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토끼가 되어줘서 고마워
어제 펫펫바이오에서 만난 직원은, 뉴스에 뜬 쌍두 족제비가 자사에서 탈출한 괴물이란 사실에 매우 놀라워했다. 그러곤 변명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혈액 검사를 돌리고 초음파를 찍기 전까지, 직원 모두 게방부가 돌연변이 족제비를 착각해서 데려왔다고 여겼습니다. 괴물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 거죠. 상당히 귀여웠고… 주삿바늘을 대는 것도 미안해지고 그래서. 그래선 안 되는데, 이름까지 지어줬습니다. ‘담이’라고.』
펫펫바이오에서 기록한 자료를 건네준 그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연구소 내부엔 의약품 임상시험 때문에 지내는 아픈 개와 고양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초음파 검사를 하려다 담이를 놓쳤고, 담이가 아픈 개와 고양이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날이 바로 쌍두 족제비가 펫펫바이오에서 온갖 동물을 이끌고 탈출, 인근에서 동물 집단 이상 행동을 일으킨 날이었다.
한율은 주인에게 충성심과 애정이 강한 동물 혹은 겁이 많은 동물들이 집을 뛰쳐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렇다고 쌍두 족제비에 홀린 동물에게 충성심과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도중에 무언가 잘못되었단 걸 깨달은 듯 이탈한 개체도 적잖았던 걸 보면.
여러 가지 추론을 해보던 한율은 근본적인 의문을 되짚었다.
게이트는 대체 왜 생긴 걸까.
게이트의 목적은 무엇일까.
괴물들은 왜 낯선 세상에 발을 딛고도 돌아가려고 하지 않지?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서? 서로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 괴물에게도 같은 명령을 심은 절대적인 존재가 있어서?
한율은 한국 게방부를 비롯해 미국과 이탈리아에 문의했다. 혹시 게이트 너머로 뒤돌아가려고 시도한 괴물이 목격된 적은 없었는지.
없었다. 한 놈도.
게이트 너머 세상에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온 것처럼.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이 마치, 그의 고향으로 쳐들어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지구인들과 퍽 닮았다고.
‘멸망에 이른 세상의 생물체를 살리기 위해, 그들이 새롭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선택된 곳이 지구인 건 아닐까?’
길우성이 마요르카 게이트를 코팅한 건 지구가 멸망에 이르렀을 때였다. 만약 그 시기에 길우성이 하필이면,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갖춘 그의 고향과 이어진 게이트로 발을 디딘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해답. 당시의 길우성을 다시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어떻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마요르카를 찾았는지, 그 이야기는 평생 들을 수 없다.
그때처럼 지구가 멸망 직전으로 가면, 비슷한 전철을 밟으면 알 수 있을까?
다시 의문은 쌍두 족제비로 향했다.
길우성과 쌍두 족제비가 마주했을 당시. 길우성은 구동을 이동 가방에 넣었다. 구동은 불안해하며 마치 ‘꺼내달라는 것처럼’ 애처롭게 울면서 안에서 두드렸다.
‘자아를 가진 게이트. 제 딴엔 괴로워 보이는 동물을 구해주려 게이트 너머로 보내버리는 게 아닐까? 군인을 삼킨 건 그가 퍽 힘들어 보여서?’
어스래빗 숙소 옆에 나타난 건 단순히 지나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걸 달냥이 냄새를 맡고 반응한 거고.
물론 어디까지나 전부 추측이다.
터업.
쌍두 족제비가 아픈 괴물이 든 케이지를 향해 달려든 순간, 한율은 바람의 마나를 이용해 강제로 놈의 주둥이를 다물게 했다.
……!
두 쌍의 눈동자가 당황한 듯 흔들린다.
‘어쨌든 육체를 지녀서 외부 충격엔 약해 보여. 하긴, 그랬으니 계나리가 겪은 시간, 그 이전 시간대에서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고 동물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정보만 남겼던 거겠지. 코팅되지 않아 모든 것을 삼킬 수도 없었을 테고.’
그 말은 다른 게이트와 달리 쉽게 없앨 수도 있단 뜻이다. 게이트를 위한 연구 자료로 다루기도 쉽다는 뜻도 되고.
“다른 머리는 게이트를 못 여나 봐?”
주둥이를 강제로 다물게 하자 짜증이 나는지, 쌍두 족제비가 콧바람을 세게 내뿜으며 씩씩거렸다. 그러나 공격하진 않았다.
늘 큰 개의 가방에 들어가 움직였던 것도 어쩌면 체력이 약해서가 아니었을까?
한율은 케이지를 내려놓곤 살며시 쭈그려 앉았다. 그러곤 다정한 목소리로 쌍두 족제비를 불렀다.
“담아, 이리 와봐. 치료해줄게.”
…쫑긋. 펫펫바이오 직원들이 붙인 이름을 알아들은 걸까. 녀석이 귀를 움직이며 반응했다. 그러나 한참 동안 한율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뒤로 간 게이트 머리의 눈은 여전히 아픈 괴물에 고정되었다.
하지만 한율의 회복 마법이 상처에 닿은 순간.
캬륵? 쌍두 족제비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기분 좋은 듯 살며시 눈을 감았다. 두 쌍 모두.
한율은 괴물의 상처가 아무는 걸 보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게이트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쉽게 죽게 둘 순 없지.’
우웅. 조유찬의 전화.
한율은 포동포동한 괴물을 다시 케이지에 넣곤 우리에서 나왔다. 아픈 걸 치료해줘서 그럴까. 쌍두 족제비가 호감 가득한 눈을 반짝거리며 유리 벽 앞까지 다가왔다. 참 단순한 괴물이었다.
“네, 형.”
-[한율아, 통화 가능해?]
“네.”
-[내일 도레미 피자 팬 사인회 있잖아. 옷이랑 신발, 액세서리 등등 협찬해주고 싶다는 연락이 엄청나게 많이 와서 그런데. 어떻게 할래? 와서 검토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제 거 걸칠…. 아니다. 그러려면 옷 고르러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숙소로 와야 하죠? 그냥 누나한테 맡길게요.”
-[응. 그럼 그렇게 전달할게. 오늘도 바빠?]
“아뇨.”
한율은 쌍두 족제비를 일별하곤 그곳을 나왔다.
“금방 들어가요.”
* * *
띠링. 이건우는 유기 동물 앱 알림을 클릭했다. 바로 며칠 전 공원에서 찍은 작은 푸들 게시글에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마포구 ○○아파트에서 키우던 가족이 버리고 간 강아지 같네요.. 개 짖는 소리가 너무 나서 관리소장이 문 열어줬는데 그때 뛰쳐나온 개랑 닮았어요ㅜㅜ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건우는 푸들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안전한 곳으로 잘 도망쳤나 모르겠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어머니께 전화했다.
“엄마, 우리 집 개들은 잘 있지?”
-[아주 상전이다, 상전.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온 사방에 풀어놓곤, 네 아빠 먹으라고 삶은 족발까지 맛있게 잡쉈다.]
“어. 심하게 잘 있네. 다행이다. 아무튼 뉴스 봤지? 동물 이상 행동 일으키는 괴물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니까, 산책할 때 조심해.”
-[아드님이나 늘 몸조심하세요.]
“네.”
통화를 끊자 러닝머신을 달리던 길우성이 기계 작동을 멈췄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내쉬곤 이건우에게 징징거렸다.
“며칠 내내 숙소에 갇혀있으니 답답하다…. 그렇지 않아, 형?”
“왜. 양평에서도 잘 버텼잖아.”
“거긴 사방이 나무에다 공기도 좋았고, 산책할 곳도 있었잖아. 아, 활 쏘고 싶다….”
“그럼 같이 갈래?”
“엉? 언제 왔냐, 써한?”
“팬 사인회는 잘 끝났어?”
운동기구가 놓인 3층으로 올라온 한율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네, 그럭저럭. 이제 씻고 나서 양평에 가보려고요. 이젠 지내는 사람도 없는데, 계속 그대로 내버려 두기도 그래서.”
어스래빗 멤버들과 길미현, 조유찬 내외가 서울로 돌아오고, 마지막으로 지키던 차남석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어제 본가인 남양주로 돌아갔다.
“그럼 다시 펜션으로 영업하는 거야?”
“가서 고민 좀 해보려고요.”
한율은 길우성을 향해 물었다.
“야. 같이 갈 거야, 말 거야?”
오래간만의 외출. 길우성이 씩 웃었다.
“간다!”
“형도 같이 가요.”
“어. 가는 김에 거기 두고 온 나머지 짐도 챙겨와야겠다. 그러면 우리 이제 외출해도 되는 거야?”
“네.”
한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옥상에서 뒹굴뒹굴하며 일광욕을 즐기는 구동을 불렀다.
“구동아, 문 닫아야 하니까 들어와.”
끼웅.
잠시 후, 한율의 차에 이건우와 길우성, 강보배가 탔다. 뒷좌석에 앉은 길우성과 강보배 사이엔 달냥이 든 이동 가방이 놓였다.
“신나는 노래 듣자. 달냥이 있으니까 볼륨은 좀 줄이고.”
“운전은 내가 할게, 한율아. 너 일하고 와서 피곤하잖아.”
“괜찮아요. 운전하는 거 재밌어서요.”
“그나저나 이제 라욘 형 면허 따서 돌아오면….”
길우성의 시선이 강보배를 향했다. 유일하게 운전면허 없는 멤버가 되게 생긴 강보배가 머리를 긁적였다.
“길치에다 방향치인데 면허 따도 괜찮을까?”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이잖아. 이참에 너도 면허 따자, 보배야.”
강보배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전에 필기, 합격할 수 있을까?”
“그것부터 걱정해야 하는 거야?”
강보배를 돌아보며 웃은 이건우가 고개를 돌리다, 입가에 미미하게 미소 띤 한율을 보곤 물었다.
“그런데 한율이 너 오늘따라 기분 좋아 보인다. 팬 사인회에서 좋은 일 있었어?”
“오래간만에 팬들 가까이에서 본 것도 있고.”
한율은 길우성이 요청한 신나는 음악 대신 라디오 뉴스를 틀었다. 마침 해당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원도 일대에서 주로 개를 홀렸던 또 다른 쌍두 족제비 괴물이 한 시간 전,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포획되었습니다. 괴물은 곧바로 게방부에 인계되어 괴물 연구소로 옮겨졌으며….]
또 다른 뉴스.
[얼마 전 서한율 씨가 각성자 3천여 명의 능력에서 빼낸 힘으로 대규모 결계 실험을 했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의 레드 게이트가 실험 이후 사흘이 지난 현재, 최초 발생했을 당시보다 너비가 약 2m 줄었다고 미국이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결계 실험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하고 안심하기엔 이르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덥석. 길우성과 강보배가 앞 좌석을 잡으며 상체를 내밀었다.
“게이트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정말?”
“그럼 우리나라에 생긴 게이트는?”
한율은 룸미러를 통해 두 사람을 힐끗하곤 웃으며 대답했다.
“미국 발표 이후 확인해봤는데, 너비가 약 5미터가량 줄어들었다네요.”
“우와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길우성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찌나 목청이 좋은지 순간 귀가 아팠지만, 한율은 화내지 않았다.
어제 게이트 괴물 연구소에 나온 후. 한율은 게이트에 관한 자신의 추론을 되짚다가 그로 인해 파생된 새로운 의문을 떠올렸다.
‘정말로 게이트가 멸망한 세상에서 탈출시켜주는 구원의 목적으로 열린 거라면, 그렇게 건너온 지구가 그들에게 더한 지옥이 될 땐 어떻게 되는 거지?’
살기 위해 게이트를 넘어왔으나, 결계와 마법진에 생명력이 흡수되어 재가 된 괴물들. 한율의 추론대로라면, 그가 실험을 진행한 게이트는 오히려 목적을 실패한 셈이었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한율은 미국에 확인을 요청했고, 미국 측은 조금 전 격앙한 목소리로 속보를 말한 앵커처럼 대답했다.
-[게이트 너비가… 줄었습니다!]
물론 게이트가 완전히 소멸하기 전까진 안심하기엔 이르다. 끄떡없이 괴물을 쏟아내는 또 다른 레드 게이트도 많고. 하지만 얼마 못 버티고 소멸하는 결계를 볼 때마다 밀려왔던 허무함을 달래주는 소식이었다.
자신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해 계나리가 걸었던 시간, 그 이전에 그가 지내 온 시간의 또 다른 지구와는 상당히 달라진 전개.
몇 시간 전, 팬 사인회 현장에서 만난 팬의 인사가 떠올랐다.
『‘지구 토끼’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한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