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한가한 사람처럼 보여? (13/303)

내가 한가한 사람처럼 보여?

“고모부요?”

출근과 동시에 여정이 놈의 남편에 관한 정보를 정 대리에게 물어봤다.

“네, 회사 오는 길에 전화를 한 통 받았어요. 내 고모부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이 회사 사람인 거 같아요. 누굽니까?”

“…….”

어쩐 일로 정 대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렇게 웃어요?”

“아뇨, 아닙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시네요. 그래도 요 며칠 과장님을 보면 아주 옛날 일들은 뜨문뜨문 기억하고 계시는 거 같던데, 그것도 아니었나 봅니다.”

아주 옛날?

“그래서 누구예요?”

“사장님이요.”

“사장님이요?”

내가 화들짝 놀라자, 정 대리는 다시 한번 웃음을 흘렸다.

“네. 재경모직 사장님이 바로 과장님 고모부세요.”

사장이라고?

그럼 잠깐.

어제 회사 조직도에서 봤던, 남필우라는 이름이 내 사위란 말인가?

당연한 거겠지만, 회사 조직도 안에는 내가 아는 이름이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나마 안심을 했던 건 홍준이 놈이 자기 처가 쪽 인물을 재경의 요직에 앉히지 않고 있었다는 거다. 단순히 거기에만 안심을 하고 사장 남필우와 전무 조동희의 이름만 확인을 한 뒤,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홍준이 놈이 여정이의 남편을 재경모직의 사장 자리에 앉혔다?

그저 외부에서 끌어온 인물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네.

“그럼 정 대리, 이 회사에 사장님 말고 또 우리 집안 사람이 있습니까?”

“그룹 전체까지는 모르겠지만, 재경모직 안에는 사장님과 과장님밖에 안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긴, 그룹 본사의 전략 기획 본부 사람도 아니고, 계열사 한 군데의 인사부 대리가 회장 집안의 모든 가계도를 다 꿰고 있을 순 없는 거겠지.

“사장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장님이요?”

“조심 안 해도 됩니다.”

“네?”

“내 앞이라고 말조심 안 해도 된다고요. 내가 그날 호텔에서 날 도와주면 정 대리의 연봉만큼 보수를 따로 챙겨 주겠다고 했었죠?”

“…….”

“왜 그랬겠어요? 지금 내 상태를 가족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었음,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저 내가 물어보는 것들에 대답만 해 주고, 또 내 상태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달란 조건으로 그 큰 보수를 제시했겠어요?”

“알겠습니다. 저도 실은 요 며칠 과장님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 계속 최면을 걸고 있는 중입니다. 사장님이요?”

“네. 어떤 사람입니까?”

입장을 바꿔서, 내가 정 대리라도 대답하기가 참 어려울 거 같다.

대답을 해야 하는 상대가 사장의 조카 아닌가.

회장의 아들이고.

그럼에도 정 대리의 입에선 내가 만족할 만한 대답이 나왔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대외적으로는 사장으로서의 존재감이 크게 없는 분이십니다.”

존재감이 크게 없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세상 사람들은 오너가의 직계 사람들 이름만 기억을 합니다. 같은 계열사 사장들의 이름 하나하나까지는 다 모르죠. 크게 관심도 없을 거고.”

난 고개만 끄덕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재경모직은 다른 기업의 계열사들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봐야죠. 지금은 재경항공이 그룹의 중심 사업이지만, 재경의 모태 기업은 누가 뭐래도 재경모직이니까요. 그럼에도 우리 사장님 같은 경우는 벌써 15년 이상을 재경모직의 사장으로 계셨는데, 밖으로 크게 알려진 내용이 없습니다. 재경모직은 알아도 재경모직의 사장이 누군지는 아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겁니다.”

“음….”

이건 정 대리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존재감이 없을 수는 있지.

하지만 어느 한 기업을 큰 잡음 없이 15년 이상 이끌어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존재감이라는 건 본인 스스로 조절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하는 거고.

제 형과 조카를 쳐 낸 놈이 회장 자리에 앉아 있다.

손씨 집안도 아닌 손씨 집안의 사위로 들어온 사람이 존재감을 드러내어 좋을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재경 그룹 안에서는 레전드로 통합니다.”

“레전드요?”

“네, 레전드죠. 사장님은 우리 회사 직원 사이에선 레전드 오브 레전드입니다. 일반 평사원으로 입사를 해서 단 4년 만에 그룹 본사의 전략 기획 본부 과장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오너 일가의 일원이 되셨죠.”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쉰여섯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쉰여섯.

홍준이 놈이 아니라 홍명이 놈이 재경을 이끌 때 입사를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홍명이가 재경을 이끌 때 그룹 본사 전략 기획 본부에서 근무했다, 라….

“15년 이상을 재경모직의 사장으로 있었다는 말은 나이 마흔에 사장이 됐다는 말입니까?”

“음… 네, 그렇네요. 오우, 당연한 건데 그런 식으로는 제가 계산을 못 해 봤네요. 그저 사장님이고 또 오너가 분이시니까 저희랑은 상관이 없는 세상에 계신 분이란 생각에 아예 계산을 안 해 봤는데, 따지고 보니까 그렇네요. 진짜 레전드는 레전드네요.”

“제 아버지가 아니라 제 큰아버지가 재경을 이끌 때부터 회사에서 두각을 드러낸 분이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이번엔 아주 조심스럽게 정 대리가 말했다.

“이건 그냥 일종의 가십처럼,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말인데요….”

“네, 뭐든 괜찮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 직원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가십은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손홍명 전 회장님이 각별하게 아끼셨다, 그래서 전 회장님이 직접 막내 여동생과 남필우 사장님을 이어 주셨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실제 두 분의 결혼도 전 회장님이 살아 계실 때 하셨고, 결혼 이후에 이곳 재경모직의 전략기획팀 본부장으로 발령을 받아 오셨거든요.”

다시 한번 내 눈치를 살피며 정 대리가 말했다.

“전 회장님이 돌아가신 후에, 저도 들은 이야기이지만 회장님께서 남필우 사장님이 전 회장님의 최측근이었다는 이유로 거리를 크게 두셨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또 회장님의 최측근이 바로 사장님이시니까, 그냥 가십거리 좋아하는 직원들 사이에 흘러 다니던 루머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그렇네요.”

“일반 평사원이었다고요?”

“네, 결혼할 당시도 말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팩트가 맞습니다. 남성판 신데렐라… 그런 식으로요. 그런데 저도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회장님 역시 결혼은 일반인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랬지.

“그래서 더 여동생 결혼 배우자 감에 관대하지 않으셨을까, 집안 배경보다는 사람 자체만 보고 여동생과 이어 주지 않으셨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맏이, 홍명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아비인 나보다 여동생 여정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놈 아닌가.

여정이가 어렸을 땐, 어딜 가나 꼭 여정이를 안거나 목말을 태워서 다녔던 게 홍명이었다.

아비보다 더 여동생을 아비처럼 챙기고 살폈던 게 바로 그놈, 바보 같은 짓을 한 홍명이 놈이었다.

“과장님.”

“네.”

“근데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내용은요, 정말 그냥 참고만 하셔야 할 겁니다.”

“참고만요?”

“당연하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다 회사 안에서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흘러 다니는 가십들이라고. 제가 어떻게 몇 번 실제로 보지도 못한 사장님에 대해 알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본 그 몇 번도 다 먼발치에서 구경하듯 본 게 전부인데.”

“알겠습니다. 참고만 하겠습니다. 근데도 충분한 느낌이 드네요. 잠깐 보자고 하셔서 저는 지금 사장님 좀 뵙고 오겠습니다.”

* * *

사장실 문 앞이었다.

비서팀 여직원 한 명이 대신 문을 노크해 주고 있을 때였는데, 번쩍하고 정훈이 놈이 스마트폰에 남필우를 고모부나 사장님으로 저장을 해 놓은 게 아니라 ‘노예 1’로 저장을 해 놓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리 개차반인 놈이라도 자기 고모부를, 그것도 자기가 일을 배우고 있는 회사의 사장을 ‘노예 1’로 저장을 해 놓았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안에서의 정훈이 놈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 내용을 제 아버지에게 보고를 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렇게 저장을 해 놓았을까?

아니다.

그건 아닐 거다.

아무리 홍준이 놈이 내가 죽고 난 뒤, 권력에 눈이 멀어 친형을 밀어낼 정도로 미쳐 날뛰었다손 치더라도 고작 망나니 아들 하나 감시하는 일을 회사 사장에게 시켰을까?

만약 그 정도로 홍준이 놈이 형편이 없는 놈이었다면, 지금도 내 성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어쨌든 이런 꼬라지로라도 재경을 유지하고 이끌어 가고 있을 리가 없다.

진작에 말아먹었겠지.

하물며 정 대리 말만 들어서는 남필우는 입사 4년 만에 그룹 본사 전략 기획 본부의 과장까지 오른 인물.

그룹 본사의 전략 기획 본부 과장 자리는 최소 입사 10년은 되어야지 올라갈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그곳의 과장 자리는 사실상 다른 부서의 부서장급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고.

평사원으로 시작을 해서 그 정도로 거짓말 같은 빠른 승진을 하기 위해선 능력은 기본이고, 정치력도 수준급이어야 하며 무엇보다 회장의 눈에 들어야 한다.

절대 일반적인 승진은 아니니까.

그 정도 깜냥은 되는 인물이니 15년씩이나 재경모직의 사장 자리를 맡고 있는 것일 테고.

그런 남필우에게 이런 망나니 정훈이 놈의 관찰자 역할을 맡겼을 리는 없고….

어쩌면 지금의 내게 아주 요긴한 패가 될 수도 있겠는데?

“들어가시면 될 거 같습니다.”

여비서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 잠깐만 앉아 있어. 커피 마셨지?”

“…네.”

“조금만 기다려. 오늘 내가 바쁘다. 그룹 본사에 들어가야 하거든. 아 참, 거기 고모가 가져다주라고 한 그림 있으니까, 천천히 보고 있어.”

남필우는 나와는 눈도 안 마주치고 서류 결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오늘 처음 보지만 결국은 내 하나밖에 없는 사위.

쓸 만한 놈이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며, 큰 쇼핑백 안에 든 내용물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큰 그림은 아니었다.

벽에 걸기보다는 협탁 같은 곳에 세워 두기에 적합한 크기의 그림.

해바라기 그림이었다.

따뜻한 느낌이 퍽 마음에 든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볼일을 모두 끝내고 남필우가 소파 자리로 왔는데, 뭉툭한 코와 시원하게 벌려지는 입, 그리고 작지만 날카로운 눈매가 꽤나 호감형이었다.

인물은 좋네.

젊었을 땐 한 인물 했겠어.

체격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심한 듯 차갑게 짓고 있는 이 친구의 미소가 난 마음에 들었다.

“지난주에 정태랑 같이 고모 갤러리 갔었어?”

난들 알겠나.

“음… 네, 갔죠.”

“요즘 갤러리 발길이 잦은 거 같다?”

“제가 그랬나요?”

“그림을 보러 가는 거라면야 내가 가라, 가지 마라 할 순 없는 건데 혹시라도 다른 의도가 있는 거라면 발길을 좀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이건 또 무슨 소릴까?

“내가 신경이 좀 쓰이네. 혹시라도 네 고모가 가지고 있는 이 회사 지분 때문에 가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그 이유에 확신이 있으면서도 우회적으로 경고의 성격을 띄워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네 고모 지분에 관해선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야.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일단은 맞는다고 하자.

말을 많이 하게 만들어서 정보를 끼워 맞추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죠. 그걸 고모부가 관여할 내용은 아니죠. 우리 집안일인데.”

“쓰읍!”

뭐야? 내가 너무 나갔나?

“회사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내가 말을 했을 텐데?”

“…….”

“회사 밖에서는 잘도 남 사장, 남 사장… 그렇게 부르고 다니잖아. 회사에서도 그렇게 불러. 똑바로.”

“…네, 사장님.”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처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 고모가 가지고 있는 재경모직의 지분은 나와는 별개야. 너와 정태와는 더더욱 별개지. 안 그래?”

“…….”

“나도 관여를 안 하고 있는 내 와이프 지분을 왜 너랑 정태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관여를 하려고 하지?”

말이 끊겨선 안 된다.

좀 더 말을 시켜야 한다.

대화 주제가 다른 쪽으로 흘러가서도 안 된다.

“결국은 제 아버지 회사 아닙니까?”

“뭐?”

“아들 된 도리로 형이랑 제가 고모 지분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럴 능력은 되고?”

눈빛 봐라.

아주 정훈이 놈을 천천히 입에 담고 꼭꼭 씹어 먹을 기세다.

“능력이야… 만들면 되는 거죠.”

“진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라면 그 능력, 다 만들어 놓고 해. 네가 지금 어째서 이렇게까지 내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랑 정태가 계속 고모 갤러리를 들락날락한다는 걸 회장님이 아시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홍준이 놈은 모르는 일이다?

“네 고모는 어찌 됐든 정엽이까지 없는 마당에 너랑 정태가 유일한 조카들이고, 또 언제든 넘겨도 넘겨야 하는 지분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까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거 같던데, 난 달라.”

“…….”

“나는 손씨 집안 사람이 아니잖아. 난 그저 재경모직의 사장일 뿐이고, 내 역할은 그게 내부의 문제가 됐든 외부 충격이 됐든, 그 어떤 위협으로부터 재경모직을 지켜 내는 일이야. 그걸 지금 너랑 정태가 방해를 하고 있어. 네 고모는 마음이 약해서 못 그럴지 몰라도, 나는 얼마든지 회장님께 말씀을 드릴 수가 있어.”

“…….”

“명심해라, 손 과장. 능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욕심은 그 뒤에 내도 돼. 능력이 뒷받침 안 되는 욕심은 말 그대로 욕심일 뿐인 거고, 능력이 갖춰진 상태에서 갖는 욕심은 목표가 될 수 있는 거야. 지금 내 눈에 너나 정태는 목표 없이 욕심만 잔뜩 가지고 있는 거 같아. 한마디 덧붙이자면 네 나이만큼 내가 재경에서 살았다. 재경, 그리고 이곳 재경모직. 내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내가 열심히 보살펴 온 내 인생을 목표 없는 욕심으로 흔들지 마라. 때가 되면 회장님께서 적당히 분배하실 거다. 그런데 그때가 지금은 아니야.”

홍명이 놈이 그렇게 물고 빨던 제 여동생 여정이를 이 친구에게 줬을 만하다.

“알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제가 고모를 사장님 몰래 따로 만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내 말에 남 사장은 안 그래도 작은 눈을 더 가늘게 뜨며 날 쳐다봤다.

“제가 형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니까, 형도 그렇게 할 거라는 약속은 못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가 어쩐 일이냐? 말이 다 통하네. 좋아. 그건 그렇고… 어제 내가 생뚜앙 지사장한테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인사부장이 전화로 주재원 티오를 하나 만들어야 할 거 같다고 했다면서, 그게 네 요청이었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네.”

“날 납득시켜 봐. 지사장이 네 요청대로 티오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 이유.”

진짜 쓸 만한데?

“만약 이 자리에서 날 납득시키지 못하면 네가 아니라, 네 요청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지사장한테 그런 요청 전화를 건 인사부장한테 문제가 생길 거야.”

“그래도 제가 명색이 인사부 과장인데, 그 정도 요청도 못 하는 겁니까?”

“내가 방금 말했잖아. 뭐 들었어? 네 요청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지사장한테 그런 요청 전화를 걸었다면 그건 네가 아니라 인사부장의 자질 문제야. 네가 아니라 다른 직원이 그런 요청을 했어도 직접 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아니, 못 하지. 생뚜앙 지사 주재원 자리가 어디 일반 생산 계약직 자리야? 하물며 티오에 구멍이 난 것도 아니고, 정원이 꽉 차 있는 데 없는 자리를 만들어 달란 요청이잖아.”

됐다.

이만하면 내 사위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알겠다.

눈을 감기 전 여정이 놈의 짝을 못 지어 주고 눈을 감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딸 가진 부모로서, 어쩌면 아비이기 때문에 가져지는 어쩔 수 없는 환상 같은 거라고 할까?

여정이 놈이 어릴 때부터, 이놈이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면, 짝이 될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같이 술잔을 기울여 보고 싶은 기대가 참 많았다.

아들놈들과 같이 마시는 술과는 또 다른 맛일 거 같았다고 할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남 사장과 같이 술을 한잔하고 싶어졌다.

“사장님이 그렇게 하시면 인사부 안에서 제 체면이 뭐가 됩니까?”

난 일부러 생각 없는 망나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대로 말본새를 흉내 냈다.

“뭐?”

“그렇지 않아도 회장 아들이라서 아무 능력도 없는 놈이 곧바로 인사부 과장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다, 회사 출근해서 하는 거 하나 없이 시간만 보내다 간다… 그런 말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다리를 꼬아 앉으며 남 사장이 내 눈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한 일로 사장님이 제가 아닌 인사부장에게 뭐라고 해 버리면, 인사부 안에서 제 입장이 뭐가 되겠습니까?”

“날 납득시키면 문제될 게 없어. 왜? 납득시킬 자신이 없어?”

“제 체면 좀 세워 달라고 했습니다.”

“뭐라?”

“인사부장한테 제 체면 좀 세워 달라고 했다고요. 저도 부서 사람들한테 뭔가를 보여 주고 싶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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