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7화 (419/427)

게이트가 사라졌다

그제야 은영은 그게 뭔지 알아보았다.

한 달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쌍두 족제비 괴물. 지금 앞에 서 있는 건 머리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은영은 저게 그거란 확신이 들었다.

주춤. 은영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저 괴물에게 잡아 먹히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세상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

‘소리 지르면 당장 달려들지도 몰라. 내 비명을 듣고 온 사람들이 휘말릴 수도 있고. 다행히 지금 회사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신고….’

그 순간이었다.

쿵! …크륵, 크륵.

“…….”

은영은 숨을 멈췄다. 그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나오면서 조명을 끈 어둑한 연습실 구석. 앞에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족제비 괴물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크륵, 크륵?

꾸욱. 은영은 가방끈을 세게 잡았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연습실 문부터 닫았다. 콰앙! 그 순간 복도에 앉아있던 족제비 괴물이 달려들었다.

카륵!

“저리 가!”

은영은 괴물을 향해 있는 힘껏 가방을 휘둘렀다. 퍼억! 둔탁하게 부딪치는 감각이 전달되었다. 꺅! 그러나 은영은 비명을 지르며 가방을 내팽개쳤다. 괴물이 가방을 문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그녀를 향해 앞발을 뻗은 까닭.

퍼석. 가방째 벽에 처박히기 직전, 괴물이 가볍게 뛰어오르며 피하더니 다시 은영 앞에 사뿐히 섰다. 그러곤 약간 화가 난 듯,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크륵….

은영의 시선이 빠르게 괴물에게 찢긴 가방을 살폈다. 종잇장처럼 쉽게 찢어진 가죽. 이번엔 자신의 몸이 저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머리를 잠식했다.

캬악! 괴물이 은영을 향해 뛰어올랐다.

“흐윽…!”

은영은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며 가까스로 벽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타닷, …툭. 족제비 괴물이 은영의 어깨를 밟고 섰다.

“……!”

은영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으나,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당장 목이 물어뜯길 것만 같은 두려움에.

킁킁. 냄새를 맡는 괴물의 숨결이 귓가로 다가왔다.

‘엄마…. 아빠….’

은영은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부모님을 떠올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부모님 다음으로 크리스탈 래빗 멤버들에 이어 한 사람을 떠올렸을 때.

킁. …크륵?!

휘잉! 기분 나쁜 축축한 무언가가 목에 닿았다가 서늘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어깨를 누르던 괴물의 무게도.

“……?”

은영은 덜덜 떨면서 고개를 들었다. 눈에 맺힌 눈물이 툭 떨어졌다. 비상 조명만 켜진 컴컴한 복도 끝에서 유호가 달려왔다.

“은영아, 괜찮아?!”

능력을 사용할 때의 서한율처럼, 은은한 푸른색으로 물든 눈으로 은영을 바라보며.

훌쩍. 은영은 고개를 돌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족제비 괴물이 허공에 둥둥 뜬 채 사지를 파닥거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이런 괴물이…. 조금만 기다려. 아니, 일단 사람 좀 불러와 줄래? 이놈 가둬둘 만한 물건이랑 같이.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거든?”

“으, 응…!”

온몸에 긴장이 풀려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은영은 다급한 유호의 목소리와 표정을 보곤 바닥에 손을 짚고 힘을 줘서 일어났다. 그러곤 복도를 짚으며 비틀비틀 움직이다, 유호를 돌아보았다.

“연습실에도 한 마리 더 있어…!”

“뭐? 아니, 대체 왜 이것들이….”

“조금만 기다려, 빨리 올게! …여기요! 누구 없어요?!”

“…언니? 무슨 일이에요?”

드림래빗 연습실에서 신혜란이 나왔다. 신혜란은 크리스탈 래빗 연습실 앞 복도 상황을 보곤, 같은 층에 있는 A&R팀 사무실로 달려갔다. 방음벽 때문에 바깥 소란을 듣지 못했던 직원들은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잠시 후.

연락을 받고 급히 온 한율은, 유호가 크리스탈 래빗 연습실로 몰아넣은 괴물 두 마리를 케이지에다 넣곤 결계로 둘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연습실과 복도를 살폈다.

“천장 배관이랑 연결된 곳 통해서 돌아다니다가 한 놈은 연습실 환풍구로, 다른 놈은 저기 작은 배관 통로에서 떨어진 모양인데요?”

“그럼 다른 괴물도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일단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게.”

“다른 괴물은 없는 것 같아요.”

박가람이 오면서 말했다. 그가 품에 안은 이동장에서 달냥이 소리 냈다. 므앙. 한율도 족제비 괴물들을 가둔 케이지를 들고 연습실에서 나왔다.

“다 둘러봤어요, 형?”

“어. 옥상에서부터 지하 주차장까지 싹 다. 주차장 천장 배관 구멍 쪽에서 잠깐 냄새 맡은 거 보니까, 그쪽 통해서 들어왔던 것 같아.”

경찰이 놀란 눈으로 한율과 달냥을 번갈아 보았다.

“혹시 저 고양이, 괴물 냄새 감지하는 훈련을 한 겁니까?”

“네. 기가 막히게 잘 맡으니까, 안심하셔도 될 거예요.”

“오오….”

“그리고 이 괴물들은 제가 직접 연구소로 가져갈게요.”

“감사한 말씀이지만, 방어선과 통제구역 외 지역에서 발견된 괴물은 게이트 방어 지휘부나 연구소로 직접 인계하라는 지침이 내려와서 말입니다.”

“그럼 같이 가요. 결계를 치긴 했지만, 위험한 놈들이라 걱정돼서요.”

경찰들이 반색을 표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한율은 유호 옆에 꼭 붙어 있는 은영에게 다가갔다.

“선배님은 괜찮으세요? 닿은 곳은요?”

“내 어깨 위에 잠깐 탔었는데, 목에 잠깐… 코가 닿았던 것 같아요. 할퀴진 않은 것 같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보는 게 좋겠어요. 게이트 괴물 접촉 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이….”

“내가 데려갈게.”

유호가 한율에 이어, 급히 회사로 달려온 유재용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가 있는 병원이 괴물 접촉 검사도 하거든요. 마침 오늘 당직이라고 하셨으니까, 바로 봐주실 거예요. 피부과 전문의이시기도 하고.”

“그래. 그럼 지금 병원으로 가자. 은영이 가방은….”

“괴물의 체액이 묻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연구소로 가져갈게요. 선배님, 가방에 중요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주시겠어요?”

“없어요. 핸드폰도 주머니에 있고.”

“네.”

한율은 경찰이 준비한 커다란 비닐봉지에 은영의 가방을 넣어 밀봉했다. 크리스탈 래빗 연습실은 게이트 방어 지휘부의 괴물 현장 조사팀과 게이트 괴물 연구소 직원들이 오기 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 * *

어스래빗 숙소.

박가람은 달냥을 데리고 귀가했다. 소리를 들었는지, 차남석이 거실로 나오며 잔뜩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이 시간에 달냥이 데리고 어디 갔다 와요? 서한율은?”

박가람은 이동장에서 달냥부터 꺼냈다. 므아앙. 달냥이 요란스럽게 투덜거리면서 서한율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 들으면 너 잠 못 잔다. 날 밝으면 말해줄게.”

“궁금해서 못 잘 것 같은데요.”

“하필이면 잠귀 밝은 놈이 1층에 살아선.”

박가람은 살짝 열린 이건우와 라이언의 방문을 보곤, 차남석을 데리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유호가 귀가한 건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 새벽 5시가 될 무렵이었다. 유호와 같은 방을 사용하던 박가람은 그의 인기척에 잠에서 깼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끔뻑거리면서 무드등에 비친 유호를 향해 물었다. 그림자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왔어? 은영 선배님은 몸 괜찮대?”

“은영이? 어, 어….”

“……?”

박가람은 유호가 은영의 이름을 듣고 화들짝 놀란 것 같았으나, 기분 탓이겠거니 여기며 졸린 눈을 감았다.

“마나 사용한 건 잘 설명했지?”

“한율이가 준 아이템 사용했다고 둘러댔어.”

“그럼 됐어. 수고했다아….”

“어. 나 씻고 올게.”

“엉….”

잠시 후. 샤워하고 온 유호는 깊이 잠든 박가람을 살폈다. 그러곤 제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하아…. 조금 전 병원에서 은영과 있었던 일 때문에 올랐던 얼굴의 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훅 들어오냐….’

한편 그 시각, 한국 게이트 괴물 연구소.

한율은 심각한 얼굴로 쌍두 족제비 괴물 ‘장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쌍두‘였던’ 그것을.

다른 쌍두 족제비 괴물로 의심되는 개체를 두 마리나 잡았단 소식에, 자다가 급히 달려온 소장도 놀란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뻐끔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한율은 한쪽 입가를 비틀리게 올린 채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글쎄요.”

조금 전, WB래빗 엔터에서 포획한 족제비 괴물 두 마리를 데려왔다. 서로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 우선 길우성이 게이트를 코팅시킨 ‘담이’의 우리를 찾았다.

담이는 새로 잡힌 놈들을 보곤 당황한 기색으로 왔다 갔다 안절부절못했다.

그다음 장이의 우리. 장이는 두꺼운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놈들과 시선을 마주하더니, 돌연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장이의 멀쩡한 머리가 게이트를 품은 머리를 한입에 삼킨 건,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머리가 있었던 자리는 펫펫바이오에 잡혔을 적의 담이처럼, 지금 케이지에 있는 놈들처럼 꼬리가 자라났다.

한율은 놀라서 당장 우리로 들어가 장이를 살폈다.

게이트의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건 대체 무슨 연유로 벌어진 현상일까.

한율은 WB래빗 엔터에서 잡힌 두 놈을 돌아보았다. 두 놈은 만족한 얼굴로 크륵, 크륵 울면서 서로를 핥아주고 있었다.

“일단 같은 종이 맞는지 검사부터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장님.”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쌍두 족제비가 다른 머리를 삼켜서 머리가 하나로 돌아갔다는 사실, 다른 나라에도 알려야겠죠?”

“네. 사라진 게 게이트를 품은 머리였단 사실도요.”

“게이트가 있는 머리였습니까?!”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쩌면… ‘우리’를 위한 노란색 게이트가 불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침 해가 뜰 무렵, 한율은 WB래빗 엔터로 돌아왔다.

건물은 게이트 방어 지휘부 괴물 현장 조사팀과 게이트 괴물 연구소에서 나온 이들이 샅샅이 조사하고 있었다.

회사는 소속 아이돌들에게 당분간 회사로 나오지 말라는 공지를 내렸고, 직원들도 당장 회사에서 업무를 봐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재택근무하거나 유급 휴가 사용을 권유했다.

1층 로비에서 만난 좌기훈 대표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한율아.”

“은영 선배님은 몸 괜찮대요?”

“음. 다행히 상처도 없고, 혈액 검사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왔대. 곧 첫 솔로 데뷔라고 열심히 연습했는데….”

좌 대표가 재차 한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그 괴물들은? 정말로 뉴스로 떠들썩했던 족제비 괴물… 이었던 건 아니지?”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율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왠지 저 때문에 회사로 들어온 것 같아요. 저한테 다른 쌍두 족제비 괴물의 냄새가 묻어있어서, 동족을 찾으려고요.”

WB래빗 엔터가 있는 곳은 동작구. 한강 건너 용산구에 있는 어스래빗 숙소보다는 게이트와 가까웠다.

“아….”

좌 대표는 기가 죽은 척 연기하는 한율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달랬다.

“괜찮다, 한율아. 은영이가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그 위험한 놈들을 두 마리나 잡은 거잖냐. 자책하지 마.”

한율은 그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한율이 너도 새벽부터 지금까지 잠 한숨 못 잔 것 같은데. 숙소 가서 쉬는 게 좋지 않아? 첫 솔로 데뷔를 앞둔 건 한율이 너도 마찬가지잖아. 컨디션 조절해야지.”

“네. 결계랑 크래 선배님 연습실 좀 잠깐 살피고요.”

“그래. 고맙다, 한율아.”

“아니에요.”

한율은 회사 여기저기를 천천히 살피며 족제비 괴물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로 자신의 추론이 맞는 건지, 아니면 잠깐 게이트를 감쪽같이 감춘 것에 불과한 건지.

왜 다른 나라에선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는 그것들이, 한국에만 네 마리나 나타난 건지도.

‘한국 게이트가 내 마법의 영향을 받아 일찍 열린 것과 비슷한 이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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