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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나무에선 절대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42/303)

썩은 나무에선 절대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아주 특별한 맛이었다.

찹쌀떡도 아닌 것이 쫀득하기는 다른 과자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고, 이렇게 찰진 식감인데 잇몸이나 이 사이에 끼이는 이물감 같은 게 전혀 남지 않았다.

“오….”

마카롱 한 입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올 때였다.

옆에서 지사장이 싱긋이 웃으며 맛이 괜찮은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날 쳐다보는 정 대리의 표정은 불안하기만 했다.

“잘하는 가게 마카롱이에요. 크리스마스 전후로는 아예 예약만 받아서 운영을 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집이고.”

“와, 진짜 맛있네요. 이런 건 이렇게 한 박스에 얼마나 합니까?”

“금방 과장님이 뜯으신 거 그거 한 상자에 70유로입니다.”

뭐?

꼴랑 이렇게 14개 든 게 70유로라고? 맛 자체가 고급스러운 건 맞지만, 이걸 하나에 5유로씩이나 주고 사 먹는다고?

“어후, 상당히 비싸네요.”

“특별한 날이니까, 이렇게 직원들한테 선물로 줄 수 있는 거지, 평상시에는 저도 못 사 먹습니다. 하하하. 손 떨려서요.”

그렇겠지.

작정하고 먹으면 한입에 두 개도 넣어서 먹을 수 있겠는데, 이걸 하나에 5유로씩이나 주고 사 먹으려면….

마카롱 한 개를 꼭꼭 씹어서 삼킨 다음 지사장에게 말했다.

“현지 직원들은 차례상 차리는 거에 거부감 같은 거 안 느끼던가요?”

이건 내가 추석 연휴에 맞춰서 지사를 방문하겠다는 뜻을 지사장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몇 차례 확인을 받았던 부분이다.

우리 한국 직원들만 있다면 그게 무슨 문제이겠냐만, 프랑스는 문화적으로 사무실 안에서 식사류에 해당하는 음식물은 먹을 수가 없다.

먹으면 미개하단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식사 예절이 유네스코에 등재가 될 정도로 식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나라이니만큼 그런 독특한 문화 차이가 있는데, 이 부분은 당연히 우리가 존중을 해 줘야 하는 내용.

“다들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실제 차례상을 구경해 보고 싶다고 하는 직원들도 많았고요.”

“다행이네요.”

프랑스 현지 직원들이 사무실 뒤로 서서 구경을 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직원들만 모아서 합동 차례를 지냈다.

대부분의 현지 직원들은 그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을 했다.

합동 차례를 모두 끝내 놓고 한국에서 준비해 온 봉투 묶음을 가방에서 꺼냈다.

“이건 회장님께서 직접 챙겨 주신 명절 떡값입니다.”

지사 직원들의 얼굴에 큼지막한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한국말을 못 알아들은 현지 직원들도 다른 한국 직원들에게 내가 하는 말을 전해 듣고는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건 지사장님 거.”

“감사합니다.”

“명절인데, 고향에 계신 부모님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렇게 열심히 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정민 차장님?”

“네!”

“열심히 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난 미리 봉투에 적어 온 이름에 따라 명절 떡값을 일일이 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전달했고, 그 차례가 프랑스 현지 직원들 쪽으로 옮겨 갔을 때 정 대리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세실?”

“네, 저예요!”

타조알이 절로 연상되는 여성 한 명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큰 키에 쇼트커트로 2 대 8 가르마를 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 헤어스타일 역시 제품을 발라서 두상에 딱 달라붙게 만들고 있어, 큰 키에 비해 머리가 무척 작아 보였다.

“제가 불어를 못합니다. 영어로 인사를 드려도 괜찮을까요?”

내가 영어를 하자 정 대리는 입을 반쯤 벌린 상태로 지금 자기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날 쳐다봤다.

왜 저렇게 쳐다보지?

어쨌든 세실이라는 직원이 내 앞으로 다가왔기에 난 얼른 정 대리로부터 시선을 거뒀다.

“물론이죠. 저희 모두 사무실 안에서는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이 안에는 약간의 현금이 들어 있습니다. 일종의 재미있는 이벤트 같은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선 이 안에 든 돈을 명절 떡값이라고 합니다.”

“떡값? 재밌네요.”

“우리 한국에서 온 주재원들의 업무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이 안에 든 내용물은 작은 이벤트일 뿐이지만, 이 이벤트를 현지 직원들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 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지금 세실 앞에 서 있습니다.”

“오! 소 스위트….”

“메리 추석.”

“메리 추석!”

그 뒤로도 난 지사에 근무 중인 현지 직원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호명해 직접 명절 떡값을 전달했다.

* * *

점심시간.

차례상 준비를 도와준 한식당으로 지사 직원들 전원을 초대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개인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프랑스 직원들.

그들도 고용의 형태는 어떻든 결국 우리 재경의 가족들이다.

그들만 쏙 빼놓고 한국 직원들만 불러 회식을 할 수가 없어서, 지사장에게 점심시간을 빼어 보라고 일러뒀다.

그 식사를 위해 점심시간 동안 한식당 전체를 아예 통째 빌렸다.

1시간 조금 넘게 그들과 점심을 먹으며 명절 분위기를 낸 다음, 그 자리에서 난 곧바로 지사장에게 나의 프랑스 일정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말했다.

“그럼 바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신다고요?”

“아뇨, 바로는 아니고… 나머지 시간은 제 개인 시간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

“지금부터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복귀해서 평상시처럼 바로 업무 보시면 됩니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멀리까지 오셨는데, 최소한 사무실 근무 환경이나 다른 내용을 좀 확인을 하고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 대리 역시 이것으로 지사 방문 일정이 끝이라는 내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저는 회장님께서 주신 떡값을 전달하러 온 거지, 지사의 근무 환경을 감시하겠다고 온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제가 아니라 본사에 계신 다른 분들이 하시겠죠.”

“…….”

“저는 인사부 과장일 뿐입니다. 오늘은 회장님의 아들로 온 거지만요. 제가 본다고 뭘 알 것이며, 또 제가 지사장님께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뭘 알겠습니까?”

“아….”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찾아온 겁니다. 이 큰 명절에 프랑스 달력에 맞춰 근무를 하셔야 하는 지사 직원들… 이런 소소한 재미라도 전달을 해 드리고 싶어서요. 아 참, 그런데 지사장님.”

“네.”

“그 마카롱 있지 않습니까.”

“네.”

“그 가게가 어딥니까?”

“가게는… 왜요?”

“저 한국에 돌아갈 때 몇 상자 사 가지고 들어가려고요. 맛이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요.”

지사장이 내게 마카롱 가게의 위치를 설명해 주고 잠시 뒤, 우린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던 한식당 앞에서 지사 직원들 모두와 헤어졌다.

정 대리와 단둘이서만 그 근처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정 대리가 물었다.

“정말 차례상 준비해 주고 추석 떡값 전달하시려고 오신 거예요?”

“응? 뭐가요?”

“여기 오신 거요. 이게 정말 끝이에요?”

“내가 말하지 않았나? 진짜 할 거 없다고.”

“그래도요.”

“그래도요는 뭐가 그래도요, 예요? 그게 전부라니까.”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의자를 앞으로 바짝 당겨 앉으며 정 대리가 말했다.

“아니, 저는 그래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거니 했던 거죠.”

“다른 이유? 무슨 이유?”

“그때 직원들 추석 선물 고를 때요.”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저한테 생뚜앙 지사는 명절 선물로 뭘 주는지 여쭤보셨잖아요.”

“마카롱이라면서요.”

“아니이이이….”

정말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는 식으로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몇 차례 때리는 정 대리였다.

미쳤나?

“지사 운영을 하면서 지사장이 인 투 더 포켓을 하는 내용이 있지는 않을까 의심을 하셨던 거 아니에요?”

“인 투 더 포켓? 뭘 인 투 더 포켓 한단 소리예요?”

“직원들 명절 선물을 직접 고르면서, 중간에 뭘 좀 남겨 먹는다든지… 그걸 시작으로 해외 지사 운영에 뭔가 확인을 해 보고 싶으셔서 오셨던 게 아니냐고요.”

아….

한마디로 정 대리 말은 내가 내 눈으로 직접 생뚜앙 지사가 투명하게 운영이 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겠다고 내가 이 일정을 잡았다고 오해를 했다는 말이네.

생각을 하는 게 우스워서 이번엔 내가 물어봤다.

“그래서 따라온 거예요?”

“네?”

“내가 지사 감찰 같은 걸 할 줄 알고, 그래서 따라온 거냐고.”

“꼭… 그런 건 아닌데….”

“꼭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은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다는 말이네?”

“그건 그렇고 아까 영어 그건 뭐예요?”

“영어?”

“혹시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중이세요?”

잠깐만….

그거였구나.

이거 때문에 황금 같은 명절 연휴를 반납하고 날 따라왔던 거였어.

정 대리 이 친구….

내가 영어를 못할 줄 알았나 보다.

정훈이 놈은 대학을 미국에서 나왔다.

원래라면 영어가 유창해야 정상.

그런데 기억을 잃은 정훈이는 영어를 못할 거라 생각을 했고, 그 부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심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날 따라와 준 거라고 봐야 할까?

“아까 현지 직원들이랑 대화할 때 보니까 영어가 되시던데, 어렸을 때의 기억이 아무것도 없는 과장님이 영어를 그렇게 쓰실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거 때문에 저 따라온 거예요? 중간에 제가 영어 때문에 곤란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싶어서?”

정 대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영어?

우습지.

내가 재경을 어떻게 키웠는데.

지금의 재경 그룹 모태 사업은 모직이지만, 재경에게 그룹화의 발판을 만들어 준 건 누가 뭐래도 재경상회, 지금의 재경식품이다.

재경상회를 운영하면서 미군 부대로 식자재를 납품하며 그 군부대 관계자와 얼마나 많은 인맥을 만들었던가.

식자재 구매 관련 군부대 관계자를 밖에서 따로 만나 접대를 하고, 그들과 인맥을 유지해 나가는 생활만 5년 넘게 했다.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는 내게 선택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필수였다.

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말했다.

“그렇네? 내가 왜 영어를 할 줄 알지?”

“……?”

“언어에 관한 부분은 기억과는 별개인가?”

“에이… 그럼 좀 진작에 말씀을 해 주시지….”

“그거 때문에 따라온 게 맞나 보네.”

고맙네.

이렇게까지 날 챙겨 주는데, 뭐라도 선물을 하나 해 줘야 할 거 같다.

“제 할아버지, 손중길 회장님의 팬이라고 하셨죠?”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또 꺼내시는 거예요?”

지금 내가 자네한테 선물을 해 주는 중이다, 이 친구야.

어쩌면 지금 내가 자네에게 해 주는 이 이야기들이, 자네가 거절했던 자네 연봉만큼의 수고비보다 몇 배는 더 값질 수도 있으니….

“제가 지금 명절 연휴를 이용해 여기에 있는 이유예요.”

“이유요?”

“제 할아버지는 본인 사업을 시작하시고, 회사가 커져 해외에도 이곳 생뚜앙 지사처럼 해외 법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명절을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낸 적이 없으셨답니다.”

“진짜요?”

크게 놀라며 정 대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네. 우선은 이북에 계신 부모님들이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 확인을 못 하셨던 게 첫 번째 이유였고,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보고 싶은 가족들과 떨어져 평생을 사셨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대요. 명절만 되면 회사 일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해외 지사, 법인 직원들이 그렇게 눈에 밟히셨다고 합니다.”

“역시… 저는 전혀 몰랐던 내용인데, 제가 그런 점들 때문에 손중길 회장님을 높게 보는 겁니다. 크흐….”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당시는 지금의 화상 통화 같은 건 상상도 못 할 때였고, 국제 전화도 너무 비싸서 가족들과 한 달에 한 번 통화를 하면 많이 하는 거였다고 합니다.”

“그랬겠죠. 90년대 초반 이럴 땐 일본만 나가도 대단한 거였다고 들었어요.”

“우리는 그룹 계열에 항공이 있잖아요. 명절 때마다 해외 근로자 가족들을 불러서 같이 갔다고 합니다. 그립다고 하는 한국 음식들을 박스째로 실어서.”

“클래스 지리고.”

“중동에 건설 붐이 일었을 땐, 해외 근로자들이 회를 그렇게 먹고 싶어 했답니다. 활어를 재경식품 쪽에 말해서 산 채로 급속 냉동을 시키고, 일식 주방장들을 섭외해서 해외 근로자 가족들과 다 같이 넘어가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서 오늘 했던 것처럼 합동 차례도 지내고 직원들과 뒤섞여서 한국식으로 먹고 마시고를 하면서 감사함을 표현했다고 하시더군요. 인사는 만사이니까요. 회사에서 인사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

“그렇게 해외까지 나와서 고생하고 있는 우리 회사 직원들인데, 제가 어떻게 감히 명절 선물 같은 걸로 지사장과 지사 운영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

“근데 이거 한 상자에 70유로면 비싸긴 비쌉니다. 나중에 가서 가격을 확인해 보긴 해야 할 거 같아요.”

“뭘 또 확인을 합니까, 확인을. 70유로라고 하면 70유로가 맞겠죠.”

하지만 정 대리는 단호하게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야 그렇겠죠. 그래도 60상자, 70상자를 한꺼번에 주문을 하면 디스카운트 네고 같은 게 되는지 정도는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정 대리.”

“네.”

“나는 진짜 맛이 괜찮아서, 한국 들어갈 때 몇 상자 사서 들어가려고 가게 위치를 물어본 거예요. 연구 좀 해 보려고.”

“연구요?”

“이 정도 맛을 우리 재경식품에서도 맛 개발을 해 대량으로 생산이 가능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이 정도 맛이면 대박 아닙니까?”

“그야….”

“썩은 과일은 굳이 직접 내 손으로 따지 않아도 작은 비바람에 알아서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에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간 생뚜앙 지사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지난 4년간 지사장이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지금처럼 잘 운영이 될 수 있었겠어요? 어디에서 말이 나와도 말이 나왔겠지. 안 그래요?”

“…….”

“재경모직 전체 매출의 70퍼센트가 해외 브랜드 수입 유통입니다. 이곳 지사 직원들이 지금의 재경모직을 지켜 주고 있는 거라고 봐야죠. 썩은 나무에선 절대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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