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0화 (362/427)

서한율 대국민 사기극 발각

이번 팬 미팅은 사인회도 곁들여 오래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어스래빗 멤버들은 처음부터 높은 텐션으로 팬들을 대했다.

“만나면 꼭 주고 싶은 선물 있었는데, 왜 이번엔 선물 금지야?”

“여기 와준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에요, 누나.”

“흐잉…. 다들 건강해서 정말 다행이야.”

“울지 말아요. 뚝. 계속 울면 나도 울어요?”

“한율아, 왜 그랬어. 우성이랑 같이 한우 좀 먹어주지.”

“고자질하라고 했더니 진짜 했네요. 나중에 비싼 수박도 사다 줬는데. 그럼 저도 고자질 하나 할게요. 쟤, 툭하면 고양이랑 놀아준다고 내 방 어질러놓고선 제대로 안 치우고 가요. 혼내주세요, 누나.”

“그랬어? 우성이 혼나야겠네.”

소소한 코너 중간중간엔 노래도 불렀다. 특히 이번 앨범 타이틀곡 의 완전체 무대는 두 달 전 컴백 방송 이후 처음이라, 사녹을 찍을 때처럼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 이번 코너는 무엇이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시시콜콜한 TMI를…?!”

신나게 외치던 박가람이 삑, 음 이탈을 냈다. 멤버들이 빵 터지고 팬들도 귀엽다는 듯 웃었다. 박가람은 뻔뻔하게 귀여운 척 윙크했다.

“인간미 넘치게 실, 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테러가 벌어진 건 그때였다.

무대 아래를 지키던 경호원들이 일제히 굳은 얼굴로 무전 인이어에 집중하며 경계했다. 굳게 닫힌 두꺼운 방음문 너머에서도 이상한 기척이 느껴지던 그 순간.

띠리리리!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는 사람들.

콰앙!

“꺄아악!”

무언가가 문을 부수듯이 밀고 들어왔다.

“……!”

입이 세 갈래로 찢어지고,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툭 튀어나온 빨간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는 괴물 두 마리였다. 크기는 대형견 정도.

크르…. 그것들이 문을 들이받은 머리를 세차게 털었다. 줄줄 흐르는 침이 여기저기 튄다.

‘왜 저런 것들이 여기에?’

관객들은 너무 놀라 얼어붙었고, 한율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은 채 움직였다. 괴물들의 바로 옆, 어스래빗 멤버들을 보자마자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던 소녀가 마네킹처럼 새하얗게 질린 채 굳었다.

기억이 맞는다면 저 괴물들은, 작고 약한 어린아이와 여성을 주 타깃으로 삼는 흉포한 식인 괴물이었다.

커헝! 괴물들이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도약했다. 세 갈래로 찢어진 주둥이에서 흉흉하게 자란 이빨이 조명에 반짝거렸다.

“꺄아악!”

불과 몇 초 전까지 즐겁게 웃던 팬들은 머리를 감싼 채 비명 혹은 울음을 터뜨리며 몸을 수그렸다.

쐐엑! 서늘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장내에 휘몰아쳤다.

…….

순식간에 찾아온 정적.

…허억, 허억. 괴물에 놀라 눈을 질끈 감았던 소녀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자지러지게 놀라며 옆에 앉은 관객의 무릎 위로 쓰러졌다.

“흐아앙…!”

그제야 다른 관객들도 고개를 들었다가 제 입을 틀어막거나 놀라서 굳었다. 꺄악!

“어, 어떻게…….”

흉포한 기세로 소녀를 덮치던 괴물 두 마리가 서로 뒤엉킨 채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것들을 향해 살며시 손을 뻗은 한 사람.

시린 푸른빛으로 물든 한율의 눈동자가 활짝 열린 문 너머를 노려보았다. 카메라를 들이밀어 찍던 머리통이 도망쳤다.

‘감히.’

한율은 괴물을 가둬둔 바람 장막을 새카맣게 물들였다. 괴물들의 숨이 끊어지는 꼴을 그대로 보여줄 순 없기에.

“정리 부탁드릴게요!”

“어? …야, 서한율!”

한율이 누군가를 쫓아 달려 나가자, 박가람은 당황한 얼굴을 하다가 유호를 돌아보았다. 유호는 오 팀장에게 함께 정리를 부탁한다는 신호를 보내곤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이프림!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쪽으로 오세요! 너무 서두르면 다칠 수 있으니까 천천히!”

뒤늦게 경호원들도 멤버들을 대피시키려 했으나, 멤버들은 고개를 저었다. 놀라서 울거나 비명을 지르며 혼란스러워하는 팬들을 달래며, 무대 옆 비상구로 대피를 유도했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천천히 앞 사람 따라서 나가요.”

“흑, 흐윽…. 건우야….”

“괜찮다니까요. 자, 뚝.”

“많이 놀랐죠, 누나? 미안해요.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무슨 소리야, 이언아! 흐윽, 흑….”

“다치지 않게 조심, 조심. 내 손 잡아요, 누나.”

박가람은 팬들을 등 뒤로 보낸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선 검은색 구체를 노려보았다.

‘떨어지기만 해!’

율톢율톢 머리띠를 한 소녀팬은 울먹거리면서 유호를 잡았다.

“호 오빠, 한율이 오빠는? 한율이 오빠는 어떡해요? 가서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잠깐, 잠깐.”

유호는 당장 한율이 나간 방향으로 가려는 소녀를 붙잡았다.

“한율인 괜찮으니까 다른 분들이랑 같이 피해요. 한율인 내가 찾아볼 테니까. 응?”

그때, 한율이 나간 로비 방향에서 비명이 들렸다.

아악! 잘못했어요, 살려주세… 악!

“후우….”

그 소리를 들은 유호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한율이 원흉을 잡은 것 같았다.

울컥 화도 났다. 오래간만에 팬들을 만나는 소중한 자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대체 어떤 놈들이!’

그 시각, 대형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엔 [어스래빗팬미팅 인터넷방송], [어스래빗팬미팅 괴물], [서한율 각성자]가 상위권에 등극했다.

미국 뉴욕의 게이트 조사위원회 사무실.

타악! 벌떡 일어나는 수잔 리드 뒤로 의자가 쓰러졌다. 그녀는 모니터를 노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서한율, 서한율! 이 앙큼한 남자 같으니! 우릴 감쪽같이 속였어?!”

모니터에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 떠 있었다. 현재 방송은 중단된 상태. 그러나 채팅창엔 소문을 듣고 몰려온 네티즌들이 바글바글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한국에 있는 BJ에게 미션을 주었다. 서한율이 진짜 초능력을 드러내는 순간을 라이브로 방송하는 데 성공하면, 100만 달러를 주겠다고.

BJ는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선금으로 10만 달러를 후원받자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괴물 두 마리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인터넷 방송을 켠 뒤 어스래빗 팬 미팅이 열리는 공연장에다 괴물들을 풀었다. 주로 어린아이, 여성을 잡아먹는 개체였다. 괴물들은 곧장 소녀들이 잔뜩 모인 공연장 문을 부수듯이 열며 뛰어 들어갔다.

결과는 대성공.

서한율이 괴물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모습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뭐? 부채질이 고작이라고? 하!”

크게 웃기는 했으나, 수잔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었다.

‘이건 서한율에게 빚을 지울 기회야. 100만 달러로 이런 정신 나간 테러를 사주한 놈이 누군지,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

* * *

-서한율 대국민 사기극 발각

-고작 병뚜껑 둥둥 띄우는 능력이라며ㅋㅋㅋㅋㅋㅋ

-서한율 능력 숨기고 있었네ㅋ 역시 미스터리 해커 집단답다

-이렇게 시원한 뒤통수는 처음이야ㅎㅎㅎ

-그 잘난 연기력을 이딴 식으로 써먹냐

-존나 멋있다. 여태 숨기던 능력을 팬들 위험해지니까 망설임 없이 바로 썼다는 게

-이게 바로 리얼 힘숨ㅉ.. 아니 찐따는 아니구나 힘숨잘?

-제임스도 처음부터 게이트 막은 능력자라고 안 밝혔음. 그러니까 서한율 능력도 저게 끝이 아닐 수 있음.

-영상 돌려보니까 같은 팀 멤버들도 찐으로 놀란 것 같던데

-짜고 치는 영상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네

-이놈 이거 이탈리아 패션쇼 끝나고 해외로 나돈 것도, 개인 사정으로 부산 콘서트에 제때 안 나타났던 것도 제임스랑 같이 사람들 구하느라 바빠서 그랬던 거였냐? 아주 칭찬한다ㅋ

-한율아 나라가 부른다! 게방부로 가즈아(>́ꇴ<̀)!!!!!!!!

한율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짜증 나네요.”

박가람이 한율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달랬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을 두 마리나 풀었다는 건 테러나 다름없는 행위지. 그래도 다친 사람 없어서 다행이다.”

“이프림 많이 놀랐을 텐데 어떡하냐.”

“내일 부산 팬 미팅은 또 어떡해요? 또 그런 짓 꾸미는 놈들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잖아요.”

“일단 연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대표님.”

한율이 잡은 범인들은 출동한 경찰, 연락을 받고 달려온 게방부 군인들에게 넘겼다. 놈들이 괴물들을 구한 경위에 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까닭이었다. 괴물 사체 두 구도 함께 넘겼다.

팬들은 현장에서 간단히 조사받고 나서 귀가 조처되었다. 어스래빗 멤버들과 관계자들은 경찰서까지 다녀왔다. 경찰은 그들에게 원한 살 만한 일을 하거나, 그런 관계에 놓인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회사로 돌아왔을 땐 완전히 해가 진 뒤였다.

“일단.”

좌기훈 대표가 마른세수하곤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숙소로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다. 그리고 내일 부산 팬 미팅은 연기하자. 그래도 되겠지, 한율아?”

범인들은 100만 달러 미션을 받아 이 일을 꾸몄다고 실토했다. 이 미친 짓을 사주한 놈을 잡아 어떻게 족칠까 궁리하던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멤버들을 돌아보며 사과했다.

“저 때문에 괜히 죄송해요. 지난번 펜션 침입 미수 사건도 그렇고.”

“아니야, 한율이 너도 피해자잖아. 사과하지 마. 나쁜 짓 저지른 놈이 나쁜 거야.”

“그래, 서한율. 제임스처럼 바로 괴물을 잡는 걸 보고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한율아.”

이건우가 한율의 어깨를 감싸듯 잡았다.

“다 괜찮은데, 더 놀라야 할 일이 있다면 지금 미리 말해주라.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지나갔지만 되새길수록 심장이 쿵쿵 뛴다. 형, 보기보다 심약한 거 알지? 지금이라면 네가 제임스만큼 강하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 있다.”

공연장에서는 팬들을 침착하게 달래서 괜찮은 줄 알았더니, 조금 횡설수설한다. 충격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도 오늘은 머릿속이 복잡해서요. 정리되면요.”

“응.”

“…….”

길우성은 팬들이 무사히 귀가 조처된 이후로 말없이 조용했다. 다른 멤버들처럼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풀이 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율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럼 뒷정리는 회사에 맡기고,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팀장님, 애들 저녁 굶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네. 다들 갑시다. 오늘 정말 고생했어요.”

오 팀장은 어스래빗 멤버들을 양평까지 태워다 주려고 했지만, 한율은 숙소로 가는 게 좋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심신이 모두 지친 멤버들에게 양평은 너무 멀었다.

잠시 후, 어스래빗 숙소 앞.

“저녁 사 올 동안 씻고 있어. 피부 상하겠다.”

“네. 운전 조심히 하세요.”

오 팀장과 조유찬은 저녁밥을 사러 떠나고, 멤버들은 터덜터덜 안으로 들어갔다.

유호가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오늘 다들 침착하게 대처 잘했어. 그 미친놈들 때문에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한편으론 너희들이 든든하게 느껴지더라.”

“형도 수고 많았어.”

“응. 리더, 리더였어.”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했다, 길우성.”

툭. 차남석이 길우성의 팔을 가볍게 쳤다. 길우성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럼 모두 방으로 해산. 밥 오기 전에 씻자.”

“OK, OK.”

한율은 이번에도 이쪽으로 시선을 던지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우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 그가 했던 말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하마터면 섭섭할 뻔?』

‘‘친구’로서 서운할 만한 일을 너무 많이 만들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길우성보단 마법 학교 인원을 우선시하긴 했다. 길우성이 궁금하다고 찾아오면 나중으로 어물쩍 넘기기도 여러 번.

이번에도 ‘친구’인 자신에게 진짜 능력을 숨겼다는 사실에 큰 서운함을 느낀 게 아닐까.

한율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네.’

몇 시간 후, 자정이 될 무렵.

한율은 레몬생강차 두 잔을 들고 길우성의 방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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