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들이 꼭 매를 들게 만들어
-[파파라치가 네 영상을 팔아서 떼돈 벌었단 소리를 듣고, 각성자 친구 내세워서 범죄를 계획한 거라고 자백했대. 소속사 대표라면 남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네 사적인 정보를 많이 쥐고 있을 거로 생각한 거지.]
“대표님이랑 가족분들은 무사하세요?”
-[많이 놀라시긴 하셨지만 무사해. 대표님이 놈들한테 폭행당해서 멍이 들긴 했는데… 그것보다 정신적 충격을 많이 받으신 것 같다.]
유호가 천천히 한숨 쉬었다.
-[네 정보를 넘길 뻔했다는 생각에 너한테도 굉장히 미안해하시는 것 같더라.]
“네. 지금 연락해봐도 될까요?”
-[응. 지금쯤이면 댁에 들어가셨을 거야. 그리고 당분간 각성자 관리과에서 신변을 보호하기로 했으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리고 무임 승선은 나쁜 짓이야, 한율아. 가람이도 듣고 있지?]
“네, 잘못했어요.”
옆에서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듣던 박가람도 외쳤다.
“잘못했습니다!”
-[사과는 해당 여객선에다 하고. 그럼 나중에 또 통화하자.]
“네. 수고했어요, 형.”
통화를 끝낸 한율은 곧바로 좌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좌 대표는 받자마자 면목 없다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하마터면 한율의 중요한 개인 정보를 포함, 입사 당시 촬영한 오디션 영상부터 모두 넘길 뻔했다고.
약간 횡설수설하는 걸로 보아, 정말 적잖은 충격은 받은 모양이었다.
“대표님과 대표님 가족분들이 무사하면 됐어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저였어도 대표님이랑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정말 미안하다…. 하마터면 내가 한율이 네 발목을 잡을 뻔한 거잖니.]
“어차피 제 개인 정보야 사생들 때문에 공공재처럼 나돌아다닌 지 오랜데요, 뭘. 그리고 오디션 영상이야….”
한율은 가볍게 웃으며 농담했다.
“그게 지금 제 발목을 잡을 정도로… 음, 엉망이긴 했죠?”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저는 정말 괜찮아요. 한 가지, 이번 사건을 공론화했으면 좋겠는데.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
좌 대표와의 긴 통화를 마친 한율은 한숨을 내쉬었다.
“좀 짜증 나네요. 선 넘지 말라고 확실히 말로 해야 알아들으려나?”
그동안 한율의 마요르카 집을 청소하던 박가람이 걸레를 들고 다가왔다.
“쯧쯧. 멍청이들이 꼭 매를 들게 만들지. 아, 옆에 있었으면 이걸로.”
박가람이 걸레를 전투적으로 흔들었다.
“뺨따귀를 슉슉 때려버리는 건데!”
“먼지 날려요, 형. 그리고 내일 바로 떠날 거라 청소 열심히 안 해도 되는데.”
“그런 건 빨리 말해야지! 슉슉!”
“…….”
* * *
대형 포털사이트 메인.
[“충격” 서한율 정보 내놔… 소속사 대표 가족 인질 잡고 협박]
-ㅅ1ㅂ것들이 서한율 수틀리면 지구 멸망하는 거 모르냐 머가리는 몸 무게 중심 잡는 데에만 쓰냐 이 욕도 아까운 핵폐기물 같은 ㅅㄲ들아!!!!!!
ㄴ욕했쥬?
-좌기훈 선생님 평소 소속 아이돌 엄청나게 아낀다고 소문난 좋은 분이신데, 이 일로 크게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ㄴ좌기훈? 가수 좌기훈?
ㄴ네. 그분이 서한율 소속사 대표님이세요ㅇㅇ
-강력 법적 대응이 취미인 소속사+대한민국 멸망 루트 쌉가능 최강의 각성자를 건드리네ㅋㅋㅋㅋ
-10대에서 20대로 구성된 범죄조직ㅋ 조직이 아니라 가출팸 진화 형태 아님?
-미친 것들아, 선 넘지 말라고 했잖아.
-신상 공개하세요. 요즘처럼 흉악 범죄가 증가하는 위험한 세상에 10대라고 봐주면 됩니까? 오히려 경각심을 주기 위해 더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합니다.
ㄴ인권위에서 또 안 된다고 거품 물걸요? 전에 어스래빗 팬 미팅에 괴물 풀었던 BJ 일당 이름도 풀지 말라고 난리 쳤어요. BJ라서 죄다 누군지 다 아는데도
-유호가 중간에 수상한 거 눈치채고 각성자 부대에 신고한 게 신의 한 수였네요ㅠㅠ
-범죄 저지르는 각성자 따로, 저런 놈들 잡으러 다니는 각성자 따로ㅋ 한심하다ㅉㅉ
-각성자 국가 관리는 옳은 정책이었다.
-서한율 개빡쳤겠다. 당분간 한국 떠나는 게 좋을 듯
ㄴ어차피 서한율 지금 한국에 없음.
서울의 어스래빗 숙소.
길우성이 씩씩거리며 1층 거실로 내려왔다.
“개빡친다. 감히 우리 대표님을 건드려?”
“일어났냐? 밥 먹어라.”
“지금 밥이 목에 넘어가게 생겼어, 남석 씨?”
“먹어야 싸울 힘도 날 거 아냐.”
“알았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제 몫의 설거지를 마친 이건우가 손을 탁탁 털었다.
“그 새끼들, 각성자 관리과에서 조사 중이랬나?”
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범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각성자가 열여섯 살 미성년자래. 형이랑 누나들이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범행에 가담했다고, 본인도 피해자라고 우겨서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더라.”
“듣기만 해도 화나네.”
“거짓말 판독 능력 각성자는 없나?”
“해외엔 눈 마주치면 진실만 술술 털어놓게 최면 거는 각성자가 있다던데.”
“최면으로 얻은 진술은 법적 증거 효력이 없어.”
“남석이 똑똑하다.”
감탄하는 강보배 옆에서 라이언이 코웃음 쳤다.
“드라마에서 주워들었겠지.”
“너 내가 만든 거 먹지 마, 새꺄.”
“싫은데? 먹을 건데? 치사하게 먹는 것 갖고 난리야!”
“조용, 조용!”
탁탁. 유호가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지난번 우리 팬 미팅 사건, 부산 호텔 변태 파파라치 사건, 그리고 이번 대표님 협박 사건까지. 모두 한율이랑 회사가 강하게 대응하기로 방침 정했다니까, 다들 말 아껴. 알았지?”
“네에.”
므앙?
“달냥인 마음껏 떠들어도 돼.”
므앙.
TV에선 온종일 새벽에 벌어진 ‘서한율 소속사 대표 협박 사건’이 흘러나왔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정치인들은 이번 사건을 언급, 각성자 범죄 사례를 열거하면서 더욱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떠들었다. 뉴스에서는 서한율 개인을 향한 광적인 집착과 범죄 행위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그를 비롯해 인기 많은 각성자가 당하는 스토킹 피해 사례를 되짚었다.
게방부의 각성자 관리과는 흐름을 타, 인권 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쉬쉬했던 정책을 과감히 공식 발표했다.
[게이트 방어 지휘부, “범죄 저지른 각성자 전원 전자발찌 부착”]
외신들도 앞다퉈 서한율을 둘러싸고 벌어진 범죄에 대해 떠들었다. 옛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스타들이 당했던 심각하고 끔찍한 스토킹 범죄, 파파라치에 의한 범죄를 떠들면서 자중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가 모든 활동을 그만두길 바랍니까? 당신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모두를 향한 테러입니다.]
한국 시각으로 밤 9시 정각.
한율은 너튜브 라이브 방송을 켰다. 바로 어제 생일 라방을 했을 때와 180도 다른, 무뚝뚝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안녕하세요, 서한율입니다. 하루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렇죠?”
뒤늦게 입가를 올렸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립니다. 저와 제 주변을 향한 범죄 행위. 절대 선처 없이 엄한 처벌 받게끔 노력할 겁니다. 저는 아량 넓고 선한 영웅이 아닙니다. 좋아해서 그랬다, 알고 싶어서, 다가가고 싶어서 그랬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웠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호감 따위 사양하겠습니다. 경고합니다.”
카메라에 비친 한율의 눈이 서늘한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선 넘지 마세요. 후회하기 싫으면.”
한율은 일본어, 영어, 독일어로도 차분히 말한 뒤 잠시 생각에 잠기는 척하다가 눈웃음쳤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이프림, 대다수의 선량한 분들은 안 그럴 거라 믿어요. 그럼 다들 잘 자요.”
한율의 라방은 끝나자마자 기사화되어 포털사이트 메인에 도배되었다.
[분노한 서한율, 진심 어린 경고 “절대 선처 없이 엄벌”]
[“선 넘지 마세요” 서한율, 푸른 눈 빛내며 살벌한 경고]
[서한율, “나와 내 주변 향한 범죄, 절대 선처 없어”]
-내가 이번에 개빡쳤을 거라고 했잖아ㄷㄷㄷ
-해외 언론사에 올라갔던 호텔 동영상 기사 삭제된 거 보면 파파라치 각성자 추적 중이거나 이미 잡았을 듯
-조심하세요! 분노한 토끼는 지구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나만 4개 국어 하는 모습에 치인 건가ㅠㅠ 너무 멋있어ㅠㅠ ㅈㄴ 섹시해ㅠㅠ
-민낯인데도 어떻게 피부가
-그는 지구의 사랑을 받는 이가 틀림없다. 능력을 사용할 때 변하는 눈도 지구와 같으며, 소속된 아이돌그룹 이름 또한 ‘어스’래빗이다. 이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어스래빗 팬미팅 테러범들 완전히 ㅈ됨ㅋㅋㅋ 서한율이 형사 끝나는 즉시 민사 진행할 전관 출신 변호사들 미리 쫙 계약 끝냈다고 함ㅋㅋㅋㅋㅋㅋㅋ
ㄴ먼저 받았던 10만 달러도 토해냈다던데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
ㄴ이래서 사람이 멍청하고 욕심 많으면 안 돼
ㄴ셀프지옥행 열차 탑승 축하한다
그러나 모두 한율의 선택을 존중, 환호를 보내거나 그의 분노에 공감하는 건 아니었다.
-서한율 정도면 완전 갑질 아님? 물론 범죄자들이 잘못한 건 맞는데...ㅋ
-스스로 정체 밝혔다는 건 본인도 이렇게 될 거 다 각오했던 거 아닌가? 협박 무섭구요ㅋㅋㅋ
-재수 없다. 우리 구해준 은인이라고 언제까지 넙죽넙죽 떠받들어 모셔야 함?
-서한율이 직접 대규모 결계 만드는 거 본 사람 있음? 뉴스에서 만든 작은 거나 숙소에 대충 만든 그런 거 말고.
ㄴ게방부 군인들이 다 봤대. 카메라로 찍었다던데 그건 공개 안 함.
ㄴ켕기는 게 있으니 공개 안 하는 거 아닌가? 나만 얘 의심스러움?
-들러리로 전락한 같은 팀 멤버들만 불쌍하지ㅉㅉ
ㄴ그거 웃겼음. 지가 들러리로 만들어 놓고 멤버들 들러리 취급받는 거 싫다고 말하는 거ㅋㅋ 그게 싫으면 깔끔하게 탈퇴하든가
ㄴㄹㅇㅋㅋ
“이 방구석 찌질이들이?”
서한율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무리를 발견한 계나리는 활짝 웃으면서 손가락을 풀었다. 그리고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너, 너, 너, 아웃, 아웃. 넌 보너스까지 보내준다, 이 자식아! 기껏 구해줬더니 아주 먹고 살 만하지? 응?”
후우. 랜선을 통해 한바탕 칼춤을 춘 계나리는 잠시 물을 마시며 쉬었다.
‘그 파파라치한테서 영상을 산 해외 언론사. 마음 같아선 거기 사이트 자체를 몽땅 폭파해버리고 싶지만… 자칫하면 피해자인 율이 오빠를 비난하는 여론이 생길 수 있겠지. 세상엔 생각보다 이성적인 대화가 안 통하는, 상식이 결여된 사람이 많으니까.’
그때 핸드폰에서 어스래빗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계나리는 반가운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웅, 아름아름?”
같은 학원에 다니다가 서로 어스래빗 팬이란 걸 알게 되어 친구가 된 이아름이었다.
이아름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리야, 너 그 기사 봤어?!]
“좌 대표님….”
-[아니, 그거 말고! 지금 중국에서…!]
이아름의 이야기를 들은 계나리의 눈이 커졌다.
“……!”
계나리는 스피커를 누르곤 키보드를 다급히 두드렸다. 정말로 이아름이 말하는 내용의 기사가 딱 하나 떠 있었다.
[중국, 게이트 봉쇄 지역 한국인 포함 외국인 다수 고립… “서한율이 도움 요청 무시”]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위험한 레드 게이트로 인해 봉쇄된 중국의 한 지역에, 여전히 다수의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고립되었으며 중국 당국이 이를 알고도 봉쇄령을 발동하고 모든 전기와 수도, 인터넷 등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의 고립 사실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한국인 유학생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며 알려졌으나, 공안 관계자는 “한인이 많은 지역이라 서한율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가 묵살했다”라며 비난의 화살을 서한율에게 돌렸다.]
계나리는 이아름과 통화 상태란 걸 잊고선 일 년 치 욕설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