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6화 (418/427)

족제비 왔어요

[6m 축소 러 게이트, 동원된 각성자는 미국이 더 많았는데 왜?]

[서한율이 결계 실험을 진행한 러시아의 레드 게이트가 6m 축소되었다. 그러나 앞서 더 많은 각성자가 동원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의 레드 게이트는 2m밖에 축소되지 않았으며, 세 번이나 실험한 우리나라의 게이트는 5m만 축소되었다. 이처럼 결과가 천차만별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우리나라 실험에 참여한 각성자가 미국과 러시아보다 한참 적은 것을 생각하면, 러시아의 게이트가 더 많이 축소된 원인을 분석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 A씨의 설명이다. 그리고 실험을 진행한 러시아와 미국의 게이트가 같은 세상과 연결된 게이트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지만, 게이트 대부분이 동시에 출현한 것만 봐도…(중략).]

-이름 밝히지 않을 거면 전문가란 타이틀은 왜 붙임? 뭘 믿고 보라고?

ㄴ아 방구석 전문가도 전문가라고ㅋㅋㅋ

-추측 요약하면, 게이트끼리 ‘아 ㅅㅂ 지구 쉽지 않네 ㅌㅌ할까?’ 서로 눈치 보면서 줄어든다는 거 아님?

-이름도 없는 전문가 말고 서한율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음?

ㄴ어떤 인터뷰에서 서한율한테 한 질문: 어떤 원리로 능력 사용이 가능한 거죠?//(해맑)그냥 되던데요?

ㄴ서한율도 ‘어? 왜지?’ 어리둥절한 상태일지도 모름ㅋㅋㅋㅋ

어스래빗 숙소.

1층 거실 소파에 늘어진 길우성은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

[제가 서한율한테 대신 물어봐 드림.]

곧 답글이 달렸다.

-너 뭐 돼?

“크.”

“안 자고 뭐 하냐?”

풀썩. 옆에 차남석이 앉으며 물었다. 길우성은 고개를 젖혀서 그를 한 번 본 후 대답했다.

“아까까지 달냥이랑 놀다가.”

차남석이 활짝 열린 서한율의 방을 향해 턱짓했다. 서한율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서한율은 자?”

“아니. 잠깐 게이트 상태 보고 온다고 나갔는데.”

“이 시간에? 넌 안 말리고 뭐 했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어스래빗 멤버들은 2주 후 있을 RMMA 무대 연습을 했다. 서한율은 그동안 연습에서 빠진 만큼 더 열심히 했고.

길우성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말렸거든? 그런데, 그놈이 언제 내 말 듣는 거 본 적 있어?”

차남석은 길우성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일어났다.

“늦었다. 자라.”

그 시각, 괴물들이 뚝뚝 떨어지는 게이트 앞.

한율은 용케도 아직 무너지지 않은, 게이트와 가장 가까운 고층 건물 옥상에 의자를 놓고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계나리가 한 말을 곱씹으며.

『미래의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지금 오빠가 하는 일들이,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계나리는 2028년에서 2019년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당시 ‘죽음’을 겪은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러니 최소 9년 정돈, 계나리가 다시 목숨 걸고 과거로 돌아올 정도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

‘만약 능력을 사용할 틈도 없이 죽기라도 했다면. …아니.’

한율은 고개를 저으며, 잔가지로 뻗으려는 생각을 잘라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괴물을 결계에 가둬놓고 생명력을 모조리 흡수한 이후부터 게이트 크기가 줄어들고 있어. 하지만 괴물이 나오지 않는 회색과 노란색 게이트는?’

마요르카 게이트의 실시간 영상을 확인했다. 여전히 그가 친 결계가 게이트를 감싸고 있었다. 결계에 충격을 주는 괴물들이 없어도 게이트 자체의 기운 때문에 옅어질 법도 하건만, 잘 버티고 있었다.

‘RMMA가 끝나면 다시 가서 확인해봐야겠어.’

그사이 결계가 사라져도, 애초에 코팅되지 않는 한 소수의 각성자가 나체가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였다. 스페인 군대도 철통같이 지키고 있고.

‘그땐 스케줄이고 뭐고, 나 역시도 당장 날아갈 거고.’

…하. 그 순간 한율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어이없어서.

조금 더 나아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씩 몸을 틀어 걸었을 뿐인데, 어느새 지구 멸망은커녕 인간들을 구하고 있었다.

길우성을 통제하고, 고향을 위협할 수 있는 각성자를 처단하며… 멸망해가는 지구에서 이들과 함께 죽겠다고 결심했건만.

‘나와 회귀자. 단둘만으로 이렇게 바뀔 줄은….’

그 사실이 허무했다. 지구에 출현한 모든 게이트에서 육눈박이처럼 아주 강한 괴물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 한, 인간들이 그리는 희망적인 세상이 다시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더욱.

‘내가 정말 지키고자 했던, 내 세상으론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와 닿아서 쓸쓸하게 느껴지는 걸까.’

필사적으로 기억에 붙들고 있던 과거의 인연들이 떠올랐다. 수십 년이 지나도, 앞으로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을 보내도 결코 잊어선 안 되는 가족의 얼굴도.

우웅.

그 순간, 핸드폰으로 전송된 톡 하나.

“…….”

한율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아들, 오늘도 수고 많았어^^ 좋은 꿈 꾸고 잘 자, 사랑해♡♡♡]

‘서한율’ 모친의 톡.

“하…….”

깊은숨을 토해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화약 냄새와 괴물의 피비린내가 뒤섞인 불쾌한 겨울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아직 뒤를 돌아보기엔 일러. 할 일이 많아.’

* * *

12월 10일 오후 1시. 크리스탈 래빗과 어스래빗의 ‘하양 토끼 까망 토끼’ 크리스마스 스페셜 디지털 싱글 앨범과 M/V가 공개되었다. 밤 9시에는 지난달 WB래빗 엔터 소속 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한 tv Mu 예능 1회가 방송되었다.

프로그램 톡창.

-서한율은 왜 안 보임?

-몇 명인데 버스에서 끝없이 내리냐ㄷㄷ

-서한율 스케줄 있어서 늦게 온대요

-크래 5명, 어스 8명(아직 서한율 안 옴), 드림래빗 6명, SPR 7명, IOMU 소속 2명, 배우 2명. 총 30명

-왠지 낯익다 했더니 원제로였던 애가 셋이나 있네

-크래 멤버 7명, 드래도 7명 아님?

-스케줄로 불참한 애들도 있는 듯

-방금 감소 제유 아님???

그룹별로, 개인별로 간단한 인사 시간이 주어지고, 탕수육 찍먹파와 부먹파, 고양이파와 강아지파 등. 여러 테스트를 거쳐 다섯 팀이 만들어졌다. 아직 오지 않은 서한율은 자동으로 인원수가 부족한 팀에 배정되었다.

-율톢 찍먹, 고양이, 아웃도어 파인데 완전히 반대로 배정됐어ㅋㅋㅋ

-제희 감소 탈퇴하고 배우로 전향한 지 조금 됐습니당. 그런데 떠비로 옮긴 건 처음 알았네요

-제주 남매 서로 너무 잘 알아서 약점 공격하는 거 개웃기네ㅋㅋㅋ

서한율이 도착한 건 배드민턴 라켓 선택 게임 중.

자막.

[화보 촬영하고 온 반짝반짝 ☆대스타☆]

-핏이랑 피부 보소

-그냥 뉴스에 나와도 피부 좋고 잘생겨서 연예인은 뭐가 다르다 했는데 꾸민 거 보니까 더 감탄이♡♡♡

-역시 괜히 연예인이 아님ㅠㅠ

-서한율 능력 사용 금지, 들키면 패널티 천 점ㅋㅋㅋㅋㅋ

-왜 하필 남은 라켓이 요술봉

-요술봉 짜라란ㅋㅋㅋㅋㅋ

70분 방송이 끝난 후,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란 메인엔 리뷰 기사가 여러 개 떴다. 추천 동영상에는 서한율의 요술봉을 빌린 변지욱이, 그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팬 서비스 영상이 올라왔다.

[낙엽 크리스탈 파워!]

휘오오. 하늘 높이 소용돌이치는 낙엽 사이로, 요술봉을 든 변지욱이 두 팔을 넓게 벌린 채 서서히 지상으로 착지한다. 파앗. 멋있게 흩어지는 낙엽을 헤치며 포즈.

[토끼의 이름으로 널! 행복하게 해주겠다!]

-ㅋㅋㅋㅋㅋㅋㅋ

-개웃곀ㅋㅋㅋㅋㅋㅋ

-세일○문 방영됐을 때 지욱이 너 안 태어났잖아 어떻게 아는 건뎈ㅋㅋㅋ

-이거 왜 2회로 끝임?ㅜㅜ

-다른 아이돌 나오는 예능에선 게이트 괴물이랑 싸우다 죽어가는 군인들 있는 마당에 지들끼리 웃고 떠드는 예능 찍는다고 머리 비었냐고 욕하는 애들 많던데 여긴 서한율 나오니까 욕하는 댓 하나도 없네ㅋㅋㅋㅋ

-서한율만 있으면 CG나 따로 장치 필요 없겠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실제로 이렇게 써먹네ㅋㅋㅋㅋ

하루가 지나자 너튜브엔 에서 서한율이 여자 아이돌과 함께 있는 장면만 따로 편집한 영상이 올라왔다. 영어 자막까지 첨부한 영상은 순식간에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댓글은 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00:21][미친 팬에게 테러당해 큰일 날 뻔한 친구가 다시 다치진 않을까 염려하는 시선이 너무 따뜻하네요. :)]

-[젠틀 그 자체]

ㄴ[하지만 같은 남자에겐 자비가 없죠☺]

-[나는 이 방송을 보고 한율이 그동안 왜 그렇게 수많은 스캔들에 휩싸였는지 이유를 알아냈다. 그는 기본적으로 여성에게 친절하고 조심스럽다. 이게 원인이었다. 그래서 친절을 호의로 착각하고 싶은 여성이 많았을 것이다.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므로.]

ㄴ맞말. 비호감인 이성이 친절하면 무슨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부터 하니까ㅋㅋㅋ

ㄴ[슬프다.]

-[02:17][시선 맞추면서 춤추는 거 설레네요]

전 세계 서한율의 팬 대다수는 아이돌 혹은 배우가 아니라, 각성자로 접해 입덕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댓글은 이성과 가까이 있는 모습에 날을 세우기보다, 세계 최강의 각성자 역시 평범한 젊은 청년이며, 그가 이성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짙었다. 그래서 누구랑 특별히 친해 보인다든가, 외적으로 누구와 가장 어울린다든가 하며 저들끼리 상상을 보태 떠들었다.

WB래빗 엔터테인먼트, 크리스탈 래빗 연습실.

한창 솔로 데뷔 무대 연습을 하던 은영은, 핸드폰으로 어제 방송 반응을 살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서한율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도 이렇게 예쁘고 잘생긴 이성과 같은 건물에서 오랫동안 마주쳤는데 한 번도 연애를 안 해봤다는 건 거짓말이야. 상상이 안 가. 진실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가혹하지 않아? 그런 면에서 한국 아이돌 문화는 이해할 수 없어. :(]

은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연습생 시절, 회사 사람들 몰래 썸을 타고 사귀던 아이들이 있기는 있었지만, 자신이 아는 한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아이들도 있었던 까닭이었다.

‘한율이도 그렇고… 유호도.’

은영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데뷔 8년 차. 그동안 다른 남자 아이돌과 썸 비슷한 걸 탄 적은 있지만, 사귀는 단계까지 간 적은 없었다. 저도 모르게 상대를 늘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어딘가 결여되거나 인성이 이상한 사람이 많은 게 또 이 바닥이라, 연차가 쌓일수록 오히려 이성에 대한 경계심만 늘었다. 그럴수록 같은 직업인데도, 여전히 반듯한 누군가를 향한 호감과 믿음만 차곡차곡 쌓였다.

10년째 친구 사이이기도 해서, 그 관계마저 깨질까 봐 솔직히 마음을 표현하진 못했지만.

하지만 얼마 전, 그의 친구인 ACCOM의 김형수와 스타믹스의 JE가 차례차례 입대한 걸 봤더니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조만간 그 역시 갈 것 같아서.

은영은 진지한 얼굴로 고민했다.

‘입대 전에 고백, 갈겨?’

덜그럭.

“……?”

별안간 천장에서 들린 소리에, 은영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된 곳이었다.

‘설마 쥐는 아니겠지…?’

은영은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일어났다. 귀를 기울이자, 에어컨을 지나쳐 달려가는 아주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혹시 게이트 괴물이…. 아니야. 한율이가 회사에 보호 결계를 만들었잖아. …어? 잠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1층 출입구랑 지하까진 안 됐고, 환기 때문에 작게 구멍도 만들었다고 했으니까….’

덜그럭.

깜짝! 다시 기척이 천장 에어컨으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서서히 멀어졌다. 그러나 은영은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3분 정도가 지나서야 심호흡하며 놀란 마음을 추슬렀다.

‘쥐일 거야. 그래, 쥐가 틀림없어.’

오래 쉬었더니 땀이 식어서 몸이 차가워졌다. 은영은 이만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겉옷을 입고 가방을 챙겼다. 그러곤 문을 열었을 때였다.

은영은 놀라 덜컥 굳었다.

‘저게 뭐… 지?’

비상 조명만 켜진 컴컴한 복도 한가운데. 새하얀 족제비를 닮은 무언가가 다소곳하게 앉아 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고개를 기울이며 새카만 눈을 반달처럼 휘었다. 주둥이를 옆으로 찢는 모양새가 마치 웃는 것 같다.

크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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