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새겨듣겠습니다 (23/303)

새겨듣겠습니다

오후 2시 반이 지나서야 회의가 끝이 났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다.

사무실은 이미 직원 모두가 점심을 다녀와서 업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정 대리가 물었다.

정 대리는 나뿐 아니라 고 부장과 김 차장, 그리고 HRD의 박 과장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오전에 회의 내용 있죠?”

“네.”

“그거 기획안을 좀 만들어야 할 거 같아요.”

내 말에 정 대리는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하자고 합니까? 한 달도 안 남았는데요?”

“우선 부장님이 기획안을 만들어서 전달을 해 달라네요. 위로 제안을 올려 보겠다고.”

정 대리는 이 내용이 받아들여질 거란 기대를 안 했던 모양이다.

“부장님, 차장님은 모르겠지만 박 과장님도 별말 없으셨어요?”

“박 과장님이요? 네, 별말 없던데요?”

“진짜요?”

난 파티션 너머의 박 과장을 한 번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 말도 없었어요.”

“오… 의외네요.”

“뭐가요?”

“만약에 기획안이 통과가 되어서, 이번 공채가 정말로 부서별 인크루팅으로 이뤄진다면 HRD 쪽에선 신입 사원 교육 자료를 새로 만들어야 될지도 모르잖아요.”

“부서별 인크루팅이 통과가 안 된다고 해도 신입 사원 교육 자료는 새로 만들어야 해요.”

“네?”

“그 부분도 내가 이야기를 했어요. 주말 이용해서 공부를 좀 해 봤는데, 자료가 너무 구식이고 보여 주기식이라고. 보는 내내 내가 이걸 지금 왜 보고 있는 건지, 보는 시간이 아깝단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설마 그렇게 말씀을 하신 건 아니죠?”

“그렇게 말했는데,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 대리는 입을 다물지 못하며, 다시 한번 파티션 너머의 박 과장 표정을 살폈다.

“뭐라고 안 그러시던가요?”

“뭐라고 할 게 없죠. 그게 사실인데. 자기도 눈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 내가 틀린 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지.”

“서, 설마… 자료를 새로 만들겠다고 하던가요?”

“새로 만들어야죠. 자기도 별말 못 한다는 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어요? 새로 만들어 보자고 했어요. 리크루팅도 우리가 최대한 HRD랑 협업을 할 테니까, 교육 자료도 같이 맞춰 보자고.”

“…….”

“왜? 내가 뭐 못 할 말 했어요? 당연히 할 수 있는 요청인 거고, 박 과장도 생각이 있으면 동의를 해야지. 그건 그렇고, 박 과장… 어떤 사람입니까? 대리까지는 HRM에서 일을 했다던데.”

나의 물음에 정 대리는 딱 한마디로 나로 하여금 박 과장을 이해하게 만들어 주었다.

“제 사수였습니다. 제가 인사 관련 업무 기초를 박 과장님한테 배웠습니다.”

“직원들 교육을 잘하긴 하나 보네.”

“실질적 인사부 에이스라고 봐야죠. 좀 차가운 면이 있어서 가까워지긴 어려운 스타일이지만, 업무 능력 자체만 놓고 보면 깔 게 없는 분입니다.”

까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내 눈엔 깔 것투성이더만.

그나마 개중에는 좀 났다는 정도이지 에이스 소리를 들을 정도까지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만약 저 정도 능력이 에이스 소리를 듣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면, 어쩌겠나.

인정을 하고 이 시대에 대한 공부, 이해를 내가 더 하는 수밖에.

어쨌든 내 성에 안 찬다 뿐이지 업무 능력, 이해력이 쓸 만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난주와는 달리 내게 큰 저항을 안 하는 거로 봐선 자기 소신은 있을지언정 쓸데없는 고집 같은 건 없는 게 분명하고.

어느 정도는 합리적인 면이 있다고 봐 줘야 하지 않을까.

“기획안 언제까지 만들 수 있겠어요?”

“최대한 빨리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최대한 빨리가 언제까지예요?”

“내일 아침까지는….”

“5시까지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오늘이요?”

“네.”

“어… 그건 좀….”

“5시까지 만들어 보세요. 기획안 때문에 하루를 잡아먹을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빨리 만들어서 오늘 안으로 부장님이 위로 제안을 드릴 수 있게 해 봅시다.”

난처한 표정으로 정 대리가 말했다.

“그래도 과장님, 이 기획안이라는 게….”

“보는 사람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만 만들면 되는 게 기획안이라는 겁니다. 정 대리 그런 거 잘하잖아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거. 그동안 나한테 이것저것 가르쳐 준 것처럼, 그걸 말이 아닌 글로 한다고 생각하고 만들어 주세요.”

“…….”

“부족한 내용이 있으면 내가 보고 확인을 해 주면 되잖아요. 뭘 그렇게 겁을 먹어?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금부터 기획안 작업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러고 있을 때였다.

언제 왔는지 박종근 과장이 우리 쪽 파티션 안으로 들어와 내가 있는 자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 대리는 나와 박 과장을 차례대로 쳐다보며 눈치만 보고 있었고, 난 의자 등받이가 뒤로 살짝 젖혀지게끔 앉아서 박 과장을 올려다봤다.

“과장님.”

“네, 과장님.”

“아까 저한테 신입 직원 교육 자료를 새로 만들었음 좋겠다고 제안하셨지 않습니까?”

“네.”

“그 방향을 같이 잡아 봐도 되겠습니까? 교육 자료 새로 다 다시 만들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정 대리는 마치 자기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절대 들을 수 없는 말을 지금 듣고 있다는 표정으로 넋을 놓고 있었다.

“네, 물론이죠.”

“어디에서 할까요?”

“마라톤 회의도 금방 끝났는데, 지금 바로 시작하지 말고 과장님은 과장님대로 고민을 조금 해 보시죠. 저도 저대로 궁리를 해 보겠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저 혼자 떠들었더니 목이 잠기는 거 같아서요.”

“하긴, 말씀을 많이 하긴 많이 하셨어요.”

“제가 지금 당장 봐야 하는 내용이 있어서 그런데, 조금 이따가 기획안 완성되고 하면 부장님께 전달하고 바로 과장님 자리로 가겠습니다.”

“기획안을 오늘 당장 만드시려고요?”

“그럼요. 시간도 촉박한데, 기획안 올리는 거로 하루를 잡아먹을 순 없죠. 어떻게든 오늘 안으로 부장님이 위로 제안을 올리실 수 있게끔 만들 겁니다.”

박 과장이 다시 자리로 돌아간 뒤 정 대리가 정말 작은 목소리로, 딱 나만 들을 수 있을 만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과장님.”

“또 왜요?”

“도대체 지금 무슨 마법을 부리고 계시는 겁니까?”

“마법은 무슨….”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마법이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 * *

2시간 뒤 고성표 부장은 손정훈 과장으로 인해 다시 한번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부서장 회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책상 위로 하반기 공채에 관한 기획안이 올려져 있었다.

분명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졌던 미팅 때 기획안을 만들어 보란 지시는 고 부장이 직접 내렸던 거다.

하지만 기획안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뚝딱하고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하물며 농사의 씨앗이라고 하는 신입 사원 모집 인크루팅에 관한 기획이다.

책상 위로 올려진 기획안을 확인하는 동안 고 부장은 속으로 생각을 했다.

설마 미리 이런 기획안을 다 준비해 놓고, 아침에 미팅을 가지자고 했던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기획안의 내용이 이렇게까지 튼튼할 수가 없다.

내용이 많은 건 아니지만, 튼튼한 기획안이다.

한눈에 보인다.

도대체 이건 뭘까?

HRM의 정현수 대리가 일을 잘하는 직원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 정도 기획안을 만들어 낼 역량은 못 된다.

어째서 망나니 손정훈 과장을 통해 이런 수준의 기획안을 받아 볼 수 있는 거지?

고성표 부장은 조금 전 부서장 회의에서 가지고 온 안건이 모두 머릿속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저기, 손 과장님?”

고 부장은 자기 자리에서 손 과장을 불렀다.

곧 손 과장이 자기 자리로 왔고, 그런 손 과장을 쳐다보며 고 부장이 물었다.

“이 기획안… 혹시 미리 만들어 놨던 겁니까?”

“아닙니다. 조금 전에 작성 끝내고 올려놓은 겁니다.”

“…….”

“왜 그러십니까? 혹시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가 있을 리 없다는 표정이다.

실제로도 기획안 자체로는 꼬투리를 잡을 내용이 전혀 없었다.

최소한 고 부장 자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앞으로 한 달도 안 남았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방향이 정해져야 거기에 맞춰서 리쿠르팅 요강을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송구스럽지만, 부장님께서 위로 제안을 빨리 올려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빨리 뽑아 봤습니다.”

21년을 재경맨으로 살아온 고성표 부장이다.

손 과장이 자신에게 한 말의 뉘앙스를 눈치 못 챌 고 부장이 아니었다.

말은 요청처럼 하지만, 그 안에 숨은 본뜻은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서 기획안을 만들었으니, 얼른 이걸 가지고 위로 올라가서 컨펌을 받아 오라는 일종의 지시였다.

그 부분이 거슬리는 건 아니다.

어차피 상대는 회장의 아들.

지금 이 모습이 실체인지, 망나니의 모습이 실체인지 따위는 고 부장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은 재경모직 인사부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자신보다 더 위로 올라갈 인물이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지난 6개월간 자신이 방향을 잘못 잡고 노를 저어 왔다는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는 고 부장이었다.

천지 분간을 못 하는 망나니가 아니었던가?

전무가 아무렇지 않게 지시했던 것처럼, 그냥 옆에서 지켜만 보다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보고만 해 주면 자신의 역할이 끝날 거라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그런 게 아닐 수도 있겠단 본능이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손 과장은 인사부뿐 아니라 인사로 재경모직의 틀을 바꾸겠다고 하고 있다.

“그… 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지금 올라가서 기획안 올리고 제안을 드려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장님.”

“네, 과장님.”

“언제쯤 컨펌이 떨어질 거 같습니까?”

이 말의 본뜻 역시 엄청난 거다.

이 기획안에 컨펌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하고 있다.

확신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최대한 빨리 컨펌을 받아 오라는 소리다.

“그건 제가 올라가서 제안을 드려 봐야….”

“어디로 올라가실 생각이십니까?”

“…네?”

“어디로 올라가서 제안을 하실 생각이시냐고요.”

갑자기 고 부장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마치 그동안 고 부장 자신이 손 과장의 사무실 내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다 특이 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조동희 전무에게 보고를 해 왔던 걸 다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묻고 있다.

그럼에도 고 부장은 섬뜩한 기분에 융통성 있는 대답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틈이 보이지 않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손 과장 때문에 그럴 틈도 없었다.

“이 정도 사안이면 전무님께 바로 기획안을 올려야겠죠.”

“중간에 거치는 층이 없이 바로 전무님까지 올라가실 수 있으시군요.”

“……!”

“잘됐습니다. 저도 가능하면 빨리 컨펌을 받아서 준비했으면 싶거든요. 박 과장도 교육 자료 새로 만드는 데 방향을 같이 잡아 달라고 하고. 아무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부탁은요, 다 우리 인사부 일인데요.”

“그렇죠. 우리 인사부 일이죠. 저도 앞으로는 일을 좀 일같이 하겠습니다, 부장님.”

고 부장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이 망나니 손 과장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

고 부장은 지난 6개월간 손 과장의 이런 모습에 관해선 전혀 눈치를 못 챘다.

이상하게 자신이 잡은 동아줄이 잡지 말았어야 하는 동아줄이었나라는 의심이 생겨나는 순간….

“그럼 저는 가서 보던 업무 마저 봐도 되겠습니까?”

“네? 아, 네, 네. 그럼요. 가서 일 보세요.”

“네.”

놀란 마음에 급하게 뛰기 시작한 심장은 고 부장이 전무실 문 앞으로 도착할 때까지도 쉬지 않고 뛰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전무실 안에선 조동희 전무가 사무실 내부를 등지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오늘 볼 업무는 모두 끝내 놓고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고 부장이었어? 어쩐 일이야?”

“저기, 손정훈 과장에 관련된 일인데요.”

“어, 그래? 앉지. 일단 앉아. 왜 또 무슨 사고 쳤어?”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저기 이거….”

조동희 전무와 마주 보고 앉은 소파에서 고성표 부장은 들고 온 기획서를 전달했다.

“부서별 인크루팅? 기획안이야?”

“네.”

“손 과장 건으로 왔다면서?”

“네, 그걸 손정훈 과장이 올렸습니다.”

굵은 금테 너머로 고성표 부장을 강하게 쳐다본 조동희 전무는, 그 시선을 거둬 기획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분명 튼튼한 기획안이었지만, 요약이 깔끔하게 잘되어 있기도 해서 그걸 다 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기획안을 다 확인한 조동희 전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걸 손 과장이 만들었다고?”

“네.”

“직접?”

“그랬던 걸로 보입니다. 바로 밑에 있는 정현수 대리가 업무 능력은 뛰어나지만, 아직 이 정도 기획안을 만들어 낼 정도는 아니거든요.”

“당연히 그건 아니겠지. 이게 어떻게 대리 선에서 뽑을 수 있는 기획안이야. 손 과장이 직접 만든 거 확실해?”

“대신 만들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긴. 흠… 뭔가를 해 보겠다? 그게 부서별 인크루팅이다 이거지? 재밌네. 회장님이 좋아하시겠네. 일단 알았어. 이건 내가 바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까, 내일 사장님한테 말씀을 한번 드려 보고, 사장님 반응에 따라 이야기를 다시 해 보자고.”

고 부장을 쳐다보는 조동희 전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왜? 다른 할 말 있어?”

“그게….”

“그게?”

“제가 실은 지난주에 별일이 아닌 줄 알고 보고를 안 드린 게 있습니다.”

“뭐?”

“지난주부터 손정훈 과장의 행동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 어떻게?”

“사람이 바뀐 거 같다고 해야 할까요? 저도 당시에는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오늘 이 기획안을 받고, 또 기획안을 만들어 보란 지시를 하기 전 이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생각을 해 보니까, 지난주부터 손 과장의 행동이 좀 이상했습니다.”

“무슨 혓바닥이 그렇게 길어? 그러니까 어떻게?”

“일을 합니다. 그것도 열심히, 잘합니다.”

“열심히만 하는 게 아니라 잘한다고?”

“그렇게 보입니다. 이게… 설명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저도 난감한 상황인데….”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조동희 전무가 말했다.

“난감할 게 뭐가 있어?”

“네?”

“회장님의 아들이고, 손중길 회장님의 손자야.”

“그게 무슨….”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고. 안 하는 게 문제지, 하면 당연히 잘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그야….”

“본사 상무님 봐. 그 인물이 보통이냐고. 같은 밭에, 같은 씨로 난 싹인데 모양은 다르게 피울지언정 그 질까지 크게 다를까. 어차피 회장님도 길면 2년까지 보셨어. 본인은 회사 일 배우는 게 싫다고 했지만, 욕심만 차면 충분히 밥그릇을 챙길 거라고. 지난 6개월 그렇게 망나니짓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회장님 면을 깎아 먹더니, 결국은 포기하고 밥그릇 챙길 준비를 하는 모양이지.”

“…….”

“계속 잘 지켜봐. 혹시 모르니까, 또 이상한 모습 발견되면 바로바로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거랑은 다르게, 이 기획안은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그렇게 기다려도 안 올라오던 싹이 파랗게 모습을 드러냈는데, 설마하니 회장님도 그렇고, 사장님이 그 싹을 밟기야 하시겠나. 진행이 쉬울 거 같진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경험 삼아 해 보라고 하지 않을까? 실패만큼 영양가 높은 거름이 또 어디에 있겠어?”

“하지만 이게….”

“채용이야 어떤 명분을 갖다 붙여서라도 제대로 다시 하면 돼. 기획안이 괜찮긴 하지만, 이게 설마 제대로 되겠어? 분명 문제가 많이 나오겠지.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고작 공채가 아니라 손 과장이 이런 기획안을 만들어 냈다는 거고, 그것만으로도 가장 골칫거리였던 둘째 아들이 정신을 차렸다는 이유로 회장님이 좋아하실 거라는 거야. 그거면 끝나는 거 아냐?”

“…네, 맞습니다.”

“고 부장.”

기획안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조동희 전무가 말했다.

“네.”

“회사 생활 오래 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쉬워. 내가 모시는 사람이 화를 내지 않게, 기분 좋게만 만들면 되는 거야. 자네 정도 위치에선 다른 거 보면 안 돼. 딱 그것만 보고 앞으로 나가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일을 해야 인정이라는 걸 받을 수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내려가 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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