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3화 (395/427)

사람을 삼키는 게이트

‘그럼 계나리를 유인하기 위해 가족을 납치하려던 게 아니라.’

왜 굳이 계나리가 다니는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집을 찾아갔나 의아하긴 했다.

한편으론 러시아 용병들이 오해한 것도 이해되었다. 계나리의 아버지는 비탈리의 말처럼 서울에 큰 치킨집을 차리기 전까지 사이버보안 업체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었다. 계나리 역시 초등학생 때 해킹 대회에 나가 수상한 적이 있으나, 어려서 배제한 모양.

『우리 부탁을 들어주면, 당장 그를 노리는 인원을 철수시킬 수 있어.』

한율은 일단 그들이 착각하게 두었다.

『부탁?』

비탈리가 웃음기를 지우며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 우리나라로 가서 결계를 쳐 줘.』

『싫은데?』

한율은 눈을 파랗게 물들이며 웃었다.

『상대방에게 부탁하려거든 어쭙잖은 협박, 그리고 거짓을 거두고 진실만을 말해야지.』

러시아 용병들은 김대현을 빼돌릴 때 군인들과 간호사를 죽인 혐의로 구치소로 이감되었다. 그 밖에 ‘스스로’ 털어놓은 여죄까지 철저히 조사받게 될 예정이었다.

한율은 러시아행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비탈리의 같잖은 협박 때문은 아니었다. 러시아가 계나리의 아버지를 미스터리 해커로 착각한 건 사실이지만, 비탈리 일당은 그를 납치해 한율과 러시아 사이에서 장난칠 요량이었다.

『최강의 각성자를 자극할 수 있는 인질이기도 하지만, 미스터리 해커니까.』

설령 러시아에서 새로운 인물을 보낸다고 해도 이해원이 계나리의 가족을 지키고 있다.

‘그자가 러시아 출신이었었지.’

현재 전 세계 국가 대부분이 한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실정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러시아 대사관에서도 한율과 따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진 귀찮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사람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대한민국이 우선이라는 말로 양해를 구하며 사양했으나, 이젠 상황이 다르다.

각성자로 더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마법사의 호기심.

사람들은 한율 다음으로 가장 강한 각성자로 미국의 JJ를 꼽는다. 그러나 한율이 본래 세상에서부터 겪은 각성자 중 가장 강하다고 여기는 건 바로 러시아 출신의 ‘알렉세이’였다.

각성 능력의 별칭은 다이아몬드.

‘그 외에 실험에 쓸만한 놈들도 많겠지.’

휙휙. 손 하나가 한율의 눈앞에서 흔들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한율은 길우성을 바라보았다.

5년 전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못생김이 줄어들긴 했으나, 그래도 종종 때리고 싶은 멍청한 면상이었다. 아이돌로 무대에 설 때 나른하게 내리깐 눈매와 눈물점이 섹시하다며 요란스럽게 구는 이프림의 눈은 단체로 어떻게 된 게 틀림없었다.

“달냥인 부모님 댁에 맡기고 갈 거다.”

“안 돼!”

다음 날, 스타믹스 JE의 집.

다음 주 JE의 입대 환송회를 위해 마법 학교 인원이 모두 모였다. 한율과 계나리는 양평에서 있었던 일, 잡힌 러시아 용병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찔러본 게 아니라 확신하고 찾아간 게 맞아? 그럼 진짜 미스터리 해커가 나리 씨란 사실을 눈치채는 것도 시간문제 아니야?”

“정체를 감춰주는 대가로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텐데…. 또 비탈린지 비탈길인지 하는 그놈들처럼 다른 속내를 품고 접근하지 말란 법도 없고.”

“그래서.”

흠흠. 계나리가 목소리를 가다듬곤 손을 들었다.

“제가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설마….”

이해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정체를 밝힐 생각이에요?”

계나리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넵!”

“난 반대요!”

박가람을 시작으로 이해원과 JE, 유호는 한참 동안 우려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계나리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모두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당. 하지만 제가 교장 쌤의, 더 나아가 게이트를 막기 위한 실험에 차질을 빚게 하는 짐 덩어리가 되는 게 무엇보다 싫어서 그래요.”

“하지만….”

“그리고 언제 어떻게 들킬까 노심초사하느니, 차라리 당당하게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활동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고. 솔직히 제 재능과 기술, 이대로 썩히기엔 아쉽잖아요. 남들보다 몇 년 앞선 해킹 기술로 제가 우리나라의….”

계나리가 자화자찬과 앞으로의 포부를 늘어놓는 동안, JE가 한율에게 물었다.

“이우그룹은 몰라도 정원그룹이 가만히 있겠냐? 미스터리 해커가 해킹한 SNS나 너튜브 계정도 한두 개가 아니잖아.”

“게이트 사태를 알리고 대비하기 위한 일이었으니 어느 정돈 선처해주지 않을까요? 딱히 사적인 이득을 취한 적도 없고.”

미래의 정보를 이용해 주식으로 집안의 재산을 불리기는 했지만, 해킹 기술로 부당하게 번 돈은 아니니.

“그래도…. 알잖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수록 온갖 미친 자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는 걸.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부터 평범한 삶과는 영영 작별하게 될 텐데.”

한율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어제 미리 얘기 듣고 말릴 만큼 말렸지만, 소용없었어요.”

“거기 두 분.”

한창 떠들던 계나리가 한율과 JE를 돌아보았다.

“TV에 나가 짜잔! 내가 미스터리 해커다! 라고 밝히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용. 누군가 내 정체를 까발리겠다 협박해도 ‘어쩌라고’ 받아치며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오픈하겠다 정도지. 그리고….”

하아. 계나리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게방부 아저씨가 묻더라고요. 전에 본부에 인형 탈 쓰고 왔던 ‘양이 씨’ 아니냐고.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눈치챘는데 더 눈가라고 아웅 해서 뭘 하나…. 적어도 발목 잡는 약점은 되지 말아야지….”

점점 푸념처럼 중얼중얼.

박가람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아. 이미 반쯤 포기하셨구나.”

“가족도 눈치채고, 다른 어스래빗 분들이나 미현 언니도 눈치챈 지 오래고…. 지금까지 안 들킨 것도 기적이지, 암…. 어쨌든.”

계나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예전부터 고민했었어요.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데, 나만 이대로 안전한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도 괜찮은 걸까. 이번에도 게이트 괴물보다 사람을 더 경계해야 하는 세상이 오고, 그때가 되면 방구석에서 혼자 키보드를 두드리는 데에 한계를 느끼게 될 텐데….”

끼웅. 한율의 품에 안겨있던 구동이 폴짝, 계나리의 무릎으로 옮겨갔다. 계나리가 구동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방 밖으로 나가려면 지금이 딱 적당한 타이밍인 것 같아요.”

“나리 씨, 혹시.”

박가람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살피더니 물었다.

“수능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죠?”

터업. 계나리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어떻게 아셨지?!”

“…….”

“가람아….”

“아니,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짝짝. 한율은 붕 뜨려는 분위기를 정리했다.

“나리 씨는 진짜 능력을 밝히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해서, 미래의 자신으로부터 꿈에서 메시지를 받은 거라고 둘러댈 거예요. 정확한 거취 또한 청와대 인사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겠지만, 국정원 같은 국가 기관에 소속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에요. 미스터리 해커가 국가 기관 소속이라고 하면 정원그룹이나 이우그룹도 한발 물러설 테니까요.”

생긋 웃으며 덧붙였다.

“뒷배로 개인인 저를 두는 것보다 국가를 두는 게 여러모로 든든하지 않겠어요?”

박가람이 가늘어진 눈매로 한율을 바라보았다.

“국가 기관에 대놓고 나리 씨를 스파이로 심겠다는 소리로 들리는 건 나뿐인가?”

“아니, 나도 그렇게 들렸어.”

JE에 이어 이해원과 유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계나리는 한율에게 꾸벅 인사했다.

“우리나라가 국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별말씀을요.”

한편 그 시각, WB래빗 엔터테인먼트.

길우성은 조금 전 촬영한 댄스 영상을 홍보팀에 전송한 뒤 뿌듯한 얼굴로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제 뭐 하지?’

게이트 방어선과 통제 구역 범위가 축소되면서, 얼어붙었던 방송가에도 슬슬 재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돌들이 설 수 있는 음악 방송 소식은 깜깜이였다.

자체 콘텐츠 촬영도 지난 추석 특집 이후론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 컴백에 관한 이야기도.

강보배와 라이언의 유닛, 트레리안이 다음 앨범 준비를 하고 있으나 정확한 컴백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차남석이 뮤닷의 새로운 예능에 고정 출연하곤 있으나, 2층 사무실로 올라가 어스래빗 스케줄을 보면 휑했다.

이는 같은 회사 소속 다른 아이돌그룹도 마찬가지.

‘혼자 하는 라방은 말실수하게 될 것 같아서 조금 무섭고. 슬슬 연골 관리해야 하니까 오늘은 춤 더 추면 안 될 것 같고.’

뒹굴뒹굴하던 길우성은 핸드폰으로 너튜브에 들어갔다.

“응?”

여느 때처럼 해외의 각성자가 올린 영상을 보던 와중, 알고리즘에 뜬 한 영상을 보곤 몸을 일으켰다. 올라온 지 얼마 안 되는 데다가 구독자 수가 3명이라 그런지 조회 수는 11에 불과했다.

프랑스어로 적힌 동영상 제목은 [사람을 삼키는 게이트].

섬네일에 영어로도 큼지막하게 적혀 있어 알아볼 수 있었다.

‘게이트가 사람을 삼킨다고?’

호기심에 클릭했다.

수풀이 우거진 거친 길. 핸드폰 카메라로 걸어가면서 촬영하는지,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영상 초점이 흔들린다. 흔한 BGM도 없이 바람 부는 소리, 풀 따위를 헤치는 소리,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뒤섞였다.

[이곳은 코트디부아르, 숲.]

프랑스어가 자동 번역되어 한국어 자막으로 나왔다.

[이곳에 게이트가 있다는 사실은 2주 전,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던 소년의 동생이 실종되며 알려졌다.]

훅훅후욱. 알 수 없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른들은 납치되어 다른 곳으로 팔려 갔다고 여겼다. 동생을 잃은 형만 동생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숲을 헤매던 영상이 우뚝 멈췄다. 저 멀리 나무 사이로 검붉고 길쭉한 무언가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게이트였다.

[게이트를 발견했다.]

[게이트 앞에는 동생의 옷가지가 놓여 있었다. 동생이 아껴 먹으려고 숨겨놓은 반쪽짜리 사탕도.]

[형은 게이트 괴물이 동생을 잡아먹었다고 생각했다. 마을로 달려가 어른들에게 알렸지만.]

게이트를 주시하던 촬영자의 숨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게이트로 다가간다.

[일하기 싫어서 거짓말한다며 형을 때렸다. 이후 세 명의 어린아이가 더 사라졌지만, 경찰은 도망친 거라며 찾지 않았다. 모두 다른 지역에서 인신매매로 사 온 아이들이었다.]

[나는 어제.]

가까이에서 찍힌 게이트는 폭이 약 3m, 높이 10m 정도로 보였다. 홀린 듯이 멍하니 영상을 보던 길우성은 그다음 자막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내 친구의 손이 이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

[게이트는 옷과 신발, 시계, 핸드폰, 몸에 걸친 모든 것을 거부했다.]

[호기심 많은 친구는 알몸이 되어 웃으며 들어갔다.]

촬영자의 손이 게이트에 닿았다. 막혔다.

[나는 들어가지 못했다.]

[이 게이트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이런 게이트가 있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친구,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있기만을 바란다.]

길우성은 소름이 돋은 두 팔을 문지르곤 너튜브 영상 링크를 서한율에게 보냈다.

[야, 진짜 이런 게이트도 있음ㅜㅜ?]

10분 후. 해당 동영상을 포함, 올린 이의 계정까지 삭제되었다. 그러나 이미 발 빠른 네티즌들에 의해 인터넷에 파다하게 퍼지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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