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3화 (375/427)

무임 승선은 나쁜 짓이야

한율은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종종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나중에 편집해서 너튜브에 올릴 용도로, 주로 일상적인 영상을 촬영했다. 가끔 도움 요청을 받고 출동, 괴물을 잡는 모습도.

시간은 흘러 8월 30일. 한율의 생일이 다가왔다.

한율, 박가람을 제외한 어스래빗 멤버들은 그린라이브에서 [서한율 없는 서한율 생일파티] 라이브 방송을 짧게 진행했다. 준비한 생일 선물을 보여주고 생일 축하 메시지를 읽었다.

[생일 축하한다, 한율아!]

[그럼 이프림, 곧 너튜브에서 이어질 한율이랑 가람이의 라이브 방송을!]

[기다려주세요!]

해당 라방을 본 한율과 박가람은 슬슬 너튜브 라이브를 준비했다. 테이블에는 온갖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가득했다. 가운데에 놓인 예쁜 케이크에는 숫자 22 모양으로 된 초와 태극기, 이탈리아 국기와 어스래빗 로고 장식이 꽂혔다.

박가람이 노트북을 만지작거렸다.

“방송 5분 후 시작으로 걸어둔다? 그동안 멤버들 선물에 관한 코멘트 준비하고 있어.”

“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산장이 아닌, 로마 외곽에 있는 한 호텔 객실. 오늘 이탈리아를 떠나 마요르카로 갈 예정이었다.

“와… 대기하는 시청자 수 어마어마하당.”

“형은 정말 거기에 앉을 거예요? 카메라에 안 잡히잖아요.”

박가람은 나름 준비한 대본과 핸드폰을 들고 테이블 끝에 앉았다. 그의 이마엔 커다란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다. 보호 마법 수련 중에 생긴 상처였다.

“인사할 때만 잠깐씩 나갈게. 오늘의 주인공은 너잖아요.”

라이브 방송 시작.

“안녕하십니까! 어스!”

빼꼼. 박가람이 옆에서 얼굴과 두 손을 내밀며 함께 외쳤다.

“래빗!”

“…의 서한율!”

“박가람입니다! 안녕하세요오!”

쏙. 박가람이 다시 들어갔다.

“조금 전에 한국에 있는 멤버들이 ‘서한율 없는 서한율 생일파티’ 하는 걸 봤는데요. 음…. 참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음식으론 우리가 이겼습니다.”

“대결이었나요, 한율 씨?”

“그쪽 케이크엔 태극기가 없었어요.”

한율은 케이크가 카메라에 잘 찍히도록 살며시 들어서 자랑했다.

“이탈리아 게이트 대책위원회의… 이름 밝혀도 되나요?”

카메라 너머. 각성자가 아닌 아이돌로서의 한율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시모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당연히. 오히려 기뻐하지 않을까요?”

“네. 이탈리아 게이트 대책위원회의 안토니오 소령님께서 보내주신 생일 케이크입니다. 예쁘죠? 여기 우리나라 태극기랑….”

-[한율, 영락없는 평범하고 잘생긴 소년인데 이런 소년이 그 엄청난 활약을 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 사랑한다♡♡♡♡♡]

-[디저트는 프랑스가 최고입니다! 한율 당신에겐 평생 무상 제공할 수 있으니 언제든 오세요!]

-[제임스 한율♡♡♡♡♡생일 축하해♡♡♡♡♡]

-한국엔 언제 와ㅠㅠ

-[아까 가람 이마에 상처 뭔가요??? :'(]

-[이거 정말 라이브????]

-[이럴 수가! 지금 한율 이탈리아에 있나요?]

-가람이가 만들어준 미역국ㅎㅎㅎㅎㅎ 과연 맛은?

-[프랑스 디저트가 맛있긴 하지! 하지만 한율은 지금 이탈리아에 있다! XD]

한율은 조금 전 어스래빗 라방에서 본 선물에 대한 감상, 그리고 근황을 소소하게 들려주었다. 어제, 박가람이 미역국 재료를 사러 나갔다가 미아가 돼서 직접 찾으러 나섰던 일도.

“어쨌든 형 덕분에 외롭지 않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형.”

“그런 말은 카메라가 없을 때 해주면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요, 한율 씨.”

“형 생색내는 거 좋아하잖아요.”

“들었죠, 이프림? 저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고 합니당! 꺄하항!”

괴상한 웃음을 터뜨리는 박가람의 이상한 얼굴에, 한율도 저도 모르게 웃었다.

“아, 지금 가람이 형 얼굴을 이프림이 봤어야 하는데.”

“못생겼다고 흐즈므르.”

“할 건데요.”

“꺄하항!”

-[한율, 네가 웃으니 우리도 행복해♡♡♡]

-[뭐야, 나도 보여줘!]

-[세계 최고의 각성자. 그러나 그 자리는 얼마나 외롭고 무거울까요. 그 곁에 웃음 짓게 하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

-[가람, 고마워♡♡♡♡♡]

40여 분 정도의 라방을 끝낸 뒤, 남은 음식은 전부 망가지지 않도록 포장하고 주변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두 사람은 시모나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연락하면 꼭 받아요, 한율. 가람도.”

“네. 잘 지내요, 시모나.”

“그동안 고마웠어요.”

“…한율.”

잠시 머뭇거리던 시모나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건 내가 따로 준비한 선물. 나중에 풀어봐요. 생일 축하해요, 한율.”

쪽. 한율의 뺨에 키스한 뒤 한 걸음 물러나는 시모나. 아쉬움 가득한 그녀의 눈은 눈물로 촉촉했다.

한율은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시모나. 다음에 또 만나요.”

두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준비해준 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공항에서 보안 절차상 얼굴을 드러낼 때마다 소란스러워졌으나, 이탈리아 경호원들의 철통같은 경호 덕에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마요르카까지 어떻게 가? 비행기랑 배 예약 전혀 안 했잖아.”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이탈리아 경호원들과 작별 후, 한율은 자신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눈을 피해 생판 다른 얼굴로 변했다. 박가람도 옷과 모자, 선글라스를 바꿔서 꼈다.

“로마에서야 이탈리아 측이 신경 써줘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이 상황에서 팔마행 표를 끊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람들이 팔마 공항에 진 치고 기다리겠지?”

“네. 그래서 우리는 몰래 입도할 거예요.”

“어떻게?”

한율은 태연하게 하늘을 가리켰다.

“날아서요.”

박가람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차라리 날 죽여라, 이놈아!”

한국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눈을 번쩍이며 돌아보았다. 한율은 박가람과 어깨동무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내 날아서 가는 게 아니라, 거기로 가는 배에만 살포시 내려앉을 거예요.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무임 승선은 나쁜 짓인데….”

눈치를 보며 중얼거리던 박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두 사람이 마요르카행 배에 무임 승차할 무렵, 한국.

WB래빗 엔터의 좌기훈 대표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몇 시간 전, 그는 어스래빗의 라방 두 개를 다 챙겨본 뒤 기분 좋게 잠들었었다. 그러나 조금 전, 서늘한 바람 냄새에 눈을 떴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는 충격을 받았다.

복면을 쓴 괴한이 침대 옆에서 그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괴한은 놀라 소리 지르려던 그의 입을 틀어막고선 옆을 힐끗했다. 아내가 있는 방향이었다. 소란을 피우면 아내를 해코지하겠다는 뜻. 좌 대표는 얌전히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괴한은 그를 앞장세워 거실로 내보냈다. 거실엔 또 다른 괴한 넷이 아이들 방 앞에 서 있었다. 가족 모두가 인질로 잡힌 셈이었다.

좌 대표는 그대로 둘에게 잡혀 옥상으로 끌려갔다. 그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옥상에도 그들과 동료로 보이는 괴한 두 명이 더 있었다. 이 정도면 범죄조직 수준이었다.

“대, 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돈입니까?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릴 테니 부디 우리 가족만 건들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돈이요?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시시한 게 아니에요, 아저씨.”

“그럼….”

여자 괴한이 좌 대표의 옆에 앉아 속닥거렸다.

“서한율이 아저씨네 회사 소속이잖아요. 그럼 뭐든 다 알고 있겠네요? 그렇죠?”

“네…?”

복면 사이로 드러난 여자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서한율에 대한 정보 모조리 내놔요, 아저씨. 가족들 다치는 꼴 보기 싫으면.”

다른 남자 괴한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우리, 쥐도 새도 모르게 아저씨 집에 침입한 거 봤지? 경찰에 신고하거나 서한율한테 고자질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해라, 이 나쁜 새끼들아.

좌 대표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입 다물고 조용히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자료가 회사에 있어서….”

“수 쓰지 마세요, 아저씨. 연예기획사, 뒤에서 소속 연예인 뒷조사 기본으로 하잖아요. 나중에 협박용으로 쓰려고 기자들한테서도 사진 사기도 하고. 집에 백업 자료가 없을 리 없잖아.”

좌 대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없습니다! 한율이가 얼마나 성실하고 바른 아이인데, 그런 게 있을 리가….”

남자가 좌 대표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컥!”

“세 시간 줄게, 아저씨. 당장 회사로 튀어가서 모든 자료 싹싹 긁어서 와. 그 이상 지체되면 아저씨네 가족 모두 무사하지 못할 거야.”

좌 대표는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앞으로 두 시간 30분…!’

좌 대표는 급히 차를 몰아 회사에 도착했다. 차에는 괴한 두 명이 함께 타서 그를 감시했다. 그러나 회사 CCTV를 방범 업체와 경비원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으며, 늘 직원이나 연습생, 소속 아이돌이 있다는 말을 듣곤 안까지 따라오진 않았다.

‘어떡해서든 한율이한테 알리고 신고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놈들은 영악하게도 그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 수상한 침묵이나 기척, 소리가 들리면 즉각 가족을 해하겠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응? 대표님, 이 시간에 회사엔 어쩐 일이세요?”

대표실이 있는 3층에 다다랐는데, 같은 층에 있는 작업실에서 유호가 나왔다. 좌 대표는 수상하게 보이진 않을까, 최대한 평소처럼 인사했다.

“어, 어어, 호야. 아직 퇴근 안 했어?”

“이제 막 들어가려고요. 대표님은요?”

“나는 사무실에 뭐 좀 두고 온 게 있어서 그것 좀 가지러.”

“이 새벽에요?”

유호가 의아한 얼굴로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3시가 지나고 있었다.

“내일… 아니, 오늘 아침 일찍 어디로 가야 할 일이 있는데 그때 꼭 들고 가야 하거든. 회사에 들렀다가 가려면 동선이 꼬여서, 마침 잠도 깬 겸에.”

“네….”

누가 봐도 궁색한 변명이었고, 유호는 수상쩍다는 눈으로 좌 대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호는 왠지 이 이상 추궁해선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그래. 오늘도 수고 많았다, 호야. 라방 잘 봤어.”

좌 대표는 허둥지둥 대표실로 들어갔다.

쿵. 닫히는 문을 보는 유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수상한데. 대표님이 양말 없이 신발을 신고 왔다고? 아저씨 냄새가 나진 않을까, 특히 발 냄새에 신경 쓰시는 분이?’

유호는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계나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나리 씨.”

-[아니에요. 열심히 율이 오빠 추적 놀이 중이었거든요. 율이 오빠랑 가람 씨, 마요르카로 가는 여객선에 무임 승차했대요. 히힛.]

“그런 나쁜 짓을. 나중에 혼내야겠네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전화한 거 보면 굉장히 급한 일 같은데.]

“그게….”

잠시 후.

‘앞으로 한 시간 20분! 괜찮아, 시간 많이 남았어.’

결국 좌 대표는 서한율에게도, 외부에도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USB와 서류 바인더, 노트북을 끌어안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그러나 걱정되는 건, 그들이 원하는 정보가 없다면서 약속을 깨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정말로 서한율은 깨끗한 아이돌이었으므로 자극적인 문제나 비밀 따윈 전혀 없었다. 모 아이돌처럼 사생활이 문란한 것도 아니고, 스태프에게 갑질은커녕 예의 바른 모범생으로 불렸다.

‘그런 착한 아이의 정보를….’

서한율을 배신하는 것 같은 미안함에 울컥 눈물이 나오고 걸음이 무거워졌다.

‘한율이라면 지금의 내 행동을 이해해주겠지.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일이 또 생기면?’

“대표님.”

“……?!”

좌 대표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조금 전 퇴근한다고 했던 유호가 서 있었다.

좌 대표는 황급히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어, 어, 호야. 아직 안 갔니?”

유호가 좌 대표를 향해 살며시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대표님. 가족분들 다 무사하세요.”

“뭐…? 그게 무슨….”

덜컹.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누군가가 성큼성큼 다가와 좌 대표의 차 문을 활짝 열었다. 그 안엔 아무도 없었다.

“어떻…. 어…?”

문을 열고 돌아서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각성자 부대 소속이자 전 아이돌이었던 이해원이었다.

“호 형의 신고를 받고 대표님 댁을 조용히 방문해봤습니다. 그곳에서 가족분들을 감금하고 있던 놈들, 옥상에 있던 놈들을 모두 잡아 범행을 자백받았고, 여기에 있던 두 놈 또한 체포했습니다.”

말을 마친 이해원이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좌 대표는 그제야 또 다른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기 걸그룹 퍼플아워의 진은수가 꾸벅 인사했다. 민낯을 보이기가 쑥스러운지 긴 머리카락으로 살며시 두 뺨을 가린다.

“혹시 댁이랑 아파트에 그 나쁜 놈들의 동료가 더 없는지 각성자 판별 능력자도 동행해서 살펴봤는데, 없더라고요. 그러니 이제 안심하셔도 될 것 같아요.”

서한율처럼 바람 계열 능력 각성자로 알려진 이해원과 카모플라쥬 능력 각성자 진은수. 두 사람이기에 괴한들에게 들키지 않고 집안으로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털썩. 좌 대표는 손에 든 것들을 모두 떨어뜨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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