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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 먹이시네요 (38/303)

한 방 먹이시네요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명절 떡값과 선물에 대해 정 대리가 설명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기본급의 100프로를 귀성 여비 명목의 상여금으로 전달합니다.”

“결국은 조삼모사 아니에요? 눈속임 아니냐고.”

“눈속임이요?”

“연봉 분할이 12개월이 아닌 14개월로 되어 있잖아요.”

정 대리는 내가 또 어떤 부분에 꼬투리를 잡을지 벌써 걱정이란 투로 긴장하고 있었다.

“정말 단순 계산으로 연봉이 1,400만 원이면 이것저것 다 떼고 실수령이 월 100만 원씩은 되어야 맞는 건데, 지금 우리 회사는 이 1,400만 원을 12개월이 아닌 14개월로 분할을 해서 이것저것 다 떼고 월 87만 원 정도씩만 가져가게 하고 있잖아요. 그래 놓고 설날, 추석 명절 때 상여금이라는 명목으로 87만 원을 한 번씩 더 지급을 해요.”

“그건 이제….”

“이게 조삼모사지, 뭐예요? 이런 디테일을 모르는 외부 사람이야 역시 대기업, 명절이라고 명절 떡값으로 기본급의 100프로를 귀성 여비로 챙겨 주네… 하며 부러워하겠죠. 하지만 정작 우리 회사 직원은 바보가 아닌데, 당연히 자기가 가져가야 할 돈을 가져간다는 생각밖에 더하겠냐고.”

정 대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저도 직원 아닙니까, 과장님.”

그렇지.

“과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이 회사에서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왜? 대한민국의 모든 대기업이 똑같으니까요. 정말 특수한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요, 삼성, 현대… 다 똑같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내 기준에서는 기업이 치사하게 운영을 하고 있는 건데, 정 대리의 말을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 재경모직이 그나마 업계에서 직원들 대우가 좋다고 소문이 나고, 실제로도 직원들 급여 부분이나 다른 부분에서 아무런 문제가 안 일어나고 있는 건 기본급 자체를 이 업계 다른 기업보다 높게 측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건… 네, 그렇더군요. 업계 1위를 하고 있는 KS 인터내셔널과 비교를 해 봐도 신입 초봉이 16퍼센트 정도 높게 잡혀 있긴 한 거 같았어요.”

“네, 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는 계약직 직원에게도 명절 떡값 같은 걸로 차별을 안 주기로 유명합니다. 과장님은 현재 계약직 비율이 왜 이렇게 높냐고 말씀을 하시는데요, 오히려 밖에서 우리 재경모직을 이야기할 때엔 모직 기업인데도 불구하고 계약직 비율이 무척 낮은 회사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정규직 전환이 안 되기로도 유명하더군요.”

“모든 게 다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지금 과장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직원들의 입장에서 유리한 변화가 일어나는 건 저도 이 회사의 직원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두 팔 벌려 환영을 하는 입장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것보다 직원들 추석 선물로 뭘 해야 할지, 그걸 고르는 게 더 급한 일이라는 겁니다.”

싱긋이 웃으며 정 대리가 말했다.

“과장님께서 이야기 꺼내신 부분은 저 같은 평사원이 아니라 임원분들을 상대로 싸워 주셔야 하는 내용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래도 명절 선물에 정규직,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참 마음에 드네요.”

“명절 선물, 직원 휴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사장님이 단호하시거든요. 다 같이 열심히 일해 놓고, 함께 일한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입장이시고, 그렇게 다 같이 고생을 해 놓고, 고작 이런 작은 부분 때문에 기업의 이미지가 좀스러워져서야 하겠느냐는 입장이세요.”

“그렇지,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드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큰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럼 명절 때 생뚜앙 지사는 어떻게 챙기고 있습니까?”

“생뚜앙 지사요?”

“네.”

“거긴… 지사장님 재량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직원들 명절 선물을 지사장 재량에 맡기고 있다고요?”

정 대리는 그 역시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명절 떡값은 파견직도 똑같이 받습니다. 월급 자체가 현지 계좌가 아닌, 그들의 한국 통장으로 들어가니까요. 대신 선물 같은 경우는 여기에서 샌딩을 하기가 어렵죠. 비용적인 문제도 샌딩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을 하니까요. 그래서 지사장님이 활동 경비에서 현지 직원들 선물을 먼저 구입해서 전달하고, 본사 재무부 쪽으로 그 내역을 보내 주는 형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생뚜앙 지사는 현재 본사에서 보내는 파견직 말고도 현지 채용 인원까지 다 합쳐서 60명 정도가 되죠?”

“네.”

“혹시 지난 설날 때 거기 지사장님이 직원들 설날 선물로 뭘 사서 전달했는지, 그 내역이 남아 있는 게 있을까요?”

“어… 아뇨, 없습니다.”

“없어요?”

그 내역이 남아 있지 않다?

“그 내역은 우리 인사 쪽에서 관여하는 부분이 아니라 재무부에서 컨펌을 주고 정리를 합니다. 결국 우리 인사부도 직원들 명절 선물에 관한 비용은 재무 쪽의 컨펌을 받아서 진행을 하니까요.”

그렇겠네.

“그럼 혹시 지난 설날 때 생뚜앙 지사 직원들이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그냥 제가 재무부에 연락해서 물어볼까요?”

“아뇨, 아뇨… 그럼 괜히 제가 해외 지사 운영을 의심하는 꼴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신 거 같은데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눈을 흘기며 정 대리가 말했다.

“아니라니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아 참, 잠깐만요.”

“왜?”

“해외영업팀의 류진환 과장이 지난 6월에 생뚜앙 지사 생활 정리하고 복귀를 했어요. 제가 한번 물어볼까요? 제 입사 동기거든요. 친합니다.”

“동기가 먼저 과장을 달아서 질투 나겠는데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하하. 근데 2년이나 주재원 생활을 하고 돌아온 거 아닙니까. 충분히 복귀해서 그 정도 대우는 받아야죠.”

“주재원 생활 끝내고 복귀하면서 과장 진급을 했나 보네요.”

“보통 그렇죠. 그런 메리트가 있으니까, 다들 주재원 쪽으로 관심을 가지는 거고.”

“너무 티 나게 물어보지는 말고요, 그냥 기회 되면 한번 물어봐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마카롱이요? 마카롱이 뭡니까?”

거의 퇴근 시간 무렵이었다.

정 대리가 자기 동기라고 하는 류진환 과장을 통해 지난 설 명절 선물로 생뚜앙 지사 직원들이 마카롱이라는 과자를 받았다는 걸 알아내어서 내게 말해 주었다.

“이렇게 생긴 과자예요. 류 과장 말로는 파리 안에서 마카롱으로 아주 유명한 숍이라고 하는데, 그 숍의 마카롱 한 상자씩을 직원들에게 설날 선물로 나눠 줬다고 하네요. 그리고 자기가 2년간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명절 선물은 한 번도 안 바뀌었다고 합니다. 항상 그 숍의 마카롱이었다고 하네요.”

“혹시 그런 겁니까? 한국은 추석 때 송편을 먹잖아요. 그런 거처럼 프랑스 사람들은 명절 때 마카롱을 먹는다… 뭐 그런 거.”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유럽 그쪽은 특별한 날 초콜릿이나 마카롱… 그런 걸 주고받는 게 일반적인 거 같더라고요.”

“이런 건 하나에 얼마나 합니까?”

“비쌉니다, 이것도. 한국에서도 좀 잘하는 집 마카롱 같은 경우는 4천 원, 5천 원 그렇게 하니까요.”

“이거 하나에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네, 비쌉니다. 특히 류 과장 말로는 파리 안에서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갈 만큼 유명한 집 마카롱이라고 하니까, 비싼 마카롱이겠죠.”

매달 있는 것도 아니고 큰 명절이라고 해 봤자 1년에 고작 두 번, 설날과 추석이 전부인데 왜 생뚜앙 지부를 본사에서 직접 챙기지 않고 있는 걸까?

역시, 이번 연휴 이용해서 내가 생뚜앙 지사를 직접 가 봐야겠다.

“그나저나 과장님. 이번 추석 선물 뭘로 합니까?”

정 대리는 자신이 정리해 놓은 추석 선물 리스트를 내게 보여 주며 물었다.

“저희 쪽에서 선택한 다음 올려야지, 재무 쪽에서 컨펌이 떨어집니다. 이거 이번 주까지 올려 줘야 합니다.”

내 눈에는 다 거기에서 거기인 품목뿐이었다.

“정 대리.”

“네.”

“정 대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쉽게 가르쳐 주는 능력은 탁월한데, 본인이 본인 일을 쉽게 만드는 능력은 부족한 거 같아요?”

“왜요?”

“선물 세트 5호. 참치, 햄, 식용유… 나쁘지 않네요. 그리고 여기 냄비도 사람에 따라서는 필요한 선물이 될 수도 있겠네. 특히 혼자 사는 사람 말고 가족들이랑 다 같이 사는 집에서는 필요한 거잖아요. 홍삼 이거도 괜찮겠네. 정 대리가 맨날 하나씩 먹는 거 맞죠?”

“네.”

“그거 나도 그때 하나 정 대리가 준 거 먹어 보니까 괜찮더라고. 그리고 이건 또 뭐예요?”

“밀키트입니다. 너비아니, 곰탕.”

“이런 거도 완전 괜찮지. 특히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거도 괜찮을 수 있죠.”

“……?”

“직원들한테 이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요.”

“……!”

“이런 명절 선물 자기가 직접 받고 싶은 거 골라 보는 것도 직원들 입장에서는 하나의 재미 아니겠어요?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집에 가서 남편이나 아내한테 회사에서 이런 보기를 주는데 어떤 게 좋을 거 같냐… 하면서 생색 아닌 생색도 내 볼 수 있는 것이고, 또 같이 집안 살림에 필요한 걸 골라 보는 재미도 있을 수 있잖아. 너비아니, 곰탕 이런 걸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선물 세트 이런 건 너무 식상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모두의 입맛을 우리가 다 어떻게 맞춥니까? 보기를 주고 선택을 하라고 하세요. 단가 다들 비슷비슷한 거로 추렸을 거 아니에요?”

“…네.”

“난 그게 좋을 거 같은데, 정 대리 생각은 어때요?”

“저도… 그게 좋을 거 같은데요?”

“올 추석 때 직원들한테 명절 선물 각자가 받고 싶은 거 고르라고 해 봤는데, 이게 반응이 좋으면 다음 설 때도 이렇게 하면 되잖아. 그럼 지금처럼 모든 직원이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선물 하나 고른다고 큰 고민 안 해도 되고, 얼마나 편하겠냐고. 준비하는 사람도 편해서 좋고, 받는 사람도 자기한테 필요한 거 받아서 좋고. 서로가 좋은 거잖아요.”

“하… 또 이렇게 절 한 방 먹이시네요.”

“부장님한테는 내가 그렇게 진행해 보겠다고 말씀드릴 테니까, 정 대리는 컴퓨터로 사진 작업 해 가지고 직원들한테 주문받아요. 사내 메신저로 진행하면 금방 할 수 있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출근과 동시에 남 사장을 찾아갔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번 추석 연휴를 이용해 내가 직접 생뚜앙 지사를 가 봐야 될 거 같았다.

“지사를 방문하겠다고?”

“네. 특별한 업무가 있어서 출장 형식으로 가는 게 아니라, 저 개인적으로 가는 형식이 될 거 같은데 그래도 사장님께는 말씀을 드리고 가는 게 괜히 나중에 오해가 안 생길 거 같아서요.”

“무슨 뜻이야?”

“그때 제가 주재원 자리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던 건 기억나십니까?”

“당연히 기억나지. 얼마나 된 일이라고.”

“그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어쨌든 그곳 지사장이 사장님께 다이렉트로 보고를 올리는 거 같더군요. 제가 가면 어떻게든 말이 사장님께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런 걸 떠나서라도 네가 가는데, 그게 어떻게 개인적으로 가는 형식이 될 수 있겠어?”

“가서 제가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하반기 공채를 기획하고 또 임원 이하 면접관으로 참여했던 직원으로부터 높은 만족도를 이끌어 낸 성과가 있다 보니, 언제부턴가 날 대하는 남 사장의 태도가 무척 부드러워져 있다.

“그럼 차례는 어떻게 하려고? 나야 네가 필요하다고 하면 출장 형식으로라도 다녀오라고 하면 되지. 그래도 추석인데 차례는 지내야 할 거 아냐.”

참 여러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말이었다.

차례?

남 사장 이 친구는 그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걸까?

“회장님께는 제가 따로 직접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집안 차례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회사 일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걸 왜 추석 연휴에 하려고 하냐고. 이제 공채도 끝났겠다, 연휴 끝나고 가도 되잖아.”

남 사장 너도, 그나마 개중에 조금 낫다뿐이지 많이 멀었다.

연휴가 아니면 기회가 없는 거니까, 연휴에 맞춰서 가려고 하는 거지, 끝내 놓고 가도 되는 거면 내가 왜 이렇게 자넬 찾아와 보고를 하겠나.

그냥 출장 계획서 한 장 써서 올리고 출발하면 끝날 일인 것을.

“명절에 고향에 있는 가족, 부모님들 찾아뵙지도 못하고 돈 벌겠다고 해외 나가서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순간 남 사장은 말문이 막힌 듯,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문 채 다리를 꼬았다.

“우리 주재원 파견 근무자들의 근무 환경을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생뚜앙. 벼룩시장으로 유명하더군요. 파리 외곽 쪽으로 빠져 있는 곳이라 주재원 근무자들 자녀 교육 부분이 취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겸사겸사 이번 연휴 이용해서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제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가는 거니까, 출장이 아닌 개인 방문 정도로 하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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