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제자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구나
-[ACCOM 멤버가 입원한 병원 근처 공원에 있네요. 계속 보고 있다가, 위치 바뀌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고마워요, 나리 씨.”
계나리에게 도움을 청한 유호는, 강보배와 차남석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간다고 알리곤 펜션을 떠났다.
닫히는 대문을 보며 강보배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저러지? 호 형 저렇게 허둥대는 거 오래간만에 봐.”
“글쎄.”
“그나저나 우린 나중에 뭐 타고 가?”
“아버지 차로 가면 돼.”
“그럼 너희 아버지는?”
“어차피 내 돈으로 산 거라 상관없어.”
“아.”
차 주인인 길우성에겐 미안하지만, 유호는 몇 번 과속하며 서울로 달려갔다. 서울시에 진입했을 무렵, 계나리로부터 김형수의 핸드폰이 이동 중이란 메시지가 왔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지도를 따라가 보니 어느새 인적과 차가 뜸해지는 통제 구역 경계에 다다랐다.
‘대체 여기엔 왜?’
김형수가 멈춘 곳은 가까운 곳에 자리한 고층 아파트.
차에서 내린 유호는 단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김형수를 찾았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설마.’
온갖 부정적인 생각은 그를 옥상으로 이끌었다.
옥상 문을 열자마자 이상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미간을 구기며 주변을 살펴보니 바닥에 검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하늘 높은 곳에서 격추당해 떨어진 괴물의 흔적일까.
유호는 다시 계나리가 보낸 지도를 확인 후 소리높여 외쳤다.
“김형수! 야, 김형수! 너 여기에 있어?!”
그때였다.
“…유호?”
옥상 구조물 뒤쪽에서 김형수가 나왔다. 한 손엔 낡은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딛고 올라서면 옥상 난간을 쉽게 넘을 수 있을 법한 크기였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
유호는 주먹을 콱 움켜쥐면서 성큼성큼 다가갔다.
“너 왜 전화 안 받아.”
“아…. 생각하는 데에 방해받기 싫어서 무음으로 해뒀어.”
“그 의자는 뭔데, 새끼야!”
“아니, 왜 욕을 하고 그래….”
며칠 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김형수는 지난번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생각하기도 싫은 그런 결심을 하고선 여기에 온 것 같지 않은 벙벙한 얼굴이었다.
“민솔이가 걱정된다면서 전화했어! 너한테까지 안 좋은 일 생기면 어떡하냐고!”
“아….”
김형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하지만 너희들이 걱정하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한 적 없어, 안심해. 나는 그냥….”
김형수가 고개를 돌렸다. 통제 구역 너머, 게이트 방어선 상공에 뜬 게이트를 바라본다.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게이트를 보고 싶어서. 의자는 저기에 있길래 편히 앉으려고 가져온 거고.”
“게이트는 왜.”
“민솔이한테 들었지? 우리 팀 멤버 중 한 명,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고.”
“…어.”
유호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주먹이 힘없이 풀렸다.
“상태, 많이 안 좋아? 대체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잘 모르겠어.”
툭. 김형수가 의자를 내려놓으며 재차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아니, 걔가 요즘 많이 우울해한 건 사실이야. 게이트 때문에 데뷔 4년 만에 처음으로 잡힌 아시아 투어가 취소됐거든. 다른 스케줄도 줄줄이 취소되고, 다음 앨범 작업도 중단되고…. 투어 다녀오면 정산금 지급하겠다던 대표님까지 연락 두절 됐고.”
“너 지난번에 만났을 때 정산금 얘긴 안 했잖아.”
“유호구 네가 도와주려고 할 거 뻔히 아는데 그걸 어떻게 말하냐? 아무튼… 이제 막 빛 본다고 좋아했는데 하루아침에 매일 숙소에 틀어박히게 되고, 나중엔 통제 구역에 포함됐으니 나가라고 해서 각자 집이나 친척, 지인 집으로 흩어졌거든. 그래도 명색이 아이돌인데 대피소로 갈 순 없지 않겠냐고.”
큰 한숨. 김형수가 말을 이었다.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는 연락받고 병원에 가니까, 걔네 동생이 울면서 그러더라. 매일 죽고 싶다고 우울해하더니 스스로 차도에 뛰어든 것 같다고. 하지만 난 안 믿으려고. 본인한테서 직접 듣기 전까진 못 믿어. 그걸 어떻게 믿어? 너라면 믿을 수 있겠어?”
유호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못 믿지.”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쨌든 모든 원흉이 저거잖아.”
게이트를 노려보는 김형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설마… 입대하려고?”
“이미 우리 팀은 재기하기 힘들어. 대표도 잠적했는데 어떡하냐, 돈도 없는데. 그리고 나 원래라면 입대하고도 남았을 나이잖아.”
“하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김형수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솔직히 군대 가는 거 무서워. 그런데 저 빌어먹을 게이트에 대한 미움이 더 커서 못 견디겠어. 이래 봬도 몇 날 며칠 고민한 거고, 오늘은 입대 전에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조용히 생각 정리하고 싶어서, 그리고 결심이 흔들리지 않게 게이트랑 가까운 곳을 골라서 온 거야.”
“…….”
“걱정하지 마.”
툭. 김형수가 유호의 팔을 가볍게 쳤다.
“나 아스대 씨름에서 건우 이겼던 거 기억 안 나냐?”
“…야.”
유호는 걱정으로 굳어지려는 얼굴을 애써 풀었다. 김형수의 무거운 결심과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읽었다. 말리는 건 오히려 그를 맥 빠지게 할 터다.
“그거 건우가 일부러 져준 거거든? 아무튼 민솔이한테나 전화해. 걱정하게 만든 벌로 욕먹을 각오도 하고.”
김형수가 씩 웃었다.
“알았어.”
유호는 김형수가 정민솔과 통화하는 동안, 옥상에 굴러다니던 의자 하나를 더 찾아왔다. 나란히 앉아 게이트를 노려보며,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
몇 시간 동안 이탈리아어 기초 회화책을 들여다보던 박가람이 뭔가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서한율아.”
“네.”
“시모나 님이 계시는데 이걸 꼭 공부해야 하는 걸까? 너도 안 하는데?”
“가면 형한테 여러 가지 심부름도 시킬 거라서요. 가서 국제 미아 되고 싶으세요?”
“애제자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구나….”
팬들이 봤다면 귀엽다고 떠들 법한 시무룩한 표정. 본인도 그걸 참 잘 알고 있어, 바로 핸드폰을 들어 셀카를 찍는다.
찰칵.
“표정 예술이다. 나 다시 연기해도 될 것 같지 않냐?”
“그러기엔 대사 전달력이.”
“냉정한 비평 멈춰.”
사실 한율은 박가람을 이탈리아로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생 차별 반대’로 도배되는 일대일 초코톡, 지나갈 때마다 속삭이는 그 말에 질려서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어쩌면 이번 여정으로 여러모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충격적이거나 냉정하고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을 겪게 될 가능성도 크지만, 이젠 어린아이가 아니니 말이다.
인천에서 출발한 지 약 20시간. 세 사람은 로마에 도착했다. 본래 로마까진 직항으로 14시간 정도가 소요되지만, 하늘에 생긴 게이트나 날아다니는 괴물들 탓에 시간이 더 걸렸다.
로마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나폴리로 이동, 그곳에서 차를 타고 오랫동안 달려 한 가파른 산 초입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장시간 이동하는 동안 수척해진 박가람이 기대의 목소리를 냈다. 한율은 웃으면서 대기 중인 헬기를 가리켰다.
“하나 더 남았어요.”
“으하하. 어쩐지 게이트가 안 보이더라.”
“헬기로 산장까지 이동할 거예요.”
시모나가 멀리 보이는 작은 호텔을 가리켰다.
“전 저기에서 지내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전화하세요.”
“넵,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요, 시모나. 나중에 봐요.”
시모나와 인사를 나눈 뒤 두 사람은 헬기에 탑승했다. 박가람은 헬기에 타는 게 처음이라며 잔뜩 흥분한 채 내부를 구경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 나 고소공포증 있는데?!”
“재워드릴까요?”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은데…?!”
결국 박가람은 헬기가 뜨자마자, 두 눈을 질끈 감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반야심경이었다.
한율이 지내던 산장은 깨끗하게 청소되고, 식량과 물품도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제임스’가 한국인이란 사실이 드러나서 그런지, 한국의 즉석밥과 라면을 비롯한 간편식, 과자도 잔뜩 쌓였다.
“와…. 여기 되게 운치 있다. 벽난로도 있네? 내내 여기에서 혼자 지냈던 거야?”
“네. 하지만 관리인이랑 시모나가 자주 왔었어요. 어차피 여기에선 거의 잠만 자고, 대부분 시간은 게이트랑 가까운 정상에서 보냈거든요.”
“정상….”
중얼거리는 박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후회돼요?”
“아? 아니? 이… 런 위기도 극복해야지. 우리가 배우는 게 바로 바ㄹ….”
“아!”
“엉?”
한율은 무언가 생각난 듯 큰소리로 박가람의 말을 막았다. 그러곤 핸드폰 메모 앱에다 빠르게 작성했다.
[도청기랑 카메라 설치되어 있을 거예요.]
박가람의 눈이 커졌다.
“……!”
“멤버들한테 도착했다고 전화해야죠. 그리고 오늘은 아주 피곤할 테니 일단 푹 쉬기로 해요. 방은 저기 빼고 아무 데나 사용하고.”
박가람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음 날. 한율은 박가람과 함께 정상을 향해 올랐다. 초입부터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 터라 등산로엔 아무도 없었다. 박가람은 최대한 아래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열심히 따라왔다. 한율의 가방에 달린 끈을 꽉 붙잡고서.
“저게… 게이트야?”
“네.”
게이트는 정상에서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허공에 떠 있었다. 한율이 쳐놓은 결계에 갇힌 괴물들이 그 안에서 꿈지럭거린다.
박가람은 잠시 까마득한 산 아래 광경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서울에 뜬 것보다 훨씬 작네….”
“일부러 작은 게이트를 골랐어요. 그래야 실험하기에 좋으니까.”
사아. 한율은 또 다른 거대한 결계를 만들었다. 외부에서 안을 전혀 들여다볼 수 없도록, 행여 박가람이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들었어. 게이트 괴물들의 생명력으로 결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거부감 들진 않았어요? 그래도 생명체잖아요.”
“…….”
박가람이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결계에 오랫동안 갇힌 채 다른 개체와 뒤섞여 처박힌 괴물들의 눈은 힘들어 보였다. 그 안에서 서로 잡아먹는 행위도 벌어졌던 건지, 참혹한 사체 찌꺼기도 범벅되었다.
박가람은 힘없이 내린 고개를 저었다.
“저놈들이 우리 세상을 멋대로 침범한 거잖아. 우리는, 우리가 살기 위해 저 녀석들을 배제해야 하는 거고.”
“저놈들도 본래 살던 세상에서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일지도 모르는데요?”
“피해자인 우리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공격하는 침략자들의 사정을 이해해줘야 할까? 대화도 안 통하는 괴물들인데?”
반박하곤 있지만, 박가람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무조건 해치워야 하는 나쁜 괴물이 아니라, 저 괴물들 역시 고통을 느끼는 살아있는 생명이라 인지하고 있었다.
한율도 고개를 들어 게이트 괴물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저것들이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다면요?”
“어?”
게이트 사태를 겪으며 한율은 한 가지 깨달았다.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이 마치, 자신의 본래 세상으로 쳐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지구인들과 퍽 닮았다고.
아니, 대화가 가능한 지구인들이 오히려 더 잔혹했다.
한율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에요. 그럼 우선 실험 중인 마법부터 보여드릴게요.”
잠시 후.
괴물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재로 변하는 모습을 생생히 본 박가람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율은 꾹꾹 참는 듯한 그의 미약한 울먹거림을 모른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