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쓰러지면
경기도 양평.
앗싸패치의 김 기자는 서한율이 소유한 펜션 어귀를 살폈다. 어스래빗 멤버 모두 서울로 돌아가서 그런지, 펜션 앞은 관광지에 온 것처럼 사진 찍는 외국인들 빼곤 한산했다.
어귀를 지나쳐 언덕으로 차를 몰았다. 계나리가 펜션이 아닌, 바로 뒤 언덕에 있는 저택에서 지낸다는 정보가 있었다. 출처는 계나리가 잠깐 옮겨서 수업받았던 학교의 재학생. 범죄인 줄도 모르고, 교무실에서 계나리의 주소 등이 적힌 서류를 핸드폰으로 찍었다며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신상이 다 털렸으니 더는 이곳에 없을 것 같지만.’
언덕 위 집 앞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퍼진 주소를 보고 찾아온 것 같은 사람들로 우글거렸다. 해외 방송국 카메라도 보였다.
‘음, 확실히 여기엔 없겠네.’
차에서 내린 김 기자는 핸드폰으로 지도 앱을 실행했다.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로드뷰에 찍혔던 대문이 바뀌었구나.’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왔다.
“김 기자? 자네도 미스터리 해커 취재하러 온 거야?”
다른 언론사의 연예 전문 기자였다. 자주 마주쳤던 경쟁자 이전에 대학 동기였던 터라, 김 기자는 반갑게 웃었다.
“뭐, 그렇지? 안에 사람 없지?”
“보면 모르겠어? 텅텅이야. 근처에 사는 사람 말로는 얼마 전에 이상한 놈들이 차로 대문을 들이받고, 경찰이랑 구급차, 게방부 군인들까지 일대 수색하면서 난리 난 당일 바로 이사했다더라.”
오만 가지 추론을 하게 만드는 단서의 나열. 김 기자의 눈이 반짝거렸다.
“게방부?”
“아서. 자네가 여기로 신나게 액셀 밟을 때 벌써 기사 떴어. 미스터리 해커 정체를 알아차린 러시아 용병들 짓이었다고. 아무튼 그 일 때문에 정체를 드러내기로 마음먹은 것 같아.”
“그럼 현재 소재는.”
“파악이 안 됐으니까 여기로 몰려왔겠지? 어쨌든 잘 됐다. 나랑 같이 주변이나 둘러보러 가자. 혼자선 무서웠거든.”
“주변에 뭐가 있는데?”
“뭐가 있긴.”
최 기자가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속닥거렸다. 그의 시선이 언덕 아래에 있는 펜션을 향했다.
“서한율과 계나리가 함께 지냈던 곳이 있잖아. 두 사람이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남은 게 없겠지만, 쓰레기통을 뒤지고 싶을 정도로. 최강의 각성자와 미스터리 해커. 정말 단순히 친한 협력 관계였는지, 아니면 깊은 남녀 관계였는지.
그러나.
김 기자는 작년 말, 회사를 덮친 사건을 떠올리곤 최 기자의 팔을 치웠다.
“안 가. 못 가. 죽으려면 혼자 죽어.”
“아니, 싫으면 싫은 거지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안 가.”
“알았어. 나중에 ‘아, 나도 같이 갈걸’하고 후회하지나 마라?”
김 기자는 성큼 그와 거리를 벌리곤 손을 흔들었다. 계나리가 아닌, 그의 오빠인 계마루를 추적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래. 잘 가, 최 기자. 만나서 반가웠어.”
* * *
장호운 의원의 아들은 게이트 방어선에서 괴물 수색 임무를 맡고 있었다. 사고가 난 당일 들어간 곳은 지하철역. 그곳에서 부대원들과 함께 괴물에게 잡혀 더 깊숙한 아래로 끌려 들어갔다.
전투가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몇 명이 사망했다. 남은 이들은 간신히 도망쳤으나, 지상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막다른 곳에 숨어 구조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결국 괴물에게 발각돼 전원 사망하고 말았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딴 걸 새겨서 부모 망신 다 시키냐고 혼냈는데…. 그 녀석이 팔에 새긴 문신으로 겨우 시신을 알아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빈소 옆에 마련된 가족실. 한율을 그곳으로 안내한 장호운은 한참 동안 사망한 아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날, 게이트 방어선에 찾아갔던 일도.
한율은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WB래빗 엔터로 찾아왔던 장 의원의 아내는 넋을 놓고 아들의 영정 사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내가 했던 행동, 말들이 떠오르더군요. 내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에만 사로잡혀, 눈으로 보면서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게이트 방어선의 참혹한 현장, 수많은 군인.”
장 의원의 고개가 천천히 떨어졌다.
“내가, 내 아들을 살리려 다른 부모의 자식인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했다는 사실도 말이지요.”
눈빛에서도, 떨리는 목소리에서도 슬픔으로 얼룩진 부성애와 후회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감정, 그에 따른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기 마련. 아무리 겉으론 감정에 휘둘리는 것 같아도, 한편에선 현실적인 문제를 판단하는 이성이 존재한다.
한율은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말을 골랐다.
“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이라,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장 의원이 미소 지었다. 한율과 한 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죽은 아들을 투영하는 것처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한율 씨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내 목숨을 던져 자식이 살아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던질 수도 있다는 그 마음을요.”
“의원님.”
장 의원의 비서가 야당 대표가 왔다고 조용히 알렸다. 한율과 이해원은 장 의원과 함께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조문을 마치고 빈소를 나설 때.
“한율 씨.”
내내 넋을 놓은 채 아들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던 장 의원의 아내가 한율을 쫓아 복도로 나왔다. 신발도 신지 않고선 비틀거리며 그의 두 팔을 잡았다.
“한율 씨 강하잖아요….”
간절한 얼굴로 그녀가 꺼낸 첫마디. 숨을 죽인 채 이쪽을 바라보는 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한율 씨 없으면 안 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 더는….”
힘겹게 한 글자씩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더는, 우리 아이처럼 황망하게 죽는 애들 없도록…. 흐윽… 흑….”
복받치는 슬픔을 더는 억누르지 못한 듯 흐느끼며 휘청거린다. 한율은 쓰러질 것 같은 그녀를 잡아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괜찮을 리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런데도 내뱉게 되는 말.
장 의원의 아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고꾸라지려는 몸을 한율에게 의지한 채, 한율의 팔을 잡고 있던 손으로 그를 때렸다.
“왜… 없었어요…? 왜…. 왜 거기에 없었던 거예요…?”
원망 가득한 말이 복도에 크게 울렸다.
“왜…! 당신이 있었다면 우리 애,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여보!”
“구해줄 수 있었잖아! 당신이라면, 구할 수 있었잖아…!”
빈소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장 의원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쳐나왔다. 그가 한율을 힘없이 때리던 아내를 황급히 떼어냈다.
“미안해요, 한율 씨. 지금 집사람이 제정신이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한율은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강제로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건물을 나와 차에 오른 뒤. 거짓말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한율은 거짓 눈물을 닦았다.
한율과 만나고 싶다고 했던 장 의원은 정작 각성자 관련 법안을 비롯한 정치적인 이야기, 자신의 아내처럼 원망스러운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어제 쏟아져나온 부정적인 기사에 관한 이야기도. 조문객으로 온 다른 국회의원들도 말을 조심하던 눈치였다.
“참 빠르다. 벌써 기사 떴어.”
이해원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뜬 기사를 보여주었다.
[[속보] 서한율, 국회의원 장호운 아들 빈소 조문]
속보까지 뜰 일인가, 이게.
“그런데 한율아. 오늘… 여기 왜 온 건지 물어봐도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짐작이 안 돼서. 게이트 방어선에서 순직한 군인 장례식에 참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잖아.”
“…그냥이요.”
한율은 잠시 진심을 말하려다가 얼버무렸다.
“그냥?”
“네.”
차를 기웃거리는 사람들 너머,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읊조리듯 재차 말했다.
“그냥이요.”
“그렇구나….”
이해원은 더는 묻지 않았다.
“형.”
“응?”
한율은 시동을 걸면서 말했다.
“휴가 나온 사람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게이트 방어선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해원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한편, 장호운 의원은 아내를 달래야겠다는 핑계로 가족실로 들어왔다. 여전히 흐느끼는 아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원망이었으니, 이 정돈 괜찮아.’
서한율과 친분이 깊은 미스터리 해커, 계나리가 현재 국내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을 돕는 중이다. 그러니 서한율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려고 한 게 여당이란 사실을 들었을 터. 그런데도 일부러 게이트 방어 지휘부를 통해 만남 요청에 대답하지 않고 장례식에 찾아왔다.
장 의원은 서한율과 나눈 대화, 그의 반응을 차분히 되짚었다.
슬픔에 잠긴 장례식 분위기에 눌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이런 식의 말 한마디라도 할 법하건만, 그런 말은커녕 지나가는 통상적인 사과도 없었다.
자식을 잃고 원망을 쏟아내는 어미에게조차도.
솔직히 TV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 나온 모습만 봤을 땐, 직접 만나면 쉽게 다룰 수 있으리라 여겼다. 공부를 등한시한 채 노래 부르고 춤추고 연기하고, 여자들에게 재롱부리며 돈을 버는 광대가 아니냐며.
대한민국을 구한 대단한 영웅이라 해도 올해 고작 스물두 살인 애송이이므로.
그러나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신중하고 무거웠다. 그렇다면 미국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 선언도, 단순히 치기 어린 투정이 아니라 계산이 깔린 진심일 가능성이 크다.
“하.”
장 의원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순직한 군인의 부모에게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나라에 묶어두려는 정치인에게 직접 알려주려고 온 거였어.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내 아들이 죽은 게 각성자의 부재 때문도 아니거니와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겨도 자신에게 의지할 생각하지 말라는, 그런 뜻.’
자신이 너무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갖 뒷공작과 음해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낸 그의 눈으로 봤을 때, 서한율은 평범한 딴따라 따위가 아니었다. 신중하게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사람을 구해야겠어.’
* * *
게이트 방어선 본부.
여전히 상복 차림으로 그곳을 찾은 한율은 곧장 각성자 관리과로 향했다.
“중위님, 현재 가장 위험한 수색 장소가 어딥니까?”
“지하죠. 지반 붕괴 위험도 있고, 어떤 괴물이 얼마나 침투했는지 파악하기도 힘드니까요. 특히 상하수도나 도시가스 배관이 파열된 곳은….”
“앞으로 그런 위험한 곳은 제가 직접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하지만 한율 씨, 각성자 연구소 일과 해외에 갈 준비로 바쁘지 않습니까. 본업도 그렇고….”
한율은 쓴웃음을 지었다.
“욕심부리는 만큼 더 열심히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며칠. 한율은 어스래빗 자체 콘텐츠를 찍을 때 외엔 통제 구역에 마련한 아파트에서 지내면서 매일 게이트 방어선으로 출근했다. 위험한 수색지역에 홀로 들어가 괴물들을 처리하고, 아직 수습되지 못한 사망한 군인의 유해까지 챙겼다.
보조하기 위해 따라다니던 군인들이 이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냐 걱정할 정도로, 정말 쉬지 않고 일했다.
10월 12일.
각성자 실험 건으로 미국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날, 포털사이트 메인.
[서한율, 장 의원 아들 죽음에 책임감 느꼈나]
[인기 아이돌그룹 어스래빗의 멤버이자 배우, 그리고 최강의 각성자인 서한율이 6일 장호운 국회의원 아들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게이트 방어선에서 쉬지 않고 게방부 일을 돕는다고 알려졌다.
서한율은…(중략).]
-오늘 라이언 생일이니 저녁엔 라이브 방송에 나오겠죠? 좀 쉬엄쉬엄해 한율아ㅜㅜ 이러다 너 쓰러지면 그게 더 큰 일이야ㅜㅜ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일만 하는데.. 나만 불안한가, 지금?
ㄴ만약 지금 서한율 쓰러지면 빅엿은 과연 누가 드시게 될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