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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까지 완벽합니다 (50/303)

수비까지 완벽합니다

“HRO. 풀어서 휴먼 리소스 오퍼레이션이라고 설명해 드릴 수 있겠습니다. 현재 재경모직에서는 꼭 필요한 인사 부서가 될 겁니다.”

확신하며 남 사장에게 말했다.

“휴먼 리소스 오퍼레이션? 그게 HRM과 무슨 차이가 있어? 결국 오퍼레이션이나 매니지먼트 그게 그 말 아냐?”

이런 답답한 친구를 봤나.

제발 좀 한 번에 알아들어라, 한 번에!

내가 정말 도대체 언제까지 이 어리석은 놈들 눈높이에 맞춰서 사업을 만들어 입에 떠먹여 줘야 하는 거지?

정말 어쩌다 나의 재경이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추락했단 말인가.

명색이 사장, 전무라는 놈들이 딱 하면 척하고 알아들어도 모자랄 판에 쉽게 설명을 해 줘도 못 알아듣고 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오히려 이런 놈들을 사장 자리, 전무 자리에 앉혀 놓고 재경을 지금까지 이끌어 가고 있는 홍준이 놈이 대단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현재 HRM 직원 7명이서 어떤 업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7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3,200여 명의 재경모직 직원 모두를 케어하고 있다.

채용은 물론이고, 승진, 급여, 복리 후생, 고과 평가, 노사, 한 해의 인력 운영, 직원들의 불만 접수 및 해결….

“일례로 채용 부분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이번에 바뀌었다 뿐이지, 그전까지는 공격적인 채용이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봐야죠. 채용은 발로 뛰는 거 아닙니까? 공채가 전부가 아니라, 이 회사에 꼭 필요할 거 같은 인재가 어딘가에 있으면 직접 달려가서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그런 외부 채용을 전담하는 인력이 현재 HRM에는 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대기업입니까? 그냥 덩치만 큰 동네 구멍가게죠.”

“손 과장님. 말씀을 좀….”

“아니이이….”

제발 성격 좀 죽이자.

나도 모르게 내가 회장일 시절 아랫사람을 대하듯 조 전무 앞에서 짜증을 내 버렸다.

얼른 실수를 인정하고, 표정과 말투를 바로잡았다.

“전무님도 객관적으로 좀 봐 주세요. 지금 이 자리에 우리 셋 말고 더 있습니까? 다른 들을 사람도 없는데, 우리끼린 좀 솔직해져도 되는 거 아닙니까?”

조 전무 역시 자신이 가진 모직 관련 전문 지식으로는 나의 입을 막지 못한다는 걸 눈치채고 자신의 입을 막으며 남 사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 많은 조기 퇴사 희망자 면담을 HRM에서 그간 다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 업무만 보는 고정 인력만 최소 한두 명은 필요했을진대, 그럼에도 그간 큰 사고 없이 업무를 잘 처리해 왔더군요. 이번에 터진 노조 문제는 또 어떻고요? 그간 터졌던 파업. 미연에 방지할 수 없었던 걸까요?"

난 다시 한번 남 사장과 조 전무를 차례대로 쳐다본 후 말했다.

“HRM의 업무 강도를 덜어 주면서, 동시에 HRM과 HRD의 업무 동조를 원활하게 만들어 낼 중간 다리 역할을 맡아 줄 팀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됩니다.”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남 사장이 물었다.

“김 차장도 이 건에 대해 알고 있나?”

“그 필요성은 저보다 더 빨리 느꼈겠죠. 다만 위로 의견을 올릴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없었던 게 문제였을 테고.”

“흠… 쉽게 말해서 손 과장 네 말은 새로 개설해 달라는 HRO가 HRM의 하위 호환의 개념이라는 거야?”

“만들기에 따라서 하위 호환이 될 수도 있고, HRM과 대등한 위치의 팀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우선 외부 인력 채용에 관해서는 HRO가 진행을 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이 부분이 내게 중요한 이유는 외부 인력 채용을 빌미로 각 부서장을 통해 해당 부서의 사정을 좀 더 깊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퇴사 희망자들의 면담과 한 해의 인력 운영에 관한 내용 역시 HRO 쪽으로 넘기면서 HRM의 업무 강도를 낮춰야 합니다.”

“손 과장 네가 HRO팀을 맡아 보겠다?”

“앞으로 1년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뭐가?”

“팀 세팅부터 기반을 다져 놓기까지요. 어차피 저는 재경모직 인사부에서 2년 이상 머물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회장님이나 본사 상무도 다 과장으로 시작해서 2년 정도 현장 업무를 익힌 뒤 다른 곳으로 승진 트랜스퍼가 됐던 거 아닙니까. 1년 안에 팀 세팅부터 기반까지 확실히 다져 놓겠습니다.”

“필요한 인원은?”

“제가 보고 경력 있는 외부 인력을 채용해서 팀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남 사장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다음 신상품 개발팀의 계약직 전원 정규직 전환 건에 관해 물었다.

그에 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 사장의 의중을 물었다.

“사장님은 앞으로도 현재 재경모직의 사업 구조에 변화를 주지 않으실 생각이세요?”

“어떤 변화?”

“자체 브랜드 론칭, 세계 시장 공략… 그걸 해 보고 싶으셔서 신상품 개발팀장을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오셨던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지가 않아.”

“생각만 하셨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그 말에 남 사장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맞는 말이라 변명할 여지도 없네.”

사실 그 순간에서조차 난 조 전무가 신경 쓰였다.

이 대화에 집중을 하기보다는 나와 남 사장이 나누는 대화를 기억해 뒀다가 홍준이 놈에게 보고를 하려 한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자기가 판단을 했을 때 보고를 할 만하면 하는 거지.

내가 그런 자잘한 부분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어디 있을까.

“재경모직을 대표했던 브랜드 두 개가 아예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어째서 우린 더 이상 우리 자체 브랜드를 론칭시키지 못하고 있는 겁니까?”

정말 답답했다.

“지금 재경모직이 하고 있는 사업이 어떻게 모직 사업입니까? 이건 모직 사업이 아니라 수입 사업이죠. 이 정도면 모직 기업이 아니라 상사 기업 아닙니까?”

“때를 놓쳤어. 이건 비단 우리 재경모직만의 문제는 아니고. KS 인터내셔널을 봐. 중국 시장 겨냥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영업 매출을 올려 왔어? 그런데 국제 관계가 뒤틀리고, 양국 간의 관계가 엉망이 되면서 작년 한 해 KS 인터내셔널의 영업 이익이 반토막이 났어.”

“반토막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재경모직의 영업 매출의 두 배 이상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

“왜 그렇게 다들 중국 시장에 목을 맵니까?”

난 정말 이해가 안 됐다.

내가 재경 그룹의 회장으로 눈을 감기 전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에서는 중국이란 시장 자체가 없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뭔가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 유통을 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우린 너무 많은 걸 해냈다.

그 당시 대한민국 경제의 유통 채널은 중국이 아니라 전 세계였다.

그런데 어떻게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이 30년 전과 비교해 경제 채널이 더 획일화, 단순화되며 좁아질 수 있단 말인가.

경제 규모는 훨씬 더 커졌지.

그런데 우리만 커졌냔 말이지.

다 커졌는데.

30년 세월이 지났으니, 그 30년 세월만큼 성장한 경제 규모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금 따져 봐야 할 건, 숫자가 아니라 대상이다.

수출 상대국, 수출 채널만 놓고 보면 현재 대한민국의 산업, 경제는 아주 위험한 수준까지 와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 추석 연휴를 이용해 제가 파리에 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생뚜앙 벼룩 시장 맞은편에 20층 높이의 쌍둥이 빌딩이 있던데, 한 빌딩 옥상엔 현대자동차 광고판이 붙어있고, 다른 빌딩 옥상엔 삼성 광고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몇 년 됐어.”

“시내로 나가 봤습니다. 라파예트 백화점에 가 봤죠. 중국에서는 철수하고 있다는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 후… 아직 라파예트 백화점에서는 건재하던데요?”

“…….”

“휠라. 이젠 한국 브랜드 아닙니까? 정말 엄청나던데요? 한국에서나 찬밥 신세이지, 파리 현지에서는 정말 젊은 사람 10명이 길거리를 지나가면 한 명은 휠라를 신고 있습니다.”

“…….”

“좋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큰 메리트도 없어 보이는데, 다들 중국 시장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으니, 중국 시장을 예로 한번 들어 볼게요. 미국이랑 사이가 안 좋다고 중국 사람들이 아이폰을 안 씁니까? 중국 사람이 테슬러를 안 타나요? 전 세계 테슬러 전체 판매율보다 중국 현지 판매율이 20퍼센트 더 높다고 합니다.”

“…….”

“휠라 역시 중국 시장에서 현재 상당히 강하다고 하더군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중국 시장에서 통할 물건이 아니라, 모두에게 통할 물건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그 물건은 중국에서도 통할 수밖에 없다는 말 아닙니까? 왜 그 당연한 걸 다 알고 계실 거면서 신상품, 브랜드 론칭에 겁을 먹고 계세요. 그냥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면 됩니다. 그냥 경쟁력이 높은 상품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된다고요. 그럼 그런 물건은 어디에서든 통할 수밖에요. 안 그렇습니까, 전무님?”

내 말에 조 전무는 얼른 정신을 챙기며 황급히 대답했다.

“네, 그렇죠.”

“신상품 개발팀 전원 정규직 전환해 주십시오. 더 뽑아야 합니다. 신상품 개발팀은 지금보다 두 배, 세 배 이상 되는 직원들이 더 필요합니다.”

“브랜드 론칭이 손 과장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냐.”

장난하나.

내가 론칭시켰던 브랜드가 몇 개인데….

“그게 정 현재 우리의 힘으로 하기가 어려운 거라면 론칭되어 있는 걸 사면 됩니다.”

“뭐?”

“휠라는 어디 처음부터 한국 브랜드였습니까? 시작부터 어렵다,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가면 될 것도 안 됩니다, 사장님. 혹시 그룹 본사에서 모직이 커지는 걸 우려하고 있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그런 게 아니라면 필요할 만한 투자엔 그룹 본사에서 도움을 주겠죠. 사장님은 지금 워리어가 되셔야 합니다. 직원들을 독려해서 다들 ‘돌격 앞으로’를 외쳐야 하실 분이 지금처럼 이렇게 수성에만 집착하셔서 어떻게 합니까? 현상 유지만 되지, 성장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기업에서 어느 직원이 비전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

“업계 최고 대우를 해 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기 퇴사율이 그렇게까지 높았던 이유를 잘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제 생각엔… 직원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 주지 못한 경영진이 조기 퇴사율을 높였던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수성만 하는 곳에 있는 병사들이 어떻게 바깥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욕심을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 * *

“하하하! 정훈이가 남 사장한테 워리어가 되어 달라는, 그런 주문을 했다고?”

그날 저녁 어느 고급 일식 전문점.

손홍준 회장과 마주 앉은 조동희 전무는 그게 끝이 아니라며 말을 이어 갔다.

“네, 그리고 아침에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노조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도 손 과장은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반대 의견? 왜? 뭐라고 하던데?”

“오히려 해당 뉴스가 나오는 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징글징글하게 느껴질 정도로 계속 언론을 타게끔 해야 한다고 하네요.”

“뭐?”

“회사가 덮을 내용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킬 그 어떤 내용도 없는데, 그걸 왜 덮냐고요. 오히려 해당 내용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 결과를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도록 계속 언론 쪽을 부추겨야 한다는 게 손 과장의 생각이었습니다.”

“언론을 계속 부추겨?”

조 전무의 잔을 채워 주며 손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손 과장 생각은 이번 파업을 주도했던 노조 측 대표 7명은 물론이고, 강성으로 직원을 선동했던 조합원 64명에 한해서도 해고 조치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현장 여론은?”

“은근히 기대를 하는 분위기입니다.”

조 전무는 얼른 주전자를 넘겨받아 손 회장의 잔을 채웠다.

술을 받으며 손 회장이 싱긋이 웃었다.

“기대를 하고 있다?”

“네. 횡령에 걸려 있는 액수가 크다 보니, 현장 직원 대부분이 그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그렇게라도 해소를 하려고 하는 분위기입니다.”

“흠….”

“저도 이 부분에선 손 과장의 생각에 동의가 되는 게 파업에 따른 손해 배상을 노조 쪽으로 청구해 놓은 상태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해당 손해 배상 청구 소송 건만 이기게 된다면 그 64명에 대한 해고 건도 수월하게 진행이 될 것이고, 푼돈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배상금으로 현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고 전체 임금을 6퍼센트대로 올려 주면 가장 깔끔한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남 사장은 뭐라고 하던가?”

“남 사장 생각 역시 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저한테 오늘 회장님을 만나면 이야기를 한번 올려 보라고 하더군요.”

술잔을 꺾은 뒤 손 회장이 물었다.

“정훈이가… 지금 자네가 봤을 때 어떤가?”

그 질문에 조 전무는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일전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손 과장에 대한 제 평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거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무서울 정도?”

“네.”

“음… 깜냥이 되겠단 말이야?”

“제 눈엔 그렇습니다.”

그 말에 손 회장은 다시 한번 기분 좋은 미소를 흘렸다.

“남 사장 때랑 비교를 하면 어떤가?”

“어떤 비교 말씀이십니까?”

“형님 살아 계실 때, 그룹 본사 전략 기획 본부에서 자네랑 같이 몇 년 있었잖아.”

“네.”

“그러다 여정이하고 결혼하고 모직으로 옮겼고.”

“네.”

“그때의 남 사장과 비교해서 어떤 거 같냐는 말이야.”

조 전무는 곧바로 대답을 하기 전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모습을 손 회장에게 보여 준 뒤 무겁게 입을 열었다.

“비교가 힘듭니다.”

“어째서?”

“우선 그때는 지금과 비교해 저부터도 경험이 많이 부족할 때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손 회장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가 남 사장을 상대로 느꼈던 감정은 대단하다, 나보다는 뛰어난 인물이 확실하다…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고작이었다?”

“네, 고작이었죠.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그때의 남 사장은 그저 제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진 수많은 인물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정훈이는?”

“그런데 지금의 손 과장은… 하… 이걸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럼 정태랑 비교하면 어때?”

“본사 상무하고요?”

“그래. 정태도 자네가 항공 쪽에서 2년 정도 데리고 있어 봤잖아. 오히려 지금의 자네라면 자네 말처럼 남 사장보다는 정태와 비교를 해 보는 게 더 수월하겠네.”

고개를 돌려 손으로 술잔을 가린 뒤 술을 마신 후 조 전무가 말했다.

“그 비교 역시… 조금은 어려울 거 같습니다.”

“어째서?”

“회장님, 야구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좋아하지.”

“저는 오히려 손 과장을 손 상무와 비교하기보다는 이종범에 비교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종범?”

“분명히 홈런 타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1번을 치면서 홈런도 많이 칩니다.”

“……?”

“홈런만 칩니까? 일단 이종범이 살아 나가면 그 경기는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랬지. 한때 해태가 대단할 땐 그런 말이 있었지. 실제로도 그랬고.”

“살아 나가기만 하면 베이스를 훔치며 투수의 멘탈을 흔들어 놓고, 그게 싫어 투수가 정면승부를 해 버리면 홈런이 나옵니다. 상대편 입장에선 방법이 없는 거죠.”

손 과장을 이종범에 비유를 하고 있는 조 전무의 얼굴엔 어느새 흥이 넘쳐 나고 있었다.

“홈런은 손 과장보다 손 상무가 더 많이 칠 수도 있습니다. 야구로 비유를 하자면요. 안타 자체도 손 상무가 더 많이 칠 수도 있겠죠. 아니, 모든 공격 포인트에서 손 상무가 손 과장을 압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손 과장은 현재 수비까지 완벽합니다.”

“……!”

“그냥 야구 자체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이종범을 뛰어넘는 선수는 없었다는 게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최근 몇 달간 손 과장이 해내고 있는 걸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냥 야구에서 이종범이 해냈던 활약을 바로 옆에서 생중계로 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입을 댈 게 없습니다. 뭐라고 하겠습니까? 더 잘해라? 더 열심히 해라? 이미 그 이상을 다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입을 대겠습니까?”

“그 정도란 말이야?”

“저도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단 몇 달 사이에 그렇게 바뀔 수가 있는 것인지. 그런데 만들어 내고 있는 결과들이 이런 걸… 어쩌겠습니까? 지금껏 어느 누가 노조 파업을 단 하루 만에 해산시킬 수 있었습니까?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손 과장이 하고 있고요.”

반쯤 남아 있던 잔을 마저 비워 놓고 손 회장이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할 정도라면… 노조 관련된 언론 플레이는 아침에 내가 전화로 했던 말 잊고, 정훈이가 하자는 대로 한번 해 줘 봐.”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 사장하고도 이야기를 따로 해 보고, 본사 차원에서 투자는 얼마든지 담아 줄 수 있으니까, 겁먹지 말고 브랜드 론칭 쪽으로 집중해 보라고 하고.”

“네.”

“식사하지. 모처럼 음식에서 맛이 느껴지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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