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7화 (409/427)

쌍욕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 송파구의 한 상가 건물.

건물은 1층 가게 문마다 ‘상가 임대’ 혹은 ‘폐업’ 종이가 붙어 있었고, 내부는 쓰레기와 먼지로 휑했다.

[목표물은 새벽 5시 47분경. 해당 건물로 들어간 후 현재까지 나오는 모습 관찰되지 않았다.]

[청각과 후각이 상당히 예민할 테니 주의하도록.]

군인들은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건물을 포위했다. 작전 투입 전 모니터로 본, 작은 산책용 애견 가방을 진 큰 개와 거기에서 얼굴을 내민 족제비 닮은 괴물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개와 고양이, 쥐 등. 주로 포유류 동물을 조종한다고 알려진 게이트 괴물로, 몸통 앞뒤에 머리가 달려있으며 인간 역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삼킬 수 있는 위험한 괴물이다. 발견 즉시 사살하도록.]

이번 작전에 투입된 김 상병은 조심스럽게 건물로 진입, 정해진 대로 2층 고양이 카페에 접근했다.

고양이 카페 역시 다른 가게처럼 폐업한 상태였는데, 문의 유리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유리가 있던 자리는 큰 개라면 쉽게 넘을 수 있을 높이였으며, 틀에는 그 개와 비슷한 색의 털이 잔뜩 걸려 있었다.

내부는 창이 아주 큼직해 햇빛이 잘 들어와 환했다. 고양이들이 일광욕도 하고 밖도 구경할 수 있도록 일부러 이렇게 만든 모양이었다.

김 상병은 긴장을 놓지 않으며 지급된 센서 장비를 꺼냈다. 유리 칸막이로 나뉜 고양이 놀이터 안. 고양이 집과 터널 안에 괴물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까닭이었다.

그걸로 천천히 놀이터 쪽을 훑던 그 순간.

[위!]

콰앙! 뒤에서 그를 따르던 동료가 짧게 외치며 사격했다. 천장에 달렸던 조명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

“……!”

김 상병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무전을 쳤다.

“2층, 목표물 발견!”

긴 몸통에 족제비 닮은 머리가 앞뒤로 달린 괴물. 그것이 재빠르게 다른 조명을 밟으며 놀이터 모퉁이 안쪽으로 달아났다.

김 상병은 뒤에 달린 괴물의 새카만 눈과 마주치고, 그게 저를 비웃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무섭다고 지체하면 동료들만 다치거나 위험해진다.

그렇게 생각한 김 상병은 다시 앞장서서 모퉁이를 돌았고.

“……?!”

덥석, 꿀꺽.

“…김 상병님!”

뒤이어 코너를 돌았던 김 상병의 동료, 이문점 일병은 경악했다. 불과 1초도 안 되는 사이, 김 상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곳엔 검붉은 것이 일렁거리는 괴물의 주둥이만 쩍 벌어진 채 히죽 웃고 있었다. 뒤쪽에 달린 또 다른 머리도 이문점을 바라보며 눈매를 휘었다.

캬륵, 캬륵.

“으아아!”

이문점은 분노하여 괴물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 * *

한율은 한국에서 했던 실험과 달리, 이번엔 결계를 더 넓고 크게 만들었다. 각성자 능력에서 정제한 마력이 게이트의 기운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틀에 한율의 마력이 일부 들어가는 까닭이었다.

여기에 괴물의 생명력을 흡수해 마력으로 변환하는 마법, 결계와 연결된 기둥 형태의 마법진을 지상에 세웠다.

“…후우.”

작업을 마치고 천천히 물러나자, 상황을 지켜보던 이곳 레드 게이트 방어선 책임자가 다가왔다.

[실제로 보니 굉장하군요. 한율 덕에 병사들이 잠깐이나마 마음 놓고 쉴 수 있겠어요. 감사합니다.]

한율은 애써 피곤한 티를 감추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감사의 인사를 받기엔 이른 것 같습니다.]

[한국군이 보내준 결계 실험 영상 봤습니다. 결계가 힘이 다해 사라지기 전, 재로 변하는 괴물의 수가 줄어들더군요. 친절히 사전 예고까지 다 해주는데, 당연히 감사해야지요.]

농담처럼 말하며 웃은 책임자의 시선이 게이트와 연결된 마법진을 가리켰다.

[그런데 저건 영상에서 못 봤던 건데. 뭔지 물어봐도 됩니까? 게이트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

[사람이 타는 엘리베이터는 아니고.]

한율도 웃으며 대답했다.

[각성자의 능력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해 결계로 전달하는 장치입니다. 제가 직접 에너지를 가공하는 것보단 비효율적이겠지만, 그래도 달아봤습니다.]

[오오. 그래서 이 부대에 실험 지원 각성자가 있는지 물어봤던 거군요? …해에리!]

책임자의 목소리가 쩌렁 울렸다. 저 멀리서 대기하던 한 군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해리란 이름의 군인은 한율의 설명을 듣곤, 잔뜩 긴장한 얼굴로 기둥 마법진으로 다가갔다. 1m 앞에 서서 불꽃 형상으로 일렁거리는 부분을 향해 능력을 사용했다.

화악!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순식간에 마법진에 흡수되었다. 우웅. 기둥을 타고 사선으로 흐르던 주문이 붉은빛을 띠더니, 아주 작은 붉은 입자가 반짝반짝 결계를 향해 올라갔다.

[어…?]

해리가 멍하니 제 두 손을 내려다보다가 한율을 돌아보았다.

[저, 결계 유지에 도움 된 거 맞습니까?]

한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리. 저도 잘 될까 걱정했는데,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리고 한 달 후 건강 검진 잊지 말고 받으세요. 결계 실험에 참여한 각성자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거든요.]

[네.]

해리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마법진과 결계를 올려다보았다.

[부디 동료 한 명 구할 시간 정돈 벌었기를.]

한율은 몇 시간 동안 결계를 지켜보기로 했다.

게이트가 잘 보이는 멋진 스카이라운지. 대기에 화약 냄새를 비롯한 각종 불쾌한 냄새, 먼지가 뿌옇게 일었으나, 한율은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마셨다.

우웅. 조용히 곁을 지키고 있던 정상욱 중위가 핸드폰을 꺼냈다. 정상욱과 이해원 등. 국방부 인원과는 마나 정제 작업이 끝난 몇 시간 전, 이곳 게이트 방어선 앞에서 합류했다.

“핸드폰 연결이 잘 될까 걱정했는데 잘 되는군요. …네, 게이트 방어 지휘부 각성자 관리과 소속 중위 정상욱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금방 전화를 끊은 정상욱이 한율에게 말했다.

“한율 씨가 말했던 괴물, 쌍두 족제비. 조금 전 군이 포획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미스터리 해커가 추적한 그 장소에서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정말이요? 사살하지 않고?”

“사살하려는 과정에 큰 상처를 입혔는데, 놈이 테이블 형태로 된 고양이 집 안으로 숨어 들어가, 그대로. 잡힌 장소가 폐업한 고양이 카페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단단한 철제 컨테이너에 가둬 괴물 연구소로 운반 중이고요. 그런데 작전에 투입된 병사가….”

짧은 한숨 뒤 정상욱이 말을 이었다.

“쌍두 족제비가 같은 부대원을 흔적도 없이 삼켰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직접 목격한 겁니까?”

“아니요. 하지만 모퉁이를 돌았던 1초 사이. 앞장섰던 부대원이 사라지고, 괴물이 커다란 주둥이를 쩍 벌린 채 웃고 있었다더군요.”

“네….”

한율은 커피를 마시는 척하며 구겨지려는 표정을 관리했다.

혹시 몰라 인간을 흔적도 없이 삼킬 수 있는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는데, 정말로.

띠링.

“……?”

웬일로 현강희가 SNS DM을 보냈다.

뮤닷 에 나와 한율을 롤모델로 꼽았던 고등학교 후배. 이후 크레용박스 엔터에서 WB래빗 엔터로 옮겨 신인 아이돌그룹 ‘SPRabbit’으로 재데뷔한 직속 후배이기도 했다.

-[바쁘신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선배님. 폐가 될 걸 알지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시간 되면 전화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별의별 별종이 다 있는 연예계에선 보기 힘든, 예의 바르고 성실한 후배 아이돌이었다. 괜한 일로 이런 DM을 보내진 않았을 터.

한율은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DM 봤어. 무슨 일 있어?”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선배님. 혹시… 오래전 <보컬리스트 시즌 3>에 함께 출연했던 문점이 형 기억나세요? 이문점 형이요. 크레용박스 엔터 소속이었는데….]

게이트와 결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기억나.”

5년 전 출연한 뮤닷 <보컬리스트 시즌 3>.

크레용박스 엔터의 이문점과는 당시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러 간 스튜디오나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눴다. 그 외에 따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고등학생 때 네가 그분이 아이돌 연습생을 그만뒀다고 말한 것도.”

-[문점이 형이…. 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뭔데. 차근차근 말해봐.”

-[형이 지금 게이트 방어선 군인이거든요. 그런데 조금 전….]

현강희의 설명은 이러했다.

추적, 사살 명령을 받은 게이트 괴물을 잡는 과정에서 그 괴물이 동료를 흔적도 없이 삼켰는데, 괴물 연구소가 사라진 동료의 행방을 제대로 찾아줄지 모르겠다며 호소했다고.

-[그리고 자신이 이성을 잃고 총을 쏴댄 것 때문에 사라진 동료를 찾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무척 불안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 선배님을 떠올렸나 봐요. 제가, 선배님이랑 같은 소속사인 것도.]

세상 참 좁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살짝 스친 인연이라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우연이라고 봐야 할까.

어쨌든 가장 가까운 목격자가 안면이 있는 사람인 건 좋은 소식이었다. 경계심을 낮추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더 쉽게 털어놔 줄 테니.

“무슨 사정인지는 알았어. 일단 내가 알아볼게. 그리고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전해줘.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분 잘못이 아니라고.”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럼 몸조심하고.”

통화를 끊은 한율은 잠시 고민하다가 정상욱 중위에게 말했다.

“조금 전 생포한 쌍두 족제비 괴물. 제가 직접 살펴보기 전까지 아무도 손댈 수 없도록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내일 가장 빠른 한국행 항공편도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 * *

한국 날짜로 10월 29일. 한율은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공항엔 한율은 취재하기 위해 나온 기자들, 얼굴을 보려고 몰려든 인파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한율은 카메라에 찍히는 일 없이, 관계자 전용 통로를 통해 공항을 빠져나갔다.

쌍두 족제비 괴물이 있는 괴물 연구소로 이동하는 차 안. 한율은 어스래빗 단톡방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박가람의 톡을 봤다.

-[서한율이 버리고 간 우리는 오늘, 라이언의 집에 다녀왔습니다.]

-[라이언의 고모란 분이 라이언의 어릴 적 사진 절반을 팔아치웠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럴 수가ㅜㅜ]

-[변호사를 고용해 법적으로 처벌하겠다며 라이언이 상큼하게 웃었습니다.]

-[라이언의 사촌 동생인 테디도 만났습니다.]

-[(사진)]

-[라이언이랑 약간 닮은 듯?]

-[기특하게도 공부를 잘해, 꿈이 의사라고 합니다. 라이언이 테디를 기숙사가 있는 좋은 학교로 보내버리겠다고 하네요ㅎㅎㅎ]

-[그리고 라이언! 고향에 온 김에 운전면허를 따기로 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세 사람을 제외한 멤버들이 반응했다.

-[오오!]

-[드디어!]

한율도 톡을 썼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라이언이 뒤늦게 대답했다.

-[다들 고마워ㅎㅎ]

차남석의 톡.

-[전 내일 한국 들어갑니다. 가람이 형은 조금 더 있다가 가기로 했고요.]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아직 어스래빗 멤버들에겐 길우성을 노리던 괴물이 잡혔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똑같은 종류의 괴물이 더 있을지도 모르므로.

길우성이 안심하고 돌아다니는 꼴도 보기 싫고.

[네, 조심히 들어와요.]

이윽고 경기도 외곽에 있는 괴물 연구소에 도착했다. 연구소 앞에는 군복을 입은 이문점이 다른 게방부 군인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한율은 이문점이 딱딱하게 거수경례하기 전,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오래간만이에요, 형. 그동안 잘 지냈어요?”

5년 전 풋풋했던 아이돌 연습생 특유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수척한 군인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네…. 아니, 응…. 오래간만이야, 한율아….”

잠시 후.

한율은 쌍두 족제비라 이름 붙여진 게이트 괴물과 두꺼운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두 걸음 떨어진 채 선 이문점이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말했다.

“내가 분명히 봤어. 저놈이 벌린 커다란 입 안으로 총알이 흡수되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걸. 같은 건물로 들어갔던 수많은 동물이 사라진 것도, 다 저놈 짓이 분명해.”

한율은 괴물을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낮췄다.

족제비 닮은 괴물이 네 발로 아장아장 걸어왔다. 새카만 눈으로 한율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주둥이를 벌렸다. 흔히 볼 수 있는 이빨이나 혀 대신, 게이트처럼 검붉은 무언가가 일렁거린다.

툭, 툭. 유리 벽을 삼키려는 것처럼 스스로 부딪치지만, 너무 평평하고 넓어서 힘든지 한 걸음 물러나며 주둥이를 다무는 괴물.

“하….”

한율은 골치가 지끈거렸다.

참을 수 없는 쌍욕이 흘러나왔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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