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4화 (366/427)

지구에게 선택받은 토끼

[서한율, 결계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

[서한율이 만든 결계가 쉽게 통과가 가능하단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서한율의 결계는 몇 시간 동안 수백 마리의 게이트 괴물들을 막을 정도로 아주 견고하다. 그러나 오늘 낮, 결계로 둘러싸인 어스래빗 숙소에서 어스래빗 멤버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차가 아무렇지 않게 빠져나오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영상)

몇 시간 후 해당 차량은 다시 유유히 결계 안으로 들어갔으며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출입할 수 있는 결계면 국가 중요시설 보호에 활용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기대의 뜻을 비쳤다.

한편 서한율은 현재 게이트 방어 지휘부의 일을 돕고 있다고 알려졌으며 소속사인 WB래빗 엔터테인먼트는 불미스러운 사고로 중단되었던 어스래빗 팬 미팅 재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팬 미팅 다시 해요? 와...

-어스래빗 팬들 계 탔네

-이번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팬 미팅 될 듯ㅎㅎ

-서한율 아이돌 안 그만둠?

ㄴ왜 그만둬야 하죠?

ㄴ같은 팀 멤버가 슬쩍 알려줬는데, 서한율도 능력을 사용하려면 휴식이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어차피 이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국이 아니니, 굳이 그만둘 필요까진 없을 것 같네요.

ㄴ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ㄴ진은수도 다음 퍼플아워 컴백 앨범 참여하는데요?

ㄴ힘이 있으면 그에 맞는 의무가 있는데.. 요즘 어린애들은 본인 하고 싶은 일 다 하는 걸 사회보다 우선시하는 이기주의가 문제야.. 힘과 돈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당연한 건데.. 차라리 그 힘 나 주라..

-서한율 능력 정확히 뭐임? 다른 각성자들은 기껏해야 한 가지 능력인데 얘는 바람도 일으키고 결계도 만들고 모습도 바꾸고 완전히 만능 아님?

ㄴ각성자 계의 이레귤러?

ㄴ1130 훨씬 전부터 각성 조짐 보여서 특별한 듯

ㄴ지구에게 선택받은 토끼ㅇㅇ

8월 11일 화요일. WB래빗 엔터테인먼트.

전 원제로의 멤버이자, 현재 SPRabbit의 멤버인 임승준은, 지하 연습실 복도에서 길우성과 마주치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길우성 너 어떻게 여기에 있어? 숙소에서 못 나오는 거 아니었어?”

길우성은 고개를 기울였다.

“이 형님, 기사를 못 봤구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거든?”

“뉴스 보니까 아무도 못 들어가던데, 어떻게?”

“몰라? 서한율이 뭐 어떻게 했겠지.”

임승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야. 서한율이 가진 능력을 이용하면, 최소한 어떻게 작용 되는 건지 정돈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너도 각성자잖아.”

길우성의 어깨가 힘없이 축 처졌다.

“다들 잊은 것 같지만, 각성하지 못한 각성자가 나요….”

“…미안하다. 그나저나 서한율한테 물어봐야 할 거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네가 대신 좀 전해주라.”

“뭔데?”

“얼마 전에 변지욱이 서한율 깜짝 카메라 녹화했거든. 그거 그냥 내보내도 되는지 본인한테 다시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오 팀장님은 진짜로 휴가 가셨잖아.”

“엉. 만나면 물어볼게.”

“회사에도 결계 만들어줄 수 없는지도 물어봐 주면 좋겠지만….”

임승준이 목 뒤를 긁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건 욕심이겠지?”

“아니? 이미 가람이 형이 물어봤고, 써한은 OK 했음.”

임승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엉. 임시로 마련된 연습실보다 여기가 더 친숙하고 편해서 좋잖아. 보컬 연습실이랑 작업실도 있고, 회사랑도 소통하기에 좋고 구내식당도 있…. 돌아와요, 이모님들!”

“그럼 오늘은 여기에서 연습하려고?”

“엉. 오래간만에 너튜브에 올릴 영상도 찍을 겸. 강동구 연습실은 조명이 영 별로라서. 형은?”

“나도 뭐, 오래간만에 회사에 와 보고 싶어서.”

“심심하면 같이 하실?”

길우성의 제안에 임승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콜.”

게이트 사태가 터지기 전 가장 인기 있었던 IOMU의 노래 안무를 연습하고, 커버한 영상을 너튜브에 올렸다. 영상엔 금세 두 사람의 팬들이 몰려와 댓글을 달았다.

“팀장님한테 들었는데.”

임승준이 댓글을 살피며 말했다. 길우성 팬의 댓글은 한국어보단 외국어 비중이 컸다. 임승준은 그와 반대.

“너희 이번 컴백 앨범, 미국 빌보드200 10위 권 안에 들었었다며?”

“후.”

길우성이 이마에 손을 얹고 잘난 척 웃었다.

“겸손하게 살고 싶은데 이 형님이 또 자랑하게 만드시네.”

임승준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정말 아깝더라. 게이트만 안 열렸으면 물살 타고 다음에 더 치고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왜 과거형이지, 형님? 우리 다음 컴백 앨범 땐 더 좋은 성적 낼 거거든?”

“그야….”

전 세계에 게이트가 열린 데다가, 서한율도 계속 어스래빗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 않냐?

이렇게 대답하려던 임승준은, 또랑또랑한 길우성의 눈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래, 다음엔 1위 먹어라.”

“흐. 기대하십쇼.”

“서한율한테 대신 물어봐 주기로 한 것도 잊지 말고.”

“엉.”

그날 밤, 어스래빗 숙소.

한율은 차가 아닌 헬기를 타고 귀가했다. 헬기에서 옥상으로 가볍게 뛰어내리던 순간, 숙소 앞에 바글바글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멍해지는 게 보였으나 못 본 척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차남석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웬 헬기 소리가 엄청나게 가까이에서 들린다 했다.”

“게방부에서 데려다주겠다고 해서요. 차로 오는 것보다 길이 막히지 않아 편하더라고요.”

차남석은 고개를 끄덕이곤, 한율의 팔을 가볍게 툭 쳤다.

“수고했다.”

“이번엔 별일 안 했는데요, 뭘.”

“게이트 방어선 상황은 어때? 뉴스에 나오는 것보다 더 심각하지?”

두 사람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죠. 뉴스는 실제 현장 소리를 잔뜩 죽이고, 냄새는 아예 담지도 못하니까요. 그러니까 형은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차남석이 잔소리가 지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입대 신청하지 말라고? 알았다. 그럼 내일은 뭐 하냐? 또 방어선에 가?”

므아앙. 달냥이 요란하게 울면서 계단을 올라왔다. 한율은 제품으로 폴짝 뛰어드는 달냥을 가볍게 안았다. 골골골. 안기자마자 달냥이 기분 좋은 목울음 소리를 내며 비비적거렸다.

“밥 잘 먹고 잘 놀았어?”

므앙.

한율은 뒤늦게 차남석에게 대답했다.

“내일은 약속도 있고 해서, 외출하는 김에 회사에 들렀다가 오려고요.”

“결계 만들러?”

“네.”

“그럼….”

차남석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잠시 머뭇거리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밥은?”

“아직이요.”

“저녁 대충 차리고 있을 테니까 씻고 와.”

“네.”

다음 날 아침. 어스래빗 숙소 앞에 경찰차 여러 대가 도착했다. 그리고 거리에 모인 사람들이 물러나도록 통제했다. 곧 군용 차량 한 대가 대문 앞에 바짝 붙어서 섰다.

정상욱 중위의 전화를 받은 한율은 현관문을 나섰다. 사다리를 동원해 담 너머를 엿보던 사람들이 외쳤다.

“한율아, 사랑한다!”

“서한율! 서한율!”

“거기! 사다리에서 내려오세요! 위험합니다!”

[한율! 이쪽 좀 봐줘! 너 보려고 호주에서 왔어!]

SNS를 통해 선을 지키라고 경고했는데도 참.

그러나 무질서하고 무례한 팬들을 겪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한율은 이런저런 외침과 요청을 담담한 얼굴로 흘려들으며 차에 탔다.

“태워다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중위님.”

“아닙니다. 한율 씨 차도 본부에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늘 한율 씨가 만나는 사람이 무척이나 신경 쓰여서 말입니다.”

“네.”

한율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현재 그가 만나러 가는 사람은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 소속이자 FBI 요원인 수잔 리드. 그리고 미국 1130 증상자 협회 뉴욕지부의 애니 크루즈였다.

며칠 전, 애니가 메일을 보냈다.

한율이 제임스라고 고백한 인터뷰를 봤다며, 지구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인 그에게 꼭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전에 연락도, 약속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꼭 만나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한율은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수잔 리드도 함께 오는 이상,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만남이 아니므로.

‘거절하면 더 귀찮은 방법으로 접근하고도 남을 나라니.’

그래서 정상욱 중위도 동행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상대가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이라 퍽 불안한 모양이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최고의 각성자를 빼앗길까 봐.

“그런데 애니 크루즈란 여성도 각성자라고 했죠? 어떤 능력인지 들으셨습니까?”

“아니요. 만나서 물어보면 알려주겠죠.”

잠시 후, 한옥의 정취가 느껴지는 조용한 카페.

한율은 먼저 와서 기다리던 애니 크루즈, 수잔 리드와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이에요, 애니. 잘 지냈어요?]

[네, 한율. 여전히 당신을 친구라고 불러도 될까요?]

[물론이죠, 애니. 수잔, 이탈리아에서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 하고 헤어진 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수잔이 얄밉다는 얼굴로 한율을 바라보며 웃었다.

[정말 반가운 거 맞아요, 한율?]

한율도 마주 보며 웃었다.

[이젠 서로의 정체를 알잖아요.]

[…좋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눠보죠. 함께 오신 분은?]

정상욱 중위가 두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 다소 딱딱한 영어였다.

[한국 게이트 방어 지휘부 각성자 부대 소속 중위 정상욱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국 1130 증상자 협회 뉴욕지부의 애니 크루즈입니다.]

[애니와 마찬가지로 1130 증상자 협회 소속이자.]

수잔도 정상욱과 악수하며 한율을 힐끗했다.

[FBI 요원인 ‘각성자’ 수잔 리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오, 두 분 다 각성자시군요.]

뉴욕에선 자신과 만나기 위해 1130 증상자 협회 인물인 척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였나? 루크 네빌에게서 얻었던 명단엔 이름이 없었는데.

한율은 의아했지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 그러려니 넘겼다.

[이만 자리에 앉을까요?]

곧 테이블에 인원수에 맞게 차가 놓였다. 수잔이 핸드백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우선 이것 받아요. 당신에게 주려고 미국에서 챙겨 온 선물이에요.]

[이게 뭔데요?]

[꺼내 봐요.]

봉투엔 누군가의 신상 명세서와 사진, 계나리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복잡한 서류가 담겨 있었다.

[양 로이.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로,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BJ에서 100만 달러를 제시해 당신의 소중한 팬들을 위험에 빠뜨렸던 장본인이에요.]

정상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벌써….”

수잔이 빙긋 웃었다.

[미국의 정보 수집력은 세계 최고랍니다. 어쨌든 다행이네요, 선물을 준비한 보람이 있어서. 솔직히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미스터리 해커보다 늦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했거든요.]

양 로이의 신상을 대강 훑은 한율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지금 이 사람은?]

[지금 내 동료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거예요. 듣자 하니 당신이 제임스란 사실을 알고 꽤 충격받은 모양인 것 같더라고요. 당신을 공격한다는 건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으음….]

한율은 서류를 봉투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면 넘겨주실 의향은 있으신 거죠?]

[당연하죠. 반쪽짜리 선물로 당신을 약 올릴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요. 그리고 이건 미국 게이트 조사위원회에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와 계약 제안서예요. 천천히 읽어보세요.]

계약 제안서?

수잔이 또 다른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편지는 간결했으나, 계약 제안서는 제법 두꺼웠다. 천천히 읽어보려던 한율은 살며시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 다 읽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세 줄 요약 좀 해주시겠어요?]

[한 줄로 요약해드릴게요.]

수잔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한율, 1년에 5조 드릴 테니 미국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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