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먹어봐
쌍두 족제비 괴물에게서 느껴진 건 짙은 게이트의 기운.
절대 벌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 최악의 가설이 정답이었다. 이 괴물은 움직이는 게이트였고, 마주쳤던 길우성은 능력을 각성함과 동시에 게이트 내부를 코팅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괴물이 하루 만에 잡혔다는 사실.
한율은 송파에 노란색 게이트가 있다는 소문을 떠올렸다. 이 괴물의 근거지 또한 송파. 정말로 코팅되기 이전에 인간까지 삼켰던 건지는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동물이 드나들 수 있는 게이트는 확실하다.
현재는 코팅되었으니 더 수월하게 삼킬 수 있을 테고.
“…….”
한율은 몸을 일으켰다.
한국 게이트 괴물 연구소장과 이문점, 정상욱 중위가 움찔거리며 그의 눈치를 봤다. 늘 예의 바르고 미소를 잃지 않던 대외적인 이미지와 달리, 살기 짙은 목소리로 쌍욕을 내뱉은 모습을 처음 봐 충격받았던 모양.
한율은 괴물을 노려보던 눈빛에서 힘을 뺐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망설이는 표정으로 이문점을 돌아봤다가, 연구소장에게 시선을 옮겼다.
“움직이는 게이트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
“그것도 노란색 게이트요.”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
“네?!”
“……!”
“그럼 김 상병님은…!”
한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게이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의 고향이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세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이… 소멸했을지도요.”
“안 돼…. 김 상병님….”
이문점이 비틀거렸다. 정상욱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저 괴물도 게이트처럼 없애는 게 불가능한 겁니까?”
“시도해봐야 알겠지만 우선은.”
한율은 천천히 숨을 내뱉곤 말을 이었다.
“전 세계에 이 괴물의 존재를 알리고, 같은 종류의 괴물이 얼마나 더 있는지 추적하는 게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게이트 괴물 연구소를 나온 한율은 이번엔 송파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울컥 일었던 짜증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이성을 굴렸다.
자신이 초반에 게이트를 너무나 잘 막은 탓에 쌍두 족제비 괴물이, 계나리의 시간과 자신이 본래 세상에서 얻은 정보와 달리 죽지 않고 활동 중이라 치자. 그러나 길우성에 의해 게이트가 코팅된 개체는 이미 잡혔다. 다른 개체가 있더라도….
‘고향과 연결된 게이트만 아니면 상관없지 않나?’
문제는 고향과 연결된 게이트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마요르카 게이트와 비교하면 괴물의 주둥이는 한참 작다.
또한 현재 지구는 다른 세상으로 도망쳐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가 아니다. 어떤 나라가 게이트에다 핵무기를 사용하는 멍청한 짓을 벌이기는 했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
‘그래도 움직이는 게이트의 등장에 짜증이 일고 불안했던 건…. 내 고향이 지구인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고 멸망에 이르는 걸 봤기 때문이겠지.’
한율은 깨끗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작은 산도.
무척이나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쌍두 족제비 괴물에 의해 강제로 게이트를 건너간 이는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한율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 또한 위험해질 수 있는 게이트를 건너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설령 내 고향과 연결되었다곤 해도…. 완전히 무장했어도 고작 군인 한 명. 그 정돈 괜찮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이제 길우성이 어떤 능력을 각성했는지만 감추면 돼. 아니, 들켜도 상관없어.’
천천히 심호흡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누구도 우리 고향으로 넘어갈 수 없도록 막기만 하면 돼.’
지구로 건너온 목적을 잊어선 안 된다.
그의 목적은 길우성을 지키고 보호하는 게 아니라, 그의 고향을 보호하는 것이다.
설령, 지구를 멸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한율은 유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쌍두 족제비 괴물이 잡혔던 상가 건물은 반경 50m까지 게방부가 바리케이드로 두른 상태였다. 건물 안에선 한창 괴물의 흔적을 조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까지 차 끌고 와줘서 고마워요. 숙소에 들르면 시간이 더 지체될 것 같아서요.”
미리 게방부에 허락받은 터라, 유호가 끌고 온 한율의 차는 무난하게 바리케이드 안까지 들어왔다.
유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중요한 일을 하는데, 이 정돈 도와야지. 그런데 여긴 무슨 현장이길래 이렇게…. 혹시, 정말로 노란색 게이트가 발견된 거야? 그때 게방부가 조사했을 땐 없었다고 밝혀졌잖아.”
쌍두 족제비 괴물의 존재와 정체는 곧 뉴스 속보로 뜰 예정.
한율은 천천히 한숨을 내쉰 뒤 대답했다.
“비슷해요.”
“정말로?!”
“네. 건우 형은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저기 건물 모퉁이 너머에 차 세워놓고.”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나중에 숙소에서 봐요.”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유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율의 어깨와 등을 토닥거렸다.
“미국에서도 수고 많았어.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
따뜻한 손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단 마음이 전해진다.
한율은 그를 향해 입가를 올렸다.
“네.”
* * *
대형 포털사이트 메인.
[[중대] 괴물 형태 띤 움직이는 게이트 출현! 사진 꼭 보세요]
[인간을 삼키는 무시무시한 게이트를 품은 괴물이 발견되어 충격이다.
지난 28일 게이트 방어 지휘부는 동물 집단 이상 행동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괴물의 생포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상병 A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해 조사한 결과, 해당 괴물의 입 안에 인간을 삼킨다고 알려진 노란색 게이트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쌍두 족제비’라 이름 붙여진 괴물의 모습. 게방부 제공)
게방부는 서울시에 발생한 동물 집단 이상 행동과 비슷한 일이 강원도에서도 발생한 것에 주목…(중략).]
-하루하루가 어메이징하다..
-그래도 하나는 잡아서 다행인데 사라진 군인 안타까워서 어째요ㅜㅜ
-대가리 하나만 보면 귀엽게 생겼는데 몸통 앞뒤로 붙은 거 보니까 소름 돋네
-그럼 지금까지 서울 일대에서 사라진 동물 전부 이 괴물이 잡아먹은 거?
-주둥이가 얼마나 크게 벌어지길래 사람을 삼킴?
ㄴ기사 아래에 나왔잖음. 높이 1m가량 벌어지는 거 확인했다고. 위에서 아래로 꿀꺽한 거지
-잡힌 괴물 어디 가면 볼 수 있음?
ㄴ게이트 괴물 연구소. 하지만 아무나 못 들어감. 반경 십수 km까지 민간인 접근 금지구역임.
포털사이트 메인은 쌍두 족제비 괴물 그리고 중국이 핵무기를 사용한 것과 관련한 심각한 기사로 도배되었다. 반면, 연예 뉴스란은 아주 다른 세상이었다.
[진은수 소속 걸그룹 퍼플아워, 11월 컴백 확정!]
[뮤닷, 올해 <2021 RMMA> 온라인 개최 검토]
[배우 이희우, “오래간만의 촬영장 너무 행복”]
[WB래빗 엔터, “올해도 크리스마스 송 판매 수익 기부할 것”]
[서한율, 31일 도레미피자 팬 사인회]
-미국에서 대규모 실험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진짜 쉴 새 없이 일하네. 존경한다, 진심ㅋ
-작작 좀 부려 먹어라... 애 또 쓰러지겠다ㅠㅠ
30일. 한국 게이트 괴물 연구소.
한율은 날이 밝자마자 자신의 차를 끌고 다시 이곳을 찾았다. 연구소장이 직접 마중 나왔다.
“바로 어제 귀국했는데, 이렇게 무리해도 정말 괜찮은 겁니까?”
“그래서 오늘도 관찰만 하려고요. 그리고 어젠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고…. 바쁘실 텐데 방해해 죄송해요.”
소장이 손사래 쳤다.
“아뇨, 전혀요! 한율 씨의 방문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한율 씨가 없었다면 이 연구소 역시 생기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곳에서 한율 씨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여성 화장실과 여성 휴게실뿐입니다. 하하하.”
어제 처음 봤지만, 제 딴엔 유머러스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아저씨 같다. 한율은 감사한 미소를 짓곤 그와 걸음을 옮겼다.
“쌍두 족제비는 계속 먹을 것은커녕 물도 전혀 주지 않아서 그런지, 어제보다 움직임이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우리 직원들을 보고도 더는 장난치지도 않고, 눈으로만 좇더군요.”
“장난이요?”
“음…. 괴물의 속을 어떻게 알겠냐마는, 다들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둥이를 크게 벌리면 사람들이 질색하거나 무서워하니까, 그런 반응이 재밌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요.”
“총에 맞은 상처는요?”
어제 봤을 땐 몸통에 난 상처에 검붉은 딱지가 번들번들했다.
“특별히 낫는 것 같진 않습니다. 체액 검사는 물론이고 괴물의 몸을 자세히 살피는 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보니….”
한율은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여기.”
“이게 뭡니까?”
소장이 의아한 얼굴로 봉투를 받으며 거기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펫펫바이오…. 아, 송파에 있는?”
한국 게이트 괴물 연구소가 만들어지기 전, 정부는 포획한 게이트 괴물 연구를 여러 민간 연구소에 의뢰했다. 본래 동물용 의약품 임상시험을 했던 펫펫바이오는 주로 소형 괴물을 맡았다.
“네. 그곳에 있던 쌍두 족제비 괴물 관련 자료입니다.”
소장의 눈이 커졌다.
“그 괴물이 여기에 있었단 말입니까?!”
“네.”
어제 쌍두 족제비 괴물이 잡혔던 상가 건물을 살핀 뒤, 한율은 펫펫바이오를 찾았다. 펫펫바이오는 6월, 동물 집단 이상 행동이 최초로 포착된 날 유리창이 모두 박살 나는 등 난리를 겪었으나, 한율이 갔을 땐 깨끗하게 원상 복구되어 있었다.
“연구 중이던 괴물이 탈출한 후, 더는 괴물을 연구하지 않겠다고 발 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럼 그때 탈출한 괴물이?”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쌍두 족제비 괴물이었습니다.”
“세상에…. 하, 어이가 없네요.”
연구소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어제 온종일 뉴스에서 괴물 사진 띄우면서 제보 부탁한다고 그렇게 외쳤는데 그치들, 이쪽으로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괴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서 그랬을 거예요.”
“네?”
한율은 소장이 든 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펫펫바이오에 있을 땐 머리가 하나였거든요.”
“……!”
잠시 후, 쌍두 족제비 괴물이 갇힌 우리 앞.
한율은 홀로 그곳에 들어가 괴물과 마주했다. 괴물은 소장의 말처럼 어제보다 기운 없는 모습으로 구석에 누워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밤새 생각해봤어.”
쫑긋. 한율이 말을 걸자, 괴물의 앙증맞은 귀가 움직였다.
“다른 게이트는 괴물을 쏟아내는데, 왜 넌 반대로 삼킬까. 그게 네 영양분이라서?”
조금 전 소장에게 받은 작은 이동장을 유리 벽 앞으로 내밀었다. 그 안엔 또 다른 게이트 괴물이 들어있었다. 그제야 쌍두 족제비가 휘청, 몸을 일으키며 반응을 보였다. 머리 하나가 유리 벽 가까이 코를 갖다 대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삐릭. 한율은 과감하게 잠긴 우리 문을 열었다. 쌍두 족제비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지를 열자, 금방이라도 굴러다닐 것 같은 괴물이 뒤뚱거리며 나왔다. 연구소 직원이 식성 기호를 살핀다며 맛있는 걸 잔뜩 먹여, 포동포동하게 살이 찐 괴물이었다. 털에선 윤기가 났다.
“이것도 먹어봐.”
…….
쌍두 족제비 괴물은 멀찌감치 떨어진 채 한율과 포동포동한 괴물을 살폈다.
한율은 미간을 찡그리며 웃었다.
“불행해 보이지 않아서 싫어? 그럼 이놈은 어때?”
이번엔 환영 마법으로 감춰둔 또 다른 케이지를 허공에 띄웠다. 그 안엔 온갖 의학실험으로 너덜해진 괴물이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쩌억.
쌍두 족제비 괴물이 주둥이를 벌리며 게이트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