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6화 (378/427)

나는 용감한 한국 아이돌

-서한율 의심했던 놈들, 욕했던 놈들 다 튀어와서 대가리 박는다. 실시.

-오늘은 국뽕 잔치다.

-중국ㅋㅋㅋ 한국 언론사가 허위 보도로 자기네 음해했다고 오히려 화내고 있음ㅋㅋㅋ (링크)

ㄴ그럼 서한율한테 도움 요청한 사실 자체가 없다는 거?

ㄴ최초 기사가 잘못됐다고, 그렇게 말한 관계자가 없다고 전면 부인 중. 하지만 레드 게이트 봉쇄 지역에 사람들까지 갇힌 건 사실일지도 모름.

ㄴㅇㅇ

-왜 이 기사는 안 떴지? (링크)

ㄴ이 와중에 본인 생일 기념으로 또 소아암 병동에 3억 기부한 한율좌..

ㄴ이런 기사가 메인에 안 떴다고? 기레기들 진짜ㅋㅋㅋ 할 줄 아는 게 허위 기사 복붙밖에 없나

ㄴ뜨긴 떴었는데 소속사 대표 협박 사건이랑 중국 도움 요청 머시기 어그로 기사에 밀려나고, 서한율이 본인 이름 말고 어스래빗 팬덤 이름으로 기부해서 덜 주목받음

-1130 증상자 아니어도 뒤늦게 각성한 케이스는 없을까?

ㄴ없음. 있다고 주장한 사람 다 뻥이거나 사기꾼이었다던데

-나도 각성하고 싶다.

-신이 서한율한테만 다 퍼줬네 개부럽다 나도 사람들한테 영웅 소리 듣고 싶다 개부럽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개부럽다

‘신이 퍼준 힘이 아니라, 다른 세상까지 건너가 오랫동안 고생해서 이룬 힘인데.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눈엔 그저 운이 좋은 걸로만 보이겠지.’

게이트 방어 지휘부 각성자 부대 휴게실.

각성자 부대는 언제나 핸드폰 사용이 가능한 터라, 이해원은 편안히 서한율의 기사를 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마찬가지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각성자 김바람이 말했다.

“이 와중에 칭찬은 못 할망정 당연한 거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네요. 아무리 강해도 행동력과 판단력, 담력은 또 다른 문젠데. 그렇지 않아요?”

김바람의 능력은 접근전에서만 빛을 발하는 터라, 각성자 관리과의 의뢰를 자주 받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일이든 돕고 싶다며 자주 찾아와,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상당히 많았다.

어쨌든 휴게실에 그녀와 둘밖에 없었으므로, 이해원은 적당히 대답했다.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사람을 보면, 당연히 본인도 쉽게 할 수 있을 거란 착각에 잘 빠진다잖아요. 현장을 몰라서 그런 거죠.”

“해원 씨는 무섭지 않아요? 괴물 말고, 범죄 저지른 각성자 잡으러 갈 때요. 괴물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물리치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어느 정도 다치지 않게 잡아야 하잖아요. 상대가 괴물보다 더 위험한 살상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섭죠. 하지만 그런 놈들을 사회에 풀어놓는 게 더 무서운 일인 것 같아서요.”

“아….”

고개를 끄덕이던 김바람과 이해원의 시선이 마주쳤다. 휙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이해원은 시간을 확인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관리과에 가볼게요. 쉬세요.”

“네….”

휴게실을 나가 복도를 걸으며, 이해원은 다른 생각에 잠겼다.

나도 입대하지 않았다면, 박가람처럼 서한율의 활약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이 ‘이곳’ 체질이란 걸 슬슬 느끼고 있어, 한숨으로 아쉬움을 밀어냈다.

‘한율이가 왜 내게만 괴물 마나 추출 기술을 가르쳐줬겠어.’

혼자서라도 잘할 거란 믿음 때문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다른 학생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 사실이 이해원에겐 작은 자부심이었다. 괴물의 마나 추출은 현재 서한율이 실험 중인 마법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술이므로.

‘더 열심히 정진하자.’

* * *

[정말 감사해요, 한율. 당신 덕분에 더 큰 오염과 희생을 막을 수 있었어요.]

[별말씀을요. 대가 없이 한 일도 아닌데요.]

수잔 리드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을 위한 무기 지원 약속은 곧바로 이행될 거예요. 당신이 개인적으로 한 부탁 역시.]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수잔과 함께 온, 미국 각성자 범죄 대책과의 팀이 나서서 대답했다.

[당신이 원하면 언제든.]

한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게 지금 당장이라도요?]

[네. 한 입 갖고 두말하진 않습니다.]

[그럼 지금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준비시간 5분만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수잔과 팀이 호텔 객실을 나갔다. 한율은 박가람을 돌아보았다.

“형은 이곳에 있는 게 좋겠어요.”

“왜? 대체 누구 만나러 가는데? 그것도 이런 한밤중에…. 안 피곤해?”

“내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여기랑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요. 그리고 되도록 여기 일 빨리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고.”

“아니, 그러니까 누구 만나러 가냐고.”

“각성 능력으로 사람 수십 명 죽인 살인자요.”

박가람이 경악했다.

“그딴 놈을 왜 만나?!”

“조금 알아볼 게 있어서요. 그러니 형은 여기에서 기다려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그럼… 교도소로 가는 거야?”

“네.”

“…….”

따라가곤 싶지만, 솔직히 무서워서 망설이는 표정.

한율은 나갈 채비를 하며 화제를 돌렸다.

“보배 형 생일 선물은 어떻게 할 거예요?”

“…한국 돌아가기 전에 사려고. 아, 가족들한테 줄 추석 선물도 미리 사야겠다.”

“그렇게 해요.”

그때 박가람이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다. 나도 따라갈래.”

“형을 극악무도한 살인자랑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은데요.”

“따로 기다릴 수 있는 곳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박가람이 창을 힐끗했다. 창에는 호텔 측이 특별히 달아준 두꺼운 암막 커튼이 쳐져 있었다. 호텔 밖에는 한율이 이곳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헬기 소리도 들렸다.

“여기에 혼자 있는 게 더 무서울 것 같다. 부산에서 너랑 우성이가 본 파파라치보다 더한 놈이 찾아올 수 있잖아.”

“그래도… 정말 괜찮겠어요? 거기 교도소라니까요?”

“범죄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진 않을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한율은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 그러고 싶다면.”

잠시 후, 상당히 외진 곳에 있는 한 교도소.

교도소는 상당히 넓었으나,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고 공기도 서늘했다.

그들을 안내하는 교도관이 조용히 말했다.

[유명한 초능력 영화 시리즈 중에, 손에서 날카롭고 단단한 무기를 꺼내서 사용하는 캐릭터가 있지 않습니까? 그 캐릭터랑 비슷합니다. 다만 이 새끼는 몸 아무 곳에서 그런 무기를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데, 팔꿈치나 혓바닥에서 칼날 같은 게 튀어나와요. 놈과 함께 있던 한 재소자는 눈에서 뒤통수까지 아주 가느다란 구멍이 생긴 채 죽었습니다.]

[강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교도관이 한율을 한번 보곤 대답했다.

[다행히 강철은 못 뚫더군요. 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접견은 놈의 방에서 진행됩니다. 놈이 처음 방을 옮길 때도 교도관 세 명이 크게 다쳤어요, 빌어먹을! 그런데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각성자란 이유로 사살은 절대 안 된다고 하니, 이런 개 같은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안 그래요?]

점점 흥분해서 언성을 높이던 교도관의 시선이 각성자 범죄 대책과의 팀을 향했다.

팀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위험한 각성자들을 가둘 수 있는 특별한 시설을 만드는 중이니,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주십시오.]

교도관은 대답하지 않고 느려졌던 걸음을 본래 속도로 높였다.

교도소의 분위기에 압도되었는지 조용히,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걷던 박가람이 속닥거렸다.

“진짜 무시무시한 놈인가 보다. 조심해, 서한율.”

“설마하니 내가 당하리라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아니, 나쁜 놈이니까 열 받아서 죽이지 않게 조심하라고.”

박가람은 수잔과 함께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한율과 팀, 그리고 함께 온 군인들만 살인마 ‘마일스’의 독방으로 향했다.

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정말 혼자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놈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입니다. 절대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화해선 안 됩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한율은 마일스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보았다. 놈은 저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더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듯한 행태도 보였다.

살인자에게 각성 능력은 신이 준 선물이었다.

한율은 안심하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대화할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

이중삼중으로 된 보안 문을 지나쳐 마일스의 방에 다다랐다. 주변에 있는 독방은 모두 만약을 위해 비워두었다고.

[열겠습니다.]

교도관이 마일스의 방을 열었다. 훅 밀려드는 쾨쾨한 악취. 한율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마일스는 온몸이 쇠사슬로 꽁꽁 구속된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바닥에는 ‘접근금지’ 글자가 적힌 선이 선명하게 그어졌다. 이 거리가 그의 몸에서 생성되는 무기의 최대 반경인 모양.

한율은 그 선을 넘어 마일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마일스. 한밤중에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

마일스는 입에도 재갈이 물린 상태였다. 그가 의아한 눈으로 한율을 쳐다보았다. 한율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율도 자기소개를 건너뛰었다.

[그리고 다른 실례도 좀 할게요.]

[그렇게 가까이 가면…!]

뒤에서 교도관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렸으나, 한율은 거침없이 마일스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부릅뜬 마일스의 눈에, 은은한 푸른색으로 물드는 한율의 눈동자와 미소가 비쳤다.

[이대로 네 머리통을 박살 낼 생각이니, 어디 반항 한번 해보지 않을래요? 이 허접한 가짜 사이코패스 새끼야?]

[……!]

마일스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한편, 수잔과 교도관 사무실로 온 박가람은 멍하니 앉아있다가 테이블에 놓인 잡지로 시선을 내렸다. 보안상 핸드폰 사용을 자제해달란 부탁을 들은 터라, 딱히 할 게 없었다.

[이거 봐도 될까요?]

책상 앞에 앉은 교도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박가람은 뉴스 잡지를 집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도로 제자리에 두었다.

“어머나, 망측해라.”

뉴스 잡지 아래, 표지가 굉장히 선정적인 성인 잡지가 놓였던 탓이었다.

수잔이 작게 웃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봐요, 가람.]

박가람은 점잖은 얼굴로, 열이 오르는 귀를 손으로 부채질했다.

[아닙니다. 한국 아이돌은 순수해야 하므로, 19금은 멀리해야 마땅합니다. 그나저나… 저 때문에 괜히 저쪽으로 못 가신 것 같아 죄송해요.]

[괜찮아요. 제가 살인자만 보면 분노로 인해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거든요. 오히려 못난 꼴을 보이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차였어요. 그나저나 가람, 아까부터 자세가 불편해 보이는데, 등받이에 편히 기대서 앉는 게 좋지 않아요? 아니면 몸이 안 좋아요?]

[그게….]

박가람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웃었다.

[네, 편히 앉….]

이렇게 말하며 사선으로 살짝 틀었던 자세를 고치려던 찰나. 박가람은 또 한 번 화들짝 놀랐다.

“어우, 씨!”

“……?”

그리고 그제야 왜 서한율이 정말 괜찮겠냐고, ‘거기 교도소라니까요?’ 강조하듯 재차 의사를 물었는지 이해되었다.

흉악한 살인자들을 수용한 감옥이니 당연히 그 피해자의 원혼, 아니면 살인자의 흉악한 기운에 들러붙은 악귀가 득시글거릴 거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서한율이랑 다니는 동안 자연스럽게 잡것들이랑 떨어져서, 방심했다….’

놀란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그만큼 얼굴을 바짝 들이댄 귀신의 몰골이 너무 끔찍했다.

[가람, 왜 그래요? 정말 어디 안 좋아요?]

수잔이 걱정하며 가까이 다가와 그를 살폈다. 박가람은 차마 바로 옆에 귀신이 있다고 말을 못 하곤 고개를 흔들었다. 놀라서 영어도 꼬였다.

[아니에요…. 나는 용감한 한국 아이돌. 이런 거에 굴하지 않아.]

[네, 당신이 용감한 건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박가람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죄수복을 입은 귀신이 그를 놀리듯 귓가에 대고 칵칵 웃었다.

[네…. 아주 멀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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