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5화 (427/427)

널 지구수호 토끼단 대장으로 임명한다

무너지는 돔구장 위. 가장자리가 크게 일렁거리는 게이트를 향해 괴물들이 뛰어들며 사라진다. 날지 못하는 괴물들은 서로를 밟으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듯이.

사람들을 가장 전율하게 만든 장면은, 몸길이가 수백 미터에 달하는 육눈박이가 구겨지듯 게이트에 처박히는 모습이었다.

게이트보다 큰 몸뚱이를 쑤셔 넣기 위해, 마치 누군가가 잘라낸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다 사라진다. 그 모습은 그동안 무시무시한 괴물들에게 사람들이 느꼈던 두려움과 무력감을 일부 해소해주었다.

모든 방송사 채널은 속보 자막을 띄웠다.

[서한율·게방부 주도 쌍두 족제비 실험 대성공]

[괴물들 돔구장 게이트 통해 대거 퇴장 중]

돔구장 게이트가 노란색 게이트로 전환된 지 약 한 시간 후. 국방부 장관의 브리핑이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장관은 게이트 앞에서 각성자 실험을 진행하던 중 발생한 돌발 상황과 지하에서 발견된 미니 게이트의 변화에 착안, 예상에 없었던 작전을 급히 세우게 된 경위 등을 발표했다.

[그리하여 현재 강서구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들뿐만이 아니라 인근에 퍼져 숨었던 괴물들까지 돔구장의 게이트로 향하는 현상이 포착되고 있으나, 우리 군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국민 여러분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브리핑이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자, 기자들이 앞다퉈 질문을 던졌다.

[지금 서한율 씨 상태는 어떻습니까?! 진은수 씨는요!]

[성공 장담 없이 육눈박이를 비롯한 위험한 괴물들을 돔구장까지 유도한 게 사실입니까?! 만약 실패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기로 했습니까?!]

[쌍두 족제비들 상태는요?!]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마무리 인사 후 고개를 깊이 숙이곤 퇴장했다.

* * *

폭삭 무너진 돔구장과 수십 미터 떨어진 건물 옥상.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었으나, 사람들은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지 멍하니 게이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괴물들이 끊임없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다. 주변에 포진한 각종 무기와 장갑차, 전투기 등을 무시하며.

하. 정상욱 중위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눈으로 계속 보고 있지만, 믿기지 않네요. 오늘 새벽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설마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런데 정말 저 게이트, 지구의 또 다른 어딘가로 연결된 건 아니겠죠?”

“그랬다면 벌써 연락이 들어왔을 거예요. 아무리 오지라고 해도 육눈박이처럼 큰 괴물이 위성에 잡히지 않을 리 없으니까.”

“그렇겠죠? 그런데 저기… 사람도 들어갈 수 있는 거죠?”

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요. 다른 노란색 게이트도,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이 들어간 곳이 있었잖아요. 설마 저 괴물들이 간 세상에 일부러 따라가려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지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

“감시 잘해야겠네요. 어차피 돔구장이 무너져서 일반인은 쉽게 들어가지 못하겠지만요. 반대로, 들어갔던 괴물들이 다시 나올 가능성도 있고.”

“중위님.”

군인 한 명이 다가왔다.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지점에서도 이곳을 향해 달리는 괴물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정상욱이 바보처럼 웃었다.

“저게 워낙 커서, 잘 감지되나 봐요.”

“한율 씨.”

이번엔 게이트 괴물 연구소장이 한율을 불렀다. 한율은 소장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정상욱을 돌아보았다.

“그럼 전 이만 쌍두 족제비들을 데리고 연구소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네. 오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한율 씨.”

한율은 이해원과도 인사를 나눈 뒤, 소장과 함께 옥상에서 내려갔다.

1층에는 아직 나기혁과 진은수가 남아있었다. 한율이 도중에 내팽개쳤던 커다란 토끼 인형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던 인형은 새하얀 털과 분홍색 옷 모두 시커멓게 더러워진 상태였다.

나기혁이 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도 되는 거지?”

한율은 그런 나기혁을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도 안 가셨어요?”

“사방에서 괴물들이 달려오는데 어떻게 혼자 빠져나가냐?”

상당히 피곤한 건지, 멍한 얼굴로 지저분한 토끼 인형을 물티슈로 닦던 진은수가 말했다.

“중위님이 선배님이 가실 때 함께 이동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더 일찍 내려올 걸 그랬네요. 미안해요, 은수 씨. 무척 피곤할 텐데.”

진은수는 각성 능력 에너지가 모두 바닥나 카모플라쥬가 강제로 해제될 때까지, 내내 게이트 옆에 쌍두 족제비들과 둥둥 떠 있었다. 쌍두 족제비들이 케이지에 있고, 또 한율이 보호 결계를 쳐주었다곤 하지만 상당히 긴장되고, 무서웠을 것이다.

진은수가 마주쳤던 시선을 내리며 살며시 웃었다.

“아니에요. 사실 오늘 두세 시간만 자고 나왔거든요. 그래서 약간 현실 감각이 살짝 떨어진 상태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어떻게 버텼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아니, 말도 횡설수설 나오네요. 아, 이거 돌려드릴게요.”

진은수가 어스래빗 키링을 나기혁에게 내밀었다. 나기혁이 손을 내저었다.

“됐어, 계속 네가 갖고 있어. 다음 주에 퍼플아워 콘서트 있잖아. 오늘 무리한 걸로 쓰러졌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콘서트 무사히 끝내면 그때 돌려줘.”

“아니에요. 원래 한율 선배님이 선배님께 드린 물건이기도 하고, 제 임무는 끝났잖아요. 그리고 만약 선배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죄책감은 진은수의 몫이 된다.

진은수가 흐린 뒷말을 읽었는지, 나기혁이 한숨을 내쉬며 키링을 받았다.

“알았어.”

그들은 게방부의 차를 타고 본부로 향했다. 무전기에서는 내내 어느 방향에서 어떤 괴물 몇 마리가 돔구장으로 향하는지에 관한 보고가 끊임없이 울렸다. 실제로도 작은 몇몇 괴물이 돔구장 방향으로 달려가는 걸 보기도 했다.

본부에 도착하자, 실험을 보러 온 해외 인사들이 한율을 반겼다.

[한율! 묻고 싶은 게 많아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쌍두 족제비들은 괜찮나요? 혹시 게이트를 바꾸는 힘을 다 쓴 건 아닌지…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각성자 에너지를 사용하는 무시무시한 토끼 인형의 작동 원리와 사용 조건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다음 실험 장소는 어디로 생각 중입니까? 한율도 알다시피, 우리나라에도 한국처럼 적색과 회색 간의 거리가 가까운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또 한 번 실험을 진행해보는 게….]

게이트 괴물들을 굳이 상대하지 않아도 다른 세상으로 안전하게 쫓아낼 방법이 열린 셈이니, 안달이 나는 게 당연했다.

한율은 오늘은 일단 연구소로 가서 쌍두 족제비들 상태를 확인한 뒤, 이른 시일에 실험과 향후 계획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김관식 소장은 정말 고생 많았다며, 고맙다며 한율을 끌어안았다. 나기혁과 진은수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기혁 씨가 처음 쌍두 족제비가 이상 행동을 보였을 때 침착하게 케이지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결과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괴물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패닉에 빠진 각성자들도 잘 달래주셨다고요.”

나기혁이 겸손한 얼굴로 웃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해외 작전 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처음 게이트 방어선에 오셨는데, 괴물들을 관찰하기 위해 그 위험한 히말라야까지 가신다니.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아이돌은 모두 그렇게 용감하냐며 감탄할 것 같네요.”

“네? 네…. 하하….”

흐려지는 웃음을 지으며 나기혁이 한율을 돌아보았다. 1초. 아주 찰나였으나, 그가 부라리는 눈은 이렇게 따지고 있었다.

히말라야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은수 씨도 정말 고생 많았어요. 다친 곳은 없어요?”

“네, 전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가 끝난 후엔 장비를 벗고 본래 옷으로 갈아입었다. 쌍두 족제비 세 마리가 든 케이지는 괴물 연구소 차에 실렸다.

한율은 커다란 토끼 인형을 자신의 차 뒷좌석에 앉혀 안전띠를 채웠다.

‘배고파.’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돔구장 작전이 시작되기 전 먹은 빵과 커피는 소화된 지 오래.

“선배님.”

한율처럼 군복을 벗고 편한 옷에 두꺼운 패딩을 걸친 진은수가 다가왔다.

꾸벅.

“오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은수 씨도 고생 많았어요.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들어가서 따뜻하게 푹 자요.”

“네, 먼저 들어가 볼게요.”

“…은수 씨.”

“네?”

몸을 돌리던 진은수가 한율을 돌아보았다. 한율은 이쪽을 향해 쏠린 적잖은 시선을 의식하곤, 살며시 입가를 올렸다.

“오늘 은수 씨 아니었으면 작전은 실패했을지도 몰라요. 정말 고마워요.”

“아….”

진은수가 쑥스럽게 웃었다.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오늘도 없었을 거예요.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조심히 들어가요.”

“네, 선배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시 또 꾸벅.

한율은 진은수가 차에 타는 걸 보고 나서야 자신도 차에 탔다. 사람들이 직접 운전해도 괜찮겠냐며 걱정했으나, 이동하는 동안만이라도 혼자만의 공간에 있고 싶었다.

사실 오늘 힘을 많이 쓴 것도 아니고.

‘육눈박이 열 마리가 몰려가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돔구장 게이트… 우리 고향 세상과 연결된 건 아니겠지?’

본래 세상. 길우성이 건너왔던 게이트는 고향 인근에 생성되었다. 그것과 비슷한 형상을 지닌 무언가가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으니, 연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네. 골렘이라도 만들어서 들여보내 봐?’

게이트 괴물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쌍두 족제비 세 마리는 어느새 게이트 머리를 숨긴 상태였다. 직원 말로는 게방부에서 출발한 지 2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저들끼리 크륵거리다가 하나둘 삼켰다고.

또한 녀석들은 사람들이 케이지를 차에서 내려도, 검사실로 옮겨 CT를 찍고 MRI를 촬영하고 혈액을 채취해도, 약간 귀찮다는 듯 발길질만 할 뿐 잠만 잤다.

“이 녀석들도 상당히 피곤한 모양이네요. 그나저나, ‘담이’는 왜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걸까요?”

“글쎄요….”

담이는 길우성이 얼떨결에 게이트를 코팅시켜버린 쌍두 족제비로, 옮기는 과정에 연구소 직원을 삼킬 수 있어서 이곳에 남겨두었다.

혹시 게이트가 코팅된 바람에, 담이 뜻대로 게이트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건 아닐까.

한율은 그렇게 추측했지만, 고개를 젓고선 말을 돌렸다.

“그럼 저는 내일 아침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어스래빗 숙소로 돌아왔을 땐 완전히 어둑한 밤이었다.

돔구장 게이트 작전이 시작되기 전, 한강 너머에 있는 이 지역에도 대피 권고가 내려졌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피했다가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이곳에 있었던 건지. 멤버 모두 거실에 모여있었다.

“하뉼!”

와락.

“정말 고생 많았어!”

“고생 많았다, 서한율.”

한율을 끌어안으며 환영하는 라이언에 이어, 다른 멤버들도 한율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말없이 어깨를 두드렸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지? 밥은 먹었어?”

“한율아, 몸은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그리고 배가 좀 고픈데, 먹을 거 있어요?”

“있어, 있어. 없어도 우리 한율이가 배고프다는데, 만들어줘야지. 뭐 먹고 싶어?”

“고기요.”

“내가 맛있게 구워줄게, 하뉼!”

“잘 익었나 확인해본다면서 네가 다 집어먹지 마라, 라이언.”

므앙, 므앙.

한율에게 폴짝 안긴 달냥까지. 거실은 그야말로 왁자지껄했다.

TV 뉴스엔 오늘 게이트 방어선과 돔구장 게이트에서 촬영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재도 레드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곧장 돔구장 게이트로 향한다는 앵커의 목소리도.

[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레드 게이트를 지키는 병력을 유지하는 한편, 레드 게이트의 크기를 줄이는 실험 또한 계속 이어나갈 방침이라고 전했습니다. 한편 미국은….]

“써한.”

덥석.

길우성이 한율의 어깨를 잡고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널 진정한 지구수호 토끼단 대장으로 임명한다.”

한율은 달냥과 다른 멤버들을 향해 웃었던 낯을 굳혔다.

“네가 뭔데. 꺼져.”

“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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