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5화 (357/427)

스타학교

이른 새벽, 각성자 부대 숙소.

이해원은 정상욱 중위와 만나 함께 차에 탔다. 정상욱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정원그룹 3세 정지호 때문이었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군요. 주모자가 자백까지 했는데 정작 그놈을 두고 아랫놈들만 잡아넣는다는 게.”

“그가 교사했다는 물적 증거도 없고, 자백도 나중에 강요받아서 한 거라고 말하면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정원그룹이 막대한 국방 성금을 냈잖아요. 기분 푸세요.”

정상욱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이해원을 바라보았다.

“보살입니까? 그놈 때문에 죽을 뻔한 건 해원 씨 당신입니다.”

“그 말 제임스한테도 들었는데.”

“그런데 제임스는.”

차에 둘밖에 없는데, 정상욱이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레 물었다.

“대체 이탈리아에서 뭘 하는 겁니까?”

이해원은 살며시 웃었다.

“글쎄요. 저도 물어봤지만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설마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일이 닥치는 건 아니겠죠? 게이트가 여러 개 더 열린다거나.”

“그런 얘긴 듣지 못한 것 같아요.”

정상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게이트 방어선 본부에 도착. 두 사람은 각성자 관리과로 들어갔다. 이른 새벽이었으나 사무실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해원은 직원들에게 인사하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엔 각성자 김바람이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그녀의 각성 능력은, 일정한 힘 이상 타격한 상대를 폭발시키는 것.

“안녕하십니까.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김바람과는 훈련소에서 처음 만났다. 이해원보다 한참 앞서서 입소해 훈련을 받던 김바람은, 그곳에서 마주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대했다.

“네, 안녕하세요.”

하지만 이보다 더한 노골적인 경멸 혹은 악의와 마주한 게 여러 번인지라, 이해원은 그러려니 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업무용으로 받은 사과패드를 꺼냈다.

정상욱이 들어오기 전까지 응급 처치 영상이나 조금 더 봐두자는 생각에.

“…….”

힐끗.

“…….”

힐끗.

“…저한테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조금 전부터 사과패드를 보는 척, 연신 그를 훔쳐보던 김바람이 화들짝 놀랐다.

“네? 없는데요?”

“네.”

“…그.”

“……?”

다시 사과패드로 시선을 내리려던 이해원은 김바람을 바라보았다. 김바람이 고개를 돌리며 지나가는 어투로 말했다.

“얼마 전에 정말 중요한 임무에 성공했다는 소문을 들어서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간단히 예를 표하곤 사과패드 영상을 재생. 소리는 끄고 자막 기능을 켰다.

“…….”

“…….”

조용해진 회의실엔 문밖 사무실 기척만 들렸다. 이번엔 더 조심스럽게 이해원을 훔쳐보던 김바람이 입을 열었다.

“눈썹 위 상처는….”

저벅저벅, 벌컥.

정상욱 중위가 들어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바로 두 분께 드릴 임무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이해원은 사과패드 전원 버튼을 가볍게 누르며 미소 지었다.

“네.”

김바람도 뒤늦게 대답했다.

“…네.”

* * *

7월 25일 늦은 오후.

J본부 예능 <스타학교>가 방송되었다. 시작 전, 짤막한 안내 자막이 흘러나왔다.

[본 방송은 6월 4일 녹화되었습니다.]

<스타학교> 프로그램 톡창.

-드디어 재방 아니고 본방ㅜㅜ

-6월 4일.. 돌아가고 싶다

-오프닝 끝나고 어스래빗 나오면 알려주세요

-나온다!!!!!!!

교실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어스래빗 멤버들이 문을 열고 등장했다. 아직 낯을 가리는 어색한 인사.

[안녕, 얘들아.]

[안녕~.]

서한율만 태연하고 자연스러웠다.

[3년 만인데, 여긴 변함이 없구나?]

-곱다

-서한율도 은근 키 크던데, 멤버들이랑 별 차이가 없네

-서한율 보러 옴ㅎㅎ

-드디어 스타학교 완전체 출연ㅠㅠ 대피소라 맘껏 웃을 수 없는 게 슬프다

-어스래빗 평균 키 179,9입니다ㅎㅎ 다 커요

-다들 잘생겼네

-저런 애들은 대체 어디에서 사는 거임?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서한율이 정말 미스터리 해커 집단이면 저 때 이미 게이트가 곧 열릴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아무렇지 않은 거 보니까 멘탈 존나게 강한 듯

-179,9ㅋㅋㅋ 제일 작은 놈이 평균 깎아 먹음?

고정 출연자들은 남자 아이돌그룹의 등장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칙칙~ 하다.]

[어, 반가워. 대충 빈자리 찾아서 앉아.]

-잘생겼으니까 웃지 말래ㅋㅋㅋ

-율톢 3, 4년 지나면 진짜 잘생긴 악역도 잘 어울릴 듯

-이번에도 어김없이 들고나온 토끼 안마봉ㅎㅎ

-번역 원합니다.

인사와 자리 정하기가 끝나고 본인이 스타라는 걸 증명하는 PR 시간.

최근 서한율을 둘러싼 의혹으로 그가 주목받는 걸 노린 것일까. <스타학교>는 고정 출연자들 간의 농담이나 TMI보다는 서한율의 분량을 더 챙겨준 티가 났다.

-서한율 드라마 말고 예능 나오는 거 처음 보는데 대답 시원시원하게 잘하네요^^

-첫 키스를 한 적이 없다고? 정말? ㄹㅇ?

-얘 좀 뻔뻔한 스타일이었네ㅋㅋ 드라마나 CF 찍은 거 보면 실제론 되게 조용하거나 내향적일 것 같았는데

-뽀뽀 씬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 하면 되지? 하면 되지? 하면 되지?

-율톢이 조용한 성격인 건 맞는데, 할 말은 다 합니다ㅎㅎ 결코 내향적이거나 소심하지 않아요ㅎㅎ

-어 멈췄다.

살면서 제일 무서웠던 경험이 뭐냐고 묻는 출연진의 질문. 막힘없이 술술 대답하던 서한율이 처음으로 머뭇거렸다.

[한율이가 무서워하는 건 전혀 상상이 안 가는데.]

[진짜 무서운 얘긴데 괜찮아?]

[어, 괜찮아! 완전!]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서한율. 스튜디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책상에 이마를 대며 쭈그러지는 유호.

[이런 거 너무 싫어….]

고정 출연자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말했다.

[얘 일본에서 제일 길고 무섭다는 귀신의 집에서도 한 번도 안 놀란 애잖아. 그러니까 무슨 얘긴지 더 궁금하다.]

[이건 내가 초등학생 때 겪은 일인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를 자주 타고 다녔거든? 하루는 일요일이라 심심해서, 평소에 안 가던 길로 자전거를 타고 갔어.]

화면 아래, 초등학생 시절 한율의 얼굴 사진을 붙인 설명 그림이 나왔다.

[그러다 신호에 걸려서 기다리는데, 내 옆에 흰색 승용차 한 대가 서는 거야. 차 지붕에 간간이 작게 깨진 흠집에 녹이 번져 있는 게 시선을 끌더라고.]

당시를 회상하던 서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좀 오래된 차인가 보다. 별 신경 안 썼지. 그러다가 한 10분 정도 지났나?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골목에 보면 볼록 거울이 세워져 있잖아. 그걸 보면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는데, 오른쪽 골목에서 나오려는 흰색 승용차 한 대가 비치는 거야. 당연히 멈췄지?]

경청하던 멤버들과 출연진들이 술렁거렸다.

[설마.]

[아, 진짜. 하지 마.]

[그 순간, 왠지 모르게 그 차 운전자랑 거울 통해서 눈이 마주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서한율이 한 호흡 쉬더니 또렷한 발성으로 소리 냈다.

[부아앙.]

커다란 자막도 함께 나왔다.

[내가 있는 쪽으로 나온 그 차가 갑자기 속도를 내면서 돌진하는 거야. 마침 옆에 주차된 차량 사이 공간이 있어서 피할 수 있었는데, 정말 순식간에 다가온 그 흰색 승용차. 그 운전자랑 다시 눈이 마주쳤는데 날 보면서 이렇게.]

서한율이 아쉽다는 듯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씨익 웃더라. 그리고 그 차 지붕엔, 10분 전에 본 차랑 똑같은 흠집에 녹슨 자국이 툭, 툭.]

[으아악…!]

-ㅁ1ㅊ 개소름

-자전거 타는 초등학생 노리고 쫓아왔다는 거잖아 그것도 예상 경로 앞질러서

-귀신 얘기보다 이런 게 더 무섭다ㅜㅜ

-초딩 자라니에 빡친 운전자 아니었을까?

-뒤도 아니고 어떻게 거기에서 미리 기다림?

-처음엔 뒤쫓아왔으니까 옆을 지나친 거고, 룸미러나 사이드미러로 주시하면서 경로 파악하고 진 치고 있었던 거 아님?

-무서워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그 차 그냥 갔어?]

조명이 서서히 밝아졌다. 서한율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잇는 말.

[아니? 차를 세우더니 문을 열더라고. 그런데 옆 건물에서 사람들이 나오니까 도로 쾅 닫고 가더라.]

[헉.]

[그때 사람들 안 나왔으면.]

[생각만 해도 소름 돋아….]

[그러니까 넌! 어린애가 위험하게 모르는 데까지 혼자 다니고! 그러면 돼, 안 돼!]

[너 이 이야기 부모님도 아셔?]

서한율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전혀 모르셔. 걱정하실 것 같아서 안 했지.]

[아이가 그런 거 숨기는 게 더 속상한 일이거든? 얼른 사과드려!]

고정 출연자 중 리더 격인 주동수가 호통쳤다. 서한율은 반성한다는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꾸벅였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실은 자전거랑 외출 금지당할까 봐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비싼 자전거에다 비싼 옷 입고 있어서 납치하려고 그랬던 건가? 얘네 집 존나 부자잖아

-이거 서한율이 아니라 그 수상한 운전자한테 무서운 이야기일지도 모름

-신호등 옆에서 마주친 게 처음이 아닐 수 있다란 생각

-차에 치여서 납치당할 뻔했네

-부아앙에서 심장 떨어질 뻔;

-왜 납치범한테 무서운 얘기임?

-아ㅋㅋㅋ

잠시 후. 길우성이 교탁 앞에 섰다.

[나도 예전에 진짜 무서운 일 겪었어! 서한율네 집에서 지낼 때 겪은 일이야!]

-초면이지만 얘 이야긴 별로 안 무서울 것 같다ㅎ

-....창문 앞으로 파란색 도깨비불?

-와 이건 다른 의미로 소름인데

-설명)서한율의 또 다른 별명은 파랑 요정이다.

방송이 끝나고 포털사이트 실검에는 [스타학교 서한율], [스타학교 어스래빗]이 상위권에 올라왔다.

파란달 펜션 관리동 2층.

멤버들과 함께 <스타학교>를 본 길우성은 멍하니 있다가 외쳤다.

“써한, 이 자식! 내가 그 녀석 집에 얹혀살 때부터 이상한 힘 갖고 있었던 거 아냐?!”

“난 방송을 보고 나서야 깨닫는 네가 더 놀랍다….”

“어떤 사람이 리뷰 기사 댓글에, 오히려 그 납치범이 더 위험할 뻔한 상황 아니었냐는데.”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좀. 어쨌든 초등학생 쫓아와서 차로 치려고 한 끔찍한 사건이잖아.”

“…….”

박가람과 유호는 서로를 바라봤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지난달 <스타학교> 녹화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서한율에게 그 뒷이야기를 슬며시 물어봤었다. 그 심상치 않았던 차주, 그대로 가만히 보내줬냐고.

서한율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당연히 추적해서 혼내줬죠. 그런 짓을 한두 번만 했을 것 같진 않아서요.』

어떻게 혼내줬는지까진 묻지 못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본 한율은, 모친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런 무서운 일이 있었으면 엄마한테 얘길 했어야지!]

“이미 11년이나 지난….”

-[11년이 지났든, 20년이 지났든! 지금도 하루하루가 걱정되는데…. 율이 너 엄마랑 약속해. 앞으로 또 무슨 일 있으면, 그 일을 무사히 넘겼더라도 엄마한테 꼭 알려주기로. 약속!]

“네, 약속할게요.”

그리고 30분가량 더 잔소리를 들었다.

다음 날. SBC 케이블 채널에선 4년 전 방송되었던 <객귀> 시리즈가 연속 재방송되었다. tv Mu에선 <별☆일없는 집>과 <서울 구미호> 연속 재방송 예고를 내보냈다.

뮤닷은 <스타학교>처럼 게이트 사태 때문에 미뤄진 <아이돌 카페> 차남석, 박가람 편을 30일에 방송한다며 예고했다. 그리고 어스래빗의 단독 리얼리티 <런던래빗>을 재방송했다.

WB래빗 엔터테인먼트엔 일부 어스래빗 팬들의 성명서가 도착했다. <부산 K-POP 콘서트>도 무사히 치러졌으니, 게이트 사태로 취소되었던 팬 미팅을 다시 열어달라는 요청이었다.

“난감하네요. 애들을 만나기 위해 적잖은 돈이랑 시간을 쏟아서 당첨된 사람들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사실 이전에도 팬 미팅 취소에 화가 나서 앨범 구매 영수증을 첨부해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한 팬이 있었다. 그때는 ‘천재지변 발생 시 행사가 취소될 수 있다’란 사전 안내 조항을 내밀어 무마했다.

그러나 이번 성명서는 제법 큰 팬덤 커뮤에서 보내온 것으로,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란 메인에까지 기사가 올라온 상황.

[어스래빗 팬들, 게이트 사태로 취소된 팬 미팅 열어달라 성명서]

[(중략) 금전적인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취소된 팬 미팅이 다시 열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팬들의 요구에 어스래빗 소속사 WB래빗 엔터는 아직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스래빗을 담당하는 매니지 B팀 직원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율이가 참석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요.”

“일단.”

조유찬이 오 팀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고향에 내려간 허진영 씨부터 부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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