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7화 (389/427)

내가 다 봤어

철퍽, 끼륵!

박가람과 길우성, 라이언에게 달려들던 괴물들이 공격 마법 그리고 푸른색을 띤 반투명 보호 마법에 부딪혀 나가떨어진다.

“가람이 형…?”

“가람….”

서로를 감싼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던 길우성과 라이언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길우성은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생각 없이 뱉었다.

“형, 각성자 맞잖아…!”

“말 걸지 마, 집중 안 돼!”

박가람은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그들에게 주의 준 차주에게 다가갔다. 길우성과 라이언도 보호 마법 구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맞춰 움직이다, 운전석 문을 두드렸다.

“나오세요, 선생님! 같이 도망쳐요!”

차주는 앞유리창에 내려앉은 괴물, 그들에게 달려들던 괴물들이 나가떨어지는 걸 보곤 운전석에서 내렸다.

쩌엉! 건물에서 돌이 깨지는 듯한 굉음이 크게 나며 흔들렸다. 끼기깅! 뒤틀린 배관이 더 깊게 구부러지고, 네 사람은 나선형 오르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쿠웅, 쿵! 무너진 천장 일부가 보호 마법을 강타하곤 떨어졌다. 파창! 그 충격으로 보호 마법에 금이 갔다.

‘안 돼!’

적어도 이곳에서 나갈 때까지 버텨야 한다. 박가람은 금이 간 부분에다 마력을 쏟아 복원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휘청!

“형!”

그 순간 힘이 풀린 다리가 꼬여서 쓰러질 뻔한 걸, 길우성과 라이언이 동시에 잡아 부축했다.

번쩍.

“……?!”

함께 도망치던 남성이 박가람을 어깨에 들쳐멨다. 그제야 길우성은 그 남성이 헬스장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헬스 트레이너란 걸 알아차렸다.

“갑시다!”

“네, 네!”

쿠릉, 쿠웅! 본격적으로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나 다행히 네 사람은 박가람의 마법 덕분에 무사히 밖으로 나왔다. 위이이잉! 안에서 들었을 때보다 더 날카롭고 시끄러운 경보음이 머리를 흔들었다.

“허억, 헉….”

“씨발, 이게 대체….”

파편이 튀지 않을 거리까지 도망치고 나서야 고개를 돌린 그들.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괴물이, 그들이 있던 건물과 옆 건물 사이에 반쯤 처박힌 채 몸부림치고 있었다. 놈의 몸에서 흐물거리는 막을 뒤집어쓴 작은 괴물들이 꾸역꾸역 떨어진다.

“저거 설마… 여기에서 새끼 치는 거야…?”

“웁.”

라이언은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에 입을 틀어막았다가 울리는 핸드폰을 꺼냈다. 경보음이 너무 시끄러워 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하뉼!”

-[무사해요?]

“응, 가람 덕에! 그런데 여기…!”

-[건물 밖이죠?]

“응!”

-[금방 도착하니까 안전한 곳으로 피해요. 절대 서로 떨어지면 안 돼요.]

“응! …하뉼 금방 온대! 안전한 곳으로….”

그 순간이었다.

스륵. 그들을 감싸고 있던 구체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길우성은 힘없이 축 처진 채 눈을 감은 박가람의 어깨를 잡았다.

“형! 가람이 형!”

한계가 올 때까지 마법을 무리하게 사용한 탓에 잠시 정신을 잃은 것이었으나, 길우성은 박가람에게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길우성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형! 눈 좀 떠봐! 형!”

“저기, 괴물!”

“……!”

몇몇 작은 괴물이 흐물거리는 막을 찢으며 이쪽으로 달려온다. 탐스러운 먹이를 발견한 것처럼 그것들이 붉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끼륵끽끽!

라이언은 어깨에 멘 가방을 풀어 손목에다 끈을 단단히 휘감았다.

“덤벼!”

퍼억. 일단 한 마리를 가방으로 후려쳐서 저지했다. 다음 괴물은 헬스 트레이너가 발로 걷어찼으며, 길우성은 바로 근처에 있던 카페의 장식용 의자를 집었다. 찰나, 카페에 있던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가게 안으로 도망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고개를 돌리며 단념했다. 카페 문은 이미 안에서 잠겨 있었다.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려 나서는 한 걸음도 없었다. 열어주는 사이, 다른 괴물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길우성은 악을 쓰며 괴물에게 의자를 휘둘렀다.

“저리 가, 이 새끼들아!”

하지만 의자가 괴물에 닿기 전, 그것들이 붕 뜨더니 저 멀리 땅에 처박혔다. 콰앙! 모체에서 떨어져 사방으로 흩어지던 다른 작은 괴물들 또한 서늘하면서도 거센 바람에 휩쓸려 올라갔다.

“서한…!”

길우성은 반가운 얼굴로 저 높은 곳에 나타난 서한율을 불렀다. 아니, 부르려 했다.

“……?!”

돌연 머리 위를 덮으며 점점 커지는 그림자.

“우성!”

카페 차양에서 튀어 오른 작은 괴물이 길우성을 덮쳤다. 화악. 동시에 길우성의 팀 반지에 새겨진 보호 마법이 발동, 가까이에 있던 모든 걸 감쌌다.

터엉. 새끼 괴물은 튕겨 나갔다.

“…형?”

박가람이 정신을 차린 걸까. 길우성은 반가운 얼굴로 박가람을 돌아보았으나, 그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누가? 서한율인가? 서한율은 다른 괴물들 잡는 중인데?

그렇게 어리둥절할 때.

“괜찮으십니까?!”

급히 멈춰 선 경찰차에서 경찰들이 내렸다.

잠시 후.

길우성과 라이언은 넋이 나간 얼굴로 절반이 내려앉은 건물을 바라보았다. 괴물이 처박혔던 곳은 완전히 박살 나 내부가 환히 보였다. 5층 헬스장에선 묵직한 운동기구가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만 같다.

“관장님이랑 안에 있던 사람들 괜찮을까? 다들 무사히 구조돼야 할 텐데….”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박가람이 다가와 두 사람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는 구급차가 도착할 때 즈음 정신을 차렸다.

거리엔 경찰과 군인, 소방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 사람과 함께 건물에서 탈출한 헬스 트레이너는, 조금 전 서로 덕분에 살았다며 인사와 연락처를 교환하곤 헤어졌다.

사뿐. 괴물을 처리하고 온 한율이 그들 앞에 착지했다.

“차는 어디에 있어요?”

길우성은 멍한 얼굴로 무너진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지하 주차장….”

한율은 길우성의 어깨를 두드리곤 박가람에게 말했다.

“유찬이 형이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니까, 도착하면 같이 차 타고 숙소로 돌아가요.”

“서한율 넌?”

“전 구조 작업 좀 돕다가 가려고요.”

“우리도 도울래.”

어어어! 구조 작업을 막 시작하려던 사람들이 단체로 비명을 질렀다. 쩌어억.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건물의 다른 축이 불쾌한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한율은 그쪽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후웅! 뒤틀린 채 떨어지려던 건물 파편이 허공에서 멈췄다.

와아아…. 사람들이 감탄하며 한율을 바라보았다.

한율은 길우성에게 단호히 말했다.

“어, 안 돼. 오히려 걸리적거려.”

“네….”

“이 부근은 곧 통제될 테니까, 좀 떨어진 카페 같은 곳에 들어가서 유찬이 형 기다려요. 아직 잡히지 않은 새끼 괴물들 조심하고요.”

이번엔 박가람과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넵.”

* * *

이날 오전에 벌어진 일은 TV 뉴스 속보로, 그리고 각종 인터넷 매체에 도배되었다. 게이트 방어선과 통제 구역 범위 축소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벌어진 일이라 사람들의 충격이 컸다.

여기에 어스래빗 멤버 세 명이 무너진 건물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는 것, 서한율이 극적으로 나타나 상황을 정리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더 화제가 되었다.

[길우성도 각성함?]

너튜브와 SNS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찍은 영상이 하나둘 올라오고, 그로 인해 오해가 섞인 루머도 퍼졌다.

[아무리 봐도 서한율 결계랑 흡사한데?]

길우성의 머리를 덮치려던 새끼 괴물이, 반투명한 무언가에 튕겨 나가는 영상 때문이었다.

[길우성도 비슷한 능력 각성했으면 대박 아님?]

그러나 이 오해는 길우성이 SNS에 글을 올리며 금세 풀렸다.

[(사진) 부디 모두 무사히 구조되길 바랍니다. 도움 되지 못해서 죄송해요... #나도각성했었다면]

자극을 좇는 인터넷 여론은 금세 다른 곳으로 초점을 옮겼다.

-네 사람이 괴물들한테 공격당하는 거 멀뚱멀뚱 보거나 촬영하던 방관자들 대체 뭐임?

-길우성이 의자로 괴물이 아니라 그 카페 문을 박살 냈으면 사이다였을 텐데

-길우성이 각성했든 안 했든, 한 명은 거의 기절해서 어깨에 들쳐진 상탠데 아무도 도와줄 생각을 안 했다는 게ㅋㅋㅋ

ㄴ우리나라 시민의식 ㅈ된 지 오래임. 대피소에서도 허구한 날 절도 사건 벌어지고 그 안에서도 사기 치고 대환장 파티 벌어지는데 무슨ㅋㅋ

ㄴ왜 그런지 앎? 시민의식 훌륭하고 용감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이미 게이트 방어선이나 복구 작업, 위험한 곳 자진해서 순찰 다니느라 바쁘거든. 나머지는 우리처럼 안전한 곳에서 입만 나불대는 식충이들뿐이라 그래

-생각해 보니 늘 위험한 일은 하는 사람만 하고, 나머지는 멀리서 방관하고 보호받는 게 마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굴고 있단 생각 들지 않음?

ㄴㅇㅇ

ㄴ그러라고 세금 내는 거 아님?

ㄴ서한율이 언제부터 세금 받는 공무원이었지?

ㄴ너 군인 월급 얼만지는 아냐? ㅋㅋㅋㅋ

ㄴ오히려 서한율은 재산이랑 수입 많다고 세금 존나 많이 뜯기고 있을 텐데욬ㅋㅋㅋㅋ

ㄴ다른 어스래빗 멤버들도 세금 적잖이 뜯기고 있는데 기부 많이 하잖아ㅋㅋㅋ

-아니 그러니까 길우성이 아니면 누가 보호 결계 만든 거냐고

ㄴ서한율이 부적 만들어줬겠지

ㄴ그거 가짜라고 기사 떴잖아 멍청아

ㄴ사기꾼이 미끼로 쓴 게 가짜지, 서한율이 그런 부적 못 만든다는 소린 어디에도 없었잖아 멍청아

ㄴ아

어스래빗 숙소.

길우성은 말없이 박가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

“…막내야. 나 조금 전 일 때문에 많이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은데요.”

“그럼 내일 말해줘. 나, 형한테 묻고 싶은 게 참 많아.”

“엉, 그래.”

길우성은 방을 완전히 나갈 때까지 박가람을 수상쩍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문을 닫았다. 후우. 박가람은 한숨을 내쉬곤, 서한율에게 지하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핑곗거리를 대신 준비해달라는 톡을 보냈다.

‘라이언까지 집요하게 물어보지 않아 다행인 건가?’

라이언은 조유찬의 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숙소에 도착한 뒤에도 몸은 괜찮냐고 물어본 것 외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쩌면, 길우성이 계속 박가람을 노골적으로 살펴봐서 그런 건지도.

‘어쨌든 좀 쉬자. 진짜 피곤하다….’

풀썩. 박가람은 옷만 갈아입고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는 금세 깊은 잠이 들었다.

“가람….”

똑똑. 노크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던 라이언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나?’

그러나 라이언은 망설이다가 살금살금 들어왔다. 혹시 조금 전처럼 신비한 힘을 썼다가 정신을 잃은 것처럼 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박가람이 제대로 숨을 쉬는지 확인하곤 이불을 잘 덮어주었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온 라이언은 2층 창문 앞에 선 길우성에게 다가갔다. 길우성은 너튜브에서 ‘각성 경험담’ 영상을 검색하고 있었다.

“우성.”

“엉?”

“하뉼처럼 때가 되면 알려줄 거야. 보채지 말자.”

“나도 그러곤 싶은데.”

길우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비슷한 일이 생겨서 가람이 형 정신 잃으면 그땐 어떡해. 적어도 뭐가 원인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좋은지는 알아야 하잖아.”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그리고 내 뒤통수치려던 괴물이 튕겨 나간 것도 신경 쓰이고. 으음… 아니다. 이건 왠지 써한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우성도 방에 들어가서 쉬어. 인터넷 그만 보고.”

“엉.”

한편, 무너진 건물에서 구조된 사람들을 둘러본 한율은 나지막하게 한숨 쉬었다. 한쪽엔 그가 치운 건물 잔해가 쌓여 있었다.

가끔 우연으로 보기 힘든 우연이 일어난다지만, 하필이면 세 사람이 있던 건물에 괴물이 처박히다니. 참 운도 지지리 없지.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정말 아는 사이라니까요?”

“…아!”

한율은 작은 소란이 일어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군인이 친 접근금지선을 넘어온 누군가가 한율에게 곧장 다가왔다. 꼭 아이돌처럼 얼굴이 작고 몸도 가냘픈… 게 아니라, 정말로 아이돌이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한율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걸그룹 퍼플아워의 리더 루아.

“바쁘지 않으면 잠깐 얘기 좀 해요, 한율 씨.”

바쁜 일을 다 끝낸 걸 확인하고 온 것 같아,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 너머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쪽으로 카메라 초점을 맞춘다.

“네. 저기 차로 가서 이야기해요.”

두 사람은 양해를 구해 경찰차에 탔다.

탁. 문을 닫자마자 루아가 말했다.

“나 다 봤어요. 가람 씨도 한율 씨처럼 눈이 파래진 채 능력 쓰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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