강한 힘을 지닌 건 아니었다.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 수십 년 동안 고생해서 얻어낸 힘에, 무턱대고 의존하는 건 너무 염치가 없지 않나.
‘수련하자, 수련! 조금이라도 마력을 모아야 나중에 도움이 되지!’
계나리는 문을 잠그고 커튼을 친 뒤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후우! 크게 심호흡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핸드폰을 덥석 집었다.
‘해원 씨는 훈련소에 잘 들어갔으려나?’
그 시각, 뉴스에선 정부가 새로운 중대 발표를 하고 있었다.
[[속보] 각성자 연구소 출범]
[[속보] 국내 각성자, 출국 시 군 허가받아야]
서울 게이트 방어선 일부가 무너지고, 통제 구역이 넓어진다는 소식으로 받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이었다.
파란달 펜션 관리동.
길우성은 뉴스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출국하려면 일일이 군의 허가를 받으라고?”
“와…. 우성이 이제 해외 스케줄 어떡하냐.”
“아니야, 자세히 들어봐. 1130 증상자가 아니라 각성자라고 한정하잖아. 우성인 해당 안 돼.”
“우성, 능력 없어. 안심해도 되겠다.”
길우성이 가느다란 눈매로 멤버들을 째려보았다.
“각성자 연구소에서 숨겨진 능력 찾아내면 그땐 어떡할 것이오.”
“네가 알아서 해야지 뭘 어떡해. 밥이나 먹어.”
“넹.”
“형은 왜 이렇게 얼굴이 어두워.”
이건우가 유호를 향해 묻자, 멤버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를 향했다.
“어? 아….”
밥을 깨작거리던 유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뉴스 보니까 여러 가지 걱정돼서. 다음 달 콘서트도 그렇고. 남석아, 너 오늘 할아버지랑 아버지랑 남양주 다녀온다고 그랬지?”
“네. 어제부터 비가 많이 왔잖아요. 할아버지가 밭이 걱정된다고 해서요.”
“남석 씨네 동네, 출입 통제 해제됐어?”
“어. 괴물들이 땅굴 팠던 곳도 안전하게 복구 끝났다더라.”
“나도 가보고 싶다.”
“다음에.”
라이언이 차남석에게 물었다.
“찐빵도 데려가?”
“아니.”
“산책시켜도 돼?”
“이상한 것만 주워 먹게 하지 마.”
“그런데 우리, 연습은 언제부터 해? 보배 형이랑 써한 없잖아.”
“있는 사람들끼리 먼저 시작해야지. 아직 무대에 몇 분 설 수 있을 진 안 나왔지만, 최소한 한 곡 부를 시간은 주어질 테니까 이번 컴백 타이틀곡. 여기에 국내에서 성적 좋았던 노래 리믹스 하면 좋겠다.”
“빨리 정확한 일정 나왔으면.”
우웅.
길우성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1130 증상자 관리센터에서 메시지 왔다. 내일부터 각성자 연구소로 오면 능력 유무 판별 테스트 진행할 수 있대.”
“연구소가 어디에 있는데?”
유호와 박가람은 긴장한 얼굴로 길우성을 바라보았다. 서한율이 절대 길우성을 게이트 근처로 가게 두지 말라고 경고한 까닭이었다. 모두 죽는다고.
“세종시.”
휴우. 유호와 박가람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자, 모두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박가람이 히죽 웃었다.
“서울이 아니라서 다행이당.”
“그러게. 지금 서울 위험하잖아. 예약은 안 해도 된대?”
“그런 안내는 없는데. 전화해서 물어볼까? 빨리 갔다 올수록 좋잖아. 공연 연습도 해야 하고.”
“그래, 그래.”
상담 전화를 마친 길우성은 길미현과 상의 후,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유호가 손을 들었다.
“걱정되니까 나도 같이 갈게.”
“큰형은 언제나 환영이지!”
한편, 언덕 위의 집.
막 마나 유동을 하려던 JE는 오래간만에 매니저의 전화를 받았다.
-[게이트 피해 성금 마련 K-POP 콘서트. 거기에서 너랑 진은수를 공동 MC로 쓰고 싶대. 둘 다 음방 MC 출신이라 잘할 것 같다고. 그리고 스타믹스도 무대에 오르기로 했잖아. 가는 김에 두 탕 뛰자.]
“은수 씨는 수락했대요?”
-[응.]
한창 논산에서 훈련받는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참 부지런도 하지. 그러고 보니 지금쯤이면 해원이랑 만나지 않았을까?
JE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답했다.
“네, 저도 할게요. 정확한 날짜는 나왔어요?”
-[7월 17일이랑 18일. 장소는 약 5만 명 수용 가능한 종합경기장.]
“규모가 상당히 크네요.”
-[일부러 크게 하는 거래. 그리고… 출연자 대부분 공연료 기부하잖아. 너희도 그렇고.]
“네, MC 출연료도 기부할게요.”
-[흐. 착하고 눈치 빠른 녀석.]
“착하고 눈치 빠른 녀석은 이만 바빠서. 끊습니다.”
-[그래, 그래. 자세한 내용 나오면 톡으로 보내줄게.]
통화를 끝낸 JE는 이해원에게 톡을 보냈다. 핸드폰을 반납한다는 말이 없었으므로, 혹시나 해서.
[훈련소는 어때? 밥 잘 나와? 다른 각성자랑 진은수 씨는 만났어?]
답장은 한참이 지나서야 왔다.
-[여긴 괜찮아요. 밥도 잘 나오고. :)]
-[은수도 만났는데, 사격 솜씨가 꼭 한율이 보는 것 같아요ㅎㅎ]
* * *
이탈리아 밀라노.
서울의 게이트 방어선 일부가 무너지고 국가가 본격적으로 각성자 관리 단계에 돌입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한율은 태연했다. 어차피 길우성은 어떤 테스트를 받든,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전혀 밝히지 못한다.
괴물이 쏟아져 나오는 게이트로 그를 밀어 넣겠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할 테니.
조유찬이 충격받은 얼굴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한율아?”
“예전에 형이 사람 너무 믿지 말라고 그랬을 때 약속했잖아요. 예고 없이 폭탄 터뜨리지 않기로.”
한율은 조유찬의 옷에 묻은 먼지를 떼어주며 말했다.
“당분간 저, 한국에 못 돌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