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7화 (359/427)

점심 뭐 먹지

서울 게이트를 살피기 전,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군에 협조를 요청하는 일.

게이트 방어선 본부.

제임스의 등장에 사람들이 동작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함께 차에서 내리는 계나리에게도 시선이 쏠렸다.

‘뭐지?’

작고 가냘픈 체격에 커다란 고양이 인형 탈을 머리에 뒤집어쓴 모습이 참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계나리는 가볍게 움직였다. 한율이 인형 탈에다가 경량화, 바람, 보호 마법 3종 세트를 걸어준 덕분이었다.

선선한 공기가 잘 통해, 시야가 약간 가려진 것 외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다는 생각에 이상한 해방감이 들었다.

계나리는 저를 멍하니 바라보는 군인을 향해 살짝 무릎을 굽히며 손을 흔들었다. 놀이공원의 마스코트 인형 탈 알바처럼.

“안녕하십니까아. 고생이 많으십니다아.”

“네, 안… 녕하십니까.”

미스터리 해커 집단 동료인 건가? 그래서 정체를 감추려고? 아니, 그런데 왜 하필 고양이 인형 탈이야? 안 더워?

대충 이런 의혹을 품은 시선들이 늘어난다.

“제임스! 미리 연락했다면 마중 나갔을 텐데요!”

조금 전 통화한 정상욱 중위가 반가운 얼굴로 나왔다.

“고작 며칠 만에 오는 건데 번거롭게 마중은요. 잘 지내셨어요?”

“네. 이분이 전화로 말씀하셨던….”

“절 도와주는 동료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안까지 들어가진 않을 테니, 보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정상욱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소장님께서 허락하신 손님이니 함께 들어가시죠. 실례지만 성함이….”

“편하게 ‘양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양이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게이트 방어 지휘부 각성자 관리과 소속 중위 정상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넵,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정상욱은 두 사람을 소장실로 안내했다. 소장실에는 이해원이 먼저 와 있었다. 이해원은 반가운 얼굴을 하다가, 고양이 인형 탈을 쓴 계나리를 보곤 흠칫 놀랐다.

계나리는 ‘알은체해야 하나?’ 하는 이해원의 고민을 날려 주었다.

“오랜만이에요, 해원 씨.”

“…네, 오랜만이에요. 안 더워요?”

“헤헤.”

두 사람은 김관식 소장과도 인사를 나눴다. 김관식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정 중위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게이트와 괴물들을 가뒀던 그 장막을… 다시 만드신다고요.”

이는 제임스가 미스터리한 푸른색 장막을 만든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한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난번 결계처럼 오래 버티진 못합니다만, 제가 게이트에 접근하는 동안 그쪽을 향한 공격을 멈춰주셨으면 합니다. 전투기와 헬기 비행도 안 됩니다. 움직이기가 힘들어지거든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우리야 잠시나마 화력을 아끼고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어 무척이나 좋지만, 아무래도 게이트 문제다 보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당연히 확인해야 할 일이니,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고개를 저은 한율은 반쯤 솔직히 말했다.

“제가 이탈리아 게이트를 살피고 있단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최근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 서울 게이트도 재차 살펴보려고요.”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결코 대한민국에 해가 되는 일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모든 공격을 중지하는 건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럼?”

똑똑. 묵직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김관식이 씩 웃으며 일어났다.

“오셨나 봅니다.”

한율과 계나리, 이해원도 눈치껏 따라 일어났다.

게이트 방어 지휘 본부 소장보다 더 높은 직급이라면 설마.

“네,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고, 최근 TV에 자주 보이는 얼굴이 등장했다.

국방부 장관.

김관식과 정상욱, 이해원이 그를 향해 경례했다. 장관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받더니, 기대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했다.

“……?!”

그럴 만도 했다. 진지하고 무거워야 할 장소에 웬 귀여운 인형 탈을 머리에 쓴 사람이 당당히 서 있으니.

계나리는 고양이 인형 탈이 벗겨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잡은 채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장관님.”

한율도 나서서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관님. 제임스라고 합니다. 사정상 동료의 얼굴을 보일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장관은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아무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임스.”

한율도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잠시 후, 본부 옥상에 마련된 헬기장.

게이트와 가까울수록 지면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아, 육눈박이 출현 때처럼 헬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계나리, 이해원도 함께.

한율은 계나리를 향해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제자인 두 사람에게 개발 중인 마법을 가까이에서 보여주고 싶어서 부르기는 했으나, 막상 계나리를 데려가려니 조금 걱정되었다. 이해원은 훈련받은 군인이지만, 그녀는 이런 전장 한복판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 인도어파이므로.

계나리는 두 사람처럼 전투복과 전투화, 방탄조끼를 착용했다. 커다란 토끼 인형 탈 대신 고글과 청력 보호 헤드셋이 장착된 방탄 헬멧을 써서 얼굴을 가렸다. 전부 다 컸다.

계나리가 한율처럼 무전으로 대답했다.

-[네, 저는 괜찮아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세 사람을 태운 헬기는 곧장 게이트를 향해 날았다.

위이잉! 곧 게이트 방어선 중심부에 커다란 사이렌이 울렸다. 지시받은 대로 게이트를 향한 모든 화력이 방향을 틀거나 중단되었다. 게이트와 가까이 있던 전투기와 헬기, 정찰기 역시 멀리 흩어졌다.

한율은 이해원과 계나리에게 핸드폰 메시지로 말을 전했다.

[마나 흐름에 집중하세요.]

두 사람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장님, 게이트와 최대한 가깝고 높은 구조물에 두 사람을 내려주세요.”

어느 정도 게이트와 가까워졌을 때, 한율은 시커먼 아가리에서 끊임없이 괴물을 뱉어내는 게이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고글로 가려진 그의 두 눈이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우선 걸리적거리는 날파리들부터.’

휙, 가벼운 손짓. 순식간에 생성된 거대한 바람이 게이트에서 나오던 괴물들을 집어삼켜 그대로 압축, 숨통을 끊어놓았다.

……!!

급히 헬기를 돌리던 조종사,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많은 군인은 경악하여 입을 쩍 벌렸다.

후두둑. 지상으로 수백 마리의 괴물 사체가 떨어진다. 개중엔 단단한 전차까지 박살 내던 아주 강한 괴물도 여럿 섞여 있었다.

중력을 거슬러 게이트 정면 앞에 선 한 사람.

스륵. 두 번째 손짓에 이번엔 푸른색 장막이 일렁일렁, 알 수 없는 문양이 물길처럼 흐르며 결계를 이룬다.

계나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예쁘다….”

한편으론 소름이 돋아 부르르 떨었다. 두 달 전 게이트가 열렸을 땐 가족을 챙겨 서울을 급히 벗어나느라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한율의 마력에 끌려 움직이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에 온몸이 찌릿찌릿하다. 작년 모의 훈련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강한 대규모 마법이었다.

‘난 100년을 꼬박 수련해도 절대 못 해.’

엄청난 실력 차이는 좌절감보단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해원 또한 마나의 흐름에 집중하며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한율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내 마력까지 요동칠 것 같아.’

이렇게 대규모 결계가 만들어지는 걸 직접 보니, 굉장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인간을 한참 넘어선 다른 존재로 느껴졌다.

‘한율인 정말….’

결계가 게이트를 완전히 감쌌다. 게이트에서 새롭게 쏟아져 나오던 괴물들이 차곡차곡 결계 안쪽에 쌓이기 시작했다.

한율은 망설임 없이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괴물들의 생명력을 흡수, 마력으로 변환하는 마법을 전개하고선 결계와 연결했다.

지끈.

결계를 펼쳤을 때부터 일어난 두통이 심해졌다. 익숙하게 통증을 무시하며 잠시 딴생각을 했다.

‘점심 뭐 먹지.’

키에엑…. 고통에 몸부림치며 천천히 말라비틀어지던 괴물들이 재로 변한다. 한율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게이트로 시선을 옮겼다.

“…….”

한율이 계나리, 이해원이 있는 곳으로 내려온 건 20여 분 뒤였다. 다시 헬기를 타고 그 자리를 벗어나던 한율은 육눈박이 괴물이 죽었던 곳을 살폈다. 사체는 치워졌으나, 장기간 그곳에 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이곳에서도 소각 작업을 했었는지 거리가 시커멨다.

본부 옥상 헬기장.

헬기에서 내리자, 기다리던 정상욱이 큰소리로 물어보며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제임스! 게이트는 잘 살펴보셨습니까?!”

“반 정도는요!”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 정상욱이 들뜬 얼굴로 말했다.

“청와대로 여러 나라 정상들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합니다. 제발 제임스 당신과 연락하게 해달라고요. 이번엔 한국엔 오래 있을 거죠? 반만 살펴봤다고 하셨잖습니까.”

“네. 그래도 긴장 놓으시면 안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전보다 더 빨리 깨질 수 있습니다. 저도 힘을 다 썼고요.”

“네. 두 분은 괜찮으십니까?”

여전히 한율이 펼친 마법의 여파, 그리고 마나의 흐름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던 계나리와 이해원은 뒤늦게 대답했다.

“…네? 네,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중위님. 여기 온 김에 각성자 관리과를 구경하고 싶은데…. 관계자도 아니고, 등록된 각성자가 아니라서 힘들까요?”

“섭섭하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저도요?”

정상욱이 미소 지으며 계나리를 돌아보았다.

“당연하죠. 여러분은 우리나라를 구한 은인이나 다름없는걸요. 그런데 헬멧, 무겁고 답답하지 않아요?”

“앗. 기념품 삼아 이대로 슬쩍하려고 했는데.”

“하하. 아무리 은인이라도 그건 안 됩니다. 인형 탈도 관리과 직원이 보관 중이니… 자, 들어오세요. 커피를 내려드리겠습니다.”

이해원이 정상욱보다 먼저 관리과 사무실 문을 열었다. 직원들의 말소리가 그들을 반겼다. 직원들은 방어선 현장 무전, 그리고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는 TV를 보며 떠들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제임스가 괴물 아닙니까? 인간 병기가 따로 없습니다.”

“그것 보십시오. 부산에 나타난 괴물을 잡았을 때부터 제임스가 그 미스터리 장막을 만든 사람 같다고 제가…. 히익!”

“왜 그러십…. 헉.”

뒤늦게 그들을 본 직원들이 매우 놀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커흠! 정상욱이 크게 헛기침했다. 한율과 계나리는 웃으며 인사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 헉.”

그러다 이번엔 계나리가 놀랐다. 칸막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누군가도 고개를 갸웃했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임스 님…?”

이해원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언제 왔어요, 은수 씨?”

“방금이요. 안녕하세요, 중위님.”

“네, 은수 씨. 어서 와요. 그런데 설마 여기까지 직접 운전해서 온 건 아니죠?”

진은수는 당연히 제임스로 변한 한율을 알아보지 못했다.

“네. 초보 운전자가 몰기엔 길도 험하고, 돌발상황이 일어나면 당황해서 더 위험해지니까 절대 직접 운전하지 말라고 중위님이 그러셨잖아요. 아, 이거 방금 탄 커핀데. 드시겠어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진은수를 바라보던 정상욱이 사양했다.

“전 괜찮습니다.”

진은수가 이번엔 한율을 향해 물었다.

“커피 드실래요?”

“…….”

서한율로 마주했을 땐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우리나라를 구한 은인을 향한 약간의 호기심과 존경심이 보인다. 그러나 그 외엔 아무것도 없는, 덤덤한 겉치레 미소.

한율은 가만히 진은수를 바라보다가 입가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관리과 직원이 다가와 계나리에게 고양이 인형 탈을 건넸다.

“여기, 맡겨두신 탈입니다.”

계나리는 키가 큰 한율과 이해원 뒤쪽으로 몸을 숨기며 작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전 잠깐 장비 좀 벗고 올게요.”

“그럼 탈의실로 안내….”

한율에게 커피를 건넨 진은수가 나섰다.

“제가 탈의실까지 안내해드릴게요.”

“……!”

그리고 놀라서 굳은 계나리의 팔에 친근하게 팔짱을 꼈다. 함께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고, 면허시험을 보러 갔을 때처럼.

“이쪽으로 오세요.”

진은수가 계나리에게 속닥거렸다.

“나리 씨?”

“히익.”

두 소녀가 사무실을 나갔다.

헬멧에다 크고 진한 고글까지 써서 얼굴을 가렸지만, 바로 들킨 모양. 한율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곤, 진은수가 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너무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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