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강인환 소장이 인솔한 통근 버스 네 대가 본사 앞으로 도착한 건 10시 반이 조금 넘어서였다.
스마일 스쿨의 안산 공단 외국인 노동자들과 계약직 직원들이 네 대의 통근 버스에서 일제히 내려, 파업 시위 중인 노조원 무리와 100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강인환 소장이 이끌고 온 외국인 노동자들과 계약직 직원들은 노조의 일방적인 파업을 꼬집기라도 하듯 귀족 노조는 해산하라, 생산 라인 가동을 막지 마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멈춰라… 등과 같은 문구의 피켓을 들고 대치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대치 상황을 사무실 창문을 통해 지켜보고 있을 때 전략기획팀장이 인사부를 찾았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기자들 도착했습니다.”
전략기획팀장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정장 재킷을 챙겨입고 김 차장에게 말했다.
“저 내려갔다 오겠습니다.”
그러자 김 차장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도 같이 내려가죠.”
“아닙니다, 차장님.”
“그래도….”
“차장님은 공단 식당에 전화 한 통 넣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공단 식당이요?”
“오늘 저녁 직원들 메뉴에 신경 좀 써 달라고요. 금방 내려가서 사람들 복귀시키고 올라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전략기획팀장과 함께 밑으로 내려갔다.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생소한 파업 시위 현장에 어느 쪽 촬영을 먼저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였다.
노조 측은 강인환 소장이 이끌고 온 대치 세력의 등장에 잠시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는데, 그런 기색도 잠시, 기자들의 등장에 새로이 의기양양해 있었다.
하지만 곧 기자들을 부른 전략기획팀장의 등장에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하는 눈치였다.
“상습적인 파업, 파업을 협박 수단으로 사용하는 노조, 그리고 계약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파업 명분으로 들면서도 정작 교섭 과정에서는 단 한 번도 계약 직원의 정규직 전환에 관한 부분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있는 노조 측 대표.”
기자들을 앞에 두고 조곤조곤 말을 이어 가는 전략기획팀장의 모습에 600여 명이나 모여 있는 노조 측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런 재경모직의 노조와 노조 측 대표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는 생산 라인의 계약직 직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용기를 냈습니다. 양측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들어 보시고, 공정한 기사를 만들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난 교섭을 위해 안으로 들어가 있는 노조 측 대표 7인을 대신해 파업 시위를 통솔하고 있던 무리 쪽으로 걸어갔다.
“마이크 좀 씁시다.”
“방해하지 마십시오.”
마이크를 빌려 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돌아오는 건 거친 거절이었다.
내 손을 밀쳐 내며 한 남자가 말했다.
“시위에 이렇게 참견을 하시는 건 회사가 노동자들이 내는 목소리의 권리를 강압적으로 탄압하는 겁니다.”
겁을 먹고 있으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다는 게 다 보였다.
“탄압하겠다는 게 아니라 소통을 하자는 겁니다.”
“뭐요?”
“소통을 거부하면 그건 지금 하고 있는 파업 시위를 그쪽이 앞장서서 정당한 목소리가 아닌 떼를 쓰는 걸로 만드는 겁니다.”
“…….”
“시위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뭡니까? 사측과 소통을 하자는 거 아닙니까?”
난 일부러 다른 노조원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통은 노조 측 대표들만 하는 겁니까? 그 7명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모인 거예요? 생산 라인까지 강제로 멈춰 세워 놓고? 저 안에 들어가 있는 7명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입니까?”
“…….”
“마이크 좀 씁시다.”
파업에 가담한 무리 이곳저곳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이크 줘 보세요!”
“그래, 줘 보세요. 뭐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나 보게.”
“들어 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어? 이거 언제 끝나는데?”
“그러니까. 공장도 아니고 본사 앞으로 아침 9시까지 모이라고 하는 게 어딨어? 시간 맞춰 온다고 난 오늘 6시에 일어났어.”
“빨리 끝내고 해산합시다!”
난처해하는 남자 앞으로 다시 한 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이쪽이 먼저 시작한 거 아닙니까? 이쪽 이야기 먼저 들어 보고, 강 소장님 쪽 이야기도 들어 봐야죠. 카메라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기. 노조. 직원들을 대표해서 회사와 소통을 하자는 겁니까, 아님 회사와 직원들 간의 소통을 막겠다는 겁니까. 확실히 하세요. 어쩌겠다는 겁니까?”
결국 마이크를 건네받는 데 성공을 했다.
이동용 스피커 네 대가 양 사방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인사부 손정훈 과장입니다.”
내 소개를 하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정훈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여럿 되는 거 같아 보였다.
“여러분의 요구 조건을 검토하기에 앞서 몇 가지만 먼저 확인차 여쭤보겠습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렌즈가 일제히 날 향하고 있었다.
“혹시 작년 9월과 올해 3월에 있었던 파업 당시 노조 측 대표 쪽에서 회사와 정리한 교섭 내용을 공지하던가요?”
노조원들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작년 9월에 있었던 교섭 내용입니다. 건전한 노조 활동을 위해 노조 측 대표들에게 회사는 현장 활동 지원비를 지원하고, 두 자녀에게 지원되고 있는 학자금을 전 자녀로 확장해 준다.”
난 얼이 빠지기 시작하는 노조원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 교섭 내용 어디에 지금 여러분이 들고 계시는 피켓 내용이 있습니까? 참고로 해당 교섭 내용은 회사의 제안이 아니라 노조 측 대표들이 제시한 요구 내용입니다. 그걸 회사 측에서 수락한 거뿐입니다. 이 내용 어디에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일한 만큼 보상하라, 혁신안 폐지하라, 법정 근로 시간 준수하라… 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까?”
“…….”
“올해 3월 파업 당시 있었던 교섭 내용입니다. 더 기가 막힙니다. 노조 측 대표들이 요구한 조건. 저 이거 보면서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전 생산 라인 직원들에게 월 20만 원씩 지원되는 복지 카드, 그리고 통근 버스의 운행을 줄여 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는 식의 의심 섞인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그게 뭐야? 통근 버스 운행이 줄었어?”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우린 자차로 출퇴근하잖아. 그것보다 복지 카드 지원이 중단된 게 회사 결정이 아니라 노조 측 쪽 요구였다고?”
“넌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다 믿고 앉아 있어?”
“지금 방송국에서 촬영까지 하고 있는데, 회장 아들이 그런 거로 사기를 치겠냐?”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동요가 커지고 있었다.
“복지 카드 지원을 멈추고, 통근 버스 운행을 줄이는 대신 뭘 요구했는지 아십니까?”
“…….”
“직원들 복지 카드 지원을 중단하는 대신 노조 측 대표들의 현장 활동 지원비를 50퍼센트 인상해 주고, 장기 근속자 자녀 채용 수를 10퍼센트 수준으로 확대해 달라는 요구를 해 왔습니다.”
난 정 대리가 정리해 놓았던 교섭 내용을 한 상자 가득 복사해 놓았고, 그걸 노조원들이 알아서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박스를 열었다.
해당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교섭 내용을 뒤에서 뒤로, 옆에서 옆으로 자기들끼리 돌려 보는 노조원들의 모습에, 노조 측 대표들을 대신해 시위를 지휘하고 있던 인물들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X발, 진짠데?”
“이거 사기 치는 거 아냐?”
“이 상황에서 회사가 사기를 어떻게 치냐, 사기를.”
“이거 진짜면 완전 배신감 드는데?”
그들의 웅성거림은 내가 다시 마이크를 입에 갖다 대자 즉각 사라졌다.
“노조 위원장 밑으로 현재 연 3,600만 원이라는 현장 활동 지원비가 잡혀 있습니다. 그 3,600만 원을 시작으로 노조 측 대표 7명이 많게는 3,600, 적게는 1,600만 원씩 현장 활동 지원비를 받아 가고 있습니다.”
“…….”
“그건 회사가 제공하고 있는 노조 지원비고요, 여러분들이 내고 있는 노조 가입비는요?”
1인당 월 29,800원이 마치 당연한 항목인 듯 월급에서 공제가 되고 있다는 걸 노조원이라고 왜 모를까.
“그 큰돈이 노조로 모이는데, 도대체 회사로부터는 현장 활동 지원비를 받아 가고, 여러분들을 상대로는 노조 가입비까지 다 챙겨 가는 노조가 그 큰돈으로 뭘 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사용처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 중 지난 1년간 두 차례 파업을 통해 노조가 여러분의 근무 환경을 개선시킨 부분이 하나라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
“그래서 요청했습니다. 노조 가입비에 관한 내용이야 회사가 참견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고, 그럼 현장 활동 지원비에 관한 지출 내역이라도 제출을 하라고. 그 돈은 회사가 노조 측 대표들에게 주는 돈이 아닙니다. 노조원분들의 건전한 노조 활동을 지원하는 차원의, 말 그대로 현장 활동 지원비인 겁니다.”
“그래서 지출 내역을 받으셨어요?”
누군가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입고 있는 붉은색 파업 조끼를 벗어 던질 기세로 내게 물었다.
“아뇨, 지난 일주일간 세 차례에 걸쳐 지출 내역 제출을 요청했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순찰차 세 대가 동시에 본사 입구 앞으로 들어갔다.
난 그 순찰차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현장 활동 지원비는 보관항이라고, 회사가 지출 내역을 요청하면 제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3차 요청이 24시간 전인데 단 한 번도 요청에 응해 주질 않습니다. 이럴 때 회사는 횡령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고, 정황이 드러나거나, 아니면 지출 비용을 제대로 증명해 내지 못할 경우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해야겠죠.”
여기저기에서 입고 있던 파업 조끼를 벗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X발, 내가 지금 이런 소리 듣겠다고 그 새벽부터 일어나서 그 비싼 기름값 들여 여기까지 온 거야?”
“근데 정말 우리가 매달 내는 노조 가입비는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 거야? 나 지금 3년째 매달 3만 원씩 내고 있는데, 이 조끼 하나에 100만 원은 아닐 거 아냐.”
“지금 저 경찰차 노조 위원장 잡으러 온 거 아냐?”
“그런 거 같은데?”
노조원들이 동요가 커지자 내게 마이크를 넘겼던 남자가 서둘러 내게서 마이크를 빼앗았다.
“자, 자! 아직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앉으세요!”
“앉긴 뭘 앉아요! 지금 이거 통근 버스 운행 줄인 거 말이에요. 만약 이게 진짜면 당신들 천벌 받아!”
“맞아! 뭐? 장기 근속자 자녀들 채용을 확대시키는 조건으로 직원들 통근 버스 운행을 줄여?! 미친 거 아냐?!”
“차 있는 사람이야 아무 상관 없고, 오히려 자기들은 받지 못하는 혜택이라 아무 상관 없겠지만, 나처럼 차 없고 새벽 출근 많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노조원들의 불만은 쉽사리 잡힐 거 같지 않았다.
난 다시 내게서 마이크를 빼앗아 간 남자 앞으로 아직 할 말이 다 끝난 게 아니라며 손을 내밀었다.
마이크를 다시 넘겨받고 노조원들에게 말했다.
“그럼 저기 저분들은요?”
내 말에 노조원들은 강인환 소장과 함께 모여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계약직 직원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언제 그렇게 흥분을 하고 화를 냈냐는 식으로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들이 이렇게까지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드는데, 저기 저분들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전략기획팀장이 정규직 전환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고함을 쳤다.
"그 피켓 내리세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
“그 피켓도 내리세요!”
전략기획팀장이 이번엔 일한 만큼 보상하라는 문구가 써진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고함을 쳤다.
“저분들이 들고 있어야 할 피켓을 왜 당신들이 들고 있습니까? 그 피켓을 들 거면 여기 있지 말고, 저쪽으로 가세요. 그게 맞는 거 아닙니까?”
난 그런 전략기획팀장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지켜봤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급기야 절반이 넘는 노조원들이 산불 번지듯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파업 조끼를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정말 강인환 소장이 서 있는 쪽으로 노조원들이 우르르 옮겨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귀족 노조를 해산하라는 피켓을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들기 시작했고, 자신의 동료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그들의 명분 있는 시위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전략기획팀의 제보로 출동한 언론사 기자들이 바쁘게 카메라에 담았다.
잠시 후 본사 건물 입구 쪽에서 노조 측 대표 7명이 경찰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경찰차에 나눠 탔다.
해당 체포는 현장 활동 지원비 횡령에 관한 체포가 아니라 안산 공장 라인 마스터키 절도에 관한 체포일 것이며, 횡령에 관한 내용과 파업으로 공장 라인이 중단되어 회사가 입게 될 손해 역시 노조를 상대로 회사가 소송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난 그 내용을 강인환 소장과 함께 뜻을 모으고 있는 우리 직원들에게 모두 전달한 뒤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인사부에서 책임지고 정규직 전환에 관한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인사부에서 책임지고 현 노조 측 대표들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그 손해는 회사가 입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손해 입지 말고, 얼른 현장으로 복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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