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1화 (393/427)

함부로 건들면 인생 X 된다

[(중략) 미국 각성자 협회의 이러한 러브콜은 최근 서한율에게 실험 중단을 요구, 더 나아가 비난하는 일부 국내 여론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라 알려진 미 해군 출신 JJ는 “지구의 평화를 위해, 전 인류와 조국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라며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꺼져. 안 줘.

ㄴ단호햌ㅋㅋㅋㅋ

-기레기들이 자꾸 기사를 자극적으로 써대서 정말로 사람들이 괴물 이용한 것 때문에 발광한다고 생각하는데, 논점은 괴물을 그런 식으로 썼다는 건 각성자 또한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단 가능성을 내비친 거고

ㄴ소패 위정자들이 그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면 결국 각성자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 형성할 수 있어서 그걸 경계하는 것임. 동물학대죄로 고발한 단체는 정말 미친 년놈들 무리고;; 완전히 다름.

ㄴ실제로 서한율 님 회사랑 집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 ‘괴물 이용하지 마라’가 아니라 ‘비윤리적인 실험하지 마라’라고 외치고 있음. 괴물 쳐죽이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다고;

ㄴ그럼 적어도 하지도 않은 일 가지고 비난은 말아야죠^^

ㄴ적어도 전 서한율 님 비난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해요.

ㄴ이미 여론 작업 들어간 것일지도 모름. 생체 실험으로 확대되는 걸 경계하는 사람들을 ‘괴물도 소중한 생명이야!’ 외치는 정병으로 몰아가서 묻어버리는 거지ㅋㅋㅋ

-내 주변에서 괴물 불쌍하다, 서한율 잔인하다 이러는 사람 한 명도 없는데, 인터넷 보면 그거 가지고 욕하는 애들 있어서 좀 놀라움.

ㄴ그거 대부분 서한율 안티들임. 무지성 억까.

-차라리 서한율 미국에 갔으면 좋겠다. 대체 우리나라가 지금껏 고생한 서한율한테 해준 게 대체 뭐임?

ㄴㄹㅇㅋㅋ

ㄴ이탈리아에선 서한율한테 고마움의 표시로 억대 차도 선물했다던데 우리나라는ㅋㅋㅋ

ㄴ이미 정부에서 서한율한테 보상금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국내 기업은 뇌물성으로 오해받을까 함부로 뭘 주지 못하는 거고요. 협찬은 전부 거절 중이고..

ㄴ관계자세요?

-어스래빗 재컴백했으면 좋겠다ㅠㅠ

저녁. 어스래빗 멤버들은 숙소에서 길우성의 생일파티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게이트 사태 이전처럼 마냥 밝은 분위기가 아닌, 소소하게 잡담하면서 웃는 분위기로.

-생일 선물로 차 저렴하게 넘긴 친구나, 여기에 그 차 사라고 돈 보태준 걸로 퉁친 형들이나ㅋㅋㅋ 다들 너무 쿨한 거 아니냐고

-♡♡♡♡♡춤톢 길우성 생일 축하해♡♡♡♡♡

-우성아 생일 축하한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헬스장 건물 붕괴 사건 당시 일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길우성을 덮치려던 괴물이 무언가에 튕겨 나간 일을 설명하면, 또 다른 말이 만들어지고 시끄러워지지 않겠냐 하여.

라방이 끝난 뒤. 뒷정리하며 라이언이 물었다.

“하뉼, 내일 몇 시에 나가?”

한율은 내일 각성자 연구소로 가서 다른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각성자의 능력에서 추출한 마력이 게이트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번엔 그 마력을 결계가 아닌 다른 마법에 사용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현재 인간으로 생체 실험하진 않을까 주시하는 눈이 많아, 당분간 각성자의 체내 마나까진 건들지 않을 참이었다.

음지에서 이미 한타오와 김대현으로 실험 중이기도 하고.

“새벽에 출발하려고요.”

“선물 받은 2인승 스포츠카 타고?”

라이언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 차 몰고 갈 생각이긴 한데, 형은 다음에 태워줄게요.”

라이언이 시무룩해졌다.

“응….”

다음 날 새벽.

한율은 어제 회사에서 숙소 주차장으로 옮긴 스포츠카에 탑승했다. 어제 잠깐 몰면서, 고속도로를 달릴 때의 승차감이 SUV보다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비싼 차라고 괜히 차고에 고이 모셔두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학생! 붙지 말고 떨어져요! 저 차 흠집 하나에 수리비 천만 단위야!”

차고 문이 열리자마자 결계 앞으로 모여들던 사람들이, 차를 확인하곤 화들짝 놀라며 거리를 두었다. 어떤 이는 ‘비윤리적 실험 안 하기로 약속!’이라고 크게 적힌 피켓이 차에 닿을까, 몸이 뒤로 휘청거릴 정도로 반대로 눕히듯 세웠다.

어쨌든 고가의 차는 그 자체로 방패막이였다. 한율은 평소보다 무난하게 숙소 앞을 빠져나왔다.

세종시에 도착했을 땐 8시가 될 무렵이었다. 일찍 문을 연 카페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고, 모자와 마스크를 썼는데도 그를 알아본 직원의 부탁으로 사진도 함께 찍었다.

“와, 이 차 뭐냐? 존나 쩐다.”

“야, 만지지 마. 함부로 건들면 인생 X 된다.”

“인터넷에 사진 올려서 검색해봤거든? 기본 5억. 풀옵션이면 6억 넘는대.”

“미친. 우리 집보다 비싸네.”

카페에서 나와보니, 가게 옆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앞에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알짱거리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월세 사는 카푸어 거겠지. 아니면 법인 소유거나. 그거 아냐? 우리나라 슈퍼카 10대 중 8대가 법인 소유라더라.”

“야, 그런 사람이 차 흠집에 더 예민하게 구는 거 알지? 지문 묻으니까 손대지 마.”

“그런데 우리 다 블박에 찍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블박 확인하고 존나 비웃겠다.”

게이트 방어선과 통제 구역 외 지역에선 정상 수업하는 학교가 많다더니, 인근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인 듯했다.

그들을 보자 계나리가 떠올랐다.

계나리가 다니는 학교는 통제 구역에 있었다. 교육청은 게이트 방어선과 통제 구역에 포함된 학교의 학생들이 안전한 지역의 학교에서 수업받을 수 있도록 조정했고, 고3인 계나리 또한 이번 주부터 양평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지난번엔 못 본 수능을 이번엔 보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두근하네요. 하하하. 하하, 하하하.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수능은 12월로 미뤄졌다던가.

우웅.

‘양반은 못 되네.’

한율은 계나리가 보낸 톡을 확인했다.

-[양평엔 언제 오세요?]

직접 만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걸까.

[오늘 각성자 연구소 일 끝내고 들를게.]

-[(이모티콘)]

‘Yes, Sir!’ 외치는 토끼 캐릭터 이모티콘. 한율은 핸드폰을 집어넣곤, 차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이만 차를 빼도 될까요?”

“헉, 넵! 타십시오!”

시동을 걸고 조심스레 도로에 합류했다. 근처에 서성거리던 학생 중 하나가 돌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친구의 팔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묻는 게 들렸다.

“야, 방금 서한율 아니었어?!”

사이드미러. 한율의 차를 향해 학생들이 크게 하트를 그렸다.

“형님, 사랑합니다!”

각성자 연구소에 도착. 직원 전용 주차장에다 차를 세우는데, 막 손님용 주차장에서 걸어오는 진은수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은수 씨.”

“어….”

차에서 내리며 인사하자, 멈칫한 진은수가 고개를 꾸벅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일찍 왔네요?”

오늘 실험엔 지난번 파란색 등급 이상이 나오고, 다시 능력을 사용하게 된 각성자들이 참여한다. 한 단계 높은 빨간색이 나온 진은수도 그중 한 명.

“네. 아직 운전이 미숙해서 일부러 일찍 출발했더니…. 아.”

주변을 살핀 진은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지난번에 루아 언니 챙겨주신 거 정말 감사드려요. 그리고 언니가, 자기 때문에 엉뚱한 기사 난 거 미안하다고 전해달래요.”

“네. 그 뒤로 루아 씨는 어때요? 괜찮아요?”

루아가 양병근의 사기 피해자로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단 소식은 들었다.

“네. 그땐 좀 힘들어했지만, 다른 곳에서 상담받기 시작한 후로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아침은 먹었어요?”

“아뇨, 아직.”

“이거 먹어요.”

샌드위치 봉투를 내밀자 진은수가 두 손을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다이어트 중이라 따로 샐러드를 챙겨왔거든요.”

한율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가볍게 한 대만 툭 쳐도 뚝 부러질 것처럼 빼빼 마른 사람이 다이어트라니.

“뺄 살이 어디 있다고요.”

“헤헷.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에요.”

“넵.”

혼나는 아이처럼 짧게 대답하는 진은수. 잠시 두 눈을 끔뻑거리더니 작게 웃는다.

“……?”

한율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진은수는 고개를 들었다가 휙 시선을 피했다.

“아빠랑 오빠도 똑같은 말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아, 아니에요.”

“뭔데요.”

진은수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선배님이랑 이렇게 별일 아닌 일로 대화하는 게 오래간만인 것 같아서요.”

“미안해요.”

“네? 뭐가….”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진은수가 어깨를 떨면서 한율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시선이 마주치자 또 피한다.

“나 때문에 은수 씨, 온갖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시달리고 있잖아요.”

소문뿐만이 아니었다. 과거 진은수가 한율을 짝사랑했었다는 이야기, 함께 같은 제품 광고를 찍느라 몇 번 만났다는 이유로, 또 한율이 주도하는 실험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진은수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안티, 악질적인 스토커도 많았다.

“아니에요, 그게 어떻게 선배님 잘못이에요. 다 나쁜 소문을 만드는 사람들 잘못이지. 그리고 제가 제대로 처신했다면 그런 소문의 빌미도 주지 않았을 거고….”

“그거야말로 은수 씨 스스로 탓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바닥을 보던 진은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가 한율 쪽으로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게이트 방어선 본부에서 제임스로 마주쳤을 때와는 참 다르다. 예전처럼 웃다가도 시선이 마주치면 피하고, 움츠러들고.

“…….”

한율은 진은수의 이런 태도에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으나, 아직도 자신을 좋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 눈에 띌까 봐 행동을 조심하는 건지 확실히 구분할 수 없어 말을 아꼈다.

…저벅.

멈췄던 걸음을 옮기자 진은수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복도엔 두 사람의 발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 * *

경기도 양평.

학교 수업, 학원 수업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계나리는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모니터 앞에 앉았다. 아래층에서 아버지의 잔소리가 들렸다.

“딸내미! 아빠가 주차 제대로 해놓으라고 했지? 저게 뭐야, 삐딱하게!”

계나리는 문 쪽을 향해 외쳤다.

“아빠가 대신 좀 해 줘!”

“어휴, 고3한테 차를 사주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주식으로 번 돈으로 산 거잖아요, 아부지.

계나리는 속으로 말대꾸하면서 인터넷 창을 여럿 띄우고 직접 개발한 해킹 프로그램도 실행했다. 모니터 하나엔 서울 게이트 방어선 현장, 아래엔 마요르카 게이트 실시간 감시 영상도 작게 띄웠다.

‘율이 오빤 몇 시에 오려나.’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면서 계나리는 서한율에게 말할 내용을 생각했다. 왜 자신에겐 비밀로 했냐고 따져야 할까, 아니면 서운한 마음부터 드러내는 게 좋을까.

‘오빠 성격상 내가 반대하리라 생각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하아. 계나리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곁에 있으면 실험 중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벌어져도 되돌릴 수 있는데. 왜 안 써주실까.’

몸은 좀 아프겠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쿠웅.

“깜짝이야!”

난데없이 밖에서 들린 굉음. 놀란 계나리는 창으로 다가갔다.

“무슨 소리….”

밖을 내다보자, 차고 옆 담을 들이받은 듯한 낯선 차의 후미가 보였다. 그리고 차고 밖으로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지 걸음걸이는 멀쩡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괜찮아요?!

그 순간, 계나리는 큰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빠!”

시커먼 사람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긴 무언가로 내리쳤다. 그러곤 기절한 아버지를 차에다 싣고선 그 자리를 떠났다.

계나리는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어떤 미친 것들이 뒈지려고!”

현재 2층. 지금 달려간들 쫓아갈 수 없다.

계나리는 망설임 없이 각성 능력을 사용했다.

잠시 후.

계나리의 집 앞에 도착한 한율은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이게 대체….’

대문이 박살 난 집 앞. 경찰차와 구급차 여러 대가 요란한 경광등 불빛을 내며 서 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던 계마루가 한율을 발견하곤 달려왔다.

“형님, 우리 나리가…!”

계마루의 손끝은 막 출발하는 구급차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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