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 가, 이 괴물아
길우성은 엄살을 부렸다. 실제로 머리를 꾹꾹 누르는 힘이 강했다.
“아팟, 아파팟.”
“너한테 무슨 일 생겼으면 어쩌나, 엉? 걱정돼서 너 찾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엉?”
“잘못했습니다, 형님! 아프니까 이것 좀 놓고….”
그제야 박가람이 힘을 느슨하게 빼며 김지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우리 팀 소중한 막내의 사촌 형님분. 어스래빗 셋째 박가람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김지완이라고 합니다.”
“요즘 서한율이란 멤버 때문에 덩달아 우리까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거든요. 병신…. 아니, 멍청이 보존의 법칙 아시죠? 덩달아 우릴 주목하는 멍청한 놈도 많아지다 보니 우리가 애를 과보호하게 되었어요.”
박가람은 마치 대본이라도 준비해 달달 외운 것처럼 주절거렸다.
“애가 착하고 순하고 좀 바보 같다 보니까 주변에 나쁜 놈들이 특히 잘 꼬이더라고요. 아, 사촌 형님분이 나쁜 놈이란 소리는 아니고요. 아무리 형제 같은 멤버라고 해도 진짜 형제가 아닌 이상 집안 사정을 잘 모르는데, 감히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하지만 오는 길에 매니지 팀장님에게 들었는데 사촌 형님분이 선을 넘으셨다더라고요. 야, 죽고 싶냐?”
“……네? 아니, 뭐?”
멍하니 박가람의 말을 듣던 김지완이 뒤늦게 반응했다.
“너 방금 뭐라고….”
타악. 박가람이 테이블에 두 손을 올리며 김지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또박또박 말한다.
“어디에서 감히 안면 튼 지 1년도 안 된 사촌 따위가 우리 막내를 건드리냐고.”
“……하!”
김지완이 뒤로 상체를 빼면서 크게 웃었다. 그가 입가를 부들부들 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성아, 너 진짜 실망이다. 같은 팀 멤버한테도 우리를 어떻게 말했으면….”
“이놈 말고 매니지 팀장님에게 들었다니까 혼자 무슨 딴소리세요. 우연히 막내랑 핏줄 약간 나눠 가진 사촌 형님, 얘 친구의 친구가 미스터리 해커예요. 정말 우리 막내 엿 먹이려고 한 고의성이 없었는지, 한번 깊게 파볼까요?”
“지금 협박하는 거야? 이러면 나중에 후회….”
“몰래 녹음한 거 적당히 편집해서 푸시게요? 그런데 어쩌나.”
박가람이 얄밉게 이죽이죽 웃었다.
“이미 우리가 먼저 녹음 중인데?”
“뭐…?”
“엉? 그게 무슨…. 헙.”
길우성까지 놀라 박가람을 쳐다보았다. 뒤늦게 박가람의 속임수일 수도 있단 생각에 입을 다물었으나, 괜한 걱정이었다.
박가람이 안쓰러운 눈으로 길우성을 바라보았다.
“미스터리 해커가 그러는데, 네 핸드폰에 도청 앱 깔려있대.”
“뭣이?!”
끼익, 쿵. 벌떡 일어나는 길우성의 뒤로 의자가 쓰러졌다. 충격받은 얼굴로 손에 쥔 핸드폰을 보며 중얼.
“어쩐지 배터리가 빨리 닳더라니…. 아니, 어떤 놈이….”
도청 앱이 깔렸다고 알려준 사람이 범인이란다.
박가람은 속으로 대답하곤 김지완을 바라보았다. 퍽 당황한 얼굴로 눈알을 굴리던 김지완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당당히 들었다.
“듣자 듣자 하니 아까부터 사람을 이상한 놈 취급하는데, 참 당황스럽네요. 게시글 건이라면 방금 우성이한테 사과했습니다.”
“사과하면 꼭 받아서 용서해야 합니까? 그리고 아이돌그룹은 멤버 한 명에게 안 좋은 루머가 붙으면 그룹 전체가 피해를 당하거든요, 형님. 여기에 회사가 입은 손해까지 계산하셔야죠.”
“아니, 그러니까….”
박가람은 활짝 웃었다.
“변명은 법정에서 듣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퇴장하오니, 좋은 변호사 찾기를 바랍니다. 가자, 막내야. 밥도 안 먹고 뛰어다녔더니 배고파 죽겠다.”
“어? 엉….”
길우성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김지완을 힐끗하곤 황급히 박가람을 따라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탄 뒤에야 물었다.
“정말 내 폰에 도청 앱 깔렸어? 나리 씨가 그래?”
“어, 그렇대.”
“나리 씨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건데? 형은 내가 여기에 있는 거 어떻게 알았고? 설마 위치 추적 앱도 같이 깔린 거야? 나 당장 핸드폰 바꿀래!”
“그 전에. 너 왜 전화 안 받았어.”
“그거야… 그 게시글 주인공이 나라고 밝혀진 게 아니니까….”
길우성은 우물쭈물하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사과만 받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이야기가 길어지고, 그 와중에 형들 전화 받으면 괜히 걱정하게 할까 봐…. 우리 멤버들 전부 눈치 빠르잖아.”
“그게 더 우릴 걱정하게 만드는 건지 몰랐쪄요? 진짜 혼나볼래?”
“미안…. 아니, 나 어떻게 찾았냐니까? 형도 혹시 각성자야?”
“아니요, 기술의 힘입니다. 스마트폰 해킹 조심하세요, 고객님.”
길우성은 수상하단 눈초리로 박가람을 응시하다, 내비게이션에 통신사 대리점을 검색했다.
잠시 후. 박가람의 핸드폰에 ‘복덩이’가 떴다. 박가람은 전화를 받는다는 핑계로 통신사 대리점을 나왔다. 투명한 통창 너머로 길우성을 살피며 전화를 받았다.
-[길우성 찾았죠?]
“오냐. 무사히 찾아서 지금 통신사 대리점에 와 있다.”
-[그것 봐요. 형이라면 찾을 수 있다고 했잖아요.]
계나리가 길우성의 핸드폰에 깔아둔 위치 추적 앱 덕에 대충 위치는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여러 종류의 가게가 빼곡하게 들이찬 골목이라, 박가람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서한율에게 의견을 구했다.
『길우성한테 추적마법을 심었거든요. 집중해서 살피면 유난히 마나가 일렁이는 곳이 있을 테니 거기로 가세요.』
“우리 팀 복덩이야.”
박가람은 한숨을 푹 내쉬곤 시선을 저 멀리 던졌다.
“집중했더니 잡것들도 온통 더 잘 보여서 그냥 발로 뛰며 찾았단다.”
-[저런.]
“넌 어디냐? 급히 처리해야 할 일 생겨서 바쁘다며.”
-[그 일 때문에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여자는 아니지?”
-[…….]
별생각 없이 물었던 박가람은 서한율의 침묵에 당황했다.
“여자야…?”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 성별이 뭐가 중요해요.]
“그렇긴 하지. 아무튼 나중에 보자. 길우성 가만히 두니까, 제일 비싼 기기에 비싼 요금제 호구 당할 것 같은 느낌이다.”
-[네. 수고했어요, 형.]
“우리 팀 막내 챙기는 거야 당연한 건데 수고는. 끊는다.”
박가람은 황급히 대리점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과 최신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길우성이 막 사인용 태블릿 PC를 받아들고 있었다.
“길우성, 동작 그만!”
* * *
새 핸드폰으로 바꿔봤자 금세 또 계나리에게 털릴 텐데.
한율은 한숨을 쉬곤 고개를 들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곧 문이 열렸다. 진은수가 고개를 꾸벅이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래 기다리셨어요?”
한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요, 금방 왔어요. …안녕하세요.”
진은수와 함께 들어오는 루아에게도 인사. 루아가 그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오늘 새벽. 진은수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한율은 루아의 전 남자친구인 나기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루아가 진은수에게 ‘친한 친구에게 소개받아 그 모임을 알게 되었다.’라고만 말하고, 그 친구가 누군지는 입을 꾹 다문 까닭이었다.
루아와 오래 사귀었던 나기혁이라면 짐작 가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여.
그러나.
『…루아, 친구 없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본인을 만나 직접 묻기로 했다.
“은수 씨. 미안하지만, 잠깐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을까요? 가까운 사람 앞이라 더 꺼내기 힘든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서요.”
“네.”
진은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루아를 바라보았다.
“언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응….”
진은수는 한율에게 잘 부탁한다는 듯 꾸벅인 뒤 나갔다.
테이블과 의자 두 개만 놓인 휑뎅그렁한 공간. 한율은 오는 길에 카페에서 포장한 커피 중 하나를 루아에게 내밀었다.
“앉으세요.”
“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이야기는 커피 두 모금 마신 후 시작했다. 처음엔 차남석으로부터 들은 소문을 들려주며 반응을 살폈다. 루아는 커피를 마시며 연신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전 그런 보호 부적을 만든 적이 없거든요. 그럼 그 모임이 절 팔아서 사기 행각을 벌였단 건데, 당사자로서 가만히 둘 순 없잖아요.”
“…이해해요.”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도 상당히 불쾌했을 테니까. …그런데요, 한율 씨.”
루아가 고개를 들어 한율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입가를 올린다.
“다들 알아요.”
“뭘 말입니까?”
“그곳에서 보여준 보호 부적이 한율 씨가 만든 게 아니라 가짜라는 걸요. 선생님이 우리에게 거짓말했다는 것도. 그래도 자꾸 그곳에 가게 되는 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에요.”
술술 털어놓으면서도 스스로 당혹스러워하지 않는 건, 애초부터 솔직히 말할 마음이었던 걸까. 한율은 ‘선생님’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들었다.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면 정말 마음이 홀가분해지거든요. 나도 몰랐던 내 불안, 내 바람을 모두 꿰뚫고 그걸 보듬어주세요. 혼자 속으로 했던 나쁜 생각까지 알아채서 진심으로 혼내시기도 하고…. 아이돌이란 가면을 쓰지 않고 온전히 나로 있어도 되는, 그런 곳이에요.”
“그 대가로 거액을 기부하고요?”
루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요. 선생님이 강요한 게 아닌, 내 마음 편해지고자 드리는 성의 표시예요. 솔직히 병원에서 상담받는 것보다 큰 도움이 되거든요.”
한율은 왜 진은수가 루아가 그놈들에게 단단히 홀린 것 같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루아의 표정에선 정말로 ‘선생님’을 향한 고마움으로 가득했다.
“그래도 한율 씨 이름 팔면서 가짜 부적 만든 건 선생님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가 선생님께 잘 말씀드릴게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사기꾼을 감쌀 정도로 말이다.
루아를 바라보는 한율의 눈이 은은한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그 선생님이란 사람,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어요?”
몇 시간 후. 새하얀 시트지가 부착되어 내부가 보이지 않는 심리 상담센터 문.
잠긴 문 틈새를 바람의 칼날로 잘라내어 열자 아무도 없는 로비가 나타났다. 아늑한 색감으로 칠해진 벽과 손때 묻은 가구들, 그럴싸한 멋진 글귀가 적힌 포스터와 대표 심리 상담사의 이력이 적힌 홍보용 액자.
이력을 살핀 한율은 헛웃음을 지었다.
루아에게 ‘선생님’이라 불린 심리 상담사는 아림 엔터테인먼트 등 연예기획사를 돌면서 청소년 심리 상담을 했던 사람으로, 사진을 보니 WB래빗 엔터에도 방문해 ‘청소년 언어 예절 교육’을 강의했던 그 사람이었다.
그 강의를 듣고 난 후, 남자 연습생 사이에서 욕 한 건당 5백 원 내기가 시작된 일도 떠올랐다.
어쨌든 이력을 보자 혹한 이 대부분이 왜 아이돌이었는지 쉽게 이해되었다. 한창 심리적으로 힘들 때 상담해주었던 사람이니 경계심이 덜 들었겠지.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사아. 한율은 일단 결계를 쳤다. 밖으로 아무런 소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어?”
그때 안쪽에서 나오던 누군가가 한율을 보곤 놀란 표정으로 멈췄다.
“선배님?”
음악 방송에서 만난 적이 있는 아이돌 후배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후배가 반갑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정말로 여기에서 선배님을 뵐 줄은…. 선생님 보러 오셨어요?”
한율은 미소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
“네. 안에 계시죠?”
“네, 이쪽으로 오세요. …선생님, 한율 선배님 오셨어요!”
그의 밝은 목소리에 안쪽에서 우당탕.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한 남자가 뛰쳐나왔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 그러나 다른 아이돌을 의식해선지, 뻔뻔하게 씩 웃는다.
“어서 와요, 한율…. 흐아악!”
그러곤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다 쿵! 복도에 놓인 화분을 넘어뜨리며 쓰러졌다.
“……?”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은 한율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래?
한때 심리 상담사였던 사기꾼이 벌벌 떨면서 소리 질렀다.
“저, 저리 가, 이 괴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