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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너무 노골적인가요? (24/303)

제가 지금 너무 노골적인가요?

고 부장일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라인이 전무에게 직접 연결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상관없다.

몸통을 잡은 게 중요하지, 그 몸통의 위치가 뭐가 중요할까.

오히려 좋게 생각하자면, 몸통의 위치가 영향력이 있으면 있을수록 생략해도 되는 과정이 많아질 수도 있는 거다.

조동희 전무.

이 인물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 할 거 같은데, 지금 당장 고 부장을 통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고, 김 차장은 사람이 너무 가볍다.

그렇다고 정 대리가 내게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사무실을 둘러보는데, 마침 내 눈에 박종근 과장이 들어왔다.

어차피 박 과장은 지금부터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 대리의 말처럼, 내가 봐도 현재 재경모직 인사부 안에서 일을 일답게, 그나마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자기 역할을 하는 건 내 눈높이에선 박 과장이 유일하다.

“과장님.”

난 몇 시간 전 신입 사원 교육 자료를 새로 만들기 위해 함께 방향을 잡아 보자고 했던 박 과장의 요청을 떠올리며 그의 자리로 갔다.

“네, 과장님.”

“많이 늦었네요. 기획안 만드는 게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걸 그 시간 안에 만들어 냈다는 게 저는 믿기지가 않는데요? 별다른 수정 요청 없이 부장님이 바로 위로 가지고 올라가신 걸로 봐선 대충 만드신 거 같지도 않고.”

“대충 만들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거 만드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네요. 벌써 퇴근 시간인데 어쩌죠?”

“내일 해야죠. 디테일을 잡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에 밑그림을 새로 그리는 작업인데, 시간 쫓겨 가면서 할 수 있습니까. 오늘 퇴근하고 집에 가서 저대로 고민을 좀 해 봐야 될 거 같습니다. 내일 출근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보죠.”

“그것도 좋은 방법인데, 따로 약속이 없고, 집에 가셔서 혼자 고민을 해 보실 거면… 차라리 퇴근하고 저랑 같이 소주 한잔 안 하시겠습니까?”

“소주요?”

퇴근 후 박 과장과 단둘이서 회사 근처 홍어 전문점으로 갔다.

박 과장이 먼저 홍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의외였다.

“이 나이 먹고 아직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살다 보니까 높아지는 건 눈이랑 입맛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홍어 전문점으로 날 안내하며 박 과장이 말했다.

서른일곱인데, 사지 멀쩡하고 직장 번듯한 친구가 왜 아직 장가를 안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결혼에 생각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그러니 눈이 높아진단 소리가 나오죠.”

“비혼주의는 아닌데, 혼자 살다 보니까 혼자가 편하네요.”

그곳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룸 안으로 들어갔다.

“술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홍어회 먹으러 와서 막걸리를 안 시킬 수 있습니까.”

“홍어회를 드실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궁합을 꽤 잘 아시네요. 저는 제가 드린 보기 중에 홍어를 고르실 줄은 솔직히 생각을 못 했습니다.”

“보기 중에 특이한 메뉴가 있다는 말은 그걸 골라 달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선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죠. 제가 그런 거 하난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정말 의외의 자리네요.”

난 대답 없이 그저 박 과장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제가 과장님하고 이렇게 단둘이 회사 마치고 술자리를 가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해 봤겠습니까?”

주문한 술과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난 날 대하는 박 과장의 온도가 갑자기 바뀐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 질문에 박 과장은 오히려 또 다른 질문으로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었다.

“과장님은 과장님처럼 특별한 케이스 말고요, 일반적인 직원, 그중에서 저처럼 과장급 정도 되는 직원이 퇴사하는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죠. 하지만 그 수많은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결정적인 건 결국 돈 아니겠습니까?”

내가 집어낸 핵심 앞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완전한 부인은 하지 못하겠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박 과장이 말했다.

“만약 그 돈이라는 게 어느 정도 충족이 되는 사람의 경우는요?”

“세상에 돈을 상대로 충족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에이, 시시한데요?”

“뭐가요?”

“박 과장님 정도 되면 서로 이야기가 수월하게 나눠질 거라고 기대를 했는데, 너무 돌아가신다.”

그 말에 박 과장은 싱겁게 미소를 지었다.

마침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막걸리 한 통과 기본 찬이 먼저 나왔고, 우린 막걸리 한 잔씩을 서로에게 부어 준 뒤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지하게 이직을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도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행이네요.”

“아직도 고민 중이라니까요?”

“아뇨, 그런 뜻으로 다행이라는 게 아니라,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난주 몇 차례나 내게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박 과장.

난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좁혀 놓고 있었다.

하나는 재경모직이라는 회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이 회사에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정훈이, 그리고 지금의 내가 회장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곧 내가 자신의 위로 올라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렇게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시킬 필요가 없는 거 아니겠나.

만약 재경모직이라는 회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망나니짓을 하는 정훈이 놈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거였다면 난 박 과장을 가엽게 여겨야 했을 거다.

그런 의미 없는 충성심이 어디에 있나.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하지만 더 이상 이 회사에 아쉬울 게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아쉬울 게 있도록 만들어 주면 된다.

“고 부장님이나 김 차장님과는 다르게 대놓고 인사부 안에서의 저란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기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도 어색했던지, 막걸리 사발을 입에 붙이며 싱긋이 웃기만 하는 박 과장이었다.

“지난 6개월간 회사에서 제가 보여 드린 모습들이 비정상이었다는 건 저도 알고 있는데, 그래서 같이 일하는 부서 직원을 불편하게 만들고, 때론 상대적 박탈감을 줬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왜 유독 박 과장님만 제게 날을 세우는 건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걸 모르시면 됩니까? 모두가 다 느끼는 불편함을 저만 표현했던 거뿐이죠.”

“그러니까 왜 그걸 박 과장님 혼자서만 표현을 하는 건지, 그 이유를 모르겠더란 말입니다. 혹시 고 부장님처럼 회사 안에서의 제 행동 하나하나를 조동희 전무에게 보고를 하는 역할을 받고 있나 하는 의심도 해 봤습니다.”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난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습니다. 그냥 딱 봐도 알겠던데. 아무튼, 그런 의심도 잠시 해 봤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거 같더군요. 고 부장님처럼 제 앞에서는 실실거리며, 그냥 위로 보고만 올리면 되는데, 왜 굳이 내게 감정을 낭비할까… 더는 이 회사에 아쉬울 게 없기 때문에,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저러는 게 아닐까 하는 결론이 만들어지더군요.”

“더는 이 회사에 아쉬울 게 없다, 미련이 없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셔야죠. 그건 꼭 박 과장님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박 과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내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내 속내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박 과장에게 내가 말했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합니다. 하지만 사람에겐 절대라는 걸 붙이기가 어렵습니다. 쉽게 안 변하는 건 맞지만, 절대 안 변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절대 안 변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조직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나이가 드는 것처럼 조직도 세월이 지나면서 겉모습엔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내부의 특성 자체는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그게 바뀐다면, 그 조직은 망하거나,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올라서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겁니다.”

“…….”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조직 안에선 변하기도 하니, 조직만큼 징글징글한 존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징글징글한 조직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돈을 벌고… 그러는 직원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또 다른 준비를 해 놓아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겠냐는 말이죠.”

“…….”

“그 준비가 되어 있는데, 상대가 저 아닌, 사장, 회장이라고 붙어 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니 다행이라고 하는 겁니다.”

곧 장만된 홍어회가 나왔고, 그 회 한 조각을 자기 앞접시 앞으로 가져간 뒤 박 과장이 말했다.

“처음엔 이 인사 일이 참 재미가 있었습니다. 일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보다는 인사부 생활 자체가 재미있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죠. 업무가 손에 익어 가는 맛, 인정받는 맛, 월급이 올라가는 맛, 뭔가 내가 낸 아이디어로 기존에 없던 기획이 진행되는 맛… 거기에 승진하는 맛까지.”

“…….”

“그런 재미에 빠져서 한 몇 년 신나게 일을 하다 보니까, 어느덧 제가 대리의 위치에 있는 겁니다. 정말 대단한 존재인 줄만 알았던 당시 부장님은 결국 임원 승진을 못 하고 희망 퇴사를 선택해야 하셨고, 당시 차장님 역시 다른 계열사로 부서 이동을 받으시더군요. 저는 그대로인 거 같은데, 아직 배울 게 많은 거 같은데 제가 누굴 가르치면서 일을 해야 하는 위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

“그때부터는 뭔가 제가 하고 있는 이 회사 일이 시시해지는 겁니다. 위로 쟁쟁한 선배, 절 보기만 하면 혼을 냈던 선배, 눈만 마주쳐도 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날 주눅 들게 만들었던 선배… 그런 선배들이 조금이라도 더 회사에 붙어 있기 위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후배들 눈치나 살피기 시작하고, 가장의 무게라는 것 때문에 아닌 걸 아닌 거라 말 못 하고, 해야 하는 걸 해야 한다고 소신껏 말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후배들에게 보여 줄 때마다 내가 과연 이런 집단 속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흠….”

“과장 승진을 한 뒤부터는 그런 감정이 조금 더 심각해져서 외롭다는 느낌까지 받기 시작했습니다. 후배들은 다들 생각이 없는 거 같고, 선배들은 다들 자기 몸 사리기에 바쁘고… 그러던 중에 과장님이 입사하신 겁니다.”

“정말 꼴 보기 싫으셨겠네요.”

“아뇨?”

“아니에요?”

“네, 꼴 보기 싫을 게 뭐가 있습니까? 그래도 명색이 사회생활을 10년씩이나 했는데, 그런 거 하나 감정 컨트롤 못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지난주엔 왜 그러셨어요?”

“과장님이라는 사람 자체가 꼴 보기 싫었던 게 아니라, 사무실 사람들한테 사이다 한 잔씩 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거 같아요.”

“사이다요?”

“어차피 저는 재경모직에서 경력도 꽤 잘 만들어 놓은 상태이고, 이곳저곳 헤드헌터 쪽에서 제안도 오던 중이라 크게 아쉬울 게 없었습니다. 제가 뭐 결혼을 했습니까, 그래서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습니까? 큰돈은 아니지만 혼자 쓰기엔 그럭저럭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여윳돈도 있는 상태이고, 그냥 이참에 다들 눈치만 보고 있는 과장님 상대로 사이다 한 방 터뜨려 주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대리 만족이라도 느끼라는 의미로요.”

“그런 건 줄 알았음 제가 좀 당해 줄 걸 그랬습니다.”

“하하하….”

“진심으로요. 저는 박 과장님이 그런 의도로 제게 공격을 하시는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네요. 제가 당해서 그동안 저로 인해 불편함을 느꼈을 부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통쾌할 수 있었다면… 당해 줬을 겁니다.”

“진심이세요?”

“진심이죠. 그게 힘든 일입니까? 그냥… 그러냐, 미안하다, 내가 부족했다, 내 생각이 짧았다, 앞으로는 조심하겠다…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묵은지에 홍어회와 돼지 수육을 함께 싸서 입안으로 넣었다.

꾸덕한 암모니아 향이 코끝에 뭉치며 코를 뻥! 하고 뚫어 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그러신 겁니까? 아까 회의할 때도 오후부터는 계속 제 편을 드셨잖아요.”

“맞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부서별 리크루팅이 어느 정도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올지는 솔직히 반신반의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공채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말씀에는 100퍼센트 공감을 했습니다. 저도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던 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직접 앞으로 나서서 변화를 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박 과장님 입장에선 그럴 이유가 없으셨겠죠. 박 과장님이 업무적으로 위로부터 지적을 받는 분도 아니시고, 윗사람들부터 변화를 귀찮아하고, 두려워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박 과장님이 혼자 그 책임을 다 짊어질 이유는 없는 거니까요.”

“…….”

“그런데 저는 그럴 이유가 있는 사람 아닙니까. 어떤 식으로든 조직에 변화를 줘서 성과를 만들어 내야, 그 성과로 회장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지금 너무 노골적인가요?”

“그래서 더 좋은 거 같은데요.”

“그러실 거 같았습니다. 저는 보상 없는 성과를 직원들에게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막걸리 한 모금으로 입을 적셔 놓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저는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겐 그 책임에 맞는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 나갈 겁니다. 과장님께 회사를 위해 일해 달란 말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데 가지 마시고, 계속 회사에 남아서 절 좀 도와 달란 부탁도 하지 않겠습니다. 더 좋은 기회가 있으면 그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가셔야죠. 이 회사가 더는 과장님에게 일의 보람을 못 느끼게 만든다면, 과장님의 능력 개발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그걸 해 줄 수 있는 곳으로 가셔야죠. 하지만….”

“……?”

“지금부터 제가 인사 구조, 조직 문화, 직원 혜택… 그런 걸 어떻게 바꿔 놓을지는 직접 옆에서 보시고, 그렇게 결정을 하셨음 좋겠네요.”

“그러겠다고 신입 사원 교육 자료를 새로 만들어 달란 요청에 오케이 사인을 드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제가 예민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왜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느냐는 질문만 아니면 저한테 딱히 예민한 질문 같은 건 없습니다.”

비어 버린 박 과장의 반을 채워 놓고 물었다.

“조동희 전무. 어떤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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