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잡히지 않게 조심하자
탁탁. 달냥이 꼬리를 세게 내리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던 모친이 작게 웃었다.
“달냥이가 자기들 두고 갈 거면 너도 가지 말라잖니.”
“어쩔 수 없어요, 어머니. 낯선 곳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느라 둘 다 고생했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편히 쉬게 두고 싶은데… 핸드폰을 볼모로 잡을 줄은 몰랐네요.”
너무 똑똑하게 키웠나.
한율은 한숨을 내쉬곤 모친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요즘 기부 많이 하신다면서요?”
므앙? 외면당한 달냥이 짧게 울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씩. 사회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사람들 삶이 힘들어지니까 버려지는 동물도 늘고, 후원도 끊겨서 재정난에 시달리는 시설도 늘어나고.”
“전 세계에 게이트가 열렸으니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예요. 양심 없는 후안무치한 사람도 많아질 거고요. 지금도 후원 부탁이 아닌 요구 연락, 많이 온다는 거 알고 있어요.”
한율은 부친까지 돌아보며 단호히 말했다.
“괜히 제 이름 안 좋게 거론될까 봐 신경 쓰지 마시고, 두 분을 우선으로 생각하셨으면 해요.”
“우리가 할 말을 왜 네가 하니, 율아. 정작 사람들 위해서 위험한 곳에 다니는 건 너잖니.”
부친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리했다.
“우리 가족, 호구 잡히지 않도록 늘 조심하자.”
“네.”
한율은 마나를 응용, 구동이 끌어안은 핸드폰을 쏙 빼내서 손에 넣었다. 므앙?! 끼웅! 달냥과 구동이 허탈한 울음소리를 냈지만, 방으로 들어가 새롭게 짐을 쌌다.
우웅. 계나리의 전화.
-[오빠, 권한정 찾았다는 뉴스 보셨어요?]
“어. 조금 전에 게방부에서 연락 왔어. 조사 끝나면 알려준다더라.”
-[그놈들 전에 김대현도 풀어줬잖아요. 으음….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어요.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건지.]
계나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뇌나 협박이라도 해서 스파이로 잠입시키는 건가?]
“감시는 나리 너한테 맡길게. 짐은 잘 옮겼어?”
-[네. 이렇게까지 신세 져도 되는 거냐고 부모님이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음…. 나도 미스터리 해커 집단 소속이거나 본인이란 걸 눈치채신 것 같아요. 딸내미 취미랑 특기가 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분들이니까.]
둔갑술 각성자 BJ의 사건이 벌어지고, 계나리의 가족은 이해원이 지내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반대로 이해원의 짐과 고은훤은 펜션으로 옮기고. 이해원도 흔쾌히 동의했다.
-[아 참, 저 있잖아요. 게방부에….]
현재 게이트 방어선에선 특정 괴물의 독에 감염되는 환자가 늘고 있었다. 초기 감염 증상은 눈에 띄는 파란색 반점. 환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고열과 구토, 오한, 심지어는 환각 증세에 시달렸다. 아주 심한 경우엔 시신경에 문제가 생기기도.
아직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마땅한 치료 방법조차 찾지 못해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계나리는 알고 있었다. 그 괴물의 독을 깨끗하게 물리치는 방법.
-[해독에 필요한 재료랑 방법을 알려줬거든요. 재료 포획 임무에 해원 씨랑 은수 언니를 투입할 건가 봐요.]
해독 재료는 다름 아닌 해당 괴물 새끼의 덜 자란 뿔. 성체가 될수록 뿔에 포함된 해독 성분이 사라지고, 반대로 어릴수록 해독 효과가 뛰어나다고. 그리고 죽으면 그 성분이 순식간에 사라지므로 반드시 생포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새끼들이 워낙 예민하고 약하다는 것이었다.
-[소리를 차단하는 각성자도 붙여서요. 섣불리 마취총이라도 쐈다간 개복치처럼 쇼크사할 수도 있거든요.]
“까다로운 놈들이네.”
그래서 각성자들의 능력으로 위장한 채 소리 없이 다가가 생포하기로 한 건가.
자칫하다간 임무에 투입된 인원 또한 괴물의 독에 당할 수 있지만,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계나리도 이해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을 테니.
“어쨌든 네가 아는 정보를 넘기는 것도 좋지만, 접촉 빈도가 늘수록 꼬리 밟힐 가능성도 커지니까 항상 조심해.”
계나리가 들으란 듯이 중얼거렸다.
-[오빠가 옆에 있으면 덜 조심해도 될 것 같은뎅.]
“귀국할 때 가볍게 산 선물, 호 형 통해서 보냈으니까 너무 서운해하진 말고.”
-[넵! 히힛.]
딩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한율은 힐끗 거실 쪽을 살핀 뒤 계나리에게 말했다.
“그럼 나중에 톡 보낼게.”
-[넵!]
므아앙. 통화를 끊고 나오자, 여전히 거실 캣타워 꼭대기에 있던 달냥이 다시 항의하듯 길게 울었다. 아주 편히 널브러진 자세로. 구동은 캣타워 기둥에 발톱을 박아넣고선 찰싹 달라붙어 있었는데, 녀석도 참 편해 보였다.
인터폰 앞에 선 모친이 한율을 돌아보았다.
“너희 외삼촌 왔어, 율아. 쌍둥이들도.”
“잠깐만요. 아직 대문 열지 마세요.”
한율은 구동을 캣타워 기둥에서 떼어내, 달냥이 있는 꼭대기로 옮겼다. 호기심 많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구동을 본다면, 분명히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
“됐어요. 문 열어주세요.”
곧 열 살 초등학생 쌍둥이들이 집안에 들이닥쳤다.
“율이 옵빠아!”
“오빠아~.”
* * *
게이트 방어선 내에 마련된 임시 수용소.
12시간에 10분. 다른 사람으로 감쪽같이 변신할 수 있는 각성자 황재은은 답답하단 얼굴로 주절거렸다.
“내가 거기에서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서한율 행세하면서 이상한 짓을 하거나 부당 이득을 갈취한 것도 아닌데! 고작 방송 켜고 장난 좀 친 것뿐인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끽해야 주거 침입 정도 아니냐고.”
옆방에서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니아니 연발 그만하고 좀 닥쳐. 그리고 넌 들어가기라도 했지, 우린….”
또 다른 방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왔다.
“강준식, 너나 좀 닥쳐! 아직도 너 혼자 도망가려고 뒷걸음질 치면서 기회 엿보던 거 생각하면 진짜, 옆에 있었으면 바로 후려쳐버리는 건데.”
“아하.”
황재은은 웃음을 터뜨렸다.
“형님들, 러시아 놈들 꾐에 넘어가서 이해원 집 침입하려다 잡힌 그분들이구나? 각성자 범죄 조직 1호, 괄호 열고 매국노, 괄호 닫고.”
“…너 몇 살이야, 새꺄.”
“알면 어쩌시게요. 나야 방송 조회 수 때문에 병신 짓 한 거지만, 님들은 우리나라 구해준 미스터리 해커랑 제임스 정보 캐내서 러시아에 빼돌리려고 한 매국노들이잖아. 와, 이건 클래스 자체가 남다르지 않아요, 군인 형님?”
땅땅. 군사경찰이 경봉을 가볍게 두드렸다.
“정숙합니다.”
“넵.”
군사경찰은 얌전히 대답하는 황재은을 힐끗하곤 고개를 돌렸다. 만약을 위해 완전 무장하고 감시하곤 있으나, 솔직히 그는 각성자들이 무서웠다. 황재은이야 이렇게 가둬두기만 하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지만, 다른 놈들은 그게 아니므로.
‘그나마 김대현이 여기에 없기에 망정이지.’
이해원에게 잡힌 뒤, 그리고 러시아 용병들에게 잡혔다가 풀려난 뒤에도 김대현은 한 번도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본인은 눈이 먼 뒤로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고 주장했으나, 거짓말 탐지기는 해당 발언을 거짓으로 판단했다.
그런 까닭에 김대현은 조금 더 튼튼한 지하 시설에 홀로 갇혔다. 자살하려는 게 아닌 이상 섣불리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거란 상부의 판단으로.
“수고하십니다.”
임시 수용시설 책임자와 함께 정상욱 중위가 들어왔다.
“각성자 관리과에서 나왔습니다. 여기… 강준식 씨?”
“네, 접니다!”
차가운 돌바닥에 앉아있던 강준식은 벌떡 일어났다. 부모님이 빚까지 내서 보내준 변호사가 제값을 한 것일지도 모른단 희망을 품고.
정상욱은 메마른 미소를 지었다.
“잠깐 저랑 면담 좀 할까요?”
각성자 관리과 회의실.
이해원은 눈앞에 앉아있는 강준식을 보곤 미간을 구겼다. 그리고 정상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사람과 함께 임무를 하란 말씀이십니까?”
“네. 이번 임무에 필요한, 소리를 차단하는 각성자입니다.”
“…….”
강준식 또한 이해원과 마주칠 줄은 몰랐기에, 잔뜩 얼어선 눈동자만 낮게 굴렸다. 미수에 그치기는 했으나 자신은 이해원의 집에 침입하려던 범죄자였다. 그리고 이해원은 투명 인간처럼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채 자신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나중에 김대현이 어떤 상태로 잡혔는지 들었을 땐 솔직히 바지에 소변을 지릴 뻔했다. 하마터면 자신도 그런 몰골이 됐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정상욱이 이해원에게 덧붙였다.
“그리고 군필이더군요.”
“…알겠습니다.”
이해원은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곤 강준식을 돌아보았다. 단순히 소리를 차단하는 각성자라면 쉽게 제압할 자신이 있으므로.
“이번 임무에 관한 설명은 들었습니까?”
“아, 아뇨. 아직….”
“최근 게이트 방어선에 괴물의 독에 감염되어 온몸이 파란색 반점으로 뒤덮이는 군인들 이야기는 들었을 겁니다. 우린 미스터리 해커가 알려준 치료 방법을 토대로, 해독제에 반드시 필요한 재료를 얻기 위해 오늘 저녁, 괴물의 소굴로 들어갑니다.”
멍하니 이해원의 설명을 듣던 강준식의 두 눈이 커졌다.
“…네?!”
정상욱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강준식 씨에겐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워낙 별의별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터라 나라의 모든 일 처리 속도가 굼벵이처럼 느리기 짝이 없습니다. 이래서야 강준식 씨의 재판도 언제 열리게 될는지…. 음, 저로선 감이 안 잡히는군요.”
“…….”
“강준식 씨. 이번 임무에 성공하면 괴물의 독에 감염되어 고생하는 수많은 장병을 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 해원 씨가 합의서를 써주지 않아도 판사님이 너그러이 봐주실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각성자 진은수 씨도 함께 참여하니….”
진은수의 이름이 거론되자 생기를 잃어가던 강준식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하겠습니다!”
잠시 후. 이해원은 정상욱과 함께 회의실을 나왔다. 강준식은 다른 군인이 전자발찌를 채우곤 숙소로 데려갔다.
“지난번에 말씀하시려던 내용이 이거였습니까?”
러시아 출신 용병들이 군인 둘, 간호사 한 명을 죽이고 김대현을 빼돌린 사건 다음 날. 김대현의 동료들은 어떻게 처리될 거냐는 이해원의 물음에 정상욱 중위는 법대로 처리될 거라고 대답했다.
『다만…. 아, 아닙니다. 확실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상욱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 한심하죠. 나라의 은인을 팔아먹으려던 자들인데, 능력을 썩히기에 아쉽다면서 손을 내밀다니.”
“아닙니다. 쓸모가 있다면 써야죠. 다른 곳도 아니고 괴물 소굴로 들어가는 일인데.”
“하하하….”
“그나저나 곧 드미트리가 러시아로 송환되지 않습니까. 수배된 그놈들, 가만히 있을까요? 권한정을 납치했다가 얌전히 풀어준 것도 무척 마음에 걸립니다만.”
“네. 그래서 한동안….”
정상욱이 누군가를 발견하곤 하던 말을 멈췄다. 이해원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양반은 못 되는 걸까.
각성자 관리과 사무실 앞 복도. 권한정이 쭈뼛쭈뼛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한정 씨.”
이해원은 무사해서 다행이란 표정을 연기하며 다가갔다.
“몸은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바보같이 한밤중에 몰래 객실 나가다가 납치된 것도… 면목 없네요.”
“아닙니다.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권한정은 각성자를 알아보는 능력을 지녀, 각성자 연구소에서 테스트를 돕는 일을 했었다. 그래서 각성자 관리과가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국내 각성자의 정보 유출이었다.
지금도 많은 각성자가 미디어와 SNS 등을 통해 노출되는 중이라 해도, 권한정은 그들의 개인 정보까지 열람했던 인물이므로.
“그런데 본부까진 어쩐 일입니까?”
이해원을 바라보는 권한정의 눈동자가 순간 잿빛으로 물들었다가 되돌아갔다.
“절 납치한 놈들에 대해, 관리과에 직접 알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