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0화 (342/427)

분명 인생 2회차 이상임

“아뇨. 내가 받을게요.”

“어? 아….”

최은희는 남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 아래 탁자에 놓인 모니터도 켰다. 서한율이 이 집을 사서 리모델링할 당시, 외부 여기저기 설치한 CCTV 영상이 잔뜩 나왔다.

“네, 누구세요?”

-[도와주세요! 어떤 이상한 사람들이…!]

“방금 경찰에 CCTV 영상 보냈으니까 금방 출동할 거예요.”

휙휙. 최은희의 손짓에, 서석진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다가 서재로 급히 이동했다.

-[네? 경찰에… 요?]

“3분 전까지 함께 모퉁이 너머에서 담배 피던 친구들. 혹시 그 친구들한테 협박받고 있어요?”

소녀의 시선이 불안해졌다. 표정에서도 과장된 연기가 사라졌다. …끄덕.

“셋 새고 열게요. 준비하세요. 대답은 하지 말고.”

최은희는 수화기를 조금 떼어놓은 채, 서재 쪽을 향해 큰소리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철컹. 최은희가 대문 버튼을 여는 것과 동시에, 신호를 받은 서석진이 결계 스위치를 눌렀다.

사아아.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소녀의 등 뒤로 결계가 생성, 모퉁이 너머에 숨었다가 달려오는 수상한 자들을 막았다.

쾅.

-[악!]

-[꺄악!]

그들이 결계에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이 스피커를 통해 생생히 전달되었다.

최은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곤 현관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서석진이 달리다시피 나와선 현관문을 덥석 잡았다.

“내가 먼저 나갈게!”

“…그래요.”

문을 열고 나가자, 멍하니 대문 쪽을 바라보는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대문 앞에 나뒹굴며 욕설을 내뱉는 이들도.

“아, 내 두개골….”

“씨발, 뭐야! 뭐가….”

“이런 미친…. 쓰읍.”

적게는 10대 중반, 많아봤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서석진은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솔직히 말해줘요, 학생.”

소녀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돌아보았다. 진하게 화장한 얼굴엔 누군가에게 맞은 듯한 자잘한 상처가 많았다. 짙은 담배 냄새도 났으나, 서석진은 편견을 밀어내려 애썼다.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일하며,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사실을 수없이 되새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112를 누른 핸드폰을 보여주며 물었다.

“도움, 필요해요?”

“그게….”

“편히 말해도 괜찮아요. 저놈들, 이 안으론 절대 못 들어와요.”

“…….”

소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대문 앞에 나뒹굴던 아이들은 일이 단단히 잘못됐단 걸 느꼈는지, 모자나 마스크로 황급히 얼굴을 가리고 도망쳤다.

“내가 서한율 집은 느낌 안 좋다고 했잖아, 새끼들아!”

“씨발, 같이 가!”

흐윽. 그들이 멀어지자 소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난 그냥… 한율 오빠 부모님 집이 이 근처에 있다고만 말했을 뿐인데…. 죄송해요….”

소녀는 열여섯 살 가출 청소년이었다. 게이트 사태가 벌어지자 같은 가출팸 멤버들과 함께 빈집을 전전하며 도둑질을 벌이다, 지방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다 이 근처로 왔을 때 ‘여기 서한율네 시골일 텐데?’라고 생각 없이 말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그럼 돈 많겠다’라면서 순식간에 범행 계획이 세워졌다고.

경찰에게 소녀를 인계한 두 부부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미성년자는 법적 보호자 없인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요. 재난이 닥치면 가뜩이나 어려웠던 사람들이 더 어려워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저렇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아이들, 더 많겠죠?”

“그래도 여보. 섣불리….”

“알아요. 어려운 사람이 꼭 선하리란 법 또한 없다는 걸. 그래서 더 마음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엔 한림이가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 챙겨주려다가, 숨어있던 아이 부모한테 가방 뺏겼잖아요.”

“세상이 정말 어떻게 되려는지. 괴물은 보이면 때려잡거나 도망이라도 치지, 사람은 속을 알 수 없으니.”

서석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곤, 아내의 어깨를 감싼 채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 생겼나? 전용 야외 놀이터에 나와서 상황을 지켜보던 고양이들도 그제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아들한테 말해야겠지? 결계 들켰다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나쁜 사람들한테 들켰을 거라던데요?”

“음?”

* * *

육군훈련소 앞.

“은수야, 고생 많았다!”

오늘은 인기 걸그룹 퍼플아워 멤버이자 각성자 진은수가 3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날이었다. 그 덕에 훈련소 앞은 수많은 취재진과 팬들로 북적거렸다.

진은수의 언니인 호수는 훈련소에서 나오는 동생을 와락 끌어안았다.

“진짜 고생 많았어, 내 동생!”

팬들이 다시 우렁차게 외쳤다.

“은수야, 사랑한다악!”

“진은수 화이팅!”

“내가 은수 널 보려고 여길 또 왔다!”

“우리가 은수 네 팬이란 게 자랑스럽다악!”

정말로 입대했다가 제대한 것도 아니고, 고작 3주 동안 훈련만 받고 나왔을 뿐인데.

진은수는 민망한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더우니 얼른 들어가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팬들이 불끈 쥔 두 주먹을 하늘 높이 뻗으며 호응했다.

우어어어!

마중 나온 부모님 차에 탄 후에도 진은수는 취재진과 팬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창을 올렸다.

“후우….”

호수가 장난치듯 물었다.

“3주 만에 사회로 복귀한 기분이 어때?”

“중간에 종종 나왔었던 거 알잖아, 언니.”

“회사로 가야 한다고 했지? 가기 전에 맛있는 것부터 먹자.”

“네, 아빠.”

“그런데 은수 너 손이….”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진은수의 여기저기를 살피던 호수가 손을 잡았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본래 깨끗하고 부드러웠던 손에 굳은살과 자잘한 상처가 잔뜩 생겼다.

진은수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언니, 나 근육도 좀 붙었다?”

“…자랑하지 마. 속상해지려고 하니까.”

진은수는 오히려 호수의 손을 잡았다.

“빨리 부산 공연 다가왔으면 좋겠다. 무대에서도 팬들한테 인사하고 싶어.”

“넌 그렇게 무대를 좋아하는 애가…!”

호수는 울컥해서 무어라 말하려다, 진은수의 표정을 보곤 힘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속상한 마음을 억누르려는 듯 화제를 돌렸다.

“회사에서 골치 아프대. 전 세계 팬들이 은수 너한테 자꾸 선물을 보내서. 선물 안 받는다고 공지했는데도 자꾸 온다고, 반송 요금이 엄청 많이 나온다더라.”

“다른 나라에도 다양하고 뛰어난 각성자들이 나타나고 있으니까,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가족과 단란하게 외식한 뒤엔 곧바로 아림 엔터로 향했다. 연습실에서 기다리던 퍼플아워 멤버들이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잘 왔어, 은수야.”

“보고 싶었어, 은수야.”

“이 나쁜 언니야, 하루에 한 번은 꼭 전화하기로 했잖아!”

“훈련이랑 공부 끝나면 너무 피곤해서…. 미안해, 의연아.”

“노래랑 안무 잊어버린 건 아니지?”

“당연하… 한가?”

“얘가 안 본 사이에 성격이 조금 변한 것 같은데.”

몇 년 동안 함께 연습생 시절을 보냈지만, 어쩔 땐 참 남보다 못한 사이 같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걱정해주는 마음이 느껴져, 진은수는 저도 모르게 바보처럼 웃고 말았다. 흐.

“이 언니 또 이상하게 웃어. 언니, 그렇게 얼굴 막 쓸 거면 나 주라니까?”

오래간만에 하는 안무 연습에서도 자잘한 실수를 자주 저질렀지만, 그래도 진은수는 입가의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다신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무대에 오르게 된 기쁨이 컸다. 한편으론,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7월 18일 부산 공연이 끝나고 다음 날인 19일. 방어선으로 올 수 있겠어요?』

게이트 방어선 합류는 게방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허가를 받기 위해선, 방어선을 직접 돌아보며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는 언질도 들었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잠깐의 휴식 시간.

“그런데 은수야. 혹시 한율 씨 소식 들은 거 없어? 이번 부산 콘서트,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한다던데.”

“아이돌 1130 증상자 단톡방 있잖아. 한율 선배님 지금 어디에 있대?”

숨을 고르면서 스트레칭을 할 때 멤버들이 물었다. 진은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안 물어봐서 모르겠어요.”

“물어봐.”

“선배님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송의연이 진지한 얼굴로 진은수를 빤히 쳐다봤다.

“마음이 식은 거야?”

“…….”

“아니넹. 쏘리.”

나름대로 담담한 척 연기하던 진은수는 당황했다.

“…아닌데? 선배님한테 그런 감정 없는데?”

“귀신을 속이세요, 이 언니야. 순진해선 얼굴에 다 티나네. 이래서 우락부락한 군인 아저씨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아저씨들 아니야, 다 우리 또래야. 의연이 너랑 동갑인 사람도 많을걸?”

“조심해, 은수야. 위험한 곳에서 너 챙겨주는 군인한테 쉽게 넘어가면 안 된다? 언니 말 따라 해. 흔들다리 효과는, 착각이다.”

“…….”

진은수는 말없이 일어나서 음악을 켰다. 훈련소에서 만난 조교를 떠올리며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휴식 끝났습니다. 셋에 일어납니다. 하나, 둘.”

“……!”

몇 시간 후, 안무 연습이 끝났다.

서로 수고했다면서 연습실을 나가는데, 먼저 복도로 나갔던 루아가 멈칫하는 게 보였다. 일직선으로 걷던 그녀가 누군가를 휙 피하곤 빠른 걸음으로 멀어졌다.

“…안녕, 은수야. 오랜만이다.”

루아의 전 남자친구이자, 같은 소속사 선배인 나기혁이 어색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단톡방에 톡 올렸는데 안 본 것 같아서 직접 왔어.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괜찮아?”

진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따로 보고 싶은 사람은 아니지만, 같은 1130 증상자였다. 그래서 자신을 찾아온 것 같고.

“30분 후에 2층 카페에서 봬요.”

“그래.”

30분 후. 진은수는 이야기를 들은 호수와 함께 카페로 향했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나기혁이 카드를 꺼냈다.

“내가 살게.”

아림 엔터 내에 있는 카페라 이용객 모두 아림 엔터 관계자들 뿐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테이블에 앉았다.

나기혁은 진은수에게 훈련소에 관해 물었다. 최근 게이트 방어 지휘부에 신설된 각성자 관리과나 방어선 합류 절차에 관해서도. 진은수는 아는 선에서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있으나 마나 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는… 각성자 전형 입대가 어렵겠지?”

호수가 물었다.

“선배님 무슨 능력인지 물어봐도 돼요?”

“…….”

나기혁은 말하기 싫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진은수는 그에게 조언했다.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는 게방부에서 판단할 거예요. 그러니 일단 각성자 연구소로 가서 테스트받는 건 어떠세요? 테스트를 받으면서 자신에게 맞는 훈련 방법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쓰임새를 찾게 되는 일도 있거든요.”

“어. 생각해 볼게. 고맙다, 은수야.”

“그럼 용건은 끝난 거죠?”

호수가 컵을 정리하며 물었다. 나기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 하면서 진은수를 바라봤다.

“이해원도 각성자 전형 입대 코스로 훈련소 들어갔다던데. 사실이야?”

진은수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걘 언제 나와?”

“다음 주 토요일이요. 나와서 곧장 방어선으로 간다고 들었어요.”

“다음 주 토요일이면… 17일. 부산 콘서트 시작될 때네.”

중얼거린 나기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내줘서 고마워. 정리는 내가 할게.”

그날 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엔 게이트를 막았던 푸른색 장막과 흡사한 게 서한율의 본가를 보호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게시글은 삽시간에 인터넷과 SNS에 퍼졌다. 그러자 한밤중, 그 집 근처를 지나가다가 반투명한 무언가가 일렁거리는 걸 봤다는 목격담도 하나둘 덧붙여졌다.

-서한율 미스터리 해커 연관 빼박.

-제임스도 이탈리아에 있고 서한율도 이탈리아에 갔다가 사라짐. 빼박.

-전에 각성자 범죄자들이 이해원 집 침입하려다 잡힌 사건 기억 남? 그때 이해원 집 근처에 뭐가 있었는지 앎? 바로 서한율 펜션이었음.

ㄴ진짜면 소름인데;;;

ㄴ뭐가 소름임?

ㄴ하루아침에 친해진 사이가 아니란 거잖아. 것도 하필이면 한가로운 양평에서 이웃사촌? ㅋㅋㅋ

-(너튜브 링크) 서한율 미스터리 다룬 영상.

ㄴ파랑 요정ㅋ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

ㄴ미스터리 해커랑 연관 있다는 얘기 듣고 영상 보니까 좀

ㄴ연기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놈이 데뷔작부터 쩌는 연기 보여줄 때부터 알아봤지. 서한율 이 ㅅㄲ 분명 인생 2회차 이상이다에 내 손모가지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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