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서한율이 중국에 고립된 우리나라 사람들 구조 요청 무시했다던데 사실임?]
-사람을 게이트랑 같이 가둬놓고 물이랑 전기 다 끊어버린 곳 말을 믿음?
-초반에 도망친 사람 말에 따르면 게이트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곳이라 완전히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고, 행방불명된 사람 찾아달라고 신고해봤지만 봉쇄된 지역에 남은 사람 없으니 돌아가라고 쫓겨났다고 함. 한 번만 더 항의하면 체포한다는 협박까지 들었다던데
ㄴ카더라 극혐
ㄴ지금 뜬 기사도 카더라다, 확증편향 ㅂㅅ아
-진짜면 개실망인데
-ㅋㅋㅋ서한율이 온 세상 한국인 다 구하러 다녀야 하는 거?
-나 아는 애가 그러던데. 제임스 보호해주려고 서한율이 제임스인 척 위장한 거라고.
ㄴ이건 또 뭔 소리야;
ㄴ서한율이 게이트 열리게 한 최종 보스란 썰도 있음. 우리 다 가지고 노는 거라고
ㄴ????
ㄴ음모론에 환장한 ㅂㅅ들 또 시작이네. 진짜 먹고 살 만한가 봐?
ㄴ한율님 왜 이런 놈들까지 살려주셨어요, 식량 아깝게..ㅠㅠ
사실 확인이 안 된 기사였으나, 자극적인 것을 좇는 인터넷 언론사는 즉각 해당 기사를 복사해 재생산해댔다. 포털사이트 메인에도 어그로성 제목을 붙인 기사가 올라왔다.
[게이트 고립 한국인 구조 요청 무시 서한율, 이탈리아에서 생일파티]
-오늘만 사는 기레기인가^^
-애초에 서한율은 이탈리아에 왜 간 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도 목격됐다던데 대체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임? 왜???
ㄴ알아서 뭐하게. 국방부 허락받고 나간 걸 왜 네가 참견임?
-어쨌든 공론화됐으니 부랴부랴 중국 가겠네ㅋ
한율이 해당 기사를 접한 건 다음 날, 미국 뉴욕에 도착한 뒤였다. 그것도 수잔 리드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알았다.
한율은 무표정한 얼굴로 기사를 읽었다.
“…….”
하루 사이에 당사자만 쏙 빼놓고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국방부와 외교부까지 나서서 ‘중국으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던 사실은 물론, 서한율에게 도움 요청 메시지를 전달해달란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상황.
그런데도 댓글에선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한국인이 위기에 처했으니 당연히 구하러 가야 한다, 사람이 있는데도 봉쇄한 건 중국이니 중국이 책임져야 한다, 서한율이 능력을 무한히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그가 구하러 가야 할 의무가 어디에 있느냐, 정말로 요청을 고의로 무시한 것이라면 아무리 서한율이라도 처벌받아야 한다 등등.
[정말 한율은 몰랐어요?]
수잔이 한율의 눈치를 살피며 박가람에게 슬쩍 물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영어 공부한 게 헛되지 않은 걸까. 박가람은 고개를 끄덕이곤 대답했다.
[네. 전 세계에서 온갖 메시지가 날아오는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확인하겠어요. 그리고 정말 그런 큰일이 있었다면 국방부를 통해서라도 연락이 왔을 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고요.]
[하긴. 정말로 사람들을 구할 의지가 있었다면 전기는 몰라도 수도까지 끊진 않았겠죠.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도움 요청을 했을 리도 없고.]
[그럼 레드 게이트 지역에 사람들이 고립된 게 사실이에요? 게이트가 열린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
수잔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사실인지 조사 중이에요. 탈출에 성공한 뒤 인터넷에 최초로 글을 올렸다던 한국인 유학생도 다시 연락이 끊겼다면서요.]
[으음….]
[그와 마찬가지로, 게이트가 열린 이후 중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연락이 끊긴 미국인도 한둘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중국이 자국 내 게이트 문제는 알아서 하겠다면서 문을 다 걸어 잠갔잖아요. 그래서 정보를 얻는 게 쉽지 않네요.]
후우. 수잔이 한숨을 내쉬곤 중얼거렸다.
[섣불리 핵을 쓰는 짓거리만 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
박가람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계나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중국은 레드 게이트가 잔뜩 열려서 희생자도 가장 많았어요. 그런데 더 끔찍한 건, 그들이 핵무기를 사용하면서부터였죠. 그나마 본토에 살아남았던 생존자 대부분이 방사능에 피폭돼서 죽었거든요. 괴물이 아닌, 같은 인간이 만든 재앙에 당한 거예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데.
박가람은 한숨을 내쉬곤 한율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조심스레 말했다.
“사실 확인 제대로 안 하고, 음해성 보도하고 허위사실 유포하는 멍청이들이 참 많다.”
“그러게요.”
한율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은혜도 모르고.”
그 눈빛과 목소리가 아주 서늘하여, 박가람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가 두 손을 가슴 앞에 꼭 모았다.
“가람이 무쩌워여. 눈에 힘 풀어주떼여.”
한율이 질색했다.
“저 순간 형한테 욕할 뻔했어요. 하지 마세요.”
“넹…. 가람이 시무룩….”
“…….”
“어, 안 할게. 미안.”
* * *
너튜브 서한율의 개인 채널.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서한율입니다. 오늘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인사드립니다.”
WB래빗 엔터의 좌 대표 가족 인질 협박 사건이 있고 나서 딱딱한 얼굴로 방송했던 때와 달리, 평소처럼 담담한 미소를 띤 채.
“핸드폰이라서 화질이 좀 안 좋네요. 양해 부탁드릴게요. 이번에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요.”
카메라 초점이 이동했다. 저 멀리 바다에 절반이 잠긴 게이트가 스멀거린다.
-중국 일 해명인 줄 알았더니 난데없이 미국 게이트 보여주기ㄷㄷㄷ
-[누가 찍어주고 있는 거지?]
“저기 보이시나요? 게이트 앞에 일렁거리는 검은 그림자. 서울에 나타났던 육눈박이보다 훨씬 큰 괴물입니다.”
-[히익]
-헉
“다들 아시다시피 게이트 지도엔 바다에 생기는 게이트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여기도 아무런 대비를 못 해서 피해가 극심했대요. 설상가상으로 인근에서 유조선이 전복되는 바람에 원유까지 유출됐는데… 괴물들 때문에 도저히 방제 작업을 할 수 없어서 제게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카메라가 다시 바다를 바라보는 한율의 옆 모습을 찍었다.
“부탁을 들은 게 보름 전쯤인데,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 줄 알았다면 더 빨리 왔을걸. 후회되네요. 저기 확대해보시면 원유 때문에 폐사한 괴물들의 사체가 썩으면서….”
“서한율아? 식사하면서 보는 분도 계시지 않을까?”
-이 목소리는 박다람이?! 오타 아님.
-[이거 촬영 허락받고 하는 거지?]
“아, 죄송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버틸 수 있는, 게이트 주변을 통째로 가두는 결계를 만들 예정입니다. 결계가 완성되면.”
박가람이 이번엔 핸드폰 카메라를 뒤쪽으로 돌렸다.
-워 ㅆㅂ;;;
-[진심 소름 돋았다]
라이브를 보던 사람들이 동시에 채팅으로 탄성을 쳤다. 그곳엔 전복된 유조선 인양 작업과 원유 방제 작업, 괴물 사체 수거 및 사람들의 보호를 위해 대기 중인 군인들과 장비가 빽빽이 모여있었다. 수백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이었다.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과 카메라, 중계기도 눈에 띄었다.
-[서한율을 한 나라만 소유하는 건 부당하다. 그걸 잘 알려주는 모습이다.]
-[심장이 쿵쿵 뛰네요.]
-[온갖 음해로 한율을 비난하던 분들, 보고 있나요?]
“이분들이 모두를 위한 훌륭한 작업을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이걸 라이브로 보여드리는 이유는.”
살며시 미소 짓는 한율의 눈이 은은한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각자의 상상에 맡길게요.”
한율은 곧장 현장 책임자에게로 향해, 다시 한번 계획을 되짚은 뒤 가볍게 몸을 풀었다. 수백 명의 기대 어린 시선, 그리고 라이브 방송을 통해 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마음껏 바람의 마나로 몸을 감쌌다.
-날아라 한국 토끼!!!!!!!!
사실 헬기를 타고 접근하는 게 힘도 아끼고 좋다. 그러나 게이트가 열린 지 두 달. 괴물들도 어느 정도 인간의 공격 수단을 학습했기에, 헬기를 보자마자 집단으로 달려들 수 있어 오히려 위험했다. 물론 한율이 아니라, 헬기 조종사가.
더구나 게이트 앞에 있는 가장 큰 놈.
미 해군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놈이 이곳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괴물들의 우두머리 행세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생명체든, 자고로 강한 우두머리가 이끄는 무리가 오합지졸이 모인 집단보다 더 위험한 법. 한율은 결계를 만들기에 앞서, 그놈부터 먼저 제압하기로 했다. 강한 놈이 날뛰면 결계 역시 빨리 닳게 되므로.
한편, 한율의 핸드폰을 들고 촬영하던 박가람은 난감한 목소리를 냈다.
“어쩌죠, 여러분. 벌써 한율이가 안 보여요. 쟤 저렇게 빨리 날고도 숨은 제대로 쉬나 모르겠네요. 아니, 스스로 보호하는 기류 안에 있어서 괜찮나?”
-[????누가 해석 좀 해주세요 :'(]
-가람이 너무 무방비하게 있는 거 아닌가ㅜㅜ 율톢도 별다른 보호 장비 없이 그냥 막 가궁
-[미국 공영 방송국에서도 현장 상황 생중계 중입니다! 한율이 신호를 보내면 방송국 헬기도 띄울 거라네요!]
-와 이걸 라이브로 보네.. 는 무슨 벌써 점으로밖에 안 보인다!
-[한율 안 보인다]
-[안 보이면 또 음모론자들이]
“아참. 한율이도 지금 따로 몸에다 카메라 착용해서 찍고 있거든요. 나중에 너튜브에 올릴지도 몰라용.”
-그런 건 진작 말해주라ㅡㅡ
그 뒤론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바다에 반 잠긴 게이트 앞.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쓴 거대한 괴물이 솟구치며 날아올랐다. 그러나 순식간에 갈라져 그보다 더 높이 치솟아 오르곤 괴물을 덮치는 바다.
쿠콰콰쾅! 상당히 멀리 떨어졌는데도 포격과 같은 굉음이 울렸다. 끼에에엑…! 거대한 괴물의 고통스러워하는 울부짖음도.
“…….”
박가람은 잠시 말을 잃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괴물을 휘감은 엄청난 물기둥이 회오리치며 수면 위로 떠 오른다. 그리고 한율의 손에 생성되는 금빛의 무언가.
뒤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Astraphe?”
신화 속 제우스의 번개보단 창에 근접했으나, 그의 눈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미친.. 서한율 번개까지 씀?
-육눈박이도 뇌에 직접 충격줘서 기절시켰다고 했음
-[바다에 전기]
-[한율이라면 항공모함도 거뜬히 파괴할 수 있을 것 같다.]
금빛 창이 수백 미터 높이의 물기둥에 내리꽂혔다.
하늘 높이, 내륙까지 괴물의 울부짖음이 진동했다.
끼아아아악…!
사람들은 일제히 두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았다. 박가람 또한 핸드폰을 쥔 채 귀를 막았지만, 거대한 물기둥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런 미친놈.’
그동안 한율의 곁에 있으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인지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수백 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괴물을 잡는 걸 보니,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괴물이었다.
‘대체 건너갔던 세상에서 얼마나 굴렀으면….’
한율 관련 기사에서 본 댓글이 떠올랐다.
서한율이라면 지구도 멸망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고.
촤아아! 거대한 괴물을 감쌌던 물기둥이 수면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꼿꼿하게 선 괴물.
해치운 건가? 어떻게 된 거지?
사람들이 하나둘 카메라나 망원경을 들어서 확인할 때였다.
주둥이를 쩍 벌린 괴물의 몸이 뒤로 기우뚱 넘어갔다.
첨벙!
거대한 괴물을 처리한 한율은 곧바로 두 팔을 가볍게 휘저었다. 은은한 푸른색을 띤 결계가 일렁일렁, 게이트를 감싸기 시작했다.
삐빅.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현장. 책임자의 무전이 울리고 한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작하세요.]
그곳에 있던 사람들, 라이브를 통해 보고 있던 사람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라이브 방송 채팅.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서한율이 있기 때문이다.
한율의 활약은 한국의 각종 매체에도 도배되었다. 한율이 중국에 고립된 한국인을 구해달란 요청을 무시했다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음해성 기사는 모조리 자취를 감췄다.
그가 정말로 제임스인지, 결계를 만든 장본인이 맞는지 의심하고 비아냥거리던 사람들은, 미국 방송국이 헬기로 가까이서 찍은 생중계 영상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영상 속에서 한율은 결계를 완성한 후, 바람 마법을 이용해서 괴물 사체 수습을 돕기도 하고, 사람들을 공격하려 날아드는 괴물을 파리채로 잡듯 날카로운 바람으로 툭툭 내리쳐서 기절시키기도 했다.
공중파 뉴스.
앵커가 감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 활약으로 서한율 씨가 미국으로부터 한국 게이트 방어를 위한 무기 지원을 약속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외쳐 갓한율!!!!!!!!!
ㄴ갓 씨 아니고 서 씨입니다.
ㄴ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