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8화 (360/427)

나는 이 집의 댄스 요정

진은수는 계나리를 각성자 휴게실로 데려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문을 닫고, 계나리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귀는 괜찮아?”

계나리는 방탄 헬멧과 고글을 벗었다.

“응. 언니 대체 나 어떻게 알아본 거야?”

얼마 전, 계나리는 진은수가 운전면허 필기에 합격했다는 SNS를 보고 면허시험 연습을 함께하자며 연락했다. 두 사람은 함께 학원에 다니고 연습하는 동안, 편히 말을 놓을 정도로 퍽 친해졌다.

“키랑 체격, 목소리가 딱 넌데 어떻게 못 알아봐.”

여기에 계나리는 미스터리 해커 집단, 제임스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서한율과도 따로 아는 사이. 정체를 유추하는 건 쉬웠다.

계나리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런가? 그런데 언니, 그렇게 막 놀란 것 같지도 않은뎅.”

입고 있던 옷 위에 전투복을 겹쳐 입었던 터라, 계나리는 편하게 이것저것 벗었다. 진은수가 도와주면서 대답했다.

“나 그렇게 눈치 없는 거 아니거든? 전에 한율 선배님으로 둔갑한 사기꾼 잡은 것도 나리 너잖아.”

계나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걸 눈치채놓곤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다고?”

“내가 눈치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 어쨌든 다친 곳 없어서 다행이다.”

“언니는 오늘 여기 무슨 일로 온 거야? 임무?”

“아니.”

진은수가 작게 웃었다.

“방어선에 내가 도울 일이 없을까 해서. 나, 정식으로 출입 허가증 받았거든.”

“…….”

“왜 그렇게 봐, 나리야.”

계나리는 진은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한텐 어디 다친 데 없냐고 막 걱정하더니.”

진은수가 토닥토닥 계나리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내가 언니잖아.”

“이렇게 착한 언니를….”

중얼거린 계나리는 팔을 풀었다.

“그나저나 언니.”

“응?”

“제임스, 직접 보니까 어땠어? 지난번에 학원에서 언니가 그랬잖아. 기회가 되면 가까이에서 한번 보고 싶다고.”

“아….”

아무리 눈썰미가 좋고 눈치가 빨라도 제임스가 서한율이란 사실을 알아차리긴 힘들다. 그래서 반쯤 장난삼아 물었건만, 진은수는 쑥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솔직히 제임스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한율 선배님 생각이 났거든. 목소리는 달라도 말투나 차분한 톤, 분위기가 너무 닮아서. 그래서 아까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도 조금 놀랐어.”

“……!”

계나리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잠시 후, 게이트 방어선을 벗어난 차 안.

한율은 커다란 고양이 인형 탈을 힐끗거리다가 한마디 했다.

“그거 그만 벗어도 되지 않을까?”

“오빠. 사적인 거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오빠 혹시.”

계나리는 탈을 벗지 않은 채 한율을 바라보았다.

“이성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건 갑자기 왜?”

“나 솔직히 ‘여기’ 오기 전에, 오빠한테 여자로 보이고 싶어서 별짓 다 했었어요. 그런데 그때도 오빠, 정말 꿈쩍도 안 했거든요.”

“…….”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한율이 잠시 입을 다무는 동안, 귀엽게 한쪽 눈을 찡긋하는 고양이 인형 탈은 그를 바라본 채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 타입이 아닌가 보다 좌절하고 포기했는데, 지금도 이성에겐 전혀 관심 없어 보여서요. 이젠 오빠를 존경하는 친한 동생이자 제자로서 걱정이 되더라고요.”

“나리야.”

작게 한숨을 내쉬곤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파란불이 들어온 횡단보도에 표정이 어두운 사람들이 힘없이 걸어간다.

한율은 고개를 돌려 계나리를 바라보았다. 계나리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조금 전 만난 진은수 때문일까.

“아이돌은 연애하면 안 되잖아.”

“…….”

고양이 인형 탈 속에서 계나리가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아이돌들도 뒤에서 할 거 다 한다는 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이런 표정을 짓는 것만 같다.

한율은 미소 지으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연애는 세상이 평화로워지고, 계약이 끝나면 그때 생각해 보려고. 지금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넹.”

계나리는 작게 대답하고선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 인형 탈은 스타믹스 JE의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벗었다.

“그럼 나중에 봐.”

“네에.”

한율은 계나리가 건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후에야 핸들을 돌렸다.

* * *

[[속보] 서울 게이트, 미스터리 장막 다시 나타나]

[[속보] 미스터리 장막 만든 사람, 정말로 제임스였다!]

[이번에도 제임스 덕에 한숨 돌린 대한민국]

[게방부, “이번 결계는 임시. 긴장 풀어선 안 돼”]

[美 “제임스 도움 간절하다” 사실상 한국에 호소]

“와…. 인터넷 난리 났다. 지금 전 세계 SNS 검색어 1위가 전부 제임스래.”

강동구에 마련된 어스래빗 연습실.

갑자기 뜬 속보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휴식하게 했다.

“그전까진 미스터리 해커 집단이 만든 게 아닐까, 혹시 제임스가 아닐까 추측하는 정도였지만, 이번에 게방부가 직접 제임스라고 확인해주었으니 난리가 날 만도 하지.”

관련 SNS를 살피던 유호는 박가람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제임스 게방부로 고양이 인형 탈 뒤집어쓴 동료(여자) 데려왔는데 한국말로 인사했다고 함♡♡♡]

ㄴ미스터리 해커?

ㄴ제임스 외국계 한국인이란 썰이 진짜인가 보네요. 드러난 동료들이 다 한국인인 거 보면.

ㄴ그런듯ㅇㅇ

ㄴㅎㅎ좋다

유호와 박가람은 동시에 생각했다.

‘나리 씨구나.’

“우성아.”

“엉?”

“한율이 곧 귀국하잖아. 한율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였지?”

“어머니가 만든 집밥?”

“응. 내가 너무 당연한 걸 물었구나.”

그때, 어스래빗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잉? 뭐야, 이 자식? 언제 왔지?”

어스래빗 숙소 거실을 배경으로 서한율이 셀카를 찍어서 올렸다.

-[조금 전 도착. 이제 씻고 샵에 갈 예정입니다.]

길우성은 변지욱에게 톡을 보냈다. 변지욱이 서한율이 귀국하면 자신에게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한 까닭이었다.

[써한 왔당.]

하트 날리는 토끼 캐릭터 이모티콘으로 답장이 왔다.

-[감사감사!!]

어스래빗 숙소.

한율은 마지막으로 둘러봤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내부를 둘러보았다. 가끔 멤버들이 청소하는 터라 지저분하진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아서 그럴까. 여름이라 기온이 높은데도 서늘한 느낌이었다.

‘슬슬 다시 여기에서 지내도 될 것 같은데.’

오늘 게이트 방어선을 살펴보고 든 생각이었다. 한 차례 방어선이 무너지기는 했으나, 이제는 군도 게이트 괴물을 상대하는 기술과 대응 시스템이 늘었다.

그리고 지금껏 서울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 정보를 들여다봤더니, 원래 강과 바다가 없는 곳에 살던 놈들인지 하늘을 나는 종류를 제외하곤 섣불리 한강에 접근하지 않았다. 가끔 헤매거나 도망치다가 한강에 뛰어든 괴물도 있었지만, 허우적거리다가 사살되기 일쑤.

‘하지만 기껏 쌓아뒀던 비상식량과 물자가 모두 털렸으니.’

다시 준비하려고 하면 준비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실상 활동 중지 상태라 굳이 이곳에서 지내야 할 이유 또한 없다. 멤버들도 펜션 생활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것 같고.

한율은 나중에 본인들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자신의 방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

조유찬이 초인종을 눌러서 문을 열어줬더니, 같은 소속사 후배이자 보이그룹 SPRabbit 멤버인 변지욱이 함께 들어왔다.

“안녕하시오! 오오, 여기가 어스래빗 숙소구나? 들어가도 되지?”

“이미 들어왔잖아.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흐. 오래간만에 형 보고 싶어서.”

“수작 부리지 말고 진짜 용건.”

변지욱이 코믹 영화 속 조폭처럼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어여쁜 후배 좀 도와주십쇼, 형님!”

“강남에 있는 샵으로 가요, 형?”

“응.”

일단 무시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변지욱이 졸졸 쫓아다녔다.

“우리 라방에 한번 출연해주시면 그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형님. SNS에 올리게 셀카 좀, 형님. 응? 나 말고 이제 막 데뷔한 소속사 후배들 좀 살려주쇼, 형님! 응?”

너무 시끄럽다.

“어떻게?”

“아까 말했잖아. 라방에도 출연해주고, SNS에 올릴 만한 셀카도 찍어주고, 그리고 또… 아무튼.”

“라방은 안 돼. 너희 팬분들이 불편해질 거야.”

“그럼 셀카!”

“그 정도야 어렵진 않지만, 큰 효과는 없을걸? 잠깐의 화제성만 원하는 게 아니잖아.”

변지욱이 크게 결심한 얼굴로 삿대질하며 외쳤다.

“서한율! 차라리 우리 멤버가 돼라!”

“혼날래?”

변지욱은 차에도 함께 탔다.

“아, 이 세계적인 스타 양반을 어떻게 이용하지? 이래서 사람이 공부해야 한다는 거야. 왜 좋은 홍보 수단이 있는데 쓰질 못하니!”

“…….”

운전대를 잡은 조유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욱아, 그런 얘긴 본인이 못 듣게 속으로 해야 하는 거 아냐?”

“변지욱.”

“응?”

한율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SPRabbit이 어떤 아이돌그룹을 지향하는지, 그것부터 멤버들이랑 진지하게 논의한 뒤에 와. 그럼 도와줄게.”

“형….”

변지욱이 감동한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교묘히 숨겨져 있던 카메라를 가리켰다.

“미안해, 처음부터 깜짝 카메라였어….”

“…….”

탁. 한율은 차에 있던 담요로 카메라 렌즈를 덮었다.

“진짜 혼나볼래?”

변지욱이 과장된 열연을 펼쳤다.

“악! 잘못했어, 형! 으악! …으아아아~ 하핫?”

샵에 도착한 후엔 오래간만에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거울 앞 의자에 앉았다. 팬 미팅은 사흘 후지만, 미리 머리카락을 다듬기 위해서였다.

뒤에선 조유찬과 샵 원장이 대화를 나눴다.

“23일부터 이틀 잡힌 어스래빗 시즌그리팅 촬영이요. 정말 예정대로 진행하는 거예요?”

“네. 혹시 힘드실까요?”

“아니요, 저희로선 정말 감사한 일인데요. 게이트 때문에 물가는 올랐지, 손님은 뚝 끊겼지, 그래도 월세는 꼬박꼬박 내야 하지…. 외상 잔뜩 밀린 회사에다 대금 청구하는 것도, 꼭 내가 악독한 빚쟁이가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아요. 다들 어려운 시기란 거 잘 아니까요.”

한율은 거울을 통해 원장의 모습을 살폈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컴백 직전에 봤을 때보다 살이 쭉 빠지고 안색도 좋지 않았다.

“절반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입금해달라고 비는 것도 한두 번이지…. 미안해요. 내가 반가운 손님 붙잡고 너무 어두운 얘기만 했다.”

“아니에요.”

“한율 씨, 나중에 제임스도 데려와. 내가 정말 멋있게 스타일링 해준다고 하고.”

한율은 대답 대신 가볍게 웃고선 눈을 감았다.

샵에서 나왔을 땐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조유찬은 양평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했지만, 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JE 선배님이랑 저녁 먹기로 했거든요. 내일도 아침 일찍 갈 곳이 있어서 오늘은 숙소에서 자려고요. 형도 요즘 집에서 지내잖아요. 피곤할 테니까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응. 그런데 JE 요즘 양평에서 안 지내나? 그러고 보니 얼굴 본 지 조금 된 것 같네.”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더라고요.”

조유찬은 어스래빗 숙소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요즘 정말 치안이 안 좋아져서 혼자 있는 거 위험할 텐데. 가끔 괴물이 날아오기도 하고.”

“치안 상태가 그렇게 심각해요?”

“응. 게이트 관련 뉴스 비중이 커서 부각이 안 될 뿐이지, 날이 갈수록 흉악 범죄가 는다더라. 그래서 나도 진희 씨한테 계속 양평에서 지내는 게 좋겠다고 했어. 집이 게이트랑 거리가 멀어도, 괴물 못지않은 사람도 많아지는 세상이라.”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후우. 조유찬이 한숨을 쉬는 사이, 라디오 뉴스가 귀에 들어왔다.

[조금 전, 제임스가 만든 게이트 결계가 사라졌습니다. 아주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한 군은 다시….]

숙소에 도착. 한율은 조유찬과 인사를 나누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곧장 현관문 앞으로 가서 열쇠로 첫 번째 자물쇠를 열고, 전자자물쇠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릭. 덜컹.

“……?”

안으로 들어가려던 한율은 멈칫했다. 깨끗한 현관에 놓인 익숙한 신발 두 켤레.

드륵. 손대기도 전에 닫혔던 중문이 활짝 열렸다.

길우성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넓게 벌렸다.

“어서 오시오. 나는 이 집의 댄스 요정, 길우성이라 하오. 반갑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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