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율이 서한율이라서 다행이야
14일. 대형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란 메인.
[인기 아이돌그룹 스타믹스, 전원 입대 결정!]
[2015년에 데뷔한 인기 아이돌그룹 스타믹스 멤버 8명 전원이 입대 결정을 내렸다.
스케일 엔터테인먼트는 스타믹스 멤버 모두 병역 의무를 진 대한민국 성인 남성으로서 국가 안위를 지키고자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전하며 정확한 입대 시기는 아직 조율 중으로…(중략).]
-맏형이자 리더인 지헌이 스물아홉이니까 올해 갈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멤버 전원이 한꺼번에ㅠㅠㅠㅠㅠㅠ
-응 공익으로 빠질 거 다 알아^^
-한둘은 시간 차이 두고 가야지, 한꺼번에 몽땅 가면 팬들은 어쩌라고ㅠㅠ
-게이트 때문에 불안하고 걱정되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자랑스럽다.
-어차피 한동안 아이돌 일하기 어려우니까 좋은 선택일 수도 있음. 단체로 이미지 급상승 극호감 그룹도 되고
-미루고 미루다 게이트 열려서 ㅈ됐쥬?ㅋㅋㅋ
ㄴ네 미래야, 잼민아..
ㄴㅅㅂ!
-8명 전원 빡빡이 사진 기대합니다.
ㄴ상상만으로도 웃프다ㅜㅜ
“스타믹스 선배님들 존경스럽다, 진짜. 화끈하게 가시네.”
한 고깃집의 개별실. 한율, 길우성과 00즈 멤버인 스카이러너의 하신이 인터넷 기사를 보며 감탄했다. 그레이트7의 완언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 동반 입대 신청하면 높은 확률로 최전방에 배치된다던데.”
“최전방보다 게이트 방어선이 훨씬 위험하지 않아?”
“최전방도 긴장 놓쳐선 안 된대. 게이트 핑계로 북한이 어떤 돌발 행동 벌일지 모른다면서. 그래서 최전방 부대에 있는 군인들은 방어선으로 차출 안 한다잖아.”
“아아. 그건 처음 알았어.”
“야, 서한율. 네가 최전방에다 결계 쫙 깔아주면 안 되냐?”
“나 말라 죽는 꼴 보고 싶다고?”
“아니. 미안.”
“한율이 넌 괴물이랑 싸울 때 무섭지 않아? 아니, 하늘 나는 거 안 무서워?”
한율은 알차게 쌈을 싸며 대답했다.
“재밌는데?”
“완언, 네가 써한을 아직 잘 모르는구나. 이 녀석, 놀이공원 가잖아? 죄다 엄청나게 무서운 롤러코스터 종류만 골라서 신나게 탄다? 그것도 막 웃으면서?”
“멋있다. 난 가끔 무대 리프트 타는 것도 무섭던데.”
하신이 큭큭 웃었다.
“그러고 보니 서한율은 앞으로 무대 장치 따로 안 써도 되겠다. 원하는 대로 어디서든 날아다닐 수 있잖아. 피카○처럼 황금빛 전기도 핏카핏카 할 수 있고. 자체 조명 죽이겠다.”
한율은 하신을 향해 미소 지었다.
“지금 네 머리 뒤로 조명 만들어줄까?”
“아니. 미안.”
길우성이 적당히 익은 고기를 가위로 자르며 웃었다.
“친구야, 적당히 깝치렴.”
“아니, 친구니까 편하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지. 누가 얘한테 이런 질문 던져봤겠냐? 서한율 너도 들은 적 없지?”
“어. 네가 처음이다, 인마.”
하신이 잘난 척했다.
“후, 내가 이런 사람이다. 아무리 우리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이라도, 사석에선 마음 편히 친구로 대해주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짧게 영상 하나 찍을까, 친구야? 웃어.”
“…….”
완언이 한율과 하신을 번갈아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한율이, 쌈 싸놓은 거 네 입에 처넣어버릴까 고민 중인 것 같은데?”
오래간만의 00즈 모임은 하신이 취해서 잠들고 길우성이 춤추는 홍보 풍선과 함께 셀카를 찍을 지경이 되어서야 끝났다. 한율은 완언과 함께 두 녀석을 차 뒷좌석에다 밀어 넣었다.
완언이 조수석에 타며 웃었다. 그 역시 살짝 취한 상태였다. 멀쩡한 건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한율뿐.
“이러니까 꼭 게이트 열리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이렇게 마음 편히 웃고 떠든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한율은 그레이트7 소속사의 재정 상태가 썩 좋은 편이 아니란 사실을 떠올렸다. 오늘 막 만나서 안부를 물었을 땐 잘 지낸다고 대답했지만 말이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어?”
한율은 룸미러로 길우성을 힐끗했다. 잠들진 않았지만,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창밖을 보며 멍청이처럼 실실 웃고 있었다.
철컥. 한율은 안전띠를 매면서 말했다.
“친구잖아.”
“…….”
완언의 얼굴이 감동으로 얼룩졌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되는 듯 우물쭈물하더니, 목 뒤를 긁으며 쑥스럽게 말했다.
“이런 말 조금 이상하겠지만, 네가 너라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무슨 뜻이야?”
완언이 저 멀리 빌딩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가리켰다. 각성자 연구소의 결계 실험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실험엔 서한율도 참여] 자막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찍힌 영상도 나온다.
완언이 배시시 웃었다.
“서한율이 서한율이라서 다행이라고. 널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내 말에 동의할 거야.”
“그럼!”
“아, 깜짝이야.”
자는 줄 알았던 하신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만약 성격 더러운 새끼가 서한율처럼 큰 힘 가졌으면 우리나라, 게이트 열렸을 때 바로 끝장났을걸? 아니면 구해주는 대가로 이것저것 악독하게 요구하고 협박하고 갑질하면서 독재 분위기 만들었겠지. 크으, 대한민국 아이돌의 자랑! 기부 천사 서한율이라 얼마나 다행이냐?”
“시끄럽다, 자라.”
길우성이 차에 있던 무릎담요로 하신의 머리를 덮었다. 하신이 담요를 만지작거렸다.
“야, 이거 촉감 좋다. 내가 가져도 되냐?”
“안 돼, 이 주정뱅이 놈아. 이프림이 써한한테 선물로 준 거야.”
“미안.”
이틀 뒤, 어스래빗 숙소.
강원도 강릉에 갔던 박가람과 차남석이 돌아왔다. 길우성이 진지하게 물었다.
“나의 소중한 차, 버리 상태는 어떻소?”
찹쌀떡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소식은 단톡방을 통해 이미 전했다. 박가람은 차 키를 돌려주며 대답했다.
“미안. 저쪽에 잠깐 비가 왔었거든. 진흙 길을 달렸더니 차가 좀 지저분해졌다. 서한율은?”
“아마 손지은 씨 집에 있을걸? 걔 요즘 지은 씨 집에서 지내거든. 통제 구역에서 지내기 불편하다고. 오늘은 달냥이까지 데려갔어.”
“응. 네 차 세차하고 올게.”
“엉?”
휙. 박가람은 길우성의 손에서 도로 차 키를 빼갔다. 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도로 차고로 내려갔다.
자신의 마나 상태가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 당장 서한율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강릉에서 벌어졌던 일에 관해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다행히 서한율은 JE의 집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달냥과 구동은 햇볕이 드는 거실 통창 앞에 딱 붙어서 낮잠을, JE는 방에서 마나 유동 중이었다. 얼마나 집중하는지, 그는 박가람의 방문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때?”
천천히 마나를 한 바퀴 유동시킨 박가람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한율은 그의 어깨에 얹었던 손을 뗐다.
“생각보다 양호하네요.”
“정말?”
“네. 생명력이 섞인 체내 마나를 잔뜩 넘겼을 거로 생각했는데,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마력이 저장된 심장에 쫀쫀하게 잘 붙어있어요.”
“쉬운 말로.”
“형 생명력 강해서 다행이라고요. 그래도 최소한 일주일 동안은 하루에 6시간씩 마나 유동하세요. 그래야 간신히 보통 수준으로 돌아올 거예요. 앞으론 함부로 마나 전달 같은 건 하지 말고요.”
“아니, 나는 마나를 전달하려고 한 게 아니라….”
박가람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손에만 두르고 쓰다듬었다니까? 그게 제멋대로 쌀떡이한테 흡수된 거라고.”
“마나를 손에 둘렀을 때 마력으로 연결했어요?”
“아니?”
“그래서 의식이 없던 찹쌀떡에게 뺏긴 거예요. 마력으로 만들기 직전의 아주 곱고 순수한 마나여서 아주 쉽게 흡수되고, 주변으로도 흩어진 거죠. 끈 떨어진 연이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아….”
멍해진 얼굴로 박가람이 끄덕였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얼추 알 것 같다.”
“어느 쪽이에요?”
“알 것 같다고.”
“아무튼 명심해요. 의식만 차리게 한 정도라서 이 정도로 그친 거라는 걸”
“넵. 그런데 내가 한 거… 혹시 회복마법 비슷한 거야?”
질문하는 박가람의 눈이 기대로 반짝거린다. 한율은 미소 지었다.
“기본 원리는 비슷하지만, 형이 한 건 그냥 자신의 생명력과 마나를 퍼준 호구 마법이에요. 회복마법 배우려면 10년은 일러요.”
“아, 넵.”
* * *
9월 17일 금요일, 세종시에 있는 각성자 연구소.
오늘부터 각성자들을 대상으로 결계 생성 및 유지 실험이 시작될 예정이라, 연구소 주변엔 많은 취재진이 찾아와 진을 쳤다. 한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팬들도 북적거렸다.
그러나 한율은 각성자 연구소가 아닌, 실제 실험이 진행될 인근 체육관에 와 있었다. 그곳 사무실에서 각성자들의 서류를 살폈다.
이번 실험에 참여 신청한 각성자는 수백 명. 오늘은 백 명이 오기로 했다. 오전과 오후, 각각 50명씩 나눠서.
연구소 직원들이 불안한 얼굴로 한율을 힐끗거렸다.
“대체 어떻게 실험할 생각이길래 한 번에 50명씩이나….”
“소장님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듣지 못했다고 했어요. 그냥 서한율이니까 믿는 거죠. 보호 마법 비슷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는 종종 있지만, 수많은 괴물을 가둘 수 있는 결계는 서한율만 가능하니까.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나저나….”
여성 직원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정말 귀공자 같네요. 피부도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머리카락도 찰랑거리고 비율도….”
“아까 조심스럽게 셀카 요청했는데 흔쾌히 들어주더라고요. 듣던 대로 예의 바르고 성격도 좋은 것 같아요.”
“헉, 정말요? 나도 부탁해야지.”
“안녕하십니까,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그때 사무실로 각성자 권한정이 들어왔다. 연구소 직원들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한정 씨,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각성자 부대는 어때요? 그새 늠름해진 거 봐.”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선….”
한율은 시간을 확인하곤 보던 서류를 정리했다. 한참 동안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던 권한정의 시선이 한율을 향했다.
권한정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게이트 방어 지휘부 각성자 부대 소속 이병 권한정입니다. 오늘 각성자 확인 업무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정원그룹 정지호의 이해원 살인 교사 사건 내막이 드러났을 당시, 부산에서 당한 납치 사건에 대해 일부 거짓 진술한 점이 드러나 조사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조사실 밖에서 지켜보기는 했으나,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건 처음.
한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서한율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한정 씨.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이해원은 권한정이 생각이 얕기는 하지만 본성이 그리 나쁜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그러나 정지호 사건 이후 많은 걸 깨닫고, 그동안 훈련소와 각성자 부대에서도 여러 가지 일을 겪어서 그럴까. 권한정은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악수에 응했다. 눈에는 한율을 향한 경외로 가득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오전 실험에 참여할 각성자 50명이 체육관에 도착했다. 연구소에서 한 차례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쳤으나, 그들은 다시 입구에서 권한정과 마주한 후에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에서 무슨 실험을 어떻게 한다는 거지?”
“여기에서 대기하라는 거 아닐까요?”
“의자도 없이요?”
“어? 서한율!”
관계자 전용 통로를 이용해 들어온 한율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사람들에게 꾸벅꾸벅 인사하며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결계 실험을 주도하게 된 서한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누군가 열렬하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보더니 이내 따라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잘 부탁드립니다!”
“팬이에요!”
“형님, 잘생겼어요!”
한율은 쑥스럽게 웃고선, 저벅저벅 안쪽으로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마치 안무의 첫 도입부처럼 왼손을 들어 가볍게 살랑. 그 끝에서 흘러나온 푸른빛 기운이 지름 약 5m의 원형 결계 벽을 이뤘다.
“와….”
“저게 결계야?”
“가까이에서 처음 본다, 대박. 폰으로 찍어도…. 아, 들어오기 전에 반납했지.”
“예쁘다….”
“실험은 간단합니다.”
한율은 결계 앞 바닥에 먼저 붙여놓은 검은색 테이프를 가리켰다.
“이 검은색 선에 발끝을 대고 서서, 결계를 향해 여러분의 능력을 전개해주세요. 그러면 능력 레벨에 따라 결계의 색이 변할 겁니다. 색에 따라 기본 수고비에 보너스도 더해질 거고요.”
잠깐의 정적.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걸로 끝이에요?”
“네.”
오늘 실험 참여 기본 수고비가 20만 원이었다. 교통비도 별도 지급되고. 그것도 감지덕지라며 달려온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괜찮은데?
또 다른 각성자가 손을 들었다.
“만약에 깨지면 어떡합니까?”
그는 아주 강한 파괴 능력을 지닌 각성자였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웬만해선 깨지지 않게 튼튼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래도 깨지면요?”
한율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천만 원. 제 사비 털어서 보장합니다. 아, 능력이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싫으신 분은 미리 말씀해 주세요. 가려드릴게요.”
천만 원?! 몇몇 각성자의 눈이 투지로 불타올랐다.
능력을 발현하는 순간, 그 힘에 깃든 마나가 모조리 마법진에 흡수될 거란 사실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