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이미지 만들기
서울 게이트가 열린 지 어느덧 두 달.
게이트 방어선을 포함, 통제 구역과 인근 지역에선 상당히 많은 부동산이 급매로 나왔다. 그러나 매수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여 가격은 전부 폭락 상태. 더는 서울에선 사람이 살기 힘들다는 부정적인 여론, 이참에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강한 까닭이었다.
한강 건너편 지역 역시 언제 하늘에서 전투 잔해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괴물들이 넘어올 수 있다는 두려움과 소음, 한밤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번쩍거리는 인공조명 탓에 떠난 사람이 많았다. 남은 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서민이 대부분.
“하루에도 정말 전화 수백 통이 옵니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냐고요. 그 집을 팔아도 대출금 절반 겨우 갚을 수 있다면서 하소연하는 분도 많고요. 그나마 이 동네는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게이트랑 조금이나마 떨어진 것도 있지만.”
공인중개사 사무실. 공인중개사가 한율을 보며 미소 지었다. 한율의 부동산 투어엔 길우성과 강보배, 차남석이 동행했다. 가위바위보로 결정된 인원이었다.
“한율 씨와 친구분들이 지내는 곳이니 안전할 거란 기대로 내놨던 집을 도로 취소하는 분, 집을 보러 오는 분들도 간간이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또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율은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그럼 우리 동네엔 나온 매물이 없는 거예요?”
“아니요, 있습니다. 현재 지내시는 곳 근처에, 예전에 큰 회사를 운영했던 사장님이 살았던 주택도 나왔고, 유명 연예인이 살았던 고급빌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방범을 생각하면….”
차칵차칵. 사무실 밖에선 사람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한율을 취재하기 위해 하루 사이 날아온 외신 기자들까지 더해져 바글거렸다. 그러나 경호원들이 지켜주고 있어서 불안함은 덜했다.
“너도 은수 씨 카모플라쥬 능력처럼 비슷한 힘 있지 않냐?”
공인중개사가 추려놓은 집을 둘러보기 위해 차에 탑승. 한율의 옆자리에 앉은 길우성이 안전띠를 매며 물었다. 운전대는 경호원이 잡았다.
“처음 게이트에 결계 쳤을 때 완전히 모습 숨겼었잖아. 그래서 카메라에도 전혀 안 찍혔던 거고.”
한율은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혼자라서 가능했던 거지, 지금은 힘들어.”
“그렇구먼.”
“아.”
강보배가 돌연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은수 씨가 기자나 팬들한테 사진이 거의 안 찍히는 게 그 이유였구나. 능력으로 모습을 가리고 다녀서.”
“그걸 이제야 깨달은 보배 형은 도대체.”
차남석이 차를 두드리는 무례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은수 씨 능력, 정말 부럽다.”
길우성이 동감을 표했다.
“음, 사람들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정말 편할 것 같아.”
“능력이 주인을 맞게 찾아간 거지. 만약에 양심 없는 놈이 그런 능력을 각성했다고 생각해 봐. 온갖 범죄 다 저지르고 다닐 거 아냐. CCTV에도 안 찍히니까.”
“요즘 각성자 범죄 뉴스 보니까 조금 무섭긴 하더라. 피해자들은 거의 눈 뜨고 베이는 수준이던데.”
“예전엔 손에 흉기를 들고 있거나 눈빛이 이상하면 ‘아, 저 새끼 뭔가 위험하다’ 이런 게 느껴져서 피할 수 있었지만, 각성자는 구분이 안 되니까. 또 몇천 명에 한 명꼴이라 모든 사람을 다 경계하는 것도 힘들고.”
“한율아, 전에 너 흉내 냈던 사람은 어떻게 됐어? 그 사람 능력도 악용될 소지가 다분해서 되게 위험해 보이던데.”
“풀려났어요.”
“뭐?!”
모두 놀란 소리를 내며 돌아보았다. 룸미러에 비친 경호원의 눈도 동그랗게 커졌다.
“애초에 오래 잡아둘 명분이 없었거든요. 인권위에서도 죄질보다 너무 부당한 처사를 받고 있다면서 항의했고. 그리고 실질적으로 발생한 피해도 없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래서 각성자 관리과에서 임의로 전자발찌 채우고 내보냈대요.”
“아앗….”
“크.”
한율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덧붙였다.
“앞으로 각성자 범죄자들한테 다 착용시킬 계획이래요. 남석이 형 말처럼 그들을 구분하기 힘드니까, 강력범죄를 저지른 각성자는 바로 얼굴이랑 신상 공개할 수 있도록 법률도 고치고요.”
“성범죄자만 전자발찌를 차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미지가 워낙… 음, 그러니까 차기 싫어서 조심하는 사람도 나오겠다.”
차남석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거 관리할 인력은 되나?”
“엉?”
“각성자잖아. 허튼짓하는 낌새가 보여도, 위험한 놈이면 섣불리 잡기 힘들 거 아니야. 무조건 총 쏠 수도 없을 거고.”
“그렇긴 하겠네….”
우웅.
“……?”
제임스로 사용하던 핸드폰으로 시모나가 메시지를 보냈다. ‘좋은 아침!’ 한 줄 아래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찍은 그녀의 셀카였다.
“와….”
멋대로 한율의 핸드폰을 들여다본 길우성이 감탄사를 흘렸다.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로 한율의 어깨를 툭툭 친다.
“누구냐아? 어? 누구셔? 응?”
“왜 그래?”
“번호 저장된 어떤 외국인 누나가 사진 보냈는데, 진짜 미인이심.”
차남석과 강보배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냐.”
“제임스 일로 아는 사이?”
“네. 이탈리아에서 절 도와주셨던 분이에요.”
한율은 ‘수고하세요.’ 답장을 보내놓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길우성이 김이 샌단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가람이 형이 있어야 함께 취조했을 텐데.”
한편 그 시각, 한율을 영입하기 위해 미국에서 출장 온 수잔 리드는 동료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녀의 동료는 양 로이를 조사 중이었다.
양 로이는 한국인 BJ에게 100만 달러를 제시, 서한율이 진짜 초능력을 드러내는 순간을 라이브로 방송하란 미션을 던졌던 중국계 미국인 사업가였다.
“사람 머리를 헤집고 조종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고요? 서한율이?”
-[서한율과 동종업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렇게 떠드는 ‘카더라’ 글을 봤다고 합니다. 여기에, 별 능력도 없는 한국 아이돌이 제임스의 친구란 이유로 세상의 관심을 받는 게 영 못마땅해서 재미 삼아 미끼를 던져본 거라고요.]
“한심하네요. 고작 질투 때문에 100만 달러를 던져요?”
-[100만 달러 전부 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합니다. 하는 것만 보고 바로 탈퇴할 계획이었다고요. 그리고 괴물을 사용하라고 지시한 적 또한 없다고 합니다. 그 BJ가 과욕으로 벌인 일이라고요.]
동료가 한숨을 내쉰 뒤 물었다.
-[그런데 서한율이 우리 제안을 거절한 게 사실입니까? 여기 아주 난리 났습니다. 그의 도움을 전제로 짰던 플랜이 다 폐기될 것 같다고요. 특히나 방어에 취약한….]
“꼭 필요하면 도와줄 수 있단 여지를 던져준 것도 감지덕지해야죠, 이탈리아처럼.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서한율은… 게이트와 괴물들을 다른 각도에서 조사하는 것 같아요. 실험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뭘 어떤 식으로요?]
“아직은 느낌 단계라서 말하기 어려워요. 일단 본인과 몇 번 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아요.”
-[어설프게 미인계 쓰진 마세요. 역효과예요.]
“…….”
-[아니, 리드 당신이 매력 없다는 말이 아니라… 동양인이잖아요. 추구하는 이성의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서한율과 몇 번 스캔들이 났던 ‘진은수’만 봐도 선배랑은 이미지가 아주 딴판….]
수잔은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뚝 끊었다. 대신 이메일을 보냈다.
[양 로이가 봤다는 그 ‘카더라’ 루머에 대해 조사해주세요. 누가 작성했는지.]
-[넵.]
“사람 머리를 헤집고 조종하는 능력….”
가까이에 있어서 본의 아니게 통화를 들은 김민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국의 각성 범죄자 임시 수용소에, 그런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잡혔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아요.”
“정말요?”
“네. 그래서 임시 수용소를 지키는 군사경찰들이 겁에 잔뜩 질렸단 소문도 들었어요. 쥐도 새도 모르게 조종당해서 동료를 죽이거나, 죽을 수도 있지 않냐고요. 이해원 집에 침입하려다 잡힌 폭발 능력 각성자도 있고.”
“아, 러시아 용병들이 고용했던 그자 말이죠?”
“네.”
수잔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각성자의 범죄는 현재 미국에서도 새롭게 떠오르는 골칫거리라 남 일 같지 않았다.
엠바고가 떨어져 세상엔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의 한 교도소에선 각성 범죄자를 가둔 바로 그날, 교도관과 재소자를 포함한 15명의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상사의 발언이 떠올랐다.
『언젠가 우리의 적은 게이트 괴물들이 아닌, 같은 인간이 될 것 같단 예감이 들어. 아니, 원래 그랬었지. 더 까다로운 인간 형태의 괴물을 상대하게 될 거야.』
수잔은 서한율을 만나면 이 문제에 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핸드폰에다 메모했다.
[사람 머리를 헤집고 조종하는 능력?]
이 문장도 함께.
* * *
늦은 오후.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한율은 좀처럼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했다. 함께 졸졸 따라다니는 기자들과 사생 스토커 군단 때문에 슬슬 짜증이 나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왜 저런 인간들 때문에 주요 감시 대상과 떨어져 지내야 하나.
이런 생각도 점점 커지고.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언제든 편할 때 다시 연락해 주세요.”
공인중개사와 헤어진 후 그들은 WB래빗 엔터로 향했다. 결계는 출입문을 제외한 외관에 몽실몽실 씌워진 형태로, 그 앞엔 한율이나 WB래빗 아이돌 팬뿐만이 아니라 결계 자체를 촬영하거나 구경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엉? 맞은편 편의점, 문 다시 열었네?”
“그러게? 다시 열린 거 보니까 반갑다.”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회사로 들어갔다. 최소 필요한 조명만 켜서 어둑했던 로비는 예전처럼 따뜻한 색감의 조명으로 환했다. 벽걸이 TV에서는 어스래빗의 M/V가 재생되고 있었다.
데스크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휴가 안 가셨어요?”
WB래빗 엔터테인먼트는 공식적으로 8월 15일까지 단체 휴가 기간이었다.
데스크 직원이 미소 지었다.
“누군가는 회사를 지켜야 하잖아요.”
“이럴 줄 알고!”
길우성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방 중 하나를 직원에게 건넸다.
“간식거리를 챙겨왔습죠!”
“감사합니다.”
정적이 흘렀던 지하에서도 음악 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가 복도까지 새어 나왔다. SPRabbit 연습실이 아닌, 남자 연습생들이 사용하는 연습실이었다.
“그럼 전 사무실에서 카메라 받아올게요. 애들 놀라지 않도록 슬쩍 귀띔해주세요.”
“응.”
오늘 회사로 온 이유는 한율의 브이로그를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엔 오 팀장의 조심스러운 제안이 있었다.
『한율이 네 뜻에 따라, 각성했다고 하루아침에 외계인처럼 동떨어진 존재가 된 게 아니라 여전히, 약간 특별한 힘을 지닌 사람이란 걸 보여주는 거지. 덤으로 회사 홍보, 한국 아이돌 홍보도 하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어스래빗 숙소까지 몰려와 한율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각성자인 그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이었다. 그래서 아예 스스로 드러내기로 했다.
“수고해요, 후배님들.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요.”
“네, 감사합니다!”
셀캠을 든 한율은 먼저 지하 연습실을 둘러본 뒤, 계단을 올랐다.
“이제 옥상으로 가서 어제 친 결계가 밤새 안녕했는지 살펴볼 거예요. 회사는 사람들이 수시로 출입해야 하니까 게이트 결계처럼 완전히 차단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좀 느슨하게 만들었거든요.”
세상을 향해 ‘서한율’에 관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만들 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