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입니다
진은수는 이해원과 헬기를 타고 먼저 돔구장으로 향했다. 한율은 결계가 깨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쪽 눈알만 빨갛게 반짝거리는 토끼 인형을 살폈다. 케이지 속 쌍두 족제비 장이는 얌전히 있었다.
몇 시간 전, 장이를 데리고 돔구장의 게이트로 갔었다. 그러나 주변에 구해줘야 하는 괴물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게이트를 바꿀 힘을 다 쓴 것인지. 녀석은 돔구장의 게이트를 변화시키지 않았다.
‘모든 게 불확실해.’
게이트 괴물 연구소가 이번 작전을 위해 데려온 또 다른 쌍두 족제비 두 마리, 그리고 장이가 돔구장의 게이트를 바꾸지 않으면 결국 한율이 그곳까지 유인한 괴물들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 작전 실패로 발생한 피해에서도 책임이 자유롭지 못할 테고.
‘그래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단 낫겠지.’
우선 다른 괴물들을 포획해 돔구장에서 실험하는 게 안전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왔으나, 김관식 소장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현재 한율 씨는 힘을 거의 소진한 상태입니다. 우리 군의 힘만으로 육눈박이를 잡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그러니… 이번 작전에 사활을 걸겠습니다.』
크하아악! 다른 괴물까지 깔아뭉개 죽이면서 몸부림치던 육눈박이가 크게 울부짖었다. 세 쌍의 눈으로 한율을 노려보며 머리를 들었다가 쾅! 결계를 세게 들이받았다.
놈이 게이트에서 나왔을 때 바로 앞에서 결계를 수복해 가둔 데다, 지금은 약 올리듯 지척에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니 화가 날 만도 했다.
한율은 슬슬 몸을 풀었다. 결계의 균열이 더 커졌다.
‘날 완전히 적으로 인식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알량한 각성자의 능력 에너지로 변환한 마법 무기는 씨알도 안 먹힐 상대다. 쌍두 족제비로선 ‘저놈은 튼튼하니 걱정할 필요 없겠다!’ 이런 판단이 들 수 있으니, 동정심을 유발할 괴물 몇 놈을 낚아챌 준비도 했다.
쾅! 육눈박이가 재차 결계에 머리를 박았다. …파직. 이번엔 심상치 않은 소리도 들려, 한율은 작전팀 전원에게 무전으로 알렸다.
[나옵니다.]
쾅! …퍼석!
크오오오! 결계가 깨지기 시작하자 육눈박이가 흥분해서 울부짖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상체까지 뒤로 젖히며 힘을 모았다.
한율은 마력으로 바람의 그물을 짰다.
콰앙! 육눈박이가 재차 들이받자 결계가 산산이 깨졌다. 한율은 놈과 함께 떨어지는, 눈여겨본 괴물 몇 마리를 바람의 그물로 포획하곤 도망치기 시작했다.
크허어엉! 날지 못하는 육눈박이는 지상으로 추락했다. 쿠웅! …쿵, 쿵, 쿵! 그러나 이내 날아가는 한율을 미친 듯이 쫓아왔다. 다른 괴물들도.
‘옳지.’
미국 필라델피아 해상 레드 게이트에서 만난 육눈박이보다 더 컸던 괴물 역시, 같은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들의 대장 노릇을 했었다.
몇 달 전에 나온 육눈박이는 나오자마자 처리한 터라 제대로 관찰할 수 없었으나, 지금 나온 육눈박이 또한 다른 괴물들을 통솔할 수 있는 게 분명했다.
‘목표 지점까지 직선 약 7km.’
게이트 인근은 이미 괴물들과의 전투로 초토화된 상태라 마음껏 달리게 둬도 괜찮지만, 통제구역은 안 된다.
한율은 게방부와 미리 상의한 루트로 놈들을 유인하면서, 어느새 근접한 조류형 괴물을 향해 마법 무기를 발사했다. 꾹. 토끼 인형이 빨간색으로 물든 한쪽 눈알을 빛내며 입에서 붉은 빔을 내뿜었다. …키헤엑! 머리 일부가 날아간 괴물이 고통스러워하며 추락했다.
크륵, 크르륵! 장이가 그 모습을 보곤 안절부절못하더니, 노란색 게이트를 품은 주둥이를 쩌억 벌렸다.
“……!”
동시에 괴물들의 기세가 바뀌었다. 그저 분노에 찬 채, 혹은 육눈박이의 명령에 따라 쫓아오던 괴물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한편, 돔구장 인근 건물 옥상.
진은수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팍을 꾹 눌렀다.
[도달까지 약 5,500m, 5,000m, …4,000m.]
그러나 무전에서 흘러나오는 실시간 상황 알림에 오히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실제로 발밑에서도 육눈박이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진은수는 고개를 돌렸다. 각종 무기와 전차, 전투기 등으로 둘러싸인 돔구장이 보였다. 돔구장 지붕 위에 뜬 거대한 게이트도.
‘왜 하필.’
아이돌에게 있어 돔구장은 탑 티어 아이돌만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있는 꿈의 무대 중 하나였다. 데뷔 후 처음 합동 공연으로 입성했을 때 느낀 벅찬 감동은 지금도 생생했다. 이후 지붕이 뒤틀리는 듯한 무서운 게이트 전조 소리를 듣긴 했지만.
‘오늘, 작전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무너지겠지….’
그리 생각하자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만약 게이트가 사라진다고 해도, 한참 동안은 돔구장이 무슨 쓸모가 있냐며 재건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진은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벌써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번 작전이 실패하면 육눈박이 때문에 서울 전체가 초토화될 수 있는데.’
정부는 통제구역 인근 지역뿐만이 아니라 가까운 경기 지역에까지 대피령을 내렸다. 육눈박이가 그리 빠른 놈은 아니지만, 작전 실패 시 놈에게 퍼부어질 화력의 영향을 고려한 것이었다.
미국에선 장갑차 포탄에도 뚫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괴물이, 오히려 자신에게 날아온 미사일을 다른 곳으로 쳐내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었다. 그게 하필이면 송유관 지대에 떨어져 폭발하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고.
‘집중해. 내가 할 일은 한율 선배님을 안전하게 괴물들의 눈으로부터 지키는 거야. 절대 겁먹으면 안 돼. 선배님에게 큰일이 생기면 대한민국은 끝장이야.’
레드 게이트가 있는 하늘 방향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율을 쫓아오는 조류형 괴물 떼였다.
[…1,500m! 옵니다!]
[전원 공격 준비!]
두두두. 상공을 떠돌던 헬기가 커다란 케이지를 돔구장 지붕에 내려놓았다. 괴물 연구소에 있던 또 다른 쌍두 족제비 두 마리였다.
진은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두려움에 토할 것만 같았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만약 실패하면 저 무시무시한 괴물들의 발톱에 갈가리 찢겨 죽는 건 아닐까? 나… 오늘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했던가?
…훌쩍. 부모님을 떠올리자 시야가 뿌예졌다. 진은수는 질끈 감으며 눈물을 떨어뜨리곤 스스로 뺨을 쳤다. 찰싹.
‘바보야!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려서 살아 돌아가야지! 그리고 선배님이 만든 보호 아이템도 있잖아. 선배님을 믿자.’
드드.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발밑의 진동이 심해지고, 한율의 모습이 육안으로 보였다. 그가 케이지를 열자 한쪽 주둥이를 크게 벌린 장이가 튀어나왔다.
“선배님!”
벌린 입이 금방이라도 한율을 물 것만 같아, 진은수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한율은 수백 마리의 괴물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장이를 제압하더니.
“……!”
돔구장 게이트로 녀석을 집어 던졌다. 보이지 않는 그물에 잡혀 대롱대롱 끌려온 것 같은 괴물들도 함께. 그러곤 진은수가 있는 건물 옥상에 가볍게 착지했다.
[실례할게요, 은수 씨.]
와락.
“……?!”
한율에게 안긴 진은수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마음의 준비도 할 겨를 없이 발밑이 허전해져 놀랐으나, 진은수는 한율의 옷을 꽉 잡은 채 카모플라쥬 능력을 전개했다.
그동안 쌍두 족제비는 자신과 함께 날아온 괴물 중 하나를 덥석 문 채 돔구장 지붕에 떨어졌다. 쿠웅. 그러나 제 주둥이보다 큰 괴물을 삼키지 못하고 괴롭게 파닥거리다 뱉어냈다.
크륵, 크르륵! 케이지에 갇힌 쌍두 족제비들은 잔뜩 흥분했다. …카악! 한율이 마법 무기로 장이가 뱉어낸 괴물의 숨통을 끊은 까닭이었다.
장이 또한 그 모습에 잠시 충격받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두 개의 머리로 이를 드러내며 회색 게이트를 돌아보았다.
크륵, 크르륵!
케이지 속 두 마리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륵, 크륵!
진은수가 놀란 소리를 냈다.
“게이트가…!”
조금 전 지하에서 발견한 게이트처럼, 돔구장 위에 뜬 거대한 회색 게이트 가장자리가 크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기가 커서 변환에 시간이 걸리는 걸까.
카하악! 마법의 그물로 낚아채 떨어뜨렸던 다른 괴물들이 우왕좌왕하더니 장이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한율은 장이를 비롯해 케이지를 바람의 마나로 휘감아, 진은수의 카모플라쥬 영역으로 끌어당겼다.
……?!
괴물들은 순식간에 쌍두 족제비들이 사라지자 당황한 눈치였으나, 이내 돔구장 게이트로 시선을 돌렸다.
크아악! 쿵, 쿵, 쿵.
한율을 쫓아 이곳까지 날아오거나 달려온 괴물들도.
한율은 토끼 인형에 저장된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곤, 게이트 방향으로 조준했다. 퍼억! 아직 열리지 않은 게이트에 부딪혀 떨어지는 조류형 괴물의 머리를 날렸다.
크륵, 크륵! 그에 또 자극을 받았는지 케이지에 갇힌 쌍두 족제비들이 더 날뛰었다. 놈들의 엉덩이가 또 다른 머리로 변하기 시작하며, 게이트 가장자리의 일렁거림 또한 커졌다.
그때였다.
무전기에서 돌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깜짝. 한율과 진은수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가, 이어지는 정상욱의 말에 고개를 높이 들었다.
[성공입니다, 한율 씨! 조금 전 게이트로…!]
끼아아악! 하늘 높이 날던 조류형 괴물들이 크게 일렁거리는 게이트 가장자리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불과 약 1m 간격 아래를 날았던 놈들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떨어졌으나, 10여 초가 지나자 그곳으로도 괴물들이 매끄럽게 들어갔다.
[이대로 조금만 더…!]
그러나 한율은 미간을 구긴 채 고개를 돌렸다. 쿠웅, 콰앙!
어느새 육눈박이가 멀쩡했던 건물과 구조물을 모조리 박살 내며 수백 미터 내로 근접했다. 어림잡아도 돔구장 게이트보다 더 크고 굵은 놈의 몸통. 또한 게이트 변환 속도가 더뎌, 이대로라면 놈이 도착하는 게 더 빠르다.
[은수 씨.]
“네?”
진은수는 개인 무전으로 들어온 한율의 부름에 육성으로 대답했다가, 뒤늦게 버튼을 누르며 재차 대답했다.
[네, 선배님.]
[쌍두 족제비들을 게이트와 떨어뜨리면 변환이 멈출지도 몰라요. 그러니 끝날 때까지, 내가 육눈박이를 게이트에다 처박을 때까지 부탁해도 될까요?]
[……!]
진은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무리 카모플라쥬로 모습을 감출 수 있다곤 하나, 지금 수백 마리의 괴물이 달려드는 게이트 옆에 있으란 소리였다.
[물론 보호 결계도 칠 거고, 해원이 형도….]
그러나 한율의 말이 끝나기 전, 진은수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맡겨주세요! 놓치지 않도록 꽉 잡고 있을게요!]
[정말 괜찮겠어요?]
[네.]
진은수가 재차 고개를 끄덕이더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입가를 올리며 웃었다. 들리진 않았지만, 몇 년 전 처음 들었던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재생되었다. 흐.
[작전 회의 때, 저 혼자 쌍두 족제비들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미리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러니 괜찮아요.]
쿵, 쿵, 쿵. 그녀의 시선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육눈박이를 향했다. 한율의 옷을 잡았던 손이 가느다랗게 떨리며 그를 밀어냈다.
[선배님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기다릴게요.]
카메라 앞에서 잔뜩 굳어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성장했을까.
한율은 저도 모르게 진은수의 헬멧을 쓰다듬곤, 무너지기 시작하는 돔구장 지붕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장이도 케이지에 집어넣었다. 이대로 돔구장이 완전히 무너진다고 해도 결계로 감쌌으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네, 금방 올게요.]
현재 게이트의 변환율은 약 30%.
육눈박이를 돌아보는 한율의 푸른색 안광이 짙어졌다.
치직. 정상욱의 무전.
[육눈박이, 공격으로 저지하겠습니다.]
한율은 몸을 날리며 대답했다.
[아니요. 오히려 방해됩니다.]
약 10분 후.
전 세계 외신이 일제히 떠들었다.
[대한민국이 해냈습니다.]
대형 포털사이트엔 이례적으로 영상이 메인을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