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2화 (394/427)

미스터리 해커 추적에 성공했다

벌떡.

“으아, 열 받아!”

한율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수액을 맞으며 누워있던 계나리가 갑자기 씩씩거리며 일어났다.

“하필 그 타이밍에…. 아, 깜짝이야! 오빠 언제 왔어요?”

몇 시간 동안 정신을 잃었던 것치곤 괜찮아 보인다.

“나리 씨가 구급차에 실려 갈 때 집 앞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병원에선 정숙해야죠?”

“아….”

한율의 존댓말에 그제야 계나리가 주변을 휘휘 살피더니,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휴. 계마루가 소리 내어 한숨 쉬었다. 그 옆엔 계나리의 부모도 걱정 가득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정신 차렸으면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해라, 계나리야.”

“그래, 딸내미. 몸은 괜찮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차로 대문 들이받고 튄 놈들은 대체 누구고? 혹시 예전에 펜션에 있을 때 몰래 담 넘으려다 도망친 그놈들이야?”

“가족분들껜 죄송하지만.”

한율은 계나리의 가족을 돌아보았다.

“잠깐 나리 씨랑 둘이서 이야기 나눠도 될까요? 외부로 알려지면 안 될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요.”

그들은 예전부터 계나리가 미스터리 해커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여기에 한율은 대규모 결계를 치며 게이트를 막았던 최강의 각성자.

서로를 바라본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문 앞 지키고 있을 테니까 아빠랑 엄마는 마실 것 좀.”

“그래. 우리 한율 씨는 뭘 좋아하나?”

“전 괜찮습니다.”

“그래요. 음.”

“방해하지 말고 빨리 나가요, 여보.”

계나리의 어머니가 남편의 등을 가볍게 때리며 병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드륵. 문이 닫혔다. 길게 세로로 난 창을 계마루가 등으로 가린다.

“너희 가족들 말로는 네가 갑자기 방에서 비틀거리면서 나왔고, 그때 웬 차가 대문을 들이받자 강도들이 들이닥쳤으니 빨리 112랑 119에 신고하라고 한 다음에 결계 작동시키고 밖으로 나가 쓰러졌다던데.”

침대 옆 의자에 앉은 한율은 성량을 낮췄다.

“혹시 능력 사용한 거야?”

계나리의 각성 능력은 회귀.

그녀의 말에 따르면 부작용이 심하다고 했다. 5분 전으로 돌아가면 속이 울렁거리면서 현기증이. 한 시간 전으로 돌아가면, 돌아간 시간이 무색할 만큼 아예 정신을 잃는다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돌아갈수록 정확도도 떨어지며, 연속으로 사용하면 몸 상태가 엉망진창이 된다던가.

그래서 계나리는 2028년 미래에서 2019년으로 돌아왔을 때, 미래의 자신이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네….”

계나리가 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미친 것들이 집 앞에서 아빠를 때리고 납치했거든요. 도저히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능력을 사용했어요.”

10분 전쯤은 운전 중이었던 터라 오히려 상황이 나빠질 것 같아 5분 전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자 시간이 촉박해 힘들었다고.

“그래도 아빠가 납치되는 것도 막고, 그놈들 차 타이어까지 터뜨렸는데 그 순간 정신을 잃는 바람에…. 아, 이럴 때가 아니라 얼른 그놈들 추적해야 하는데?”

“진정해. 아무리 봐도 정황이 이상해서 CCTV부터 확인했거든. 그리고 근처에 버려진 차도 발견했어. 지금 경찰이랑 군이 그 근방을 수색하고 있고.”

집 외부에 설치된 CCTV엔 해당 차량이 몇 시간 전에도 앞에 왔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계나리의 가족이 지내는 집을 지나쳐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작 민가 서너 채. 이후 산으로 길이 막힌다. 그런데 그 차량은 사건 발생 30여 분 전, 다시 어귀로 들어왔다.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하루에 두 번이나 같은 장소를 찾는다? 이는 누가 봐도 부정한 목적을 지닌 움직임이었다.

대문을 들이받은 뒤 집에 침입하려던 것 또한.

“군까지도요?”

“김대현 때처럼 또 내 지인을 노린 범행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각성자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거든. 그래야 더 많은 인원이 신속하게 투입될 것 같아서.”

계나리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오빠 그거 권력 남용 아니에요?”

“만약 네 정체를 알아차린 놈들이라면 큰일이잖아. 정말로 차량 조회 결과 도난 신고된 차라고까지 뜨고. 그놈들 얼굴은 봤어?”

“아니요. 전부 모자에다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고요. 더구나 밤이라 어둡기도 했고.”

한율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갔었다면 놈들 모두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에요. 그리고 만약 오빠가 만들어준 결계가 없었다면 상황이 더 꼬였을 거예요. 그놈들, 아슬아슬하게 결계에 막혀서 못 들어왔거든요. 연구소 실험은 어땠어요?”

“지난번처럼 실험이랄 것도 없어. 파란색 등급 이상 각성자들 능력에서 마나만 추출했거든. 그나저나, 나랑 만나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 그게….”

계나리가 한율의 눈치를 살피더니 대답했다.

25일 아침, 게이트 방어선 현장 영상을 살피다가 까마귀 수십 마리가 날아다니고, 녀석들이 모인 건물로 이해원이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가지고 몰래 들어가는 걸 봤다고.

“바로 눈치챘죠. 전날 밤에 탈옥한 한타오랑 김대현을 찾았구나. 그리고… 두 분만 따로 비밀 실험을 진행하는 것 같단 강한 추측?”

말끝을 장난스럽게 올리는 계나리의 미소엔 서운한 감정이 묻어있었다. 한율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서운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해. 하지만 실험에 관해 이야기하면 나나 해원이 형한테 실망할 것 같았거든. 지금…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진행 중이라.”

계나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입가를 올렸다.

“저, 이미 온갖 꼴 다 겪어서 괜찮은데요? 그리고 그놈들, 죽어도 싼 놈들이잖아요.”

“그래도.”

한율은 걱정이 담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쨌든 이우그룹에서 종로에 아파트를 마련해줬으니,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 너희 부모님께도 이미 다 말씀드렸어.”

계나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이우그룹이요?”

“내 명의로 되거나 관련된 곳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또 널 노리는 놈들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학교도 쉬는 게 좋겠다.”

가만히 한율을 바라보던 계나리가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흐.

“뺏은 건 아니죠?”

한율은 살며시 시선을 피했다.

“뺏은 건 아니야.”

우웅.

“네, 서한율입니다.”

정상욱 중위였다.

-[계나리 씨 집에 침입하려다 도망친 놈들로 추정되는 자들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짧은 한숨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 놓친 러시아 출신 용병들입니다.]

한율은 미간을 구겼다. 김대현을 버린 뒤로 종적이 사라져서 조용히 한국을 떠났나 했더니.

“금방 갈게요.”

러시아 용병들은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었다. 한율은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던 정상욱과 만났다.

“수색견과 드론을 통해 산에 숨어있던 놈들을 찾았습니다. 권한정의 말에 따르면 각성자 특유의 아우라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각성자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어디까지 불었어요?”

“한율 씨가 오면 다 털어놓겠다는 말만 하고선 입을 꾹 다문 상태입니다.”

같잖은 수작이라도 부릴 작정인가.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어색하면서도 환한 웃음을 짓는 경찰들을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서한율이라고 합니다. 이른 시간부터 수고 많으십니다.”

* * *

10월 1일. 포털사이트 메인.

[서한율, “비윤리적 실험 절대 안 해”]

[대한민국 최강의 각성자이자 인기 아이돌그룹 어스래빗의 멤버 서한율이 며칠 동안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결계 실험 논란에 관해 입을 열었다.

어제 서한율은 “각성자를 비롯한 인간을 대상으로 비윤리적인 실험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실험은 오로지 자원한 사람을 대상으로만 진행할 것”이라고 각성자 연구소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혔다.

(각성자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식 입장)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서한율은 미국 각성자 협회로부터 받은 제안 또한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며, 이탈리아와 러시아에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진=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에서 선물 받은 슈퍼카를 타는 서한율)

한편 정부는 게이트 방어선을 포함, 위험한 곳에서 활약한 영웅들을 대상으로 보상금 지급 정책 계획을 발표했으며, 게이트 초반에 대규모 결계를 펼치며 활약한 서한율 또한 해당 정책을 통해 억대에 달하는 보상금을 받을 것 같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군인 월급도 올려줌?

ㄴㄴㄴ

ㄴㅠㅠ

ㄴ군에서도 활약 많이 하면 이것저것 챙겨주기는 하는데, 제일 좋은 포상은 전역이지만 국방부가 인정 안 함

ㄴ그래도 일선에서 제일 고생하는 건 군인들인데ㅠㅠ

-결국 미국에 또 가네

ㄴ각성자 능력에서 빼낸 힘으로 실험해야 하는데 회복하려면 시간 걸리니까, 차라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꾸준히 실험 진행하는 게 효율적이잖아용

-이탈리아 각성자들도 인류에 이바지할 준비됐다고 SNS에 헌혈 사진 올리더니

ㄴ능력에서 힘 빼내는 건데 헌혈은 왜ㅋㅋㅋㅋㅋ

ㄴ여담인데, 중국이랑 러시아에선 실제로 각성자들 피 뽑고 연구 중임

ㄴ우리나라도 혈액 검사 진행하는데?

ㄴ아니.. 우리나라처럼 각성자 건강이랑 신체 변화 걱정해서 피 뽑는 게 아니라 이미 생체 실험 진행 중이라는 소문 돈다고;

-러시아에도 간다고??? 갑자기 왜???

-인간으로 비윤리적 실험 안 한다고 했지, 괴물 가지고 안 한다곤 안 했다ㅎㅎ

ㄴ괴물 연료로 이용했다고 욕한 거 극히 일부였는데 아직도 기레기 선동에 놀아나는 버릇 못 고쳤냐

-러시아 가는 거 왜 이렇게 불안하죠ㅠㅠ 거기도 중국 만만찮게 빗장 안에서 온갖 기상천외한 일 벌어지고 있다던데

어스래빗 숙소.

강보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율에게 물었다.

“러시아 요즘 위험하다는 소문 많던데. 정말 거기에도 가려고?”

“써한, 너 가면 다시 비행기 못 타고 나올 수 있다고 맹이 형이 걱정하더라.”

“서한율이라면 날아서 탈출 가능할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차남석의 말에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뉼이라면 하늘 날아다니는 괴물 타고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괴물에 타면 전투기에 같이 조준될 거 아냐, 멍청아.”

“러시아 무기 떨어져서 전투기 아낀다고 소문났다, 바보야. 뉴스 좀 봐라, 바보야. 바보가 아닌 이상 하뉼 공격하겠냐, 바보야?”

“야.”

“쟤네 또 싸운다.”

“혼자 가는 건 아니지?”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외교부 직원이랑 연구소 사람들, 각성자 부대원들도 함께 가게 될 거예요.”

끄응. 박가람이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미국이랑 이탈리아는 몰라도 러시아는 좀 무서운데.”

“이번엔 같이 가자고 안 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형.”

그러면서 한율은 경찰서 조사실에서 만난 러시아 용병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리더로 추정되는 ‘비탈리’란 자는 한율과 마주하자 꾹 다물었던 입을 순순히 열었다.

『우리 조국은 미스터리 해커 추적에 성공했다.』

그의 첫 마디였다. 이어서 내뱉은 건 양평 펜션과 언덕 위 집 주소, 그리고 계나리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그자가 미스터리 해커, 맞지? 지금은 치킨이나 튀기다가 게이트 핑계로 놀고 있지만, 과거에 유명한 사이버 보안업체에 잠깐 몸을 담았었더군.』

『…….』

단단히 잘못 짚은 정보를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비탈리를 보며, 한율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허에 찔려 말문이 막힌 것으로 착각한 비탈리 일당은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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