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토끼가 됐어
“집에 별일 없죠?”
-[응. 웬 국회의원이 찾아와서 네 아버지한테 같이 일해보자고 한 것 외엔.]
자기 전, 모친에게 안부 전화를 건 한율은 고개를 기울였다.
“아버지한테 의원 출마를 권유했다고요?”
-[응. 하지만 단칼에 거절하셨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네요. 혹시 찾아온 국회의원 이름이?”
모친이 알려준 국회의원은 야당 쪽 인사였다.
통화를 끊은 한율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통화를 들은 박가람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아버지 정치하신대?”
“아뇨. 권유만 받고 거절하셨대요.”
“다행이구먼. 그나저나 너 호 형이 보낸 동영상 어떻게 생각하냐? 달냥이가 굉장히 공격적인 모습 보인 거 보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예전에 우리 집 찹쌀떡 친구 사건도 그렇고. 난 좀 마음에 걸린다?”
한율은 박가람의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인터넷 기사.
[서울‧강원 일대에서 발생한 동물 집단 이상 행동 추적 르포]
[6월 17일, 서울시 송파구 일대에서 동물 집단 이상 행동이 최초로 발생했다.
(중략).
무리 지은 들개는 게이트 사태 이전부터 흔했다. 그러나 본지는 6월 17일 이후 무리 지어 다니는 수십 마리의 개떼를 추적하다 이상한 점 몇 가지를 포착했다. 우선 흔한 들개떼와 달리 이 개들은 길고양이를 사냥하지 않았다.
또한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소수의 개를 제외하곤 중간에 낙오되거나 사라진 개를 대신해 새로운 개가 무리에 단시간에 아무런 잡음 없이 합류하는 점 또한 흥미로웠다.
서열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의 특성상…(중략).
강원도에서 나타난 동물 이상 행동은 송파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초코’ 견주 A씨는 새벽에 사라진 초코를 찾아 나섰다가, 낯선 개들과 함께 산에 들어가는 CCTV와 블랙박스 영상을 발견했다. 초코는 평소 다른 개를 무서워하던 겁쟁이였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또 다른 견주 B씨 또한… (중략).]
“저도 슬슬 신경 쓰이긴 하네요. 나중에 정신 차리고 스스로 집에 돌아가거나 발견된 동물도 있지만, 중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개체도 많다니까요. 수가 많으면 그 흔적도 많아야 정상인데, 중간에 하늘이나 땅으로 꺼진 듯 뚝 끊겼다는 점도.”
“게이트 괴물이 잡아먹는 건… 아니겠지?”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봐요. 펫펫바이오에 있었던 걸로 추정되는, 동물에게 영향을 끼치는 괴물이 유인하면, 숨었던 다른 괴물이 모조리 먹어 치우는 거죠. 하지만 용산이나 송파 쪽은 멀쩡한 CCTV가 많아 그걸로 추적하면 단서가 나올 것 같은데….”
한율은 시간을 확인한 후 말을 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아침에 나리 씨한테 연락해봐야겠네요.”
“엉. 우리도 이만 자자.”
“네. 혹시 모르니 객실에 결계만 치고요.”
“잉. 설마 자는 동안 여기로 누가 들어올… 음, 가능성이 있으니 부탁한다.”
* * *
어스래빗 숙소.
유호와 강보배가 회사로 가고, 이건우와 길우성만 남은 숙소는 조용했다.
뀨웅…. 거실 소파에서 자던 구동은 문득 눈을 떴다. 아래로 처진 귀를 부르르 떨며 기상. 쭉쭉 기지개를 켜곤, 폴짝폴짝 서한율의 방으로 향했다. 달냥은 낮에 한바탕 울부짖어서 피곤한지, 베개에 몸을 돌돌 만 채 곤히 자고 있었다.
다시 거실로 나온 구동은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다가갔다. 열어보려 벅벅 긁었으나, 굳게 닫혀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끼웅…. 구동은 문 너머 정원수를 애타게 바라보며 몸을 웅크렸다.
“구동아, 밖에 나가고 싶어?”
마침 1층으로 내려온 길우성이 그 모습을 발견하곤 물었다. 구동은 귀를 쫑긋하곤, 다시 문에다 앞발을 올리곤 벅벅 긁었다.
“너 진짜 똑똑하구나. 열어달라고 할 줄도 알고.”
길우성이 활짝 문을 열어주자, 구동은 낙엽을 밟으며 신나게 뛰쳐나가겠다. 그러곤 정원수를 향해 폴짝, 찰싹 달라붙었다.
나무에다 앞니를 콕 박아넣고 꿈쩍도 하지 않는 구동.
길우성은 살며시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기울였다.
‘저거 아무리 봐도 토끼가 아니라….’
토끼용 사료나 간식을 일절 먹지 않고, 앞발도 일반적인 토끼와 다르다. 마치, 지구의 동물과 조금 닮았을 뿐인 게이트 괴물처럼.
‘아니, 괴물이라니 말도 안 돼. 게이트 열리기 전부터 지은이 형이 키웠던 거잖아. 정말 구동이가 괴물이면 그전에 열린 게이트가 있었단 소린데.’
길우성은 고개를 흔들곤 핸드폰으로 구동을 촬영했다. 나중에 서한율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툭. 그때 구동이 나무에 박았던 앞니를 뽑고선 힘없이 내려왔다. 이번엔 옆에 자란 화초 잎사귀를 앙증맞은 두 앞발로 잡아 물더니.
‘응? 표정이 어째….’
몇 번 우물거리더니, 퉤.
“불량토끼가 됐어…?!”
작게 외친 길우성은 구동에게 핸드폰을 더 가까이 들이댔다.
“크, 이런 모습도 귀엽구용. 맛없어서 뱉었어?”
끼웅…. 힘없이 대답한 구동이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따라서 고개를 든 길우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맛없어서 뱉었나?”
본래 정원은 한 달에 한 번 정원 관리 업체 사람을 불러 관리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숙소를 관리했던 가사도우미가 뒤통수를 거하게 친 이후 낯선 사람 들이는 걸 꺼리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리에 소홀하게 되었다. 식물이 열심히 잡초를 뽑고 물만 준다고 잘 자라는 건 아니기에.
‘자세히 보니 가을이라 그런 게 아니라, 상태가 안 좋아서 시들시들한 부분이 많네. 괴물들과 싸우느라 대기에 퍼진 온갖 오염물질 탓도 있겠지만. 그러고 보니 양평에 있을 때, 서한율이나 지은이 형이 종종 구동이 데리고 계곡으로 산책했었지?’
길우성은 푸른 나무가 울창했던 펜션 정경을 떠올렸다.
“구동아, 우리 산책하러 갈까? 시간상 양평까지 다녀오는 건 힘드니까, 근처로 잠깐.”
구동이 커다랗고 새카만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뀽?
서한율이 JE의 집에서 챙겨온 구동의 대형 케이지에는, 구동이 사용했던 산책용 하네스도 걸려 있었다. 구동은 하네스를 하는 게 익숙한지, 길우성의 손길을 전혀 거부하지 않았다.
“구동이 산책시키게?”
방에서 나오던 이건우가 물었다.
“응. 많이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 잠깐 다녀오려고.”
“호 형한텐 물어봤어?”
“아까 톡으로 물어봤는데,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줄 잘 착용하고, 이동 가방에 잘 넣고, 가까운 곳이면 괜찮대. 형도 같이 갈래?”
이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옷만 갈아입고.”
두 사람은 구동을 데리고 백범광장공원으로 향했다. 처음엔 가까운 용산공원이나 남산으로 가려 했으나, 사람이 많아 차를 돌렸다. 백범광장공원은 그나마 한산했다.
“구동아, 기분 좋아?”
어느 정도 걷자, 구동은 잎사귀가 푸릇푸릇한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남이 보면 굉장히 이상한 광경이었기에, 길우성과 이건우는 교묘하게 구동의 모습을 가린 채 잡담을 나눴다.
“참 아이러니하다. 같은 서울시 어느 곳에선 게이트 괴물과 전투 중인데, 이쪽엔 헬기나 전투기 날아다니는 소리 들으면서 느긋하게 산책하는 사람이 많단 게.”
“우리도 그중 한 명이고.”
“미현이 새집 보러 다닌 건 어떻게 됐어?”
“우리 숙소에서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빌라. 곰순인 거기가 제일 마음에 드는 눈친데, 엄마랑 아빠가 반대 중이야.”
“당연하지. 우리 동네가 안전한 축에 속한다고 해도, 게이트가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니잖아. 하늘로 도망치던 괴물이 지난번 헬스장 때처럼 뚝 떨어질 수도 있고.”
“그렇긴 하지.”
길우성은 머리를 긁적이곤 덧붙였다.
“써한이 우리 동네로 이사하면 결계 만들어준다고 하긴 했는데, 그놈 무리해서 쓰러졌던 거 생각하면….”
뀨. 나무에 달라붙어 대체 뭘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구동이 두 사람의 발치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몸을 낮추곤 구동을 쓰다듬었다.
“끝났어? 그럼 이제 다른 나무랑 꽃 보러 갈까?”
킁킁. 그때 구동이 코를 들어 냄새를 맡더니 귀를 부르르 떨었다. 구동의 새카만 눈동자가 어느 곳을 향했다.
건너편 낮은 화단 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마르고 지저분한 작은 푸들 한 마리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용했던 흔적이 있는 걸로 봐선, 버려졌거나 집을 잃은 모양.
이건우가 안쓰러운 얼굴로 말을 걸었다.
“멍멍아,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 괜찮아? 집 잃어버린 거야?”
길우성은 혹시 푸들이 달려들까, 구동을 안전하게 이동 가방에 넣었다. 찰칵. 이건우는 핸드폰으로 푸들의 사진을 찍어, 유기 동물 플랫폼 앱에다 올렸다.
자신에게 해를 끼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낀 걸까. 눈치를 살피던 푸들이 낑낑거리며 이건우에게 다가왔다. 이건우의 표정은 더 안쓰럽게 변했다. 다리와 꼬리에 다른 개에게 물린 것 같은 상처가 잔뜩이었다.
“일단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등록 칩이 있는지 확인하고, 치료받게 하는 게 좋겠다. 우성아, 네 차에 얘 태워도 돼?”
“응.”
“멍멍아, 조금만 더 가까이 와. 괜찮아.”
끼웅, 뀽…!
“구동아, 왜 그래? 강아지 무서워?”
이동 가방에 얌전히 들어갔던 구동이 돌연 투명한 창을 두드리며 울었다. 동시에 이건우의 손 앞까지 다가왔던 푸들이 화들짝 놀라며 저만치 달아났다. 타닥!
“어….”
이건우는 당황해서 몸을 일으켰다. 강아지가 도망간 반대쪽에서 네 마리의 개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컹컹! 조금 전 푸들을 추격하듯, 사납게 짖어대며 두 사람 앞을 지나갔다.
혹시 조금 전 푸들을 다치게 한 개들일까.
“우성이 넌 여기에 있어! 내가 쫓아가 볼게!”
“어? 어, 형! 조심해!”
길우성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멀어지는 이건우의 뒷모습을 보다가, 여전히 창을 두드리며 우는 구동을 달랬다.
“괜찮아, 구동아. 무서운 개들 지나갔어.”
끼웅, 뀨웅. 그러나 구동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직접 쓰다듬으면서 달래줘야 하나? 아냐, 만약 가방에서 뛰쳐나가 잃어버리면? 전에 옥상에서 달리는 거 보니 얘도 상당히 빠르던데.
짧은 고민 끝에 그대로 두기로 했을 때였다.
“……?”
길우성은 시야 한쪽에서 흰색의 무언가가 아른거리는 걸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수풀 사이로 새하얀 무언가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족제비…?’
빼꼼. 똑같이 생긴 다른 머리가 그 옆으로 또 나왔다.
‘두 마리…. 어?’
별생각 없이 속으로 중얼거리던 길우성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메마르고 얇은 수풀가지 사이로 동물의 몸통이 보였는데….
길우성은 뒷걸음질 쳤다.
‘머리랑 머리가… 이어져 있어…?!’
게이트 괴물이 틀림없었다.
그 순간, 나중에 나온 머리가 주둥이를 쩍 벌렸다. 작게 웅크렸던 꽃봉오리가 활짝 만개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크게 벌어졌다. 높이는 1m 남짓.
“허억…!”
동시에 숨 막히는 고통이 길우성을 덮쳤다.
턱. 뒷걸음질 치던 그의 등이 나무와 닿았고, 게이트처럼 안이 검붉게 일렁거리는 괴물의 주둥이가 조금씩 다가왔다.
끼웅, 끼우웅! 이동 가방에선 구동이 폴짝폴짝 몸을 부딪쳤다. 빨리 정신 차리고 도망치라는 듯.
“우성아!”
그때 개들을 쫓아갔던 이건우가 저 멀리서 달려왔다.
“야, 이 괴물 새끼야! 저리 안 꺼져?!”
전력 질주하는 기세에 눌린 걸까. 하얗고 길쭉한 괴물이 주춤거리더니, 이내 주둥이를 다물곤 반대 방향 수풀로 몸을 날려 도망쳤다. 파사삭!
“하아, 하….”
막혔던 숨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길우성은 나무에 기댄 채 주르륵 주저앉았다.
“우성아, 괜찮아? 다친 데 없어?”
길우성은 가쁘게 숨을 몰아 내쉬다 고개를 들었다.
“어, 어…. 괜찮아. 괜찮아, 형. 조금 놀라서….”
“…….”
그러나 길우성을 살피는 이건우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왜… 그렇게 봐…?”
“…일단 차로 가자.”
이건우는 괴물이 멀리 갔는지 주변을 살펴 확인한 뒤, 길우성의 몸을 일으켜 주었다. 끼웅…. 가방 속 구동도 몸부림을 멈추곤 길우성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이동 가방 창에 비친 길우성의 눈은, 막 능력을 각성한 여파로 검붉게 물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