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한국에 있기를 바라
타앙.
“……?!”
거리에서 울리는 두 번의 총성. 계단을 올라가던 진은수는 박살 난 창틀을 짚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선배님!”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이해원이 함께 남았던 군인의 손목을 쳐내, 그가 들고 있던 소총을 떨어뜨리고 제압한다. 이해원의 왼쪽 눈가 옆엔 선명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한 건 제압당한 군인의 반응. 상당히 아플 텐데도 그는 인형처럼 저항은커녕 꿈틀거리지도 않는다.
작전팀장의 목소리가 위에서, 무전기에서 동시에 울렸다.
-[이해원 이병, 무슨 일입니까!]
이해원이 대답했다.
-[갑자기 절 공격했습니다. 초점이 흐려지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이상 행동을 보여 제압했습니다.]
작전팀장은 지원을 위해 대기하던 인원을 보냈다. 곧 무장한 군인들이 이해원을 공격한 군인을 대신 붙잡았다.
놀란 가슴팍을 꾹 누른 채 지켜보던 진은수는 옆에 있던 강준식에게 물었다.
“왜… 선배님 무기까지 압수하는 거예요?”
“만약을 위해서입니다. 지척에서 소총을 겨눴다는 건 살해할 의도가 명백한 거잖아요. 뒤늦게 분노가 치밀어 올라 보복할 수 있고, 해원 씨가 거짓말하고 있을 가능성도….”
“선배님이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진은수가 버럭 부정하자 강준식은 쩔쩔맸다.
“아니, 그러니까 가능성이요. 과정을 목격한 사람이 없으니까, 카메라 확인 전까지 신중하게 접근하는 거예요. 게이트가 열린 뒤로 워낙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니까 더더욱.”
훌쩍. 진은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절대 실수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잔뜩 긴장한 채 카모플라쥬 능력을 유지하고, 역겨운 냄새 속에서 괴물의 코앞을 지나치며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릴 것처럼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진은수는 손으로 벽을 짚으며 계단을 휘청휘청 내려갔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가까이에서 본 이해원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왼쪽 눈썹 위가 비스듬히 길게 찢기고 주변 피부도 벌겋게 얼룩덜룩했다.
“눈은….”
이해원은 안심하란 얼굴로 웃었다.
“눈엔 아무 이상 없어요. 살짝 스친 정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아침 서한율과 헤어지기 전, 그가 당부한 말이 있었다.
아무리 보호 마법 성능이 뛰어나다곤 해도 불시에 날아드는 총알까지 막진 못하니, 눈먼 탄환에 조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방탄조끼가 1차 충격을 막아준 찰나 보호 마법이 발동, 두 번째 탄환이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다행이다….”
토닥토닥. 이해원은 훌쩍거리는 진은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달려온 군의관이 이해원의 상태를 확인했다.
“병원으로 가서 검사 후 처치 받는 게 좋겠습니다.”
이해원은 응급 처치를 받은 뒤 생포한 청독각룡 새끼들을 실은 헬기에 탑승했다. 진은수를 비롯해 남은 인원은 다른 헬기를 타고 본부로 돌아가기로 했다.
여기저기 박살 난 거리가 어둡고 붉은 노을빛으로 물든다.
이해원은 욱신거리는 부근을 손으로 감쌌다. 두두두. 머리까지 파고드는 헬기 소음 탓일까. 두통이 일었다.
‘누군가로부터 조종을 받는 느낌이었어. 설마… 권한정이 말한 그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총을 쏘기 전 중얼거린 말도 러시아어 느낌이었다. 해당 상황을 고스란히 녹화한 카메라 분석이 끝나면 알 수 있을까.
‘정말 그놈들이라면 대체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문득 계나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이었다.
『나중엔 괴물들보단 사람이 더 싫어질 지경이더라고요.』
이해원은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을 이해할 날이 오지 않길 바랐는데, 힘들 것 같다고.
헬기는 생포한 괴물을 연구할 연구소에 착륙했다. 이해원은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 가벼운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 옷과 신발에서 끔찍한 악취가 날 텐데, 의료진은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세심하게 봐주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지금 한국이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 모두, 게이트 방어선을 목숨 걸고 지키는 군인 분들 덕분이니까요. 저희야말로 감사드립니다.”
통상적인 인사일 수 있지만, 그 말은 조금 전 죽을 뻔했던 이해원의 마음을 조금 달래주었다.
“감사합니다.”
진료실을 나왔을 땐, 흰색 가운을 걸치고 바삐 복도를 걷던 의사가 그를 보곤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해원이 아니니?”
유호의 어머니였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잘 지내셨어요?”
유호의 부모님은 게이트가 열린 뒤 펜션에서 지냈었다. 그러나 의료진이 부족하단 소식이 들려오자, 피부과 전문의였던 그녀는 방어선에서 다치는 군인들과 고생하는 동료들을 두고 볼 수 없다면서 떠났다. 숙식하면서 일하는 병원이 바로 이곳이었던 모양.
“나야 하루하루가 정신없지. 그런데… 언제 입대한 거야?”
이해원은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머쓱하게 대답했다.
“한 달 정도 됐어요.”
“방어선에?”
“네.”
이해원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안쓰러움과 대견함, 따스함이 깃들었다. 아무리 아들인 유호와 오랫동안 음악 방송 MC를 하고, 또 펜션에서 만났었다곤 해도 그를 둘러싼 소문을 모르진 않을 텐데 말이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고 싶은데 이미 다쳤네. 부모님 많이 걱정하실 테니까 영상 통화 자주 해드려.”
“네. 어머님도 건강 챙기세요. 호 형이 걱정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다음에 또 보자.”
“네, 들어가세요.”
자연스럽게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유호의 어머니와 헤어진 이해원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나 영상이 아닌 음성 통화를 걸었다. 얼굴에 난 상처를 본다면 분명 걱정하실 테니.
“엄마, 뭐 하세요?”
-[아들, 군인이 이렇게 아무 때나 전화해도 돼?]
“되니까 했죠? 별일 없죠?”
-[그럼, 별일 없지. 할머니도 건강하셔. 소싯적에 쏴봤다던 국궁을 창고에서 꺼내서 매일 닦으시더라.]
“부디 쓸 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그러기를 바라야지. 해원이 넌 별일 없어?]
저 오늘 또 죽을 뻔했어요.
이해원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아주 중요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서, 칭찬받을 것 같아요.”
-[벌써? 우리 아들, 군인 체질이었나?]
로비 밖엔 여기까지 타고 온 차가 시동을 걸고 대기 중이었다. 하늘은 벌써 캄캄했다.
“저 그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나중에 또 전화할게요.”
-[응. 밥 잘 챙겨 먹고.]
“네, 엄마도요. …사랑해요.”
몇 번을 했어도 여전히 쑥스러운 말. 어머니의 목소리에 따뜻한 웃음이 깃들었다.
-[나도 사랑해, 우리 아들.]
정상욱 중위는 방어선 바깥에 마련된 숙소로 가서 쉬라고 했다. 그러나 이해원은 자신에게 총을 겨눴던 최 상병이 제정신을 차렸단 말을 듣곤 본부로 갈 것을 요청했다.
잠시 후, 게방부 각성자 관리과 사무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이해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친 데는 어때요?”
“제임스? 이탈리아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
한율은 어깨를 으쓱인 뒤 정상욱 중위를 바라보았다. 정상욱이 머쓱하게 웃었다.
“보고를 받고 저도 모르게 놀라서 그만.”
가뜩이나 바쁜데 나 때문에. 이해원은 미안한 얼굴로 한율을 한번 본 뒤 정상욱에게 말했다.
“제임스는 제 보호자가 아닙니다, 중위님.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도 한참 지났고요.”
“중위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왔어요. 갑자기 정신 나가서 형을 공격했다던 최 상병과도 조금 전에 만났고.”
신승민 대령이 끼어들었다.
“이해원 이병도 왔으니, 이제 제임스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군요.”
“다들 어느 정도 예상하셨겠지만, 최 상병의 이상 행동은 각성자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러시아어로 ‘미끼’라고 중얼거린 거나, 이해원 이병을 노린 정황으로 봐선 결국 날 끌어내기 위한 러시아 용병들의 수작 같지만….”
한율은 자리에 앉은 이해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놈들 중에 각성자가 있단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서요. 다른 가능성도 열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놈들에게 잡혔던 권한정 말에 따르면….”
한편 그 시각, 게이트 방어선과 멀지 않은 통행 제한 구역.
권한정은 자신에게 주어진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우리나라를 위해서라곤 하지만, 정말 괜찮을까?’
하루도 안 되는 사이에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럽고 복잡했다. 가슴도 쉽사리 진정되질 않아, 권한정은 한참 동안 초조하게 숙소 안을 돌아다녔다.
바로 어젯밤. 제임스를 만나고자 호텔 객실을 몰래 나가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두 눈이 새카만 천으로 꽁꽁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남성들이 걸걸한 목소리로 다투는 게 들렸다. 생소한 외국어라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귀를 기울이는데, 누군가 쿵쿵 다가오더니 화풀이하듯 그의 뺨을 주먹으로 갈겼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납치범들은 그를 차에다 태워, 부산 화명역 인근에다 버리고 가버렸다.
거짓 진술 회유를 받은 건, 경찰서에서 막 조사받기 직전.
『한정 씨도 제임스가 계속 한국에 있기를 바라잖아요. 전혀 나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그놈들, 죄 없는 사람들 죽이고 도망 다니는 살인자들이잖아요.』
『그냥 이 말만 해요. 그놈들 중에 사람을 조종하는 각성자가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수배가 내려졌는데도 잡히지 않고 잘 도망 다니는 것 같다고요.』
그 진술이 어떻게 제임스를 붙잡을 수 있는 건지 물었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다. 대신, 지금껏 살면서 실물로 본 적 없는 큰돈을 받았다.
『나라의 안위를 위해 고생하는데, 이 정도 후원은 마땅히 해드려야죠.』
권한정은 털썩 소파에 널브러졌다.
‘큰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좋게 생각하자. 그 사람 말처럼 제임스가 계속 한국에 있으면 모두에게 좋은 거잖아.’
그러나 거짓말을 했다는 게 자꾸 양심에 걸린다. 어제 원카운트 나기혁에게 들은 말도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한정 씨가 작정하면 일반인을 각성자로 사기 치는 건 일도 아니겠단 생각이 드는데요?』
그의 말처럼 일반인을 각성자로 사기 치진 않았다. 가상의 각성자를 만들어냈을 뿐. 그래도 수많은 사람을 속인 건 사실이라, 권한정은 아예 소파에 얼굴을 파묻었다.
전 거짓말 안 해요! …는 개뿔.
‘으으, 몰라아….’
* * *
경기도 양평의 파란달 펜션 관리동 옥상.
“후우….”
박가람은 천천히 숨을 내뱉으면서 감았던 눈을 떴다. 시계를 확인한 그의 입가가 헤 벌어졌다. 은은한 푸른빛으로 물들었던 눈동자가 금세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대박. 세 시간 연속 집중했다. …아이고, 다리야. 성장해도 다리 저리는 건 어쩔 수 없구먼?”
툭툭. 엉덩이를 털면서 일어난 박가람은 크게 기지개 켠 뒤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쭉쭉 풀었다.
‘이 정도면 나도 해원이 형처럼 멋있게 바람 마법을 샥샥!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우선 서한율을 찾아가서 배워야 하는데.’
지금쯤 하늘을 날고 있겠지?
박가람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스래빗 단톡방에 톡이 쌓여 있었다.
‘아니, 다 같이 펜션에 살면서? 이런 게으른 녀석들 같으니!’
올라온 톡은 이랬다.
-[가람 머해]
-[박가람 어디 갔냐]
-[객실에도 없는데?]
-[산책?]
-[이 밤에요?]
-[차는 다 그대로 있는뎅 어디 간 겨]
-[안 오면 이거 우리가 다 먹는다]
-[(사진)]
“……?”
박가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진을 클릭했다.
온갖 종류의 치킨과 먹거리, 맥주가 관리동 로비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벽에 다트판이 없는 걸 보면 분명히 오늘 촬영된 건데, 테이블 끝자락에 심드렁한 얼굴로 앉아있는 서한율이 보였다.
박가람의 눈이 가늘어졌다.
“응…?”
사진이 올라온 건 23분 전.
“내 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