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9화 (381/427)

좋은 이미지 만들길 잘했네

국내 각성자에 등록됐다는 인증을 해야지만 가입이 가능한 각성자 커뮤니티.

-참여하면 따로 기본 교통비랑 수고비도 준다던데. 진짜 어떤 능력이든 상관없는 거?

ㄴ쓸모없다시피 한 능력이면 용돈 수준만 쥐여주고 보내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

-내 목표는 오로지 하나. 서한율이랑 사진 찍기!

-우리 엄마 평생소원이 서한율 실제로 보는 건데. 엄마 보호자로 모시고 가면 안 되겠지?

ㄴ안 됨. 어린 각성자 보호자면 모를까

ㄴ만 15세 이하 각성자는 실험 참여 불가하다고 적혔음. 애초에 만 15세 이하 애들한텐 안내 문자랑 메일도 안 보냈다던데?

-전에 서한율 개의심스럽다고, 같은 각성자 맞냐, 관계자가 접대받고 만든 가짜 영웅이라고 씨부리던 놈 있었는데. 그놈도 오겠지? 꼭 왔으면 좋겠다ㅋㅋㅋ

ㄴ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ㄴㅇㅇ필라델피아 생중계 이후로 입 싹 닦고 사라짐ㅋㅋㅋ 익명만 아니었어도 벌써 나락갔을 텐데 아쉽다

-설마 위험한 실험은 아니겠죠?

ㄴ서한율이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미국에서 큰일 하느라 힘을 다 썼다고 해도 서한율인데ㅋ

-그런데 서한율도 여기 가입함?

ㄴ하지 않았을까?

ㄴ그럼 이 글도 다 보고 있겠네ㅋㅋㅋㅋㅋ 사랑합니다, 형님.

한율은 커뮤니티 반응을 대충 훑었다.

‘평소에 좋은 이미지 만들어 두길 잘했네.’

구체적으로 어떤 실험인지 설명하지 않아 부정적인 걱정이 먼저 들기 마련일 텐데, ‘서한율이 있는데 설마 별일 생기겠어?’ 이런 낙천적인 반응이 대다수였다.

실험 참여 신청 기간은 15일 수요일까지. 금요일부터 적절하게 인원을 나눠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국가 기관이 하는 일치곤 일정을 빠듯하게 잡았지만, 딱히 준비할만한 게 없으니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성과가 보이면 다른 나라 각성자들을 대상으로도 진행해야 하니까.’

우웅. 오래간만에 나기혁과 길우성, 진은수와 호수가 함께 있는 단톡방에 글이 올라왔다.

나기혁이었다.

-[우성, 은수 실험 참여함? 난 안 갈 듯.]

길우성이 고자질하듯 대답했다.

-[써한이 나 각성자 아니니까 오지 말래요ㅡㅡ 세금 낭비라고]

-[(이모티콘)]

진은수의 대답.

-[저 신청 했어요!]

한율도 톡을 올렸다.

[그리 위험한 실험 아니니까 선배님도 오시면 좋을 텐데요.]

-[거절한다.]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잘 때만 제멋대로 발동되는 능력이라 딱히 도움 될 것 같지도 않으니.

[네.]

아림 엔터테인먼트의 퍼플아워 연습실.

진은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선 소파에 몸을 묻고 쿠션을 안았다.

‘연구소 갔을 때 선배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게이트 방어선 본부였었다. 그때 서한율은 제임스의 모습이었지만, 그날의 만남에 대해 짧게나마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아냐. 안 돼.’

하지만 설렘도 잠시. 진은수는 스스로 기대를 접었다.

‘연예계 선후배 사이로 나누는 형식적인 인사. 그 이상은 안 돼. 분명히 주변에 사람도 많을 테니까, 말 몇 마디로 인해 괜히 스캔들이라도 난다면… 선배님에게 폐가 될 거야.’

하아. 속상한 마음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때, 앞에서 다리를 일자로 찢은 채 우아한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하던 송의연이 뒤로 고개를 꺾었다.

“언니, 왜 또 찌그러졌어?”

“아이, 깜짝이야. 귀신인 줄 알았잖아.”

“이렇게 예쁜 귀신 본 적 있어?”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루아가 멍하니 대답했다.

“<괴담>에 귀신으로 나오는 재연 배우 예쁘더라.”

“…….”

“요즘 재방송 보는데 재밌어.”

“루아 언니 요즘 왜 이렇게 나사가 빠진 것 같지?”

진은수는 모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흔들곤 쿠션을 루아에게 넘겨주었다. 루아가 쿠션을 끌어안으면서 빙긋 웃었다.

“고마워, 우리 은수.”

“언니,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요즘 뉴스를 보면 그동안 내 세상이 무척 작았구나, 나도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한낱 인간일 뿐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많았는데, 그걸 참 많이 놓치고 살았다는 아쉬움?”

수상쩍은 시선으로 루아를 바라보는 송의연.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건 좋은데, 이상한 종교에만 빠지지 마. 요즘 멘탈 불안해진 사람들 노리고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가 많다더라.”

“…….”

“왜 대답이 없지?”

송의연이 자세를 바로 하더니, 무릎으로 루아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안은 쿠션을 덥석 잡으며 시선을 맞춘다.

“대답.”

뒤늦게 루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조심할게.”

“…….”

우웅. 루아를 걱정스럽게 살피던 진은수는 핸드폰을 집었다. 스케줄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사무실로 오라는 실장의 톡이었다.

진은수는 대충 겉옷을 걸치고 연습실을 나섰다.

* * *

12일 새벽. 한율은 오래간만에 멤버들과 샵으로 가서 꽃단장을 받았다. 그리고 추석 특집 콘텐츠 촬영을 위해 경기도의 한옥 펜션으로 향했다. 어스래빗 자체 콘텐츠 제작을 맡은 프로덕션 스태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준비된 한복으로 갈아입고 마이크를 찼다.

스태프 수십 명과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설치된 마당. 어스래빗 멤버들이 차례차례 나왔다.

“와, 이게 얼마만의 자체 콘텐츠 촬영이냐?”

“우리 벌써 이런 거 촬영해도 돼요?”

“추석이잖아. 이프림에게 추석 선물로 웃음을 드려야지.”

“인사부터 하자, 얘들아.”

자연스러운 이끌림에, 한율은 얼떨결에 센터에 서서 구호를 선창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스!”

“래빗!”

“인사드립니다!”

어스래빗은 두 팀으로 나뉘었다. 이기는 팀은 송편 만들기, 지는 팀은 머리에 송편 인형 탈 쓰고 뒷정리 및 아이스크림 사러 가기 벌칙을 걸고 여러 가지의 게임을 진행했다.

“서한율 너 능력 쓰지 마라, 진짜! 사나이 대 사나이끼리의 약속이다?!”

“네, 안 쓸게요. 쓰면 내가 아이스크림 쏩니다. 스태프들 것까지 다.”

“어? 솔깃한데?”

“우리, 쟤 반칙 쓰도록 유도하자.”

한율은 이건우, 강보배, 박가람과 한 팀이 되었는데, 중간에 슬쩍 꼼수도 부려보려고 했지만 졌다.

“이거 인형 탈 너무… 움직이기 힘든데요? 시야도 가려져서.”

툭.

“악!”

이긴 팀이 송편 만드느라 어질러놓은 요리 도구를 정리하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박가람이 커다란 인형 탈에 뒤통수를 맞고선 기둥에 이마를 콩 박았다.

“서한율이 나 때렸어!”

“미안. 어느 정돈 고의였어요.”

“싸우자, 서한율! 감히 형한테 덤벼?”

“애들도 아니고 툭하면 싸우냐.”

“지구에서 가장 강한 사람에게 싸움을 거는 박다람 씨.”

“누가 송편으로 탑 쌓았냐? 다 달라붙어서 먹기 힘들어졌잖아.”

“길우성이요.”

“내가 한입에 다 먹어보겠소, 형님.”

“기껏 열심히 다이어트 해놓고?”

“이날을 위해 열심히 운동했으니까 먹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내일 헬스장 가서 후회하겠지.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어쩌자고 떡을 한입에 털어 넣었을까. 엉엉.”

“목 막히면 큰일 나니까 김치랑 같이 먹어.”

오래간만에 한 자체 콘텐츠 촬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디오 감독을 괴롭히다가 끝났다.

다음 날인 월요일. 새벽에 일어난 한율은, 샵으로 가서 어제와 다른 스타일로 꾸민 뒤 도레미 피자 광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클라이언트인 도레미 피자 측 담당자가 환한 미소로 한율을 반겼다.

“왔어요, 한율 씨? 여기 편히 앉아요. 아, 그리고 이분은.”

“안녕하십니까, 도레미 피자 대표….”

도레미 피자 대표 이사까지.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도레미 피자에서 나온 건지, 광고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인지. 들뜬 얼굴로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오, 진짜 서한율이야. 새로운 광고 섭외는 전부 거절하고 있다던데, 여기 재촬영 요청엔 기꺼이 응해줬다면서? 정말 착하다, 의리 있어. 가까이에서 보니까 비율도 좋고 더 잘생겼는데?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좋은 말로만 가득했다. 그 옆에선 광고 제작과정 촬영 카메라도 알짱거렸다.

본격적인 광고 촬영 시작 전. 한율은 아이돌 특유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인사했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한율이 한창 피자를 먹던 그 시각, 어스래빗 숙소.

박가람은 옥상으로 올라와, 달냥에게 망을 봐달라고 부탁한 뒤 마나 유동을 시작했다. 일반인의 눈에는 가만히 앉아 명상하는 모습이었지만, 달냥의 눈에는 은은한 푸른빛이 잔잔하게 휘몰아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므앙!

퍽.

“…억?”

박가람은 달냥의 솜방망이 펀치를 얻어맞고선 눈을 떴다. 시커먼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명상 방해해서 미안한데요, 형.”

차남석이 박가람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꼭 받아야 할 전화 같아서요.”

“엉?”

핸드폰에 뜬 이름은 [♡엄마♡].

“고맙다. …응, 엄마. …어? 뭐라고?”

흐윽. 어머니가 울음을 삼키며 힘겹게 한 글자씩 말했다.

-[쌀떡이가… 많이 아파, 가람아….]

본가에서 키우는 삽살개 찹쌀떡은, 박가람이 초등학생 때부터 키운 녀석으로 나이가 적잖은 노령견이었다. 그래서 언제 건강에 이상이 생길지 몰라 꼬박꼬박 정기 검진을 받게 했건만.

“어쩌다가?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모르겠어…. 새벽에 으르렁거리면서 밖으로 뛰쳐나간 후로 안 들어와서 찾아다녔는데…. 찾고 나서 보니까 들개한테 공격당했는지 여기저기가 상처 나선…. 지금 수술 중이야….]

“그럼 지금 늘 가던 동물병원인 거지? 금방 갈게.”

박가람은 전화를 끊고선 벌떡 일어났다. 다리가 저릿했으나, 아픔을 참으며 절뚝절뚝 걸음을 옮겼다.

“밑에 호 형이나 우성이 있지?”

“호 형은 아까 나갔고, 길우성은 아직 자는 중이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찹쌀떡이 많이 다쳤다고 그래서, 지금 본가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평소에 아주 순한 녀석이 새벽에 으르렁거리며 뛰쳐나갔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무언가에게 공격당한 채 발견되었다는 부분도.

‘설마 그쪽에 미니 게이트가 열린 건 아니겠지?’

잠깐 생각에 잠겼던 차남석이 뒤늦게 박가람을 따라왔다.

“저도 같이 가요.”

잠에 취한 길우성에게서 차 키를 얻어낸 박가람은 차남석과 함께 길우성의 차에 올랐다.

정말로 미니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나온 괴물이 찹쌀떡을 공격했다면 차남석을 데리고 가는 게 위험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 눈에 쉽게 띌 괴물이었다면 애초에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차남석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가끔 욱할 때 빼고는 차분하고 무게감이 있어서 믿음직스러운 면도 있고.

“안전띠 잘 매고, 서한율한테 톡 하나 보내줘.”

“뭐라고요?”

박가람은 천천히 차고 밖으로 차를 몰았다. 숙소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비켜주면서도 누가 탔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바싹 들이댄다.

“있는 그대로. 얌전했던 찹쌀떡이 새벽에 뛰쳐나가 무언가랑 싸우고 크게 다쳐서, 그 녀석 상태 보러 간다고.”

“네.”

잠시 후, 강원도 강릉에 있는 동물병원에 도착했을 땐 찹쌀떡의 수술이 끝난 뒤였다.

“안녕하세요.”

“엄마, 쌀떡인 어때? 수술 잘 끝났어?”

“어서 와, 남석아. …응, 수술은 잘 끝났는데… 아직도 마취에서 안 깨어났어….”

“괜찮을 거야. 쌀떡이, 잘 일어날 수 있을 거야.”

박가람은 눈이 발갛게 부은 어머니를 꼭 안아 준 뒤 수의사를 바라보았다. 수의사가 입원실로 안내했다.

“쌀떡아, 다정하게 이름 불러주세요.”

박가람은 입원실에 힘없이 누워있는 찹쌀떡을 발견하곤 입을 틀어막았다. 대체 얼마나 다쳤던 건지, 여기저기 봉합 흔적과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가가서 찹쌀떡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쌀떡아, 나 왔어. 일어나봐.”

찹쌀떡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희미하게 숨만 쉬고 있었다. 박가람은 찹쌀떡의 몸에 연결된 기기를 확인한 후,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불현듯이 스치는 생각.

‘마나가 도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나는 자연으로부터 얻는다. 그리고 환경이 깨끗할수록 질이 좋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마력으로 만들기 직전의 양질의 마나로 아픈 동물을 감싸면?

‘아픈 사람도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면 나아지는 경우가 있잖아.’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가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동한 마나를 손에 깃들게 했다. 그리고 다시 찹쌀떡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른거리던 푸른색 기운이 찹쌀떡의 몸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쌀떡아, 일어나 봐. 응? 쌀떡아.”

…끔뻑.

찹쌀떡이 눈을 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