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4화 (396/427)

저것은 토끼인가

-이런 건 왜 하나 같이 원본 동영상이 삭제되는 걸까?

-버뮤다 삼각지대 인근 상공에 뜬 게이트에 들어간 정찰기도 사라졌다던데

ㄴ거긴 원래 그런 곳 아니었음?

-러시아에도 게이트에 사람 들어갔다는 소문 돌았었음. 러시아 정부가 거짓이라고 했는데 정작 그 게이트 못 들어가게 지역 폐쇄함.

ㄴ못 들어가게 폐쇄한 게 아니라, 게이트 생성 구역은 폐쇄하는 게 당연한 거임;

-괴물만 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가 있을 것 같기는 했음ㅋㅋㅋ 하지만 요즘 CG로 실제처럼 조작 영상 만드는 경우도 많아서

-무서워ㅜㅜ

-지구 게이트 연구소 사이트에서 그러는데, 게이트 지도에 노란색으로 표시된 곳에서 유독 실종 사건 비율이 높게 잡힌다고 그랬음. 이 프랑스인이 올린 코트디부아르에도 노란색 게이트 있는 걸로 봐선

ㄴ우리나라엔 없는 게 천만다행.

ㄴ지금 지구로 넘어오는 괴물들 고향으로 통하는 게이트 아님? 레드랑 달리 옐로우는 이쪽에서 일방통행이 가능한 거지

“노란색 게이트의 정체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네요.”

한율이 길우성에게 주소를 건네받은 동영상을 확인하자, 계나리는 따로 영상을 저장,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아슬아슬하게 원본이 삭제되기 전에.

유호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노란색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돌아오는 사람들, 있긴 있었던 거 맞지? 한율이 넌 제외하고.”

한율은 고개를 끄덕이곤 계나리를 바라보았다. 계나리가 대신 대답했다.

“소문으로는요. 하지만 그땐 지구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암울했던 데다가, 사실 여부를 가릴 만한 기관이나 힘 있는 권력이 하나같이 정보 통제까지 엄하게 해댄 터라. 어디의 누군지까지 상세하게 알려지진 않았어요. 스스로 귀환자라고 떠드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확실해요. 게이트에 들어가 사라졌다고 알려진 인원에 비해, 귀환자는 아주 극소수였다는 것.”

“정보 통제는 벌써 진행되는 것 같은데요? 의혹을 제기한 영상이나 게시물이 실시간으로 삭제되거나 흐지부지 덮인다는 이야기가 많은 걸 보면.”

“만약에 우리나라에도 노란색 게이트가 있었다면.”

JE가 계나리가 만든 게이트 지도를 사과패드에 띄워서 살폈다.

“우리나라도 꼭꼭 숨기거나 아니라고 부정했을 것 같은데? 일부러 게이트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충분히 나올 것 같잖아.”

“하긴. 인터넷 돌아다니다가 봤는데, 철없는 애들이 만화나 소설처럼 다른 세상으로 가서 모험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막 희희낙락 떠들고 있더라. 빨리 시스템 창이 생겼으면 좋겠다나 어쨌다나.”

박가람의 말에 JE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이야기가 재밌나? 별 영양가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아이돌도 영양가 없기는 비슷하거든요. 그리고 님은 영화나 드라마 안 보세요? 취향 존중 좀 해주시죠.”

“아, 정신이 확 드네. 반성한다.”

이해원이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 되는 게 아닐까?”

“그럼 한율이 네가 마요르카 게이트를 결계로 감싼 게 혹시… 무언가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어가지 말라고 쳐놓은 거야?”

모두의 시선이 한율을 향했다.

한율은 마요르카 게이트가 가장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어, 게이트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 그곳을 찾았다. 계나리가 지나온 시간에선 몇 년 동안 그 앞을 지켰고.

그러나 어떻게, 왜 위험한지는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

“둘 다예요.”

한율은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들어간 인간이 괴물이 되어 돌아오는 게이트거든요.”

“그게 무슨….”

마법 학교 학생들은 더 자세히 듣고 싶은 눈치였으나, 한율은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정리할까요? 곧 대통령 비서실 사람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라서요.”

“오늘 바로 나리 씨 짜잔, 하는 거야?”

“네. 어차피 이미 게방부랑 경찰에서 올라간 보고를 토대로 조사하고, 나리 씨가 진짜 미스터리 해커라는 확신 단계에 이르렀을 거예요.”

“율이 오빠 눈치 보느라 그냥 조용히 있는 것뿐이죠.”

“그럼 이제 나리 씨 자주 못 보는 거예요?”

박가람이 섭섭한 표정을 짓자, 계나리가 씨익 웃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협상을 진행할 겁니다. 국가 소속이되, 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흐흐흐.”

“멋져.”

“선배님은 머리카락 언제 자르실 거예요?”

“입대 전날에 자를 거야.”

이해원이 JE에게 말했다.

“게이트 방어선으론 오지 마, 형.”

“어. 왠지 지헌이 형이랑 최전방으로 가게 될 것 같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니, 그건 그거대로 걱정되는데?”

“그럼 이 집이랑 구동인 누가 돌봐?”

“집은 엄마가 가끔. 구동인 본래 주인이.”

한율은 구동에게 손을 내밀었다. 구동이 귀를 쫑긋거리면서 한율의 손에 제 앞발을 툭 올려놓았다. 한율은 그 앞발을 가볍게 잡아 흔들었다.

“모레 데리러 올게.”

뀽.

JE의 집을 나오기 전엔 다들 그와 인사를 나눴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다녀와.”

“어. 나 먼저 가서 기다린다.”

유호가 눈썹 끝을 내리며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그래.”

“요즘 각성자 전형으로 입대하는 사람이 늘었거든요. 훈련소로 새로운 각성자 부대원 데리러 가게 되면, 그때 형 찾을게요.”

“아니, 괜찮아. 마주치면 괜히 민망해질 것 같거든.”

“난 면회 갈게.”

“오지 마.”

“저도 면회… 가지 마요?”

JE가 계나리를 향해 미소 지었다.

“나리 씨는 언제든 환영할게요. 그런데 최전방이면 면회가 힘들….”

“호 형! 형 친구, 사람 차별해!”

“박가람, 조용.”

한율도 JE에게 한마디 했다.

“모레 구동이 데리러 또 오겠지만, 어쨌든 입대하면 놀러 갈게요.”

JE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군부대에 놀러 오겠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민간인은 대한민국에 너밖에 없을 거다.”

한율은 가볍게 웃곤 현관문을 열었다.

잠시 후.

서초구에 있는 한 국가 기관으로, 관용차 두 대와 고가의 수입차가 이중삼중으로 된 삼엄한 경비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서한율 님.”

본청 건물 입구 앞엔 미리 연락받은 이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한율과 함께 차에서 내리는 계나리를 보곤 흠칫했으나, 이내 이해하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미스터리 해커.”

계나리는 커다란 고양이 인형 탈 안에서 조용히 심호흡한 뒤, 천천히 탈을 벗었다. 그러곤 그들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현재 평범한 고3 수험생으로 활약 중인 미스터리 해커… 아니, 미스터리 해커로 활약 중인 평범한 고3 수험생 계나리입니다.”

그들은 넓은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나온 인물, 국방부 장관, 이곳 국가 기관의 원장 및 소속 공무원들이 긴 테이블 앞에 앉았다.

계나리는 한율과 함께 준비한 대로, 몇 년 전부터 기이한 꿈을 꿨다며 이야기했다. 과거의 자신에게 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게 본인의 각성 능력인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너무 허무맹랑하잖아요. 하루아침에 지구에 게이트가 생겨나고, 그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로 인해 멸망한다는 게. 그렇다고 안 믿자니 너무 구체적이라 찝찝해서, 미친 것처럼 경고를 따르기로 했어요.”

이우그룹과 정원그룹의 기밀을 확보해 대규모 대피 시설을 짓도록 협박하는 과정에서, 따로 사익을 취하진 않았다는 사실을 은근히 강조했다.

“그리고 이게 제가 꿈속에서 미래의 나한테 들은 정보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 혹은 밝혀진 게 대부분일 텐데요.”

오늘 시끌벅적하게 터진 노란색 게이트에 관한 정보도 있어, 사람들은 의자를 앞으로 끌면서 모니터에 집중했다.

한율은 집중하는 척 딴생각을 했다.

그가 아는 한, 그의 본래 세상과 이어진 게이트는 마요르카 게이트 단 하나였다.

지구인 사이에 잠입해 정보를 수집할 때 다른 노란색 게이트에 관한 정보도 얻었으나 영 쓸모가 없었다. 귀환자가 나타난 게이트가 있기는 했으나, 그 게이트 역시 드나들 수 있었던 이가 극소수에다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노란색 게이트 너머 세상이, 괴물들이 건너온 세상과는 또 다른 곳이란 말이군요.”

“네. 최근에 게이트 괴물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런 발표를 했었죠? 레드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물 모두 다 같은 세상에서 온 놈들이 아니라고. 히말라야 게이트와 우리나라에 생긴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들은 같은 세상에서 건너온 게 맞지만, 미국의….”

* * *

10월 4일 월요일 아침.

한율은 JE의 집에서 가져온 대형 케이지를 거실 한쪽에 설치했다. 어스래빗 멤버들은 달냥의 캣타워 기둥에 매달린 구동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살폈다.

길우성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저것은 토끼인가…? 토끼 맞지…?”

“기둥에 매달린 토끼 처음 봐.”

“토끼 앞발이 원래 저랬나?”

“지구 토끼 숙소에 진짜 토끼가 들어왔어.”

찰칵.

“일반 토끼랑 다른 점이 있어서 괜히 게이트 괴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발 나온 사진 함부로 SNS에 올리거나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지 마세요.”

“응. 얼굴 사진은 괜찮은 거지?”

“네.”

찰칵, 찰칵.

“구동이 가까이에서 보니까 진짜 귀엽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핸드폰 들이대면 겁먹지 않을까?”

“전혀 겁먹은 눈이 아닌데?”

꺄아웅.

“하품하는 것도 귀여워.”

“하뉼, 얘 만져봐도 돼? 안 물어?”

“네, 안 물어요. 하지만 만지는 건 이 집에 적응해질 때까진 되도록 참아주세요.”

“응. …히, 진짜 귀엽다.”

“…….”

차남석만 구동의 사진을 찍지 않고 멀찍이서 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한율에게 말했다.

“이왕 데려온 김에, 가방 같은 데에 못 들어가게 교육 좀 해.”

“네.”

TV에선 뉴스가 저 혼자 떠들었다.

[일찍이 게이트 사태를 경고했던 미스터리 해커가, 우리나라 국가 기관을 돕기로 했다고 대통령 비서실이 발표했습니다.]

멤버들이 TV로 고개를 돌렸다.

“나리 씨 취직했어?”

“고3 아니었나? 수능은?”

“수능은 보기로 했대요. 일을 돕는 것도 아르바이트에 가까울 거라던데요?”

한 인터넷 커뮤니티.

[제목: 미스터리 해커 미자임]

[이런 글 올리면 바로 IP 추적당해서 털릴지도 모르겠는데, 아는 형이 그러는데 서한율이랑 같이 ㄱㅈㅇ에 온 여자가 미스터리 해커인 것 같다던데 아무리 봐도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종족인 여고생쟝이었다고 함]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종족ㅋ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학생이면 전에 서한율로 둔갑해서 펜션 들어간 놈 때려잡았던 걔 아님? 서한율이 펜션에다 숨겨놓은 여친이란 썰 돌았었잖음

ㄴ어?

ㄴ어??

ㄴ어???

ㄴ맞넼ㅋㅋㅋㅋㅋㅋ 아니 맞으면 대박인뎈ㅋㅋㅋㅋㅋ

-이젠 하다 하다 지구까지 구하는 대한민국 여고생

미스터리 해커가 대한민국 국가 기관 일을 돕게 되었다는 뉴스는 전 세계로도 퍼졌다. 그 정체가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란 소문도.

대기업 이우그룹 부회장의 장남, 이채환은 뉴스를 보며 킬킬 웃었다.

“역시 나리 나리 계나리일 줄 알았다니까. 도 대리!”

“네?”

그의 부하 직원인 도단희 대리가 고개를 들었다.

“나리 씨한테 선물할 최고급 PC와 모니터를 준비한다! 실시!”

“…네에.”

한편, 미스터리 해커에게 협박당했던 또 다른 대기업인 정원그룹 본사. 회장실엔 무거운 한숨 소리가 퍼졌다.

“우리가 한낱 고등학생한테 털려서 놀아났던 거라고? 사이버 보안팀 전부 불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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