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말은 취소다 (5/303)

그 말은 취소다

우선은 호텔방을 나가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집이 어딘지는 알아야 할 거 같았다.

정 대리에게 혹시 이 몸의 주인 정훈이 놈이 본가에서 부모와 같이 살고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며 혼자 따로 나와서 살고 있고, 그 집을 자기가 안다고 하는 거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간 정훈이 놈이 술을 마시고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운전을 맡긴 적이 수차례나 된다고 했다.

정말 얼이 빠져도 단단히 빠진 놈이다.

제 놈이 뭔데 고작 과장 달고 이제 막 회사 일을 배우는 주제에 자기 개인 비서, 수행 기사도 아닌 업무 부서 직원을 자기 개인 비서, 기사처럼 부린단 말인가.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집안 망신을 시키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식 교육을 이따위로 시켜 놓고 회사 일을 배우게 만든 홍준이 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손주 놈들을 욕할 필요도 없다.

이게 다 부모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고, 결국은 그 부모를 잘못 키운 나의 잘못 아니겠나.

속이 타들어 간다.

“그런데 정 대리.”

“네, 과장님.”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네요.”

“무슨 문제요?”

“혹시 정 대리 돈 가진 거 좀 있어요?”

“돈이요? 현금이요?”

“아무리 찾아봐도 지갑이 없어. 호텔을 나가려면 방값을 줘야 할 거 아니에요. 진짜 미안한데 정 대리가 대신 계산해 주면 내가 집에 가서 바로 줄게요.”

“그건 그렇게 하면 되는데, 아마 지갑을 안 들고 다니시는 이유가 과장님은 스마트 페이를 하시기 때문인 거 같은데요?”

“스마트 페이?”

그러면서 아까 스마트폰이라고 했던 그걸 내 앞으로 흔드네?

“요즘은 이걸로 예약을 하고, 신분도 증명을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과장님 괜찮으시면 폰 좀 잠시 줘 보시겠습니까?”

호텔 리셉션 앞이었다.

내가 건넨 스마트폰이라는 걸 몇 번 만지더니 그걸 내 얼굴에 갖다 대길래 뭘 하느냐고 물어봤다.

“다행이네요. 패턴이 걸려 있음 골치가 아플 뻔했는데, 얼굴 인식을 해 놓으셨네요.”

“얼굴 인식이요?”

모든 게 너무 정신이 없고, 생소했지만, 신기한 맛도 있어서 난 정 대리가 하는 모든 걸 그 옆에 딱 붙어서 구경을 했다.

정말 놀라운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건넨 스마트폰을 작고 요상한 단말기 앞에 갖다 대더니, 이내 계산이 다 끝났다면서 호텔 영수증과 함께 스마트폰을 다시 돌려주는 정 대리.

“아니, 그러니까 현금을 안 들고 다녀도 된다 이거네요?”

“사람에 따라 다 다르죠. 저는 아직 스마트 페이보다는 카드가 편합니다. 현금도 어느 정도 들고 다녀야 안심이 되고.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다 해결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럼 신분증 같은 건 어떻게 합니까?”

“잠시만요….”

그러더니 내게서 스마트폰을 다시 가져가서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다가, 정훈이놈의 사진이 붙어 있는 신분증 모양의 화면을 내게 보여 줬다.

“그러니까 이걸로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다는 거네요?”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게 신분증입니다.”

“그럼 아까 내가 정 대리한테 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잖아요. 그것도 이걸로 줄 수 있는 거예요?”

“네, 그럼요. 됩니다.”

“허, 허, 허허허… 참 꿈같은 일들이 가득하네요, 이 세상은. 그럼 이것도 차 키가 맞는다는 거네?”

난 벤츠 로고만 붙어 있는 작은 물건을 정 대리에게 보여 주며 다시금 확인을 받았다.

“네, 차 키 맞습니다.”

“열쇠가 없는데?”

“그래도 차 키 맞습니다. 저 주십시오. 과장님은 과장님 차가 뭔지도 모르실 거 아닙니까. 저는 아니까, 저한테 주십시오. 내려가시죠.”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자마자 불현듯 이런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이 지난 30년 사이 이만큼 발전을 했는데, 항상 한국보다 30년을 앞서 있다고 하는 일본은 얼마나 대단해져 있을지….

“저기 있네요.”

삐삑!

차를 보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정 대리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시 또 괘씸한 마음이 불처럼 올라오기 시작했다.

94년생이라고 하면 고작 스물아홉 아닌가.

그것도 부모 덕에 과장 생활을 하고 있는 스물아홉.

아버지가 회사의 총수라면, 그리고 자기는 이제 막 회사에 입사를 해서 회사 일을 배우는 입장이라면 회사 사람들 보는 눈이 무서워서라도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정상이다.

그리고 아버지라면 자식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줘야 하는 것이고.

그런데 홍준이 이놈은 도대체 뭘 하는 놈이란 말인가.

어떻게 입사한 지 6개월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 이런 최고급 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을 하게 내버려두고 있단 말인가!

사내놈이니까 차를 좋아하는 건 충분히 이해를 한다.

그리고 좋아한다면 이런 차 한두 대 정도는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이런 걸 타고 회사에 출근을 해선 안 될 거 아니냔 말이다, 내 말은!

“내가 항상 이 차로 출근을 했습니까?”

“어후, 오늘은 상당히 양호하신 편인데요?”

“양호요?”

“지바겐 아닙니까. 람보르기니 몰고 오신 적도 있으셨어요.”

“람보르기니라면 그거 저기 어디야… 구라파 쪽 스포츠카 메이커 아닙니까?”

“구, 구라파요? 아… 유럽. 네, 네. 그렇죠.”

“내가 그런 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을 하기도 했다고요?”

“…네, 뭐.”

“하… 일단 알겠습니다. 정 대리. 진짜 미안한데, 나는 이 차 이거 운전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정 대리가 집까지 좀 운전을 해 줘요. 가는 동안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내 유심히 배울게요.”

“운전하는 건… 기억이 나십니까?”

“뭐 대충… 작동하는 법만 알면 운전이야 하겠죠.”

* * *

집으로 가는 차 안이었다.

“참… 허, 허, 허허허….”

“왜… 그러십니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속에 내가 아는 서울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 스마트폰이라는 걸 안 쓰는 사람이 없네요. 다들 하나씩은 들고 다니네.”

“그럼요.”

노인들은 물론이고,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는 학생들까지, 길을 걸으면서도 이 스마트폰이라는 거에 시선을 떼지를 못하는 세상.

“이런 건 하나에 얼마 정도 합니까?”

“기종에 따라, 브랜드에 따라 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평균 100만 원 정도는 한다고 봐야죠.”

“100만 원씩이나 하는 걸 저렇게 중학생처럼 보이는 애들까지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요?”

“중학생이 뭡니까?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다 들고 다닙니다.”

분명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데, 이걸 내가 직접 보고 있으니까 안 믿을 수도 없고….

“도대체 이걸로 뭘 저렇게 보는 겁니까?”

“모르죠. 게임을 하는 걸 수도 있고, 카톡을 하는 걸 수도 있고, 아님 뭐 맛집 같은 걸 검색하고 있는 걸 수도 있고.”

“맛집이요?”

“식당이요. 맛있는 식당.”

“식당을 이걸로 찾는다고요?"

“네.”

정말 할 말이 없네.

지금의 한국은 심심할 틈이 없는 세상, 너무 살기 좋은 세상, 너무 편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럼 이런 차는 한 대 얼마 정도 합니까?”

“이 차는…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바겐이고 당연히 신차를 뽑으셨겠죠? 거기다 옵션도 이 정도면 풀 옵션일 테니까… 뭐 대충 2억? 2억 5천? 저도 차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줘야 할 겁니다.”

“2억에서 2억 5천 사이?”

가늠이 잘 안 되고 있었다.

아까 정 대리가 말했던 2년 차 대리 연봉이 5천 언저리라는 부분에선 물가가 크게 안 오른 게 분명한데, 이 차 가격만 보면 말도 안 되게 많이 오른 거 같기도 하고….

하긴 이 차라는 게 워낙 가격이 천차만별이니, 이것만 놓고 비교를 할 순 없는 거겠지.

“그럼 요즘 서울에 아파트 같은 건 한 채에 얼마 정도 합니까?”

“아파트요?”

“네. 일반적으로.”

“강남 이쪽으로는 20억 밑으로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거고….”

“어, 얼마요?! 20억이요?”

“네.”

“몇 평짜리?”

“뭐… 일반적인 걸 물으셔서 대답을 드린 거니까, 30평 중반 정도를 예로 든 겁니다.”

뭐야? 이 친구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떻게 30평 중반대 아파트가 20억이나 할 수가 있어?

말 같은 소릴 해야지.

30년 동안 오른 대리 연봉은 두 배가 안 되는데, 집값만 열 배, 열다섯 배 이상 올랐다는 게 말이 되나….

“아니, 지금 정 대리 연봉이 5천이 조금 안 된다면서요?”

“네.”

“근데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어떻게 20억을 해요?”

“그건 강남이니까 그런 거고요, 다른 데는 그나마 좀 저렴하죠.”

“저렴해서 얼만데요?”

“뭐… 그래도 여기 이쪽은 10억 초중반대 정도면 신축은 힘들어도 어지간한 건 가능할 겁니다.”

이 친구가 지금 날 상대로 장난을 하는 건 아닐 거 아니냐.

“아니, 이 동네 집값도 10억 초중반씩이나 하면 그럼, 사람들이 집을 어떻게 삽니까?”

“어떻게 사긴 뭘 어떻게 삽니까. 못 사는 거죠.”

대기업 인사부 대리라는 사람이 집을 못 산다는 말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해 버리니까,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아니면 진짜 막 여기저기 있는 대로 영끌을 해서 도박하듯 사거나.”

“영끌?”

“영혼까지 끌어다가 대출을 내는 거죠. 그렇게 사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봐야죠.”

집 하나 사는데 영혼을 끌어다 산다고?

“이거 진짜 실례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럼 정 대리는 집이 있습니까?”

“저요? 제가 집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죠. 월세 살고 있습니다.”

“정 대리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서른셋입니다.”

상당히 젊어 보인다 싶었는데, 의외로 나이가 많네.

“정 대리는 입사를 남들보다 좀 늦게 한 편인가 봅니다?”

“저요? 아닌데요? 저는 제 대학 동기들에 비해서 빨리한 편입니다.”

“서른셋이라면서요?”

“네.”

“그런데 대리 2년 차고.”

“네.”

서른셋이면 과장을 달아야 정상 아닌가?

“몇 살에 입사를 했는데요?”

“저 스물아홉에 입사했습니다.”

“그게 빠른 거예요?”

“에이, 저를 과장님이랑 비교하시면 안 되죠.”

“아뇨, 아뇨. 일반적으로 스물아홉에 입사를 한 게 빠른 거냐고 묻는 겁니다.”

일반적인 계산으로 스물에 대학에 들어가면 남자의 경우 군대 3년 빼고 스물여섯, 일곱에는 취업을 해야 평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스물여덟, 아홉이면 늦은 거고.

그게 정상이지.

“잘 보세요, 과장님.”

“네.”

“스물에 대학에 들어가요. 근데 남자들의 경우 군대를 가야 합니다, 한국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건 또 어떻게 기억을 하시네요. 암튼, 저 때는 20개월이었거든요.”

“군대가요?”

“네.”

군대가 20개월이라고?

“근데 입대 앞뒤로 휴학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면 벌써 스물넷입니다. 중간에 어학연수는 기본으로 한 번씩은 다녀와야죠.”

“…….”

“그거 1년 빼면 스물다섯부터 2학년이에요. 집안 형편이 좀 괜찮으면 모르겠지만, 아닌 경우는 학비 만들겠다고 휴학을 다시 또 해야죠. 인턴은 또 어떻고요? 요즘은 대기업을 노리는 경우 인턴만 두 번, 세 번씩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남자들의 경우는 빠르면 스물일곱, 평균적으로 스물여덟, 아홉에 졸업을 합니다.”

“근데 아까 정 대리는 스물아홉에 입사를 했는데, 그게 대학 동기들에 비해서는 빨리한 편이라면서요?”

“에이, 진짜 걱정되네.”

“뭐가요?”

“인사부 과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제가 참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1318세대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1318세대요?”

“대학 졸업 후 취준생 기간만 13개월, 그렇게 힘들게 입사를 한 첫 직장에서 평균 근속 기간은 18개월밖에 안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그런 1318세대를 살고 있는 게 현재 이 나라 취준생들의 평균적인 모습입니다."

“그 취준생이라는 건 뭡니까?”

“취업 준비생이요.”

아니, 대학 졸업생이 취업 준비를 왜 하지?

대졸이면 기업에서 서로 모셔 가야 정상이잖아.

“현재 대한민국 평균입니다, 평균.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 참고만 하세요, 과장님. 업계에 따라, 분야, 기업 크기에 따라 다 다른 거니까. 대한민국 평균, 남자의 경우 취업에 성공하는 나이가 31.3세입니다. 여자의 경우 29.8세입니다.”

“…….”

“그러니 저 정도면 빠른 편이죠.”

이 말을 진짜 믿어도 되는 걸까?

난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럼 정 대리.”

“네.”

“정 대리 말대로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이 18개월밖에 안 되면… 도대체 회사의 평균적인 정년은 몇 살까지입니까?”

“일단 63세로 정해져 있긴 한데,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정년까지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10퍼센트 정도가 된다고는 하던데, 그것도 업종에 따라 다른 거고, 현재 우리 재경모직 같은 경우도 대부분의 부장님들이 50 전후로 희망퇴직을 하십니다.”

“…….”

“푸흡….”

“왜요? 전혀 웃긴 내용은 아닌 거 같은데?”

“아뇨, 내용이 웃긴 게 아니라 상황이 좀… 재밌네요.”

“상황이요?”

“제가 과장님하고 6개월 조금 안 되게 같이 일을 했는데, 그 6개월 동안 과장님이랑 했던 인사 업무 관련 대화 내용보다, 이 몇 분 사이에 차 안에서 나눈 인사 내용이 훨씬 더 많은 거 같아서요.”

할 말이 없다.

조금 전 한국은 심심할 틈이 없는 세상, 너무 살기 좋은 세상, 너무 편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는 그 말은 취소다.

그런 말을 정 대리 앞에서 생각 없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게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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