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율 멘탈은 괜찮나
서울 강서구 상공에 뜬 게이트 앞.
한율은 각성자 3백 명의 능력에서 추출한 마력으로 결계를 만들었다. 그 중심엔 마력을 봉인한 토끼 인형이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사지를 펼쳤다. 여기에 지난번처럼 괴물의 생명력을 흡수, 마력으로 변환하는 마법까지 더해 연결했다.
찰칵.
결계 완성 후 토끼 인형과 셀카 한 장. 사진엔 막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물들도 함께 찍혔다.
[각성자 3백 분의 소중한 힘이 담긴 토끼 인형으로 결계 실험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므로 잠시 옆에서 지켜볼 예정입니다. #내가만든토끼인형]
SNS에 올리자 곧바로 폭발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토끼 인형 불쌍해ㅠㅠ
-[뒤에 괴물!!!]
-[왜 하필 토끼 인형]
-[실험은 원래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게 아니었나? 그의 대범함은 언제 봐도 참 놀랍다.]
ㄴ[어차피 남들이 봐도 절대 못 따라 하는 실험이라?☺☺]
ㄴ[각성자들의 힘을 어떻게 토끼 인형에 넣었는지부터 의문인데요?]
-잠깐만, 해시태그 왜 ‘내가 만든 토끼 인형’인데???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인형! 서한율이 직접 만든 건가요?]
ㄴ어쩐지 인형이 뭔가.. 뭔가 좀 뭔가하게 생겼음ㅋㅋㅋㅋㅋ
-인형도 직접 만들고. 우리 서한율 씨 못하는 게 뭐죠?
ㄴ[바느질이요.]
ㄴ그린라이브 (링크) 보세요. 바느질하다가 수시로 본인 손가락 찌름.
ㄴ글씨도 본인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해독이 필요한 악필...
ㄴ괴물도 한번에 때려잡는 서한율이 혼자 끙끙거리면서 인형 만드는 거 상상하니까 존나 귀엽다.
-[한율 사랑해♡♡♡♡♡]
한율은 결계 옆에서 댓글로 지루함을 달랬다. 그동안 결계의 마법진에 걸린 괴물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하나둘 재로 변했다. 잠시 고개를 돌려서 살폈다.
“…하.”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의 마력만으로 만들었을 때와 달리 게이트의 기운이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 한율이 결계를 만들 때 사용한 마력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양인데도 잘 버티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에게서 추출한 마력과는 조금 이질적인 기운이 풍긴다 했더니.’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
동시에 한율의 머릿속에는, 각성자를 제물 삼아 만들 수 있는 대규모 결계의 설계도가 그려졌다.
‘다음엔 각성자를 데리고 직접 실험해봐야겠어.’
해가 뜰 무렵.
결계가 깨지고, 한율은 유유히 헬기를 타고 본부로 돌아왔다. 정상욱 중위가 초췌해진 안색으로 마중 나왔다.
“수고했습니다, 한율 씨.”
“퇴근 안 하고 밤새신 거예요?”
“그게….”
정상욱은 간밤에 각성자 수용소에 갇혔던 한타오, 김대현, 양병근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권한정을 내세워 곧바로 추적에 들어갔으나, 도중에 괴물들과 맞닥뜨려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놓쳤다고.
“다행히 양병근은 찾았지만, 한타오와 김대현은 아직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조금 전 권한정이 탈진으로 쓰러져서….”
“김대현은 눈이 멀어서 도망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한타오가 우리 군인을 조종 중입니다. 그를 이용해 옮기는 모양인데.”
“이용 가치가 있다고 여긴 모양이네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드론까지 총동원해 수색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괴물들 때문에 쉽지 않네요. 수색견도 못 풀고, CCTV도 제대로 작동되는 게 거의 없고요.”
정상욱이 길게 한숨 쉬었다. 한율은 환해진 하늘, 게이트에서 떨어지는 크고 작은 괴물들을 보았다.
“하지만 괴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건 놈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방어선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거예요.”
“그러길 바라야죠. 어쨌든, 한율 씨는 이만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죽는 게 더 이로운 실험체가 제 발로 탈출했다는 소식에 고분고분 돌아갈 마음이 사라졌으나, 한율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수고하세요.”
잠시 후. 까마귀 수십 마리가 게이트 방어선 상공을 매섭게 가로질렀다.
* * *
어스래빗 숙소.
포털사이트 메인에 뜬 기사를 보며 강보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살인미수 각성자 김대현‧한타오 아직도 행방 오리무중]
“관상은 과학이라더니. 둘 다 인상 참 더럽다.”
옆에 쭈그려 앉은 길우성이 멍하니 대답했다. 김대현과 한타오의 사진도 보지 않고.
“응, 그렇네….”
“우성아, 보험사에서 자차 처리해준다고 그랬잖아. 한율이도 픽업트럭 저렴하게 넘겨주겠다고 했고. 그러니 기운 내.”
“엉…. 그래야 하는데, 생각할수록 뭔가 허무해져서. 내 인생 첫 차였는데….”
“차도 핸드폰이랑 비슷한 소모품이야. 물건에 마음 주지 마.”
“차가 없는 남석 씨에겐 듣기 싫소.”
“내가 안 사는 거지, 못 사는 거냐? 솔직히 이런 시기에 비싼 차 사는 바보가 어디 있냐? 언제 어디에서 미니 게이트나 괴물들, 전투 파편이 날아올지 모르는데. 도로 사정 안 좋은 데도 많고.”
“바보?”
라이언이 활짝 웃으며 차남석의 얼굴에 사과패드를 들이밀었다.
“바보라고 전해준다?”
사과패드에는 [아이돌 각성자 진은수, 고가의 외제차 구입!] 기사가 떠 있었다. 잠시 멈칫했던 차남석은 사과패드를 옆으로 밀었다.
“전할 수나 있고?”
“왜 못 해? 리더나 우성 통하면 되는데?”
“1절만 하자. 어?”
“진짜로 전할까 봐 약해진 남석 씨.”
“한율이, 몇 시에 나온댔지?”
“8시 정각에 나올 것 같진 않아.”
“그냥 미리 채널 바꿔둘게.”
유호가 TV 채널을 KBC로 바꿨다. 아직 서한율이 나오지 않은 걸 확인한 멤버들은 다시 각자 딴짓했다. 박가람은 조금 전 밥만 먹고 방에 들어가 자는 중이라 조용했다. 웬일인지 달냥도 박가람의 침대에 누웠고.
8시 30분이 되자 뉴스 인터뷰 코너에 서한율이 나왔다. 원래도 방송 체질이었으나, 뉴스 세 번째 출연이라 그런지 모든 게 차분하고 자연스러웠다.
오늘 그가 뉴스에 나온 건, 어젯밤 게이트에서 한 실험 결과를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각성자 3백 분의 힘을 사용해 결계를 만들었지만, 유지하는 데에 부족함을 느껴 괴물들의 생체 에너지도 이용했습니다.]
[듣기만 해선 감이 잘 잡히지 않는데요.]
앵커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한율 씨가 바디캠으로 촬영한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소 잔인하고 충격적인 장면이 포함되었으니 어린이와 노약자, 임산부는 시청에 주의해주십시오.]
어젯밤, 한율이 SNS에 올린 사진 속 토끼 인형이 허공에 뜬다. 그 인형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결계. 화면에 노이즈가 심하게 생겼다.
멤버들은 TV 앞에 더 가까이 모여 앉아 영상에 집중했다.
“화질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여기나 회사에 만들어진 것보다 더 복잡한 것 같은데?”
“쉿.”
게이트에서 나오던 괴물들이 결계에 막혀 당황해한다. 이내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더니, 초점을 잃어가는 눈을 멍하니 뜬 채 주둥이를 끔뻑거리는 괴물들.
그 순간 영상이 모자이크 처리된다.
“……!”
“왓 더….”
결계 안엔 어느새 괴물들이 사라지고 재만 나풀거렸다. 시커먼 게이트를 감싼 결계의 푸른빛만이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다시 게이트에서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것들 또한 이내 재만 남기고 사라졌다.
영상 속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가 되는 대신 결계에 부딪히며 쌓이는 괴물의 숫자가 늘어나고, 결계의 빛은 점점 약해지다 아침이 올 때 즈음 산산이 깨졌다.
“…….”
“…….”
영상이 끝났다. 거실엔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미 한율의 실험을 알고 있던 유호는 충격받은 듯한 동생들의 얼굴을 살피곤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평화로운 일상을 박살 낸 게이트 괴물들. 마땅히 물리쳐야 할 것들임엔 분명하나, 생명이었다. 그렇기에 잔인하단 생각이 들어도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복잡한 기분일 터다.
차남석이 심각한 얼굴로 먼저 입을 뗐다.
“괴물의 생체 에너지를 이용한다던 게….”
“이거… 방송에 내보내도 괜찮은 거야? 아니, 이미 생방송으로 나왔지만….”
앵커의 모습이 나오고, 그가 서한율을 바라본다.
[다소 충격적인데요. 이번 실험, 정말 한율 씨의 힘은 들어가지 않은 겁니까?]
[네, 저는 결계의 틀만 만들었습니다.]
[그 말씀은, 한율 씨가 틀만 만들면 각성자들이 거기에 힘을 모아 결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까?]
서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지구를 침략한 괴물들을 역으로 이용해 결계를 유지하도록 한 거죠.]
[각성자들의 힘으로 결계를 만들 순 있지만, 유지까진 힘들다는 거군요.]
[실험을 더 진행해야 알 수 있겠지만, 각성자 천 명이 모여야 서너 시간 겨우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됩니다. 한국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물들의 평균 개체 수와 힘을 기준으로요.]
[서너 시간…. 괴물들을 이용하면 영상처럼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고요?]
[네.]
[음…. 현재 이 뉴스를 보는 시청자 중엔 생명 윤리에 관한 문제로 우려를 표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실험을 진행한 한율 씨 생각은 어떠십니까?]
단독으로 잡히는 서한율의 씁쓸한 표정. 그가 오히려 앵커에게 질문을 던진다.
[잔인하다고 생각되시나요?]
[아…. 어렵네요.]
서한율이 카메라를 향해 말한다.
[저와 각성자 연구소는 국민 여러분의 뜻에 따를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괴물과 목숨 걸고 싸우는 수많은 장병 또한 생각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인터뷰가 끝났다.
라이언이 사과패드를 들며 중얼거렸다.
“이제 사람들 싸움 나겠다.”
정말로 인터넷에선 벌써 서한율이 한 실험을 두고 불이 붙은 상태였다.
-아무리 괴물이 증오스러워도 그걸 연료로 쓴다는 발상 자체가 난 너무 무섭다.
ㄴ방구석에서 안전하게 TV만 보고 있으니 체감이 안 되는 거지. 우리나라야 서한율이 초반에 지켜줬으니까 피해를 덜 봤지만, 군사력 없는 나라는 괴물한테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땅굴까지 파고, 그 땅굴에서 땅 괴물한테 잡아 먹히는 게 일상임.
-이건 순수한 호기심인데.. 각성자 능력으로 얻은 힘 말고 각성자 자체를 괴물처럼 이용하면 어떻게 되는 거임?
ㄴ그래, 뇌가 존나게 순수한 친구구나. 10분만 숨 좀 참아주겠니?
ㄴ나도 이 생각 들기는 했는데, 괴물 목숨이랑 사람 목숨이랑 같냐?
-당연히 찬성입니다. 살기 위해 괴물을 물리치면서, 괴물을 결계 유지 이용에 반대하는 건 완전히 모순 아닌가요?
ㄴ2222
ㄴ3333
-서한율 멘탈도 참 경이로운 것 같다.
ㄴ얘라고 하고 싶었겠냐? 그런데 서한율 몸이 하난데 어떡함? 지구에 생긴 게이트가 몇 갠데
-인간 잡아먹는 괴물인데 불쌍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정신 병자지ㅋㅋㅋ 사체도 안 남고 깔끔하네
ㄴㄹㅇ 괴물 사체에서 나는 냄새랑 오염물질 장난 아님. 반대하는 것들은 현장에 한 번이라도 가봐야 본인 대가리가 얼마나 꽃밭이었는지 깨달을걸
이건우가 무거운 얼굴로 한숨 쉬었다.
“그래도 결국… 괴물의 생체 에너지를 이용하는 데에 찬성하는 쪽이 이기겠지. 괴물 때문에 지구가 멸망하게 생긴 거니까.”
“괴물만으론 결계를 못 만드는 걸까요? 각성자들의 힘보다 더 쓸모 있었단 소리로 들리던데요.”
차남석이 유호를 보며 물었다. 유호는 ‘차남석이 눈치챈 것 같다’라는 박가람의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미 해보지 않았을까?”
“우성아,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아?”
강보배는 길우성을 걱정스럽게 살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길우성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웅얼거렸다.
“엉? 아…. 응. 조금, 속이… 음, 안 좋네….”
그러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세운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으며 길우성이 중얼거렸다.
“써한 이 자식 멘탈은 괜찮나…. 무슨 티를 내야 알지, 진짜….”
속상해하며 친구를 걱정하는 모습에, 강보배와 유호는 천천히 길우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편 그 시각, 생방송 뉴스 인터뷰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간 한율은 이해원에게 톡을 보냈다.
[준비 끝났어요?]
이해원이 사진을 전송했다.
커다란 캐리어 가방 두 개.
-[여기 넣어뒀어.]
몇 시간 전, 까마귀들의 도움으로 한타오와 김대현을 찾았다. 한율은 그들을 기절시키곤 적당한 곳에 꽁꽁 묶어서 가뒀다.
오늘 밤, 게이트 앞에서 놈들을 가지고 실험할 계획이었다.
양심에 거리낌 따윈 없었다.
[네, 금방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