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대가리를 상실했네
남필우 사장과 조동희 전무뿐 아니라, 김원호 차장까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뾰족한 수가 있길 기대한 자신들이 어리석다는 식의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럼 저는 지금 바로 교섭팀 꾸리겠습니다.”
결국 조 전무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남 사장 역시 조 전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진행을 하라고 덧붙였다.
“잠시만요.”
난 조 전무를 향해 다시 자리에 앉아 주길 부탁했다.
하지만 조 전무는 정색을 하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노조 측 대표들 모가지 날리는 게 쉬운 일 같아요? 노조 측 대표들이 왜 계속 유지가 되는데요? 날려도 언젠가는 복귀하기 때문에 유지가 되는 거예요. 복귀를 시켜 달라고 다음 세대 노조 측 대표들이 시위를 하니까. 그런 시위를 해야 다시 또 그다음 세대 노조 측 대표들이 자신들을 위해 그런 시위를 해 줄 거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조 측 대표들 날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요. 그런데요, 전무님. 전무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이 쉬운 일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손 과장!”
남 사장이 꽥 하고 고함을 치며 날 혼냈다.
“전무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옆에서 김 차장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조 전무 역시 불쾌한 심정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다들 한발만 뒤로 떨어져서 보세요, 상황으을! 이게 지금 본사가 교섭팀을 그것도 생산부, 자원팀, 섬유팀, 재무리스크팀으로 꾸려서 파업 현장으로 보낼 일입니까?”
난 조 전무를 쏘아보며 말했다.
“제가 이번 파업 책임지고 내일 안으로 끝나게 만들겠습니다.”
“뭐요?”
“제가 책임지고 내일 안으로 이번 파업 해산시키겠다고요.”
결국 조 전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교섭팀을 꾸리긴 꾸려야 할 겁니다. 그런데 생산부, 자원팀, 섬유팀, 재무리스크팀이 아니라 그룹 본사 법무팀과 감사팀으로 꾸려야 합니다.”
“그룹 본사 법무팀과 감사팀?”
난 남 사장이 품고 있는 궁금증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일주일간 저희 쪽에서 노조 측 대표 7명에게 회사 이메일로 활동비 지출 내역을 보내라고 요청서를 보냈습니다. 어제까지 두 번을 보냈고, 조금 전 3차 요청서를 받았을 겁니다. 제 생각이 맞는다면 아마 그 3차 요청서를 받고 파업을 주도했을 겁니다.”
“도대체 그 내역은 왜 요청을 하셨어요?”
조 전무가 뭔가 눈치를 채기 시작한 거 같았다.
“왜 요청은 그쪽에서만 하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우리도 충분히 노조 쪽으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남 사장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전무님 말씀은 왜 하필이면 그 내역을 요청한 거냐고. 보니까 그게 벌집이었네. 손 과장 네가 그걸 쑤신 거야.”
“네, 저도 그게 벌집 같더라고요.”
“뭐?”
“떳떳하면 내역을 보내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두 번의 요청에도 내역이 안 왔습니다. 한 명한테서만 안 온 게 아니라 노조 측 대표 7명 모두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
“이쯤 되면 노조가 아니라 깡패라고 봐야 하는 거죠. 현장 활동 지원비는 지불항입니까, 보관항입니까?”
내가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물어본 지불항과 보관항은 쉽게 말해서 회사가 지출 내역을 확인할 권리가 있는 항목인지, 권리가 없는 항목인지의 차이다.
월급은 당연히 회사가 노동의 대가로 지불을 하는 내역이기 때문에 지출 내역을 확인할 권리가 없는 지불항.
반면에 현장 활동 지원비 같은 보관항은 회사가 지출 내역을 제출하라고 했을 때, 제출하지 못하거나, 거부, 혹은 엄한 곳에서 지출 내역이 확인됐을 경우 심하면 회삿돈 횡령이 될 수도 있는 항목이다.
일종의 판공비 개념인데, 노조 측 대표들에게는 이게 월급인 듯, 월급 아닌 월급 같은 개념이었을 것이다.
월급과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질문을 던져 놓고 내가 직접 대답을 했다.
“보관항입니다. 오늘 3차 요청서를 보냈습니다. 3차 요청을 한 뒤 24시간이 지나서까지 지출 내역을 올리지 못하거나, 그 자체를 거부할 경우 감사팀이 움직이게 되어 있죠. 감사팀이 움직였는데도, 지출 내역을 확인하지 못했을 경우엔 법무팀이 움직여 줘야 합니다.”
“…….”
“그럼 사장님과 전무님은 이 해당 사안을 형사 고발로 연결시키셔야 됩니다. 파업을 주도했다고 해고를 시키자는 게 아닙니다. 회사 공금을 횡령했기에 법적 처벌을 받게 만들자는 겁니다.”
사장실 안으로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사람들이 파업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겠습니까? 봐 달라는 거 아닙니까. 자기들이 현재 화가 이만큼 났으니까, 얼른 본사에서 우리가 얼마나 화가 많이 났는지 직접 와서 봐라, 그거 아니냐고요.”
“봐 줄 사람을 보내지 말자?”
“당연하죠. 왜 보냅니까? 어차피 터진 파업, 그거 구경시키겠다고 바쁜 본사 사람들 일도 못 하게 하면서까지 거기로 보내겠다니요. 말이 안 되죠. 파업. 하라고 하세요.”
남 사장과 조 전무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생산 라인 쪽 식당, 매점 빼놓고 노조 가입 안 된 다른 인력들은 모두 다 빼라고 하시고, 식당과 매점도 정상 개장 시간까지만 오픈을 시키고 추가 연장 오픈은 못 하도록 지시를 내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인력은 다 빼라고?”
“보안팀은 남아 있어야겠죠. 보안, 경비팀 빼놓고는 다 빼시는 게 저는 맞는다고 봅니다. 그럼 자기들이 알아서 내일쯤 본사 건물 앞으로 시위 장소를 바꾸겠죠. 파업은 내일 끝이 날 겁니다. 제가 책임지고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저 한 번만 믿어 주세요.”
마지막 한마디로 쐐기를 박았다.
“필요하시다면, HRM 과장 자리 걸겠습니다.”
* * *
파업 시위에 참여한 600여 명의 오산 공장 노조원들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못한 상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생산 라인을 총괄하는 강인환 소장이 파업 현장을 기웃거리며 애달파하는 모습을 쉬지 않고 보여야 정상이었다.
그와 동시에 본사에서 교섭팀이 와야 했고, 그 교섭단들을 상대로 교섭에 응하지 않겠다는 버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엔 강인환 소장이 계약직 직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이끌고 뒤도 안 돌아보며 퇴근을 해 버렸고, 와야 하는 교섭팀은 저녁 7시가 넘었는데도 올 기미가 안 보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외주 업체인 식당 직원들도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본사 쪽에서 식당 쪽으로 파업을 하는 노조원들을 위해 연장 근무를 하며 야참을 만들어 주길 부탁해야 한다.
매점의 개장 시간도 24시간 연장이 되어야 하고.
그런데 매점 역시 문을 닫았다.
텅 비어 버린 공단.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 시위를 봐 줘야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불만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 집에 가 봐야 되는데….”
“누군 아냐? 난 지금 남편한테 전화 오고 난리도 아냐.”
“그래도 언니는 저보다 훨씬 낫죠. 우리 집은 오늘 이거 때문에 남편이 회사 조퇴하고 어린이집에 우리 다슬이 데리러 갔다고요.”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도대체. 잔업 수당 필요한 사람들은 일 못 해서 특근 수당비 못 챙겨, 퇴근하고 집안일해야 하는 사람들 집에도 못 가게 해.”
“근데 이번엔 또 뭐 때문에 파업을 하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위에서 필요하다고 하니까 하는 거겠지. 노조 측 대표들이 우리한테 그런 거까지 일일이 다 설명을 해 주고 파업을 한 적 있어?”
“아, 오늘은 정말 계약직 직원들이 부럽네요.”
뭣 모르고 참여를 하고 있는 노조원들 사이에서도 이런 목소리들이 흘러나올진대, 이번 파업을 주도한 노조 측 대표들의 불안을 말로 해서 무엇할까.
“위원장님.”
“왜?”
“본사에 전화를 걸어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무식 노조 위원장 역시 아까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본사에서 이곳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는 거 같은데요? 지난 3월 때처럼 아침부터 해야 했는데, 이번엔 라인을 너무 늦게 껐던 거 같아요.”
“씁… 그렇지? 라인을 너무 늦게 묶었지?”
“아까 강 소장님 퇴근하실 때 같이 퇴근하던 다른 애들 표정 못 보셨어요? 어차피 오늘 생산량은 얼추 다 맞췄다… 하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퇴근하는 거 같았잖아요.”
“…….”
“본사에 전화 한번 넣어 보시죠. 벌써 7시 반이에요. 날씨도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얼른 정리하고 저희도 소주 한잔하러 가야 할 거 아닙니까.”
결국 전무식 노조 위원장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두 번의 신호음이 가고 상대 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재경모직 인사부 정현수 대립니다.
“아, 나 노조 위원장인데.”
―네, 말씀하시죠.
“고 부장님 좀 바꿔 봐요.”
―고 부장님이요? 고 부장님은 지난주에 파리 지사로 파견 근무 나가셨습니다.
“그럼 김 차장이라도 좀 바꿔 봐요.”
―퇴근하셨는데요.
노조 위원장은 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집어 던지며 목소리를 높였다.
“퇴근? 방금 퇴근이라고 했어? 무슨 퇴근?”
―지금 7시 반입니다. 당연히 퇴근하셔야죠, 근무시간 다 끝났는데.
“지금 현장에서 파업이 일어났는데, 부서장이 퇴근을 해? 다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 파업 덕분에 현재 제가 당직까지 서고 있는 거 아닙니까.
“뭐?”
―그리고 노조 위원장님.
“왜? 뭐?”
―반말하지 마세요.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인사부로 걸려 오는 모든 민원 전화는 자동 녹음이 되고 있다는 거 미리 말씀드리고요, 직원들의 인권 보장을 가장 앞에 서서 외치시는 분이 어째서 인사부 직원들의 인권은 이렇게 무시를 하십니까?
“…….”
―노조 위원장님이 요구하는 인권 보장은 오로지 생산직 직원들에게만 한정되는 인권인가요? 저희 쪽으로도 예의를 갖춰 주십시오.
“너 이름 뭐야? 뭐라고 그랬어?”
―정현수 대리입니다.
“정현수. 내가 네 이름 기억했다, 지금.”
―감사합니다. 옆에 과장님이 계시는데, 과장님 연결해 드립니까?
“과장이라도 바꿔!”
전무식 노조 위원장은 순간 아차 싶었다.
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이 현재 본사 인사부에서 과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지금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인사부 과장이 회장의 둘째 아들이 아니길 바라고 있었는데….
―전화 받았습니다. 재경모직 인사부 손정훈 과장입니다.
“…….”
―여보세요? 전화 받았습니다. 말씀하세요, 위원장님.
옆에서 다른 노조 측 대표들이 자신이 하는 통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무식은 최대한 침착하게 통화를 이어 갔다.
“네, 과장님. 저 안산 생산 라인 전무식 팀장입니다.”
―생산 라인 팀장님이셨습니까? 저는 위원장님이 생산 라인 소장님이신 줄 알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
―저녁 식사는 하셨습니까? 파업하고 시위를 준비 중이라고 하셔서 식당 쪽 관계자분께 부식 아끼지 말고 메뉴 하나를 더 추가해서 준비해 드리라고 부탁을 드렸었는데.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뭐가요?
“뭐 하자는 거냐고요.”
―그러니까 뭐가요?
“지금 저희 여기에서 600명 넘는 노조원들 데리고 시위 중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여기에서 혹시 몰라 두 명이나 당직을 서고 있는 거 아닙니까.
“교섭팀 안 보내세요?”
다른 노조 측 대표들의 표정에서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챈 전무식은 어떻게든 목소리를 높여서 그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려고 애를 썼다.
―교섭팀이요?
“네. 파업 장기화를 원하시는 건 아닐 거 아닙니까. 얼른 교섭팀 보내세요.”
―보내 드리면 교섭을 하실 겁니까?
“그건 제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부분이고요.”
―다 퇴근했습니다.
“뭐, 뭐, 뭐라고? 아니, 뭐라고요?”
―다들 퇴근하셨다고요. 그러니까 위원장님도 봐 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 시위 하겠다고 엄한 노조원들 고생시키지 마시고, 얼른 해산하세요.
“회사가 이렇게 나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거예요.”
―이미 생산 라인이 멈췄는데, 회사 입장에서 그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니까 과장님 말씀은 지금 본사에선 교섭팀을 따로 꾸리지도 않았고, 교섭팀을 꾸려야 할 사람들까지 다 퇴근을 하고 자리에 없다 그 말씀이신 거죠?”
―네, 맞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은 노조 위원장 곁으로 다른 노조 측 대표들이 모여들었다.
“왜요? 뭐라는데요?”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전무식이 말했다.
“이것들이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아, 왜요? 뭐라는데요? 아직 교섭팀을 따로 꾸리지도 않았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공단 바닥에 모여 있는 600여 명의 노조원을 바라보며, 자신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른 노조 측 대표에게 전무식이 말했다.
“일단 오늘은 다 해산시켜라.”
“네?”
“그리고 내일은 아침 9시까지, 여기가 아니라 본사 앞으로 모이라고 해.”
“본사 앞이요?”
“내일은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시위를 하자. 이것들이 살살 해 주니까, 무서운 게 없어진 모양이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