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잘못되게 생겼는데요
“쌀떡아! 나 알아보겠어? 응?”
끄응….
이번엔 대답까지.
“쌀떡이 일어났어?”
박가람은 환하게 웃으며 입원실 밖에서 기다리던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응! 눈 떴어!”
“잘 됐다….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쌀떡이가 가족분들 목소리 듣고 힘내서 일어난 거죠. 그럼 상태 좀 살필게요.”
“네.”
박가람은 찹쌀떡을 다시 한번 쓰다듬어준 뒤 물러났다. 지켜보던 차남석이 박가람의 팔을 툭 쳤다.
“잘됐네요, 형.”
“응. 고맙다.”
박가람은 어느새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한율한테서 마법 배우길 정말 잘했어.’
찹쌀떡은 한동안 동물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게이트 사태로 인해 동물용 의약품 수급 역시 차질이 빚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병원비도 배로 뛰었지만, 박가람은 잘 부탁한다면서 천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일시불로 계산했다.
“내가 이런 날을 위해 그동안 열심히 일했구나 싶다.”
“한동안 여기에 있을 거예요?”
박가람의 어머니는 많이 지친 상태라 먼저 귀가. 박가람은 차남석과 늦은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을 찾았다.
“어. 그리고 찹쌀떡이 발견되었다던 장소도 한번 가보고, CCTV나 블랙박스 있으면 살펴보려고. 넌 우성이 차 끌고 서울로 돌아가.”
“어차피 오늘은 돌아가도 할 일 없으니까 같이 다녀줄게요. 형 혼자 돌아다니게 뒀다가 무슨 일 생길지도 모르고.”
“야, 내가 뭐 칠칠찮은 어린애냐? 같이 다니면 내가 널 챙겨주는 거지.”
고작 한 살 차이라 자주 부딪치기는 하지만, 무려 8년 동안 함께 지낸 사이다. 차남석은 박가람이 겉으론 톡톡대도 속으론 무척 고마워한다는 걸 알기에 어깨를 으쓱였다.
“네에, 그렇다고 쳐요.”
“워, 얄미워. 돌아갈 땐 네가 운전해라?”
“그러죠, 뭐. 그런데 형.”
“또 뭐.”
오후 2시가 넘어서 식당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차남석이 수저를 챙겨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형은 각성자 아니죠?”
“그렇지?”
“그런데 왜 자꾸 서한율처럼 눈이 파랗게 변해요?”
“…지난번 팬 미팅 때 그랬던 건.”
“서한율이 자신의 힘에 영향을 받아 일시적으로 그렇게 된 거라고 말했죠. 하지만 조금 전 동물병원에선 서한율이 없었잖아요.”
“…어? 동물병원에서도 그랬어? 하하….”
박가람은 헛웃음을 흘리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네가 잘못 본 거 아닐까?”
“나 말고 형네 어머니랑 수의사도 다 봤어요. 케이지 안에 있던 개들도. 당장 물어보기엔 적절하지 못한 상황이라 그냥 넘어간 거지,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도 물어보실걸요?”
“…….”
“서한율이 형 데리고 이탈리아나 미국으로 간 이유도 그거랑 깊은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틀려요?”
박가람은 차남석의 시선을 피하곤 속으로 외쳤다.
이럴 땐 뭐라고 둘러대야 하냐, 서한율! 정답을 알려줘!
“그게….”
“이렇게 다른 사람이 추궁하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그럴싸한 대답도 전혀 준비 안 했네.”
“…엉?”
박가람은 멍한 얼굴로 차남석을 바라보았다. 차남석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언가를 숨기려거든 제대로 숨기든가, 들켰을 때를 대비한 대책이라도 제대로 구상했어야죠.”
박가람은 어이가 없었다.
“이놈의 자식, 지금 감히 형님을 떠본 거냐?”
“나니까 깊게 묻지 않고 넘어가 주는 거거든요?”
“그럼 동물병원에서….”
“색이 변한 건 사실이에요.”
“끙….”
그때 직원이 주문한 음식을 들고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먹기나 해요.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박가람도 직원에게 고맙다며 꾸벅인 뒤, 차남석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알았다, 인마. 넓은 이해심 아주 고오맙다.”
점심을 먹은 두 사람은 곧장 찹쌀떡이 발견되었다던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인근 가게 바깥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볼 수 있냐고 부탁했더니, 사장은 게이트 관련 공익 광고에 나왔던 차남석을 알아보곤 흔쾌히 수락했다.
“대신에 나중에 사진 한 장 부탁해요. 아유, 실물이 훨씬 잘생겼네!”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런데 동생도 아주 귀엽게 잘생겼네요. 고등학생?”
“제가 형이에요, 사장님….”
“앗….”
CCTV는 화질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최소한 찹쌀떡이 무엇에게 공격당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내가 볼 땐… 찹쌀떡이 시비를 거는 것 같은데요?”
찹쌀떡을 공격한 건 게이트 괴물이 아니라 개들이었다. 먼저 세 마리의 개가 어딘가로 달려가는데, 찹쌀떡이 뒤늦게 나타나 가장 작은 강아지의 목덜미를 가볍게 물어서 들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가려는 순간, 두 마리의 개가 순식간에 찹쌀떡에게 달려들었다.
“하….”
박가람은 찹쌀떡이 당하는 모습을 괴로운 얼굴로 보다가, 다시 영상을 뒤로 돌렸다. 찹쌀떡은 공격당하는 와중에도, 멍하니 방관하는 작은 강아지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힘이 약한 노령견인지라 결국 상처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고, 세 마리는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
“사장님, 여기 이 개들 아세요?”
“글쎄요. 사납게 달려든 개들은 처음 보지만, 작은 강아지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아.”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어쪽에 있는 꽃집 강아지 같은데? 가끔 주인이 여기까지 산책시키는 걸 몇 번 봤어요.”
* * *
-[알고 보니까 그 꽃집은 엄마가 쌀떡이 데리고 자주 산책 겸 놀러 갔던 곳이고, 쌀떡이랑 그 강아지랑 친한 사이였다더라고. 그런데 그 강아지도 오늘 새벽에 갑자기 집을 뛰쳐나가서 주인도 찾고 있었거든? 우리가 확보한 CCTV 영상을 보여줬더니, 전혀 모르는 개들이라더라.]
도레미 피자 광고 촬영을 마치고 통제 구역에 있는 아파트로 가는 길. 한율은 박가람의 전화를 받았다.
-[이건 내 느낌인데, 쌀떡이가 그 강아지가 떠나지 않도록 막으려고 그랬다가 당한 것 같아. 아무튼, 더 이상한 점은 뭔지 알아?]
“뭔데요?”
-[최근에 그 부근에서 그런 식으로 집 나가는 개나 고양이가 많다는 거야! 전에 송파에서도 비슷한 일 있었잖아. 동물 집단 이상 행동. 설마 나리 씨가 말했던 그 괴물이 여기로 온 건 아니겠지? 펫펫바이오에서 실험하던 괴물 중에 동물한테 영향을 끼치는 놈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잖아.]
“똑같은 종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강릉에서 미니 게이트가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어쨌든 게방부에 말해둘게요.”
-[응. 아, 그리고….]
박가람은 동물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찹쌀떡이 마취에서 도통 깨질 않아 마나를 두른 손으로 쓰다듬었는데, 그게 찹쌀떡에게 스며들더니 곧 눈을 떴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한율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여보세요? 듣고 있어? …나, 잘못한 거야?]
하아. 한율은 크게 한숨 쉬었다.
“네.”
헉. 놀란 박가람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쌀떡이… 잘못되는 거야? 나 때문에?!]
“아뇨. 찹쌀떡이 아니라 형이 잘못되게 생겼는데요.”
-[엉?]
“마나 유동 한번 해봐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게 될 테니까.”
-[엉, 알았어….]
박가람은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한율은 재차 한숨을 쉬었다.
박가람이 찹쌀떡에게 한 행동은 회복마법의 기본 원리였다. 그러나 문제는, 박가람이 아직 마나와 마력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통제 능력이 한참 낮다는 것.
제 딴에는 양질의 마나를 전해줬다고 착각했겠지만, 실상은 본인의 생명력이 잔뜩 섞인 마나를 줬을 가능성이 컸다. 그마저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대부분 공기 중으로 흩어졌을 테고.
회복마법은 마법 중에서도 익히기 까다로운 것 중 하나였다.
‘그래도 찹쌀떡은 빨리 회복되겠네.’
오래간만에 찾은 아파트는 그대로였다. 한율은 대충 청소를 마친 뒤, 씻고 나서 소파에 편히 누웠다. 온종일 피자를 맛있게 먹는 척했더니 상당히 피곤했다. 소화제를 먹었지만 배도 좀처럼 꺼지지 않고.
‘다음부터 먹는 광고는 절대 찍지 말아야지.’
TV를 켜자 예전에 방송됐던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걸 보고 있는데, 문득 드는 의문.
‘전에 왔을 때 내가 이 채널로 뒀던가? 내내 뉴스 채널을 틀어놨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율은 부스스 일어났다. 청소할 때도, 씻고 나서 옷을 입을 때도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곳. 열어보지 않은 곳이 있었다. 즉석식품을 정리해놓았던 주방 수납장.
덜컹.
“…….”
절반이 없어졌다. 커피와 와인은 아예 몽땅 사라졌고.
‘통제 구역에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빈집이나 마트 문을 따고 들어가 이것저것 훔치며 산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런데 왜 즉석식품은 절반만 가져갔지?’
한율은 고개를 갸웃했다가 수납장을 닫았다. 어차피 이곳에 둔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요하거나 비싼 것도 없고. 하지만 누군가가 들락거렸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대충 짐을 챙겨서 그곳을 나왔다.
잠시 후, 인기 보이그룹 스타믹스의 멤버 JE의 집.
“그렇다고 우리 집으로 오냐?”
“여기가 숙소랑 가까워서요. 빈방도 있잖아요.”
“…….”
“혹시 집에 오는 사람 있어요?”
JE가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내가 네 신세를 적잖이 졌는데, 1년 지낸다고 해도 OK 해야지.”
오는 사람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은근슬쩍 대답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에, 한율은 담담히 찔러보았다.
“여자친구 생겼어요?”
JE가 한숨을 내쉬며 거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진지하게 입대 고민해야 할 시기에 여자친구 사귀는 건 천벌 받을 짓 아니냐?”
“그렇죠.”
한율은 처음 크리스티나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약혼자가 언어와 기억을 모두 잃었는데도,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펑펑 울며 안도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당시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약혼자가 전쟁터로 떠난 순간부터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걱정과 그리움, 그로 인한 슬픔과 고통만은 절절히 느껴졌었다.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히 말했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시국엔 매일 걱정하고 마음 졸일 게 뻔한데, 군대 가기 직전에 사귀는 건 괴롭히겠다는 소리밖에 더 돼요?”
JE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입대하려고요?”
“호랑 통화하다가 ACCOM에 있던 친구가 입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니. 야,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잖아. 그리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슬슬 대중들 눈치 보이거든. 남자 아이돌들, 평소에 좋은 이미지 만들려고 온갖 가식 떨고 애쓰더니, 정작 나라가 위기 상황일 때 입대 최대한 미루려고 수 쓰는 거 재수 없다고. 연예인이 뭐 벼슬이냐고.”
끼웅? JE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자, 구동이 왜 그러냐는 듯 그의 바짓단을 잡아당긴다. JE가 구동을 안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왠지 지금 안 가면 ‘정말 힘든 시기 다 지나고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야 가는 거 봐. 진짜 비겁하다.’ 이런 말을 한 바가지 들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하고.”
JE가 한율의 눈치를 힐끗 살피더니 물었다.
“이번에도 안 된다고 할 거냐?”
한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생각해도 지금이 적당한 시기 같네요. 서른에 더 가까워진 뒤에 입대했다간 어디 부러질 것 같기도 하고.”
“야.”
“단,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마법은 섣불리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잠깐 울컥했던 JE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어. 약속할게.”
한편 그 시각, 박가람의 본가.
박가람은 자신의 방에 앉아 마나 유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흠칫 놀라 눈을 번쩍 떴다.
“큰일 났다….”
“왜요?”
명상에 방해되지 않도록, 침대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던 차남석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박가람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기본적으로 체내에 있던 마나의 양이 확 줄었다. 지금까지 모은 마력에 달릴 정도로. 이 말인즉슨 한동안 마력 모으기나 마법 수련은커녕, 체내 마나 원상 복귀에 매달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잘못되게 생겼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그래도 찹쌀떡이 의식을 차리게 되었으니 후회는 안 하지만, 마나 운용 한번 잘못했다가 몇 달 동안 공치게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 허무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경고라고 해주든가! 제대로 된 방법을 가르쳐주든가 했어야지!”
“그러니까 왜 그러는데요.”
“남탓 시전하기!”
“…….”
대체 무슨 소리야.
차남석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