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헬스장 오기 싫더라
후배 아이돌이 쓰러진 사기꾼, 양병근을 부축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한율 선배님이잖아요, 괴물이라니….”
루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한율은 ‘선생님’이라는 이 사기꾼이 텔레파시 종류의 능력을 지닌 각성자가 아닐까 의심했다.
“너, 넌 저게 안 보여? 저기 엄청나게 큰… 날개 달린 괴물이 안 보이냐고!”
떠드는 걸 보니 각성자인 건 분명한 모양.
정확히 어떤 능력으로 자신에게서 그걸 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율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곳에서 제가 만들지도 않은 부적을 나눠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요. …선생님?”
그러나 양병근은 한율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바들바들 떨면서 소변을 지렸다. 헉. 후배 아이돌이 당황해하며 그에게서 떨어졌고, 곧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용해 금품을 갈취한 사기꾼 주제에, 정작 본인은 쉽게 얼이 빠지다니.
한율은 가볍게 손짓했다.
“어….”
후배 아이돌이 스륵 정신을 잃었다.
한율은 쓰러지는 후배가 다치지 않도록 허공에 띄워 소파에 눕혔다. 그동안에도 양병근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었다. 꺽꺽.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다.
“나한테서, 뭐가 보여요?”
“괴…. 괴물…….”
“어떤 괴물이요?”
살랑거리는 바람에 섞인 자백 마법. 양병근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답했다.
“어, 엄청나게 크고… 뿔이 네, 네 쌍에 파, 파충류… 아니, 영화에서 보던 드래곤처럼 날 선 눈이 날, 아, 아니, 당신을 보면서….”
날 보면서?
“혹시 선생님.”
한율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다른 사람의 기억이라도 읽어요?”
양병근 눈의 초점이 점점 흐릿해졌다.
“네, 네…. 그, 그 사람에게 크게 영향을 끼, 끼친 중요한 기억이 무, 무작, 무작위로….”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털썩. 한율은 그가 더는 자신의 기억을 읽지 못하도록 기절시켰다.
참 불쾌하기 짝이 없는 능력이었다.
‘직접 대면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기억을 읽은 건데, 이렇게 무서워한다고?’
본래 세상.
지구로 넘어오기 전, 한율은 고대 용족과 만났다. 그와 마주한 순간 느낀 건 본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과 공포.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졌고, 감히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용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뇌가 마비되는 듯했다. 만약 자신이 강한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공포에 질려 미치거나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까지 읽을 수 있다면 곤란한데.’
물론 당시 자신은 양병근처럼 소변을 지리거나 눈물, 콧물까지 쏟진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단순히 눈만 본 스타믹스의 JE나 박가람과는 경우가 아주 다르다.
마음 같아서는 양병근을 당장 없애버리고 싶지만, 자신이 이곳에 온 걸 아는 사람이 많았다. 건물로 들어올 때 여러 CCTV나 블랙박스에 모습이 찍혔을 테고. 내부에도 CCTV가 설치되어 있고.
‘어쩔 수 없지.’
한율은 양병근에게 저주를 걸었다.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모든 사람이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도록.
여기에, 얼마 못 가 그마저도 떠들지 못하도록.
“형, 통화 괜찮아요?”
작업을 마친 한율은 이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이름을 팔아 사기 행각을 벌이던 미등록 각성자를 잡았다고 신고했다.
“그런데 절 보더니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서, 일단 재웠어요.”
-[응, 금방 갈게.]
통화를 끊고 나선 센터를 눈으로 살폈다. 문이 활짝 열린 집단 치료실에 들어가 보니, 정말로 종교 공부도 했었는지 관련 서적과 물건이 놓여 있었다.
“어? 뭐야, 이거?”
그때 입구에서 누군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양병근과 한패일 수 있어, 한율은 모습을 가린 채 나갔다. 각성자 연구소의 결계 실험에 참여했던 각성자가 결계에 가로막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돌연 황급히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일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곤 도망치는 모양새라, 한율은 그를 잡아 왔다.
“안녕하세요. 연구소에서 뵙고 또 뵙네요?”
허공에 둥실둥실 뜬 각성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입가를 올렸다.
“어…. 하하, 왜 한율 님이 여기에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율 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 저 여기 그냥 상담받으러 온…. 아니, 변호사 불러주세요.”
그날 저녁, 게이트 방어 지휘부 각성자 관리과.
정상욱 중위가 한율 앞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공범이 전부 털어놨습니다. 어떻게 범행 대상을 물색했는지부터 모두 다요. 그런데 양병근,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괴물이니 뭐니, 내가 여길 탈출했는데 왜 또 여기에 있냐는 둥 자꾸 헛소리만 해댑니다.”
“잘 모르겠어요. 센터 내에 설치된 CCTV를 봤으니 아시겠지만, 저랑 마주치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더라고요.”
“네. 함께 있었던 아이돌에게도 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한율 씨를 보자마자 완전히 겁에 질려선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대체 왜….”
“이건 제 생각인데요.”
한율은 그럴싸한 추론을 꾸몄다.
“양병근에게 당한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느꼈는데, 마음이 약해진 사람을 현혹하는 능력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피해자들이 사기란 걸 알아도 그를 감싸는 거고요.”
“어쩐지. 양병근의 핸드폰에 저장된 피해자들한테 연락했더니, 하나같이 사기 피해를 본 사실이 없다더라고요. 보호 부적도 처음부터 한율 씨가 만든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으니 사기 성립이 안 되는 거 아니냐면서요. 오히려 한율 씨를 이용한 게 괘씸해 과잉 수사하는 게 아니냐 따지는 분도 있던데요?”
“네. 어쨌든, 그 능력을 저한테도 사용하려다가 리바운드를 겪은 게 아닐까 해요.”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아니요, 추측이에요. 다른 각성자랑 싸워본 적이 없어서 확신하진 못하겠네요. 하물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종류의 능력도 아니고.”
이해원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진실은 양병근이 알겠지만,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렸으니.”
한율은 후회하는 얼굴로 한숨 쉬었다.
“섣불리 찾아가지 말고 신고부터 해야 했는데. 제 잘못이에요.”
“아닙니다. 이름을 도용당한 피해자로서 진실을 알기 위해 찾아간 거잖습니까. 양병근이 그렇게 될 줄도 몰랐고요.”
“하지만….”
정상욱에 이어 이해원도 부정했다.
“자업자득이야. 너한테까지 수작을 부리려다 되레 본인이 당한 거라고. 네가 자책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한율은 두 사람을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위로, 고마워요.”
다음 날, 대형 포털사이트 메인.
[‘서한율이 만든 부적’ 가짜 미끼로 아이돌들에게 사기… 진짜 서한율에게 덜미]
[연예기획사와 학교를 돌며 청소년 심리 상담을 했던 각성자 양병근이 ‘내가 있는 종교 공부 모임에 나오면 서한율이 만든 보호 부적을 받을 수 있다’라며 평소 안면이 있던 아이돌들에게 접근해 능력으로 현혹, 금품을 갈취한 사기 혐의로 붙잡혔다.
(사진)
양병근은 동료 연예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찾아간 서한율에게 덜미가 잡혀 각성자 관리과에 넘겨졌으며, 피해 금액은 적게는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며 피해자 중엔 유명한 인기 아이돌도 포함되었다고 전해진다.]
-유명한 인기 아이돌이면 서한율이랑 연락할 수 있었을 텐데 진짠지 확인도 안 하고 넘어간 거?
ㄴ인기 아이돌이라고 서로 다 친하진 않아요.
ㄴ미끼만 그거고 능력으로 홀렸다잖아. 기사 좀 똑바로 읽어라
-수천만 원ㄷㄷㄷ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이돌한테 서한율 이름 팔면서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한 거?
ㄴ서한율 관심받으려고 그랬나 보죠. 아니면 서한율도 홀릴 수 있다고 자신했거나
-서한율까지 홀릴 수 있었으면 인생 존나 잭팟 터졌을 텐데 안 통했나 봄ㅋㅋㅋㅋ
-각성 능력으로 범죄 저지르면 실명이랑 얼굴 전부 까겠다더니 진짜 깠네ㄷㄷ 잘 가라
인기 걸그룹 퍼플아워 숙소.
각성자 관리과에서 온 연락, 그리고 기사를 본 루아는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의 각성 능력에 홀렸던 거라고? 아냐, 그럴 리 없어. 선생님의 말씀이 나한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데. 뭔가 잘못된 거야. 정말로 능력으로 홀린 거였다면 지금쯤 풀려야 하잖아.’
죄책감도 들었다.
‘내가 서한율만 만나지 않았다면. 아니, 은수한테 말하지만 않았어도 선생님이 잡혀갈 일은 없었을 텐데….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었어.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기사를 보니 자신이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 같았다. 그렇게 되면 회사에선 핸드폰부터 압수하고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터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현재 모든 사실을 아는 진은수의 입이 무겁다는 것. 아직 시간이 있었다.
황급히 외출 채비를 하고 나가자, 거실에 있던 송의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 가, 아침부터?”
“친구 집에.”
“언니 친구 없잖아. 무슨 소리….”
띠릭, 쿵.
“뭐야….”
송의연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닫히는 현관문 소리를 듣곤, 일어나서 직접 확인했다.
‘왜 저래? 꼭 바람 난 남친 잡으러 가는 것처럼. 아니, 지금은 사귀는 사람도 없지 않나?’
송의연은 이상한 마음이 들어 실장에게 연락했다.
* * *
“나쁜 놈이 접근하진 않을까, 동생의 안전을 위해 헬스장까지 동행해주는 형님들이 있다니. 고마운 줄 알거라, 막내야.”
“네에, 감사합니다.”
헬스장 건물 지하 주차장. 길우성은 대충 대답하면서 주차에 집중했다.
길우성의 차는 한참 동안 주차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이리 삐뚤, 저리 삐뚤거리다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함께 온 라이언이 한숨을 쉬며 안전띠를 풀었다.
“우성, 주차 연습 좀 해야겠다.”
“크흡. 무면허에게 그런 얘긴 듣고 싶지 않소.”
“에잇, 나도 면허를 따든가 해야지.”
세 사람은 잡담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운동 끝나면 뭐 먹을까?”
“단백질?”
그때였다.
위이이잉! 바깥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들렸다. 현재 이 지역 상공에 괴물이 나타났으니 주의하란 알림이었다. 민가가 있는 지역에선 섣불리 괴물을 공격하지 않지만, 괴물도 조심하란 법은 없으니.
움찔거리며 놀란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가서 살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설마 괴물이 하고많은 건물 중 여기로 오진 않….”
쿠웅! 묵직한 포격을 맞은 것처럼 건물이 통째로 흔들렸다. 쩌적, 쩌엉! 순식간에 벽과 기둥에 굵직한 균열이 생겼다.
“……?!”
덥석. 박가람은 길우성과 라이언의 손목을 잡았다.
“밖으로 도망쳐!”
그들은 주차장 출입구를 향해 달렸다. 삐잉, 삐잉! 막 주차장을 나가려던 차량에 반응한 출차 주의 신호가 시끄럽게 울렸다.
그러나 돌연.
빠아앙!
“……?!”
나가려던 차량이 크게 경적을 울리며 후진으로 내려왔다. 끼긱, 쿵. 벽을 긁으며 미끄러지듯 후진하던 차는 다른 차를 박으며 멈췄다.
운전자가 창을 내리며 그들에게 외쳤다.
“나가면 안 돼요! 들어가!”
밖에 뭐가 있기에?
그때였다. 밖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와 그 차 앞유리창에 꽂히듯 착지했다. 콰창! 운전자가 비명을 질렀다.
“흐아악!”
그것은 흐물거리는 막을 뒤집어쓴 괴물이었다. 크기는 다 큰 멧돼지 정도.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였다.
“괴물?!”
끼륵끼륵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굴러서 내려오거나, 막을 찢으며 네 발로 달려오는 괴물들. 이 와중에 천장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부슬부슬 먼지를 쏟아냈다.
“이런 미친!”
박가람은 경악하며 있는 힘껏 보호 마법, 바람의 마나로 만든 공격 마법을 동시에 펼쳤다. 그의 눈이 짙은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헬스장 오기 싫더라!”
콰앙. 또다시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한편 그 시각.
숙소에 있던 한율은 뉴스 속보를 보곤 눈을 부릅떴다.
[○○동 상공, 도망치던 괴물에서 새끼 수십 마리 낙하]
뉴스엔 길우성과 박가람, 라이언이 가기로 한 헬스장 건물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