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 됩니다 (33/303)

네, 됩니다

오로지 내가 챙겨온 다이어리와 각자의 커피 말고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던 테이블.

그 테이블 위로 마치 바둑돌을 올려놓듯, 검지로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 가며 윤현정 팀장이 설명해 나갔다.

“대부분의 디자인 계열은 이직이 계약직으로 이뤄진다는 거, 혹시 과장님은 알고 계세요?”

“앞으로는 참고하겠습니다.”

“디자인이라는 직군 자체가 그래요. 꼭 방송국 외주 피디처럼 프리랜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요.”

“그럼 팀장님도 계약직으로 스카우트를 받으셨던 겁니까?”

“당연하죠. 저 지금도 계약직이에요.”

뭐라고?

이건 내가 확인을 못 했다.

전혀 생각을 못 해 본 내용이었다.

팀장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정규직이겠거니 했는데 계약직이었다고?

“진짜 모르셨나 보네.”

“아마 저희 인사부에서는 저만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자리를 요청해 놓고, 제대로 준비를 못 했네요.”

“아뇨, 괜찮아요. 저는 제가 계약직으로 가겠다고 조건을 내건 케이스니까요.”

이건 또 무슨 말일까.

“KS 인터내셔널이라고 하면 그래도 10년 넘게 최소한 대한민국 안에서는 패션 관련 넘버원 기업이잖아요. 제 자랑 같지만, 거기에서도 최연소 팀장 생활을 했고, 재경모직에선 사장님을 통해 직접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는데 재경모직의 연봉 테이블 조건으로는 옮길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지.

당연한 거지.

아!

그래서 연봉이 1억 8천이구나!

“저 정도면 최소한 이 업계 안에서는 FA라고 봐야죠. 감사하게도 제가 제시한 연봉을 사장님께서 오케이해 주셨고, 반대로 저는 죄송하게도 2년 가까이 재경모직 밥을 먹고 있으면서도 사장님의 기대에 보답을 못 해 드리고 있는 실정이죠.”

그 보답은 지금부터 해내면 되는 거니까 그런 건 아무 걱정 하지 마라.

“하지만 그건 저니까 그런 거고요. 제가 이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 혹은 그 사람들을 통해 소개를 받고 제가 직접 스카우트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저랑 사정이 다르죠. 저처럼 자의에 의한 계약직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계약직인 거예요. 그것도 1년 계약직. 저 지금 재경모직에서 2년 조금 안 되게 일하고 있거든요?”

“19개월째더군요.”

“네. 그 19개월 동안 저도 아직 그렇다 할 뭔가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어요.”

“그건 이제 아무래도 신상품 개발팀의 조직이 팀장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갖춰지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조직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도 결국엔 팀장인 저의 능력 부족인 거죠.”

왜 입장이 바뀐 거 같지?

내가 까고 윤 팀장이 변명을 해야 정상이잖아.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윤 팀장이 자기 스스로를 까고 내가 윤 팀장을 옹호하는 상황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그만큼 내가 첫 만남에 큰 호감을 느끼고 있단 증거이겠지.

관상, 가지고 있는 기운, 솔직함,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자신감… 뭐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무조건 눈에 띄는 성과를 어거지로라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당장 저부터도 그럴싸한 걸 못 터뜨리고 있는데, 아무리 경력직이라도 1년 계약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무슨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성과를 내겠어요? 제가 다른 부서를 폄하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세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편하게.”

“신상품 개발은 자본과 시간의 투자로 이뤄지는 거예요. 영업 쪽처럼 단기간 안에 눈에 보이는 실적을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닌 거죠. 그런데 제가 어렵게 지인들 통해 인력을 끌어왔는데 1년 딱 지나고 올린 성과가 없다고 재계약을 안 해 줘요.”

“흠… 혹시 이런 내용을 인사부나 혹은 사장님한테 건의를 해 보신 적 있으세요?”

“당연히 있죠. 물론 사장님께 직접 건의를 드린 적은 없어요. 제 계약서를 사장님이 직접 저랑 마주 보고 앉아서 해 주셨다는 거지, 스카우트 과정을 사장님이 직접 하셨던 건 아니에요. 저 개인적으로는 사장님을 몰라요. 인사부에 제가 몇 번이나 찾아가서 이야기했단 말이에요.”

“그렇…군요.”

“근데 돌아오는 대답은 어쩔 수 없다는 거뿐이에요. 왜 어쩔 수 없냐고 물어보면 도돌이표죠. 지난 1년간 계약직으로 있으며 보여 준 성과가 없다는 거.”

“KS 인터내셔널은 어떻습니까? 거기 신상품 개발팀의 인력 상황은 여기에 비해 여유가 있는 편인가요?”

그 질문에 윤현정 팀장은 웃기만 했다.

“KS 인터내셔널은 더 이상 국내용 기업이 아니에요.”

업계 전문가가 평가하는 재경모직의 위치를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거긴 신상품 개발팀만 여덟 개 팀으로 나뉘어 있어요. 주력 브랜드가 여덟 개나 되니까요. 저는 그 여덟 개 팀 중 한 팀의 팀장이었을 뿐이에요. 인력 수급이 무척 수월하죠. 신입도 역량을 갖춘 인재들로 넘쳐 나고, 해당 팀과 조직 색깔이 안 맞다 싶으면 얼마든지 다른 팀으로 보내고, 또 받아 오고… 그런 게 탄력적으로 가능하니까요.”

우리 재경모직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된다는 말이구나.

자존심 상하는데?

“그리고 이렇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과장님.”

“어떻게요?”

“재경모직. 직원 대우 좋습니다. 업계에서 유명해요. KS 인터내셔널하고 비교를 했을 때도 뒤지지 않아요. 오히려 어떤 부분에선 훨씬 더 낫다는 느낌도 많이 받을 정도로요.”

“그런데요?”

“그런데 문제는 실력 있는 인재들은 돈, 조건만 보고 회사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기를 키워 줄 수 있는 기업,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줄 수 있는 기업, 그런 기업을 선호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 계열의 취업 시장에서 재경모직은 크게 메리트가 없는 기업이에요. 다른 영업이나, 기타 지원 부서에는 좋은 인재들이 많이 모이겠죠. 하지만 디자인 계열은 아니에요."

윤 팀장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아주 큰 걸 깨달았다.

이 시대 취업 시장, 고용 시장을 관통하는 아주 큰 걸.

“KS 인터내셔널에서 디자인 관련 경력을 쌓으면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유럽에 있는 명품 브랜드 쪽으로도 점프를 뛸 수가 있어요. 반면에 재경모직은요? 없잖아요, 뭐가. 국내 교복 시장 점유율 1위. 대단하죠. 근데 그걸로 뭘 어쩌자는 거예요? 한계가 있을 수밖에요.”

“…….”

“그런데도 제가 어렵게 어렵게 외부에서 사람들을 어떻게든 데리고 와요. 근데 계약 기간 1년 딱 끝났다고 안녕~ 하면서 집에 가라고 해 버려요.”

“제가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요, 회사에서 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님, 아예 기대를 안 하고 있다거나. 해외 브랜드 수입에 관해서는 재경모직이나 KS 인터내셔널이나 시장 파이가 비슷할 거예요. 어쩌면 재경이 KS 인터내셔널보다 더 클 수도 있어요. 어쨌거나 KS 인터내셔널은 자체 브랜드가 빵빵하기 때문에 굳이 해외 브랜드 수입에 의존도를 높일 이유가 없죠. 같은 가격이라는 전제하에 자체 브랜드 하나 팔아 남기는 이윤이 남의 브랜드 가져와 두 개 파는 거보다 훨씬 더 크게 남으니까. 그건 상식이잖아요.”

그렇지. 당연하지.

그렇게 가야 정상인 거지.

“그런데 제가 2년 가까이 여기 있으면서 느끼는 게 확실히 기업 문화가 KS 인터내셔널과는 크게 다르다는 거. 거긴 곧 죽어도 자체 브랜드 영업에 목숨을 걸고 신상품 출시에 총력을 기울이는데, 여긴 반대예요. 제가 뭔가 기획을 해서 피드백 요청을 하잖아요? 그럼 사람들 표정이 제대로 보지도 않고 회의적이에요. 해도 안 될 거다 그거죠.”

“그런 환경이라면 팀장님 입장에선 지칠 법도 한데, KS 인터내셔널에서 괜히 옮겨 왔단 생각 같은 건 안 하세요?”

“나 이거 대답 잘해야 하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하시더라도, 제가 좋게 받아들이겠습니다.”

“힘드실 거예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괜히 옮겼단 생각은 옮기자마자 했어요. 첫 출근 해서 개발팀 근무 환경을 보자마자 여긴 힘들겠단 생각을 바로 했어요. 근데 받기로 한 연봉이 1억 8천이잖아요. 커리어만 생각하면 아닌 게 맞는데, 또 제 커리어로 받기 힘든 연봉인 것도 사실이고.”

“만약에 그게 진짜 팀장님의 진심이라면, 그냥 되는대로 편하게 일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인사부에서 뽑아 주는 신입 데리고, 편하게, 편하게….”

“그러기엔 또 제가 자존심이 있거든요. 환경이 열악하니까 더 오기가 생기는 거죠.”

됐다.

합격.

지금의 재경에서 내가 본 최고의 에이스다.

“만약 그 열악한 환경을 회사가 팀장님 눈높이까지 올려 드리면 어디까지 하실 수 있습니까?”

“그건 저도 궁금하죠. 저도 아직은 제 한계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이번 공채 때, 신상품 개발팀은 서류 전형부터 시작해서 1차 면접, 최종 면접까지 싹 다 팀장님께 맡기겠습니다.”

내 말에 윤현정 팀장은 자신이 뭘 잘못 들었다는 듯 코를 찡긋거렸다.

“이건 팀장님도 확실히 동의해 주셔야 하는 겁니다. 인사부에서 신상품 개발팀 신입 사원 선발에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팀장님을 믿고 모든 권한을 드리겠다는 겁니다.”

“진짜요?”

“네. 그리고 이미 퇴사하신 분은 어쩔 수 없겠지만, 현재 같이 일하고 계시는 분들 중 계약 연장을 시키고 싶으신….”

“다요.”

“…….”

“싹 다요. 싹 다 필요해요!”

깜짝이야!

“히히… 제 목소리가 너무 컸나요?”

“어떤 조건이 좋을까요? 계약 연장 형식이 필요하신 겁니까, 아니면 그냥 속 편하게 정규직 전환이 필요하신 겁니까?”

“정규직 전환이죠.”

“전원, 계약 기간 끝나는 대로 정규직 전환 약속드리겠습니다.”

“진짜요? 이렇게 대화 몇 마디 나눠 보고, 과장님 마음대로 이렇게 막 결정해도 되는 거예요?”

“네, 됩니다.”

“…….”

“더한 것도 필요하다면 할 겁니다, 저는.”

* * *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공채 공지를 올리기 바로 전날.

퇴근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남겨 놓고 있을 때였다.

지난 한 달간 남 사장의 일과에 대해 대충은 파악을 했다.

정해진 퇴근 시간보다 10분, 20분 정도 먼저 회사를 나서는 걸로 들어 알고 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표현.

그 표현이 참 낯설면서도 마음에 드는 거 같다.

그래서 오늘 난 지난 한 달간 정훈이 놈의 몸에서 내가 젊었을 때 해 봤던 고생과는 또 다른 느낌의 고생을 하며 오늘까지 온 나에게 선물을 하나 해 줄 생각이다.

“사장님 안에 계세요?”

남 사장을 찾아갔다.

사장실 앞으로 설치된 긴 데스크 앞에서 그곳 비서에게 내가 좀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해 달라고 말했다.

“잠시만요.”

2022년을 살아가기 시작하며, 단연 가장 하고 싶은 건 장태산이를 만나 그 친구의 건강 상태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고 정엽이의 행방을 아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잠시 뒤로 미뤄야 할 거 같고, 지금은 홍명이 놈이 직접 나를 대신해 여정이의 짝을 지어 준 남 사장, 내 사위와 술을 한잔하고 싶다.

이것도 많이 참은 거다.

부서별 리크루팅을 기획하고,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혹여나 뒤에서 안 좋은 소리가 나오지는 않을까 일부러 남 사장을 따로 찾았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괜찮겠지.

“안으로 들어가시면 되세요.”

“고마워요.”

그곳 사장실 비서에게 고개를 짧게 숙여 보인 후 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남 사장은 아주 의외라는 표정으로 사무 책상 자리에 앉은 상태로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쩐 일이야?”

“일이 많으세요?”

“일에 끝이 있나.”

“그렇죠. 끝이 없죠.”

역시 그날 프레젠테이션 이후, 날 상대하는 남 사장의 자세도 꽤 부드럽게 변해 있다.

내게 소파 자리를 권한 남 사장은 보던 걸 잠시 덮어 두고 소파 상석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요즘 이 부서, 저 부서 다니면서 열심히 하고 있단 소리는 종종 듣고 있다.”

내 앞에서 어른인 척하려는 이 친구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저도 이 부서, 저 부서 다니면서 사람들 만나다 보니까, 사장님이 그간 얼마나 열심히 이 회사를 이끌어 오셨는지 알겠더군요.”

“뭐지? 하하, 설마 지금 내가 너한테 칭찬 들은 거야?”

“그럴 리가요. 해 주신 칭찬에 화답한 거뿐입니다.”

“너 근데 무슨 일 있어?”

“일이요? 무슨 일이요?”

“내가 물은 거 아냐.”

“왜요? 저 안 같으세요?”

그 물음에 남 사장은 소파 깊숙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이리저리 날 뜯어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내 방을 다 찾아왔어?”

“사장님. 혹시 저랑 단둘이 술 마신 적 있으세요?”

“너랑?”

남 사장은 기억을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너뿐만 아니라 정태랑도 단둘이 마셔 본 적은 아직 없는 거 같네.”

“저도 그런 거 같아서요.”

“그래서?”

“에이, 이렇게 찾아와서 그런 걸 물어볼 땐 이유가 하나밖에 더 있어요?”

“나랑 같이 술 한잔하자고?”

“혹시 오늘 저녁에 마치고 약속 있으세요?”

“약속… 약속… 하반기 공채 공지 내일 올리는 거 아니었어?”

“네, 맞아요.”

“그럼 오늘, 내일 바쁜 거 아냐?”

난 살짝 장난을 걸어 봤다.

“왜요? 저는 용기 내서 찾아왔는데, 혹시 저랑 둘이 술 한잔하는 거 별로세요? 아니면 부담스러우시거나.”

“그럴 리가 있나. 바쁠 거 같은데, 술 이야기 꺼내니까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지.”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시험 전날 밤새 공부하지, 잘하는 애들은 미리미리 다 준비해 놓고 시험 전날은 컨디션 조절하죠.”

“그 컨디션 조절을 나하고 술 마시는 걸로 하겠다?”

“아뇨. 그냥 오늘은… 사장님만 괜찮다고 하시면, 사장님한테 술 한잔 얻어먹고 싶어서요.”

“…….”

“저 약속 지켰잖아요.”

“약속? 무슨 약속.”

“따로 고모 만나는 거 조심하라고 하셔서, 그 소리 들은 이후로 저 일부러 고모한테 전화 한 통 안 했어요.”

그놈 거참… 적당히 빼라, 적당히.

장인이 사위한테 술 한잔 받아 보고 싶어 이러는 건데, 술 한잔 받기 더럽게 어렵네.

“이번 하반기 공채, 무조건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믿으셔도 돼요.”

“그러고 보니까 내가… 손 과장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네.”

“저요?”

오늘은 좀 괜찮은 걸 안주로 놓고 마시고 싶은데….

“괜히 밖에 식당 같은 데 가서 사람 많은데 시끄럽게 마시지 말고, 사장님 집에서 고모랑 같이 저녁 먹으면서 반주 삼아 한잔하면 안 될까요?”

내가 자네랑 한 약속 때문에 지난 한 달간 금지옥엽, 공주처럼만 키웠던 여정이 얼굴도 여태 못 보고 참고 있었다고.

알기나 알아?

“집에서 먹자고?”

“지분 이야기 절대 안 합니다. 저 이제 아예 그쪽으로는 관심도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집에 술안주 할 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지.”

“그냥 평소 저녁 식사 하는 거에 제 밥그릇 하나 더 올려 주시면 돼요.”

“그래도… 잠깐만 있어 봐.”

남 사장은 곧 여정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정훈이가 술 한잔하자는데, 밖에서 하는 건 좀 그럴 거 같아서. 어, 그래, 그래. 그게 좋겠네. 그럼 당신 말대로 회를 좀 시켜. 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으며 남 사장이 말했다.

“네 고모는 바로 아네.”

“뭘요?”

“너랑 같이 간다니까, 너 회 좋아한다고 회를 좀 시켜야겠다 그러네.”

정훈이 놈이 회를 좋아했구나.

“역시 고모네요. 바로 딱 알잖아요.”

“알았어. 내려가서 일 보고 있다가, 퇴근하고 집으로 와.”

앗!

여정이 놈 집이 어딘지 난 모르는데….

하긴.

장혜란이한테….

아니지, 아니지. 괜히 장혜란이한테 물어봤다가 괜한 오해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그냥 같이 가시죠. 퇴근하고 사장님 차 옆에 차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게 더 번거롭지 않아?”

“같이 들어가야 가족이지, 따로 들어가면 조카가 고모 집 밥 얻어먹으러 가는 건데 괜히 손님 같잖아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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