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0화 (392/427)

서한율을 동생으로 둔 덕에

28일 아침, 포털사이트 메인.

[수백만 명 구했더니… 오히려 비난하는 대한민국]

[2021년 6월 12일, 서울시 강서구 상공에 게이트가 열렸다. 이날 아이돌 서한율은 어스래빗 컴백 무대를 마치자마자…(중략).

모두 4개월도 안 되는 사이 서한율이 한 활약이다. 최강의 각성자란 타이틀을 짊어졌다는 이유로 그는 자신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도왔고, 각성자 연구소와 협력해 강한 결계를 만들 방법을 고안하며 실험에 착수했다.

그러나 지난 25일, 서한율이 실험 내용과 결과를 발표하자 수십여 개의 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실험이 비윤리적이라는 이유였다.

각성자들이 자원해 진행한 실험은 그들 몸에 전혀 해가 되지 않았다. 이는 각성자 연구소에서 발표한 사실이다. 하지만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서한율과 각성자 연구소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생체 실험 가능성’을 먼저 언급하며 실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직 인간을 공격하지 않은 무방비한 괴물을 흔적조차 없이 잔혹하게 죽였다며 서한율을 비난하고, 한 단체는 서한율을 동물 학대 혐의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에 서한율은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으나, 수많은 네티즌은 그를 비난하는 단체에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이 지금 생명 윤리를 부르짖을 수 있는 게,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서 목숨 걸고 활약하는 스물한 살 아이돌, 그 또래 청년들의 희생 덕분이란 걸 모르는 거냐고.]

-동물 학대 혐의요? 괴물이 언제부터 동물이었지? 괴물은 괴물 아님?

-존나 골 때린다ㅋㅋㅋ 듣지도 보지도 못한ㅋㅋㅋ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민 단체도 섞여 있음ㅋㅋㅋ

ㄴ수많은 사람을 구했다고 죄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ㄴ무슨 죄요? 괴물살해죄요? 괴물학대죄?

ㄴ그럼 군도 단체로 동물학대범으로 고발당하는 거?

ㄴ선생님, 왜 사람은 괴물로부터 보호 안 해주시나요? 넌 사람 새끼 아니세요?

-서한율이 프로 아이돌이라 방긋방긋 웃고 다니니까 진짜 만만하게 보는 사람 많네ㅋㅋ 실상은 일반인들은 만날 수 없는 천상계급 사람인데

-좀 잔인하다란 의견이 나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아직 진행하지도 않은 생체 실험 먼저 언급하고 동물학대죄 고발까지ㅋ 어메이징 대한민국ㅋ

-한율아, 너 입대 전까지 그냥 본업만 해라. 입대해도 게이트 방어선 말고 한적한 곳으로 가고. 뭐 이딴 욕까지 들으면서 고생하냐. 넌 할 만큼 했다.

ㄴ그러면 각성자라면 마땅히 사람 도울 의무 있다고 빽빽거리면서 또 ㅈ1ㄹ할 걸요

-서한율 사랑해♡♡♡♡♡

“고발이라는 쓰라린 일을 겪었음에도 친구의 생일을 챙겨주는 의리 있는 사나이 서한율 님, 감사합니다.”

운전석에 앉은 길우성이 헤실헤실 웃으며 핸들을 잡았다. 불과 몇 분 전, 이 픽업트럭의 소유자가 한율에서 그로 바뀐 까닭이었다.

한율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래. 고발당한 거 되짚어줘서 고맙다.”

“회사 들렀다가 곧장 부모님 댁으로 갈 거야? 어머님께 삼지창 갖다 드리러?”

어제,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두 곳에서 선물로 보낸 차 두 대가 함께 도착했다. 숙소가 아닌 WB래빗 엔터로.

“어. 계속 회사 주차장 자리 차지하게 둘 순 없잖아.”

“페라땡은?”

“그건 오늘 돌아온 후나 내일 숙소로 옮기려고.”

WB래빗 엔터 앞에 도착. 연신 즐거운 얼굴로 떠들던 길우성의 얼굴이 점차 굳었다. 회사 앞은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 그들과 한바탕 다투는 팬들, 중간에 끼어서 모두 해산시키려 쩔쩔매는 경찰들로 난리였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논쟁이 이곳 골목에서도 크게 울렸다.

“서한율은 비윤리적인 실험을 당장 멈춰라!”

“그게 싫으면 선생님이 가서 평화롭게 해결하시든가요!”

“찾다 보면 더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려운 길이 될지라도요! 믿습니다, 서한율 님!”

“괴물들 때문에 당장 사람이 죽어가는데 무슨 올바른 방향이요! 그 말, 게이트 방어선에서 싸우다 다친 군인들한테, 죽은 군인 유가족한테도 할 수 있어요?!”

“다 때려치워! 이런 사람들까지 지켜줄 필요 없어!”

“각성자는 작금의 재앙을 이길 수 있도록 하늘이 내려준…!”

길우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인터넷에서 누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저 사람들한테 게이트 방어선 근처에서 봉사활동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뒷자리에 내내 조용히 앉아있던 차남석이 입을 열었다.

“잘도 하겠다. 시켜도 온갖 핑계 대면서 빠져나갈걸? 저런 사람들, 통제 해제된 지역 복구 작업에 일손이랑 물자 부족하다고 도움 호소하는데도, 괜히 가서 괴물이랑 마주칠까 봐, 귀찮고 위험하니까 이 악물고 눈길 한번 안 주잖아. 그러면서 본인들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라고 떼나 쓰고.”

“신랄해진 남석 씨.”

“지금까지 서한율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옆에서 뻔히 다 봤는데, 안 신랄해지고 배기겠냐. 야, 서한율. 너 앞으로 기부하지 마. 저런 사람들 가족의 친척 누구한테도 주머니에 한 푼 들어가는 꼴 못 보겠다.”

차는 지하 주차장 입구에 잠시 멈췄다. 주차장은 수상한 외부인의 침입 시도가 부쩍 늘어나, 건장한 경비원 두 명이 일일이 운전자와 동승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율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대답했다.

“생각해 볼게요.”

길우성이 주차하는 동안 먼저 내린 한율은 차남석과 함께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차남석은 연습실이 있는 지하로, 한율은 2층으로.

사무실에서 오 팀장과 만난 한율은 시민 단체의 고발 건, 악플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법적 대응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스케줄에 관해서도.

“tv Mu에서 제안이 왔어.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서 WB래빗 엔터 수련회 예능을 찍고 싶다고. 아직 한참 남았지만, 한율이 너한텐 미리 말해둬야 할 것 같아서.”

“WB래빗 엔터 수련회면 회사에 소속된 사람 전부 나오는 거네요?”

“그렇지?”

“저야 괜찮지만….”

오 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극성팬들이 또 애들한테 해코지할까 봐 걱정돼?”

“네. 지금도….”

한율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저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회사 사람들이 피해당하고 있잖아요.”

“잘못 없는 사람이 위축될 필요는 없어, 한율아.”

오 팀장이 한율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율이 넌, 널 믿고 지지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만 잊지 마. 그리고 애먼 애들한테 테러하는 녀석도 많이 줄었어. 너희 외숙이 속한 로펌에도 기가 막히게 일 잘하는 분들 많더라.”

“위로 감사합니다.”

“그럼 슬슬 대본도.”

“내후년 즈음에 보면 안 될까요.”

“어째 점점 더 멀어지는구나.”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온 한율은 모친에게 넘길 차에 올랐다. 글로브박스에 들어있는 차량 사용설명서를 대충 훑고 시동을 걸었을 때, 스타믹스 JE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네, 선배님.”

-[나 성공했다.]

“뭘요?”

JE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머그잔 1mm 직전까지 담은 물, 두 손위에 띄운 채 한 방울도 안 흘리고 3층까지 계단 올라왔다고.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축하해요.”

-[다 선생 잘 만난 덕분이지. 지금 뭐 하냐?]

“본가에 다녀오려고요.”

-[오늘 해원이가 모처럼 쉬는 날이라길래 오래간만에 마법 학교 인원 다 모여서 밥이라도 먹으면 어떨까 했는데.]

“오늘 내로 돌아오기는 하는데, 길우성 생일이라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저녁에 생일파티 라이브 방송해야 하거든요.”

-[어쩔 수 없지.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JE의 입대 날짜는 다음 주인 10월 5일. 한율과 드라마 <별☆일없는 집>에 주연으로 출연한 지헌도 함께 갈 예정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은 어때요?”

-[낮이면 괜찮아. 저녁엔 약속 있거든.]

“네, 그럼 토요일에 봐요.”

-[어. 운전 조심해라. 못난이들 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네.”

마지막 말을 하려고 일부러 전화한 것 같은 느낌. 한율은 저도 모르게 작게 웃곤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본가에 도착한 건 정오가 조금 지날 무렵이었다. 부친이 살짝 입을 벌린 채 차 여기저기를 살폈다.

“이게 얼마짜리라고?”

“국내 출시 가격은 2억 4천 조금 못 미친대요. 고맙게도 국내 판매사에서 블랙박스도 달아주고 틴팅 작업까지 다 해주셨더라고요.”

그러나 차를 받게 된 모친은 썩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이렇게 좋은 차엔 고급 휘발유를 넣어야 할 텐데…. 여보, 이 근처에 고급 휘발유 취급하는 주유소가 있었나요?”

“어…. 적어도 우리 동네 근처에선 못 본 것 같은데?”

모친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도로 가져가렴, 한율아. 원래 네가 받은 선물이잖아. 지금 타는 차도 멀쩡한데 아깝게 왜 바꿔.”

“일반 휘발유 넣고 다니면 뭐 어때요. 이 차 보내준 회사에도 어머니께 드려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오히려 더 좋아하던데요?”

부친이 눈치를 살피며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그럼 내가….”

그의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모친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따뜻한 시선으로 한율을 바라보며 머리와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 아들 얼굴 한 번 더 보는 거. 엄마한텐 그게 더 값진 선물이야.”

“…….”

슥. 부친이 조용히 손을 내렸다.

결국 한율이 이 차를 몰고, 기존에 타던 SUV는 마침 중고차를 알아보던 사촌 서한림에게 저렴하게 팔기로 했다. 연락을 받은 서한림은 기뻐하며 바로 달려왔다.

“나 정말 차가 필요했거든. 고양이 데리고 동물병원 갈 때마다 택시 타는 것도 번거롭고, 기사님한테 고양이 울음소리로 고막 테러하는 것도 죄송스럽고, 지방이라 어디 다닐 때도 불편하고. 그런데 나 면허 따고 운전 거의 안 해서 장롱면허나 다름없는데 괜찮아? 하루아침에 여기저기 박아버릴 수도 있어.”

본가에서 점심을 먹고 서한림과 함께 서울로 가는 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늘 바로 차를 넘겨주기로 했다.

“넘기면 누나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수리비도 누나가 내지 내가 내나요.”

“서한율을 사촌 동생으로 둔 덕에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린다.”

“가는 동안 보험 가입부터 하는 게 어때요?”

“그래, 그래.”

길우성에게 픽업트럭을 넘기러 왔던 구청에 다시 도착. 주차장에는 한율의 연락을 받은 유호가 먼저 차를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수석에선 토요일에 보기로 한 JE가 머쓱한 얼굴로 내렸다.

“하이. 심심해서 따라왔다.”

“아직도 머리카락이.”

“야,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거든? 그런데 너희 사촌 누나분은….”

JE와 유호가 두리번거렸다. 한율도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같이 내렸던 서한림이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업무 마감 시간에 걸릴까 봐 먼저 들어갔나 보네요. 어쨌든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같이 숙소로 가요.”

“응. 그럼 우린 근처 산책이라도 하고 있을게.”

“네.”

서한림은 건물 입구 바로 안쪽 옆에 숨어있었다. 두 손을 꼭 모은 채 긴장한 얼굴로 가만히.

“뭐해요, 누나?”

“갔어?”

“호 형이랑 선배님이요?”

“응.”

“근처 산책하러 가기는 했는데.”

후우…. 서한림이 안심하는 얼굴로 깊게 심호흡했다. 그제야 한율은 그녀가 스타믹스 팬이었단 사실을 떠올렸다.

“현실에 치이면서 덕심도 사그라졌다면서요.”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니까 다시 확….”

확 붉어진 얼굴로 말하던 서한림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한율의 팔을 덥석 잡았다.

“빨리 가자. 업무 마감 시간 되겠다.”

“나중에 인사라도 나눠요.”

“나 심장 터지는 꼴 보고 싶어?!”

되돌아온 격한 반응. 한율은 서한림의 스타믹스 최애 멤버가 누구였는지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JE 앞에 선 성덕, 서한림의 심장은 다행히 터지지 않았다.

그날 저녁. 포털사이트 메인엔 이런 기사가 떴다.

[美 각성자 협회, 서한율 결계 실험 적극 참여 의사… “미국으로 와요, 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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